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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기자의 유쾌한 명상 체험기 쉐우민 이야기, 서른여섯 번째 이야기 ‘신통’에 관심 있으세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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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3월03일 17시30분

작성자

  • 김용관
  • 동양대학교 교수(철학박사), 전 KBS 해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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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3

본문

 

  神通을 얻으려고 도를 닦는다?

  ‘수도’ 즉 ‘도 닦음’에 대해 보통사람이 갖고 있는 상식, 또는 선입견이 있다. 도를 닦으면 남다른 능력을 갖게 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땅을 줄여 이동하는 축지법이라든지, 남의 마음을 꿰뚫어 아는 관심법이라든지, 타인의 살아온 과거를 알고 미래를 미리 아는 그런 능력을 얻기 위해 도를 닦는다는 그런 통념이다. 물론 불교의 경전이나 논서들도 이런 부분들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도 닦음의 목적이 결코 아니다. 보통 사람이 갖지 못하는 그런 능력을 ‘신통’이라고 부르는데, 신통은 도 닦음의 부산물로 얻어지는 현상일 뿐이다. 특히 사마타 수행으로 사마디, 즉 삼매가 깊어지면 신통이 나온다. 비슈디마가, 청정도론은 이를 “삼매수행은 초월지의 이익을 가져온다”고 기술한다. 즉 신통은 삼매가 충만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청정도론은 설명한다.

  ‘초월지’는 모든 종류의 신통을 나타낸다. 초월지는 여섯 가지인데, 한자로는 ‘六神通’으로 번역되었다. 그렇다면 삼매가 얼마나 깊어져야 신통이 나오는 것인가? 사마타 수행으로 얻는 4가지 삼매를 모두 얻어야 비로소 신통이 가능하다. 청정도론은 색계 4선을 얻은 수행자를 대상으로 초월지 즉 신통을 닦는 방법을 세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게다가 삼매가 충만해 신통을 얻은 장로들의 이야기들까지 곁들이고 있다. 

  “초월지를 성취하기 위해 수행자는 땅의 까시나 등에서 얻은 제4선으로써 수행해야 한다”고 청정도론은 못 박고 있다. 더구나 흙으로 둥근 형상을 만들어 그것을 대상으로 얻은 표상에 집중하는 땅의 까시나 수행 등 특정한 수행법을 통해서만 신통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4선정에 든 수행자가 있다는 얘기를 풍문으로라도 듣기 힘든데, 4선정을 성취한 뒤 별도로 닦아야 하는 신통을 보기 드문 건 당연하다고 하겠다. 

  여섯 가지 신통 가운데 대표적인 신통이 神足通이다. 신족통을 신통변화라고도 부른다. 신통변화는 하나인 몸이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한다. 돌연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벽이나 산을 허공처럼 통과한다. 땅에서도 물속에서처럼 떠오르기도 하고 잠기기도 한다. 물 위를 땅처럼 걷는다. 가부좌한 채 허공을 새처럼 날아다닌다. 해와 달을 손으로 쓰다듬기도 하며 저 멀리 범천의 세계에까지도 몸을 나툰다.

  이밖에도 먼 곳까지 보고 먼 곳까지 듣는 귀와 눈의 신통, 남의 마음을 아는 신통, 전생을 기억하는 신통,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신통이 있다. 아무튼 나는 이런 신통을 본 적이 없어서 잘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일이 곁에서 일어난다고 해도 대수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다. 왜? 삼매가 깊어지면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이라니까?

 

  티벳 성자 밀라레빠

  ‘신통변화’ 하면 즉각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티벳 성자 밀라레빠, 그는 가부좌한 채 하늘을

날아다녔다고 한다. 히말라야 설산의 동굴에서 수 십 년 삼매를 닦았고, 쐐기풀만 삶아먹어서 급기야는 온 몸이 파랗게 변했다고 한다. 당시 많은 티벳 사람들이 사람의 형상을 한 파란 물체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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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굴을 떠나면서 솥을 챙기는데 솥 안에 두텁게 눌어붙은 쐐기풀이 솥 모양으로 떨어져 나갔다고 전한다. 알려진 대로 티벳불교는 밀교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밀교의 수행은 전형적인 사마타로 깊은 삼매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밀라레빠는 티벳 밀교 카큐파의 성자(생몰연대 1040~1123)이다. 카큐파의 창시자는 그의 스승 마르빠이다. 마르빠에게 밀교의 수행법을 전수받는 밀라레빠의 이야기는 눈물겹다. 돌탑을 쌓으라는 스승의 지시로 반년 이상 돌탑을 쌓아놓으면 스승은 “내가 언제 이곳에 돌탑을 쌓으라 했느냐. 저곳으로 옮겨쌓으라”는 등 온갖 구박을 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스승과의 인연이 없나보다, 생각하고 떠나려던 밀라레빠를 마르빠의 아내가 달래서 주저앉힌다. 스승 내외의 사전 모의 역할극이다. 스승이 이렇게 그에게 수년간 돌탑만 쌓게 한 것은 그의 업장을 소멸시키기 위함이었다. 가득찬 그릇에는 아무 것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도의 길을 가기 전 밀라레빠는 복수를 위한 흑마술을 배웠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여동생과 함께 백부에게 맡겨진 그는 백부에게 전 재산을 빼앗기고 비참한 삶을 산다. 어른이 되면서 복수를 결심하고 흑마술을 배워 친족 40명을 죽여 복수를 했지만, 그의 삶은 더욱 고통스러워진다.

  마르빠를 만나 수행의 길에 들어선 이후 40년을 목숨을 건 수행으로 결국 해탈의 경지에 오른다. 깊고도 깊은 삼매를 성취한 그는 신족통, 즉 신통변화를 얻었다고 전한다. 도를 성취한 뒤 그는 고을고을을 돌며 자신의 깨달음을 즉흥적인 노래를 불러 전하는데, 중복되는 노래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노래 하나하나마다 경이로운 이야기들과 깨달음의 경지가 펼쳐져 있다. 이 노래들은 지금까지 ‘밀라레빠 10만송’으로 전한다. 잠시 한 곡조 들어볼까나?

 

투명한 마음을 그대들은 아는가?

그대, 마음 쉬는 법을 아는가?

흘러가게 버려두는 것이 비결이라네.

구태여 하고자 하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으며

그 마음 평안하게 쉬도록 버려두는 것,

아기가 평화롭게 잠이 들듯

고요한 바다에 잔물결 일지 않듯

그리하면 밝고 찬란한 등불과 같이 

그대, 밝은 깨달음 속에서 편히 쉬리라.

(밀라레빠 10만송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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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과 귀의 신통

  몸으로 나투는 신통, 신족통, 또는 신통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신족통이 신통들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논서에는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자세하게 설명돼있다. 그 밖의 신통에 대해서는 비교적 설명이 간단하다.

  天耳通, 즉 귀의 신통은 멀든 가깝든 모든 소리를 듣는 신통이다. 다른 우주의 먼 소리도 듣고, 자기 몸에 붙어사는 생물들의 가까운 소리까지 듣는다. 그런 신통을 가질 수 있는 까닭은 ‘담즙과 가래와 피 등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오염원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천이통은 천상의 마음과 비슷하다고 해서 ‘신성한 귀의 요소’라고 부른다. 신족통과 마찬가지로 색계 제4선정을 바탕으로 한다. 물론 다른 신통도 마찬가지다. 즉 4선정을 얻어야 이런 신통들이 가능하다. 

  他心通은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이다. 이것이 지혜인 까닭은 ‘마음을 아는 것이 지혜’이기 때문이다. 타심통은 천안통과 관계가 밀접하다. 남의 마음을 아는 신통은 신성한 눈으로 성취한다. 논서는 신성한 눈으로 보면 남의 마음이 기쁠 때 심장의 피가 붉게 보이고 슬플 때는 검게 보인다고 쓰고 있다. 신통이 깊어지면 물질(피)을 보지 않고 “마음으로 마음에 다가가 욕계 54가지 마음과 색계 15가지 마음, 무색계 12가지 마음을 모두 꿰뚫어 안다.”

  다음은 宿命通, 전생을 기억하는 신통이다. 윤회했던 자신의 과거와 남의 과거에 일어났던 경험을 기억하는 신통이다. 다시 말하면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이다. 논서에는 여섯부류의 사람들이 전생을 기억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외도들, 평범한 제자들, 뛰어난 제자들, 상수제자들, 벽지불들, 부처님들이 그들이다.

  외도들은 통찰지가 약하기 때문에 40겁만을 기억한다. 평범한 제자들은 백겁, 천겁, 80명의 뛰어난 제자들은 십만겁, 벽지불은 2아승지겁과 십만겁, 부처님들은 한계가 없다.

  싯달타가 보리수 아래서 얻은 깨달음 내용을 논사들은 천안통과 숙명통으로 설명한다. 천안통으로 보니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하염없는 고통 속에 있고, 숙명통으로 보니 그런 고통의 시간이 끝없는 과거에서 끝없는 미래로 이어지더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신통들은 그저 신통일 뿐이다. 마음을 아는 지혜를 통해 해탈의 길에 이르는 길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 스스로의 마음을 남김없이 아는 지혜, 즉 통찰지를 통해서만 해탈의 길을 갈 수 있다. 그렇게 성취한 신통을 여섯 번째 신통, 즉 漏盡通, 번뇌가 다한 신통이라고 한다.

 

  성자들의 신통 

  깨달은 사람, 깨달음의 삶을 사는 사람을 우리는 ‘도인’, ‘도사’, ‘성자’라고 부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도인이 너무 많다. 도인을 자처하는 사람도 있고, 주위에 의해 떠받들어지는 도인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도인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자칭 도인이나 소문난 도인 중에는 진짜 도인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어느 날 나는 청정도론의 신통에 대한 기술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성자들의 신통’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이 신통은 마음이 자유자재한 경지에 달한 성자들에게만 일어나기 때문에 성자들의 신통이라고 한단다. 그런 뒤로 나는 아무리 알려진 도인이라도 이 신통을 얻지 못했다면 도인으로 치지 않기로 했다.

  궁금하지 않으신가? 성자들의 신통이 무엇인지. 청정도론의 한 구절을 그대로 옮겨본다.

 

“무엇이 성자들의 신통인가? 

여기 비구가 만약 혐오스러운 것에 대해

혐오스럽지 않다고 인식하면서 머물리라고 바라면 

그것에 대해 혐오스럽지 않다고 인식하면서 머문다.

평온하게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면서 머문다.”

(청정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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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살다보면 주위에 혐오스러운 것이 너무 많다. 누구에게나 혐오스러운 것도 있고, 자신에게만 특별히 혐오스러운 것도 있다. 똥처럼 더러운 것, 뱀처럼 징그러운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누구나 혐오스러운 대상을 만나면 마음이 부정적으로 반응하기 마련이다. 마음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런 원리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미운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괴로운 일도 없다. 성자들의 신통이란 누구나 혐오스럽다고 하는 것들을 대상으로 만난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이런 것을 부동심,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라고 한다. 이런 얘기들은 노자나 장자, 선의 어록 같은 책에도 무척 많이 등장한다. 도인은 마음이 잔잔한 호수와 같아서 대상으로 오는 모든 것을 그대로 비춘다. 기러기 날면 비추고, 날아가고 나면 자취가 없다. 똥 같은 오물이 혐오스럽지 않다고 인식하면서 머물고 싶다면 그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신통이다. 성자만이 보일 수 있는 성자들의 신통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 어려운 성경말씀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도인이고 성자가 아닐 수 없다. 좋은 것을 만나도 마음은 흔들린다. 어쩌면 혐오를 피하는 것보다 좋은 것을 사랑하고 집착하지 않기가 더 어려울 지도 모른다. 성자들의 신통은 아무리 좋은 것을 대상으로 만나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음을 포함한다. 청정도론의 설명을 좀 더 이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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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통을 갖춘 번뇌 다한 비구는 혐오스럽고 원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 자애로 가득 채우거나, 혹은 물질일 뿐이라고 마음을 추스리면서 혐오스럽지 않다고 인식하면서 머문다... (중략) 

눈으로 형상을 보고서 기뻐하지도 않고...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둘 모두를 제거하고 평온하게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며 머문다.”(청정도론)

 

  적어도 이 정도가 맘대로 되지 않으면 결코 도인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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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3월03일 17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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