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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 인상은 기업 투자를 저해하는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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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2월11일 16시53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20시23분

작성자

  • 김상조
  • 한성대 교수, 경제개혁연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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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법인세 인상은 기업 투자를 저해하는가
 
 새누리당 發 증세 논의가 뜨겁다. 요즘 대한민국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시작도 뜻밖이고 끝도 알 수 없다. 2012년의 경제민주화 및 복지국가 열풍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로부터 촉발된 것처럼, 이번 증세 논의도 새누리당 지도부에서 방아쇠가 당겨졌다는 점에서 참으로 뜻밖이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초기부터 공약의 종적이 묘연해진 것처럼, 이번 새누리당의 증세 논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보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어떤 식으로 용두사미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모든 진보적 어젠다에서 주도권을 여당에 빼앗기는 야당의 무능과 지리멸렬함에 어처구니가 없지만, 어쨌거나 증세 문제가 모처럼 현안 이슈로 떠오른 것은 반가운 일이다. 더구나 지난 이명박 정부 이래 여당에서는 금기시되어 왔던 법인세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법인세 인상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재계가 내세우는 반대 논거는 ‘투자 저해론’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기업들에게 법인세 부담을 가중시키면 투자 여력이 줄고 투자 의욕마저 꺾여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법인세를 깎아주는 것이 경제성장은 물론 세수 증대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만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1980년대 미국 레이건 행정부 이래 30년간 전 세계 보수진영의 법인세 감세 주장의 교본이 된 주장이다. 
  
  과연 그런가. 유감스럽게도, 증세⋅감세 문제는 경제학의 영역을 벗어난 지 오래다. 어느 나라에서나 진보와 보수가 격돌하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투쟁의 장이 되었다. 경제이론은 각자가 주장하고 싶은 바를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된 데에는, 증세⋅감세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나아가 이를 국제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통계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정에 기인한 바 크다. 최근 피케티의 연구결과가 큰 반향을 일으킨 것도 그 공백을 메우는 지난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도 쓸데없는 경제논리 늘어놓지 않겠다. 다만, 우리나라 대표기업들의 투자 동향 및 투자 여력을 나타내는 간명한 통계자료를 제시하고, 그로부터 법인세 문제에 대한 직관적 결론을 끌어내는 방법을 택하기로 한다. 자세한 내용은 최근 필자가 작성한 보고서(「50대 기업의 부가가치 생산 및 분배에 관한 분석(2002~2013년)」, 경제개혁리포트 2015-01호, 경제개혁연구소, 2015.1.27., http://www.erri.or.kr)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 보고서는 최근 3년간의 평균 부가가치 생산액 기준으로 상위 50대 기업을 분석한 것인데, 아래에서는 2002~13년의 전 기간에 걸친 시계열 확보가 불가능한 6개사를 제외한 나머지 44개사를 대상으로 한 내용만을 제시하였다. 
  
  먼저, [그림 1]은 부가가치 기준 44대 기업 및 그 하위범주(삼성그룹 소속 8개사, 4대 재벌 소속 20개사, 제조업종의 27개사)의 ‘① 투자 규모’와 ‘② 국민계정상 총고정자본형성 대비 점유 비중’을 나타낸 것이다. 투자 규모가 2010년경부터 감소 추세로 반전되었으며, 국민경제 전체의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하락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우리나라 대표기업들의 투자도 침체된 것이 맞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최근의 하락한 투자 비중조차도 2000년대 중반보다 더 높은 수준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삼성그룹 및 4대 재벌로의 집중도는 더 심화되었다. 
  결론적으로, 최근 한국경제는 대표기업들의 성장동력 약화와 함께 이들로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이라는, 풀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져 있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와 경기활성화 사이에서 오락가락한 배경이 이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야당이 승리했다고 하더라도, 이 딜레마 상황에서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정말로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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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한편, 대표기업들이 어느 정도 투자를 확대할 여력을 갖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기업이 현금을 쌓아두기만 하고 투자는 안 한다’는 상식적 주장의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소수 대기업의 과도한 사내유보금이다. 그런데 저량(stock) 개념으로서의 사내유보금은 통상 대표대조표의 대변에 있는 ‘이익잉여금’으로 정의되는데, 이는 대차대조표 차변에서 이미 그 어떤 형태의 자산으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에, 사내유보금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곧 투자 여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다는 재계의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비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따라서 유량(flow) 개념인 ‘내부자금’이 기업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투자재원이라는 의미에 보다 잘 부합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내부자금은 ‘당기의 이익잉여금처분가능액 중 배당을 지급한 후 사내에 유보된 부분’과 ‘감가상각비’의 합으로 정의된다. 이는 당해기업이 당기에 생산한 부가가치 금액에서 이해관계자들에게 임금⋅이자⋅배당 등의 형태에 분배하고 남은 부분을 의미한다. 재료비 등 단기 운영자금은 외부 차입자금에 의존할 수도 있으나, 기업의 재무적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장기 고정자산에 대한 투자재원은 가능한 한 내부자금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해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부자금/총고정자본형성’으로 정의되는 ‘투자재원자립도’를 기업이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재무적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할 수 있다. 투자재원자립도가 낮을수록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장기)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해야 하고, 그만큼 부실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음 [그림 2]은 44대 기업 및 그 하위범주를 대상으로 ‘① 내부자금 규모’와 ‘② 투자재원자립도’를 나타낸 것이다. 먼저, 2000년대 중반에 내부자금 규모가 급속히 증가하다가 2011년 이후 감소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삼성그룹 및 4대 재벌로의 집중 현상이 두드러진다. 한편, 투자재원자립도 추이를 보면, 2000년대 초반에 100%를 넘어선 이래 꾸준히 상승하여 최근에는 200%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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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국민계정 자료를 이용한 거시적 차원의 투자재원자립도를 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부문의 투자재원자립도가 큰 폭으로 상승했으며,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근 들어서는 100%를 넘어섰다. 즉, 우리나라의 기업 전체를 집계해서 보더라도, 내부자금만으로 투자재원을 모두 충당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미국⋅영국⋅독일⋅일본 등의 선진국에서도 1990년대 이후 기업부문 전체의 투자재원자립도가 100%에 근접하거나 초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기업의 성숙에 따라 자본장비율이 높아지고, 따라서 감가상각비가 내부자금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면서, 내부자금만으로도 투자재원의 대부분을 충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경제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도 이러한 일반적 추세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최근의 투자 침체로 인해 투자재원자립도가 급상승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 해석에 만족할 수는 없다. 상기 [그림 2]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나라 대표기업들의 투자재원자립도가 100%를 넘어 최근에는 200%를 초과했다는 것은 이들이 가용 내부자금을 적절하게 운용할 수 있는 투자기회를 찾지 못했거나 또는 투자기회를 찾을 능력 및 의지를 상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는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대표기업들도 과거 추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투자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경기 상황이 호전되면 또는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듯이) 시대착오적 규제를 혁파하고 노동⋅공공⋅금융⋅교육부문의 구조개혁이 이루어지면, 이들 대표기업의 투자율이 일정 정도는 상승할 여지가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투자재원자립도가 200%를 초과했다는 사실, 즉 가용 내부자금의 절반도 실제 투자에 투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순히 국내외 경기상황이나 경직적 규제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 대표기업의 기존 사업구조 및 소유지배구조로는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데 한계에 봉착했으며, 따라서 소수 대기업의 선도적 투자에 의존하는 낙수효과 전략으로는 국민 대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고용과 소득을 제공하기 어렵게 되었을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소득의 가계환류’라는 최경환 경제팀의 슬로건은 매우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2012년 경제민주화 슬로건과 마찬가지로, ‘소득주도 성장 전략’이라는 또 다른 진보적 어젠다를 수용하는, 한국 보수진영의 진화를 보여주는 예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12년의 경제민주화 슬로건과 마찬가지로, 겉모습만 흉내 내다가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패를 거듭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최경환 경제팀의 ‘기업소득 환류세제 3대 패키지’는 기업의 특정 지출에 세제혜택을 주거나 일정 기준에 미달할 때에는 페널티를 주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한마디로, 너무 복잡하다. 이런 방식으로는 기업 내에 갇힌 과도한 유보금을 외부로 환류시키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조세정책의 특성상 기업의 합리적 의사결정 구조를 왜곡하는 비용이 발생하는 것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보다 간명한 조세정책이 보다 효율적일 수도 있다. 즉, 3대 패키지와 같은 복잡한 구조의 세제보다는 법인세 등의 단순한 세제를 통해 과잉 사내유보금의 일부를 정부가 환수해서 사회복지 확대, 최저임금 인상 및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시행, 중소기업 육성 등에 직접 투입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따라서 법인세의 각종 감면제도를 정비하고 최저한세율을 상향조정하는 차원을 넘어 법정세율 인상도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22%의 세율을 적용하는 과세표준 200억원 초과구간에 대해 새로운 과세구간을 설정하고 최고세율을 인상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필자는 어느 재벌의 최고위 임원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정부가 규제를 혁파한다고 하면서 뒤로는 투자를 늘리라고 팔을 비트는 것이 더 괴롭다. 법인세 인상에 막무가내로 반대하는 전경련이 기업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법인세를 더 걷어 정부가 직접 돈을 쓰는 것이 내수확대에 더 효과적일 것이다. 대신 기업의 투자 결정에는 개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부와 전경련은 새겨듣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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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2월11일 16시53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20시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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