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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복지와 재정의 새 틀을 짜자 -⑤정치권,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2월12일 20시20분
  • 최종수정 2017년12월14일 10시54분

작성자

  • 김형준
  • 배제대학교 인문사회대학 석좌교수(정치학),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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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 없는 복지’ 논쟁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집권당 지도부가 그 포문을 열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국회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런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도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면서 “중부담 중복지로 가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무상급식 등 기본적 복지사항은 축소되면 안 되지만, 다른 부분들의 선별적 복지에는 찬성한다."면서 “복지축소·구조 조정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일자 "복지를 축소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무상복지 등의 구조조정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여하튼 여당이 증세, 야당이 선별적 복지를 언급한 것은 큰 변화임에 틀림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중요한 정책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고 이를 토대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데이비드 이스턴(D. Easton)의 말대로 ”정치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정치권의 증세․복지 논쟁은 무차별적으로 전개되면서 본질과 방향성을 잃고 있다. 국민의 삶과 대한민국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증세 없는 복지’ 논쟁이 생산적으로 흐르고,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효율적인 해법이 제시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정부와 정치권은 증세와 복지 수준에 대한 합의를 우선적으로 도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증세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복지를 축소하려고 하는 것인지 명쾌하게 해야 한다. 논쟁의 선후 관계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증세 여부’(증세 有 vs 증세 無)와 ‘복지 수준(확대 vs 유지․축소)’의 두 변수를 기준으로 4가지 상이한  주장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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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유형은 증세를 하고 복지를 확대하자는 주장이다. 이것은 야당의 ‘보편적 복지’와 맥을 같이 한다. 현행 22%의 법인세를 25%로 정상화시키고 부자 증세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제2유형은 현 복지수준 유지해도 증세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복지 축소는 힘들고, 증세는 가능하다'는 유승민 새누리당 신임 원내 대표가 대표론자이다. 그는 증세를 한다면 부자에게 하는 것이 옳고, “법인세도 성역으로 둘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제3유형은 증세를 하지 않으면서 현행 복지수준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기조이다. 2013년 5월 기획재정부는 '박근혜 정부 국정 과제 이행을 위한 재정 지원 실천 계획'이라는 공약 가계부를 발표했다. 복지 분야(79조3000억 원)를 중심으로 140개 국정 과제 실현에 필요한 134조8000억 원을 증세 없이 마련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비과세·감면 정비(18조원), 지하경제 양성화(27조원), 세출 절감(84조원) 등의 방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경제가 기대만큼 살아나지 않으면서 세입은 줄고 세출은 되레 늘어나면서 지난 2년간 세수 결손액이 20조원 가까이에 이르렀다. 
 
 제4유형은 증세를 하지 않으면서 복지를 축소하자는 것으로 주장이다. 김무성 대표는 우선 복지를 구조 조정하고 증세는 마지막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김 대표는 "복지 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며 복지 축소를 주장했다. 당·청이 다르고 집권당 투톱(김무성·유승민)이 다르다 보니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증세를 하고 있다. 2013년과 2014년 세법개정안을 마련하면서 근로소득자 중 연봉이 일정 수준 이상 되는 사람들의 세금 부담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말정산 공제 제도를 개편했지만 일부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근로자들의 세 부담이 늘어나는 일이 발생했다. 다자녀가구 및 노년층의 세 부담이 높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사실상 증세를 하면서 증세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바람에 ‘꼼수 증세 논쟁’이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한국 갤럽이 지난 1월 4주(27~29일)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0%는 현 정부가 '증세를 하고 있다'고 봤으며 9%만이 '증세를 하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더구나, '증세 없이 복지를 늘리는 것'에 대해 우리 국민의 65%는 '가능하지 않다'고 한 반면, 27%만이 '가능하다'고 응답했다. 이렇게 정부 주장과 달리 현재 증세를 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은 세금 징수 대상과 방식에 대한 충분한 합의나 설득이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7일 "지금 (정치권에선) 증세 얘기가 나오지만, 우리 목표는 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그런 비용을 국민에게 부담지우지 않고 해보겠다는 취지였다"며 "이 정부의 복지 개념은 미래를 위한 소중한 투자다. 보육도 미래를 위한 투자 개념을 하고 있다"고 언급해 자신의 공약사항인 전 계층 무상보육 정책을 계속 추진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국정운영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조속히 당․정․청 회의를 직접 주관해서 증세와 복지 수준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증세 없는 복지 축소’로 갈지, ‘증세 없는 복지 유지‘로 갈지, 아니면 ‘증세 있는 선별적 복지’로 갈 지 정부․ 여당안을 도출해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둘째, 복지 논쟁의 프레임을 바꾸어야 한다. 더 이상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를 둘러싼 이분법적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로운 복지 논쟁은 ‘지속 가능한 복지’ ‘생산적 복지’, ‘유연한 복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필자는 스웨덴을 방문해 정치학자들과 복지 전문가들을 만나 대한민국 복지 제도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복지는 특정 정파의 전유물이 아니다. 복지에는 여․야, 진보․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면서 1930년대에 시작한 스웨덴 복지 모델은 진보인 사민당과 보수인 농민당이 타협해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더구나 스웨덴식 복지 체제를 구축하는데 40년이 걸렸다면서 복지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점진적으로 완성하는 것이지 한국처럼 단기간에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스웨덴은 ‘고부담 고복지’의 기조를 갖고 있지만 한국이 그리스와 같이 ‘저부담 고복지’의 길을 걸으면 실패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단순한 복지 수준이 OECD 국가들의 평균에 못 미친다는 것을 강조하기 보다는 복지비용의 확대 속도를 함께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복지가 가능하다는 그들의 지적은 깊이 음미해볼 만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작년 11월에 발표한 2014∼2060년 장기재정전망'을 보면 인구 고령화와 생산 가능인구 감소로 국가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노인인구비중이 30%를 초과하고 생산 가능 인구 하락세가 고착화되는 2030년에 2천조 원에 근접하고 2060년에는 1경4천61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인구 고령화에 따른 세입감소와 복지지출의 증가가 원인인 것으로 파악됐다. 여하튼 국가 재정에 대한 미래 전망을 토대로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복지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고 책임이다. 스웨덴은 2006년 선거에서 65년간 지배했던 사민당이 패배하고 보수당으로 정권이 교체됐다. 보수당은 스웨덴 복지의 근간을 유지하면서도 ‘모럴 해저드’를 가져 오는 복지 시스템을 개편했다. 더구나,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때는 복지를 과감하게 축소했으며 그 이후 경제가 회복된 후 에 다시 복지 수준을 정상화시켰다. 한국처럼 한 번 준 복지는 뺏을 수 없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유연한 복지 정책으로 보수당은 2010년 총선에서도 승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1년이 지난 1999년 4월에 “생산적인 복지 국가를 지향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생산적인 복지는 정부가 모든 것을 다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자기의 힘으로 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교육 훈련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김대중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새정치연합은 이것을 깊이 숙고해야 할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야당은 ‘무상 보육, 무상급식, 무상 의료’ 등 무차별적인 무상 복지를 내세웠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선거를 엿새 앞두고 “복지 예산을 위해 20조원의 추경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더 이상 정치권은 이와 같이 “표를 얻기 위한 복지”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으로 ‘책임 있는 지도자’의 길이 아니다.  최근 문재인 의원은 당 대표 경선에서 “복지를 잘 하려면 성장을 해야 한다.”고 했고 박지원 의원은 “복지는 필요하지만 국가 재정을 감안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무상 복지만을 강조했던 과거 야당과는 분명 달라진 모습이다. 복지에 대한 야당의 이런 열린 생각과 변화된 태도가 생산적인 복지 논쟁을 촉발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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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 국회가 갈등을 증폭시키는 장이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복지 관련 국회 차원의 정교한 ‘공론 조사’(deliberative poll)를 실시해 볼 만하다. 공론조사는 가변적이고 피상적인 대중 의견이 아닌, 정보에 기반 해서 여론을 측정하는 방안이다. 전통적인 여론조사는 정보에 기반 한(informed) 의견 수렴이 아니며, 따라서 매스미디어 등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는 지적이 있다. 대표성과 숙고의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겠다는 의도에서 제안된 공론조사는 이 점을 보완할 수 있다. 따라서 보통 여론 조사와 다르게, 조사에 선정된 보통 사람들이 정책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고, 이야기한 후 설문에 응하도록 한다. 이런 정교한 국민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복지와 재정의 새 틀을 짜야 국민 합의를 통한 새로운 복지 모델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제도와 정책은 없다. 보다 완벽한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만이 존재한다. 막다른 길에 몰린 박근혜 정부의 복지·세금 정책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방향과 방식에 대한 오해와 착각이 종종 발견된다. 이것이 효율적인 해법을 가로 막고 있다. 야당처럼 방향이 맞으면 방식이 다시 거칠고 투박해도 상관없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마찬가지로 여당처럼 방식이 옳으면 방향은 상관없다는 것도 착각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증세와 복지같이 민감한 정책은 방향도 옳고 방식도 옳아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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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2월12일 20시20분
  • 최종수정 2017년12월14일 10시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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