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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기자의 유쾌한 명상 체험기 쉐우민 이야기, 스무 번째 이야기 방랑과 출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11월04일 17시39분
  • 최종수정 2017년11월04일 18시32분

작성자

  • 김용관
  • 동양대학교 교수(철학박사), 전 KBS 해설위원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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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양쥔 비구되다 

  쉐우민 국제명상센터에는 세계의 수행자들이 매일 오고 매일 나간다. 그들 가운데는 착실한 직업인이 대략 절반, 나머지 절반은 떠돌이가 아닐까 싶다. 이들 떠돌이들에게 여염의 삶은 아마도 엄청난 무게로 느껴지리라. 본인처럼 인생은 거의 살아버린 경우라면 미래는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2030의 젊은 떠돌이들은 세상을 떠돌면서도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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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 너 댓의 중국청년 양쥔의 경우가 그렇다. 그와 나는 지난해 만나 많은 얘기를 했다. 한 해 만에 다시 쉐우민에 갔는데 그 일 년을 그는 쉐우민에서 버텼다. 수행에는 열심인데 몸은 꼬챙이처럼 말랐다. 내가 “이렇게 오래 머물 바엔 차라리 비구가 되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그의 대답은 “잘 모르겠다”였다.

 

  미래에 대해 물으면, 그는 늘 그렇게 대답한다. 내일에 대한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님 너무 많은 건지. 양쥔은 쉐우민에 오기 전에 이미 티벳과 인도 전역을 두 해 이상 떠돌았다고 한다. 키 크고 잘 생긴 그의 외모에서는 어딘지 데까당의 분위기가 풍겨 나온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비구가 되었다.

 

  양쥔이 머리를 깎는 날 그 의식에 꼭 참례해주고 싶어서 법진거사와 나는 시간을 맞춰 시마홀(수계를 받는 계단이 있는 법당)에 갔지만, 시간이 변경돼 허탕을 쳤다. 다음날 삭발을 하고 테라바다 승복을 입은 양쥔을 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그의 방랑이 이제 그만 그치기를 맘속으로 빌어주었다.

 

  8정도는 붓다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교리다.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8겹의 길’이다. 수행자들은 승속의 구분 없이 이 길을 간다. 8정도 가운데 定命은 올바른 생계수단을 가지라는 가르침인데, 살아가는 수단이 온당치 못하거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는 차리리 비구가 되어 걸식을 하며 수행의 길을 갈 것을 붓다는 권했다. 비구의 본래 뜻은 그래서 ‘걸식하는 사람’이고, 한자로는 얻어먹는 선비, ‘乞士’로 번역한다. 양쥔이 가기로 결정한 비구의 길은 걸식의 길이다.

  떠나오는 날 나를 배웅하는 그에게 물었다. “이제 집에 안 갈거냐?”고. 그가 “집에 갈거다”라고 대답했다. “그럼, 승복을 입고 갈거냐? 벗고 갈거냐?”고 다시 내가 물었다. 그의 답은... 역시 “잘 모르겠다”였다. 승복은 입었지만 그의 방랑은 끝나지 않았다. 젊은 그에게 미래는 여전히 커다란 무게였던 게다. 

 

  나그네 설움

  오늘도 걷고 또 걷는다. 정체 없는 이 발길? 50대 조계종 스님이신데, 이태 째 쉐우민에서 만난 분이다. 이 분의 수행 스타일은 독특하다. 선방에 좌선하고 앉아있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걷고 또 걷는다. 하루 종일. 경행 또 경행이다.

  늘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있다. 사야도의 법문을 듣고 또 듣는다. 관심이 가는 분인데, 되도록 해후를 피한다. 수행자들 가운데 그 분과 대화를 텄다가 곤욕을 치렀다는 사람이 여럿이다.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대화상대를 붙잡고 놔주지 않기로 악명이 높단다. 이런 분들은 대개 자기세계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세계는 독단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내게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래서 나는 그와의 마주침을 기피한다. 사야도와의 그룹 인터뷰 시간, 그의 인터뷰는 독특하다. 경행 중에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상하게 사야도에게 보고하는 형식이다. 이를 테면, “걷는 중 시야에 남녀가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도사(분노 또는 싫은 감정)가 일어났습니다. 얼마간 걷자 그 도사가 사라졌습니다. 경행로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데 또 다시 시야에 그 남녀가 들어왔습니다. 도사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뭐... 이런 식이다. 수행자들은 그 분의 인터뷰를 몹시 지루해 하고 못 견뎌 한다. 사야도의 답은 매번 그랬던 것 같다.

 

  “마음에 일어난 것을 알아차려라. 그리고 어째서 그것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라.”

 

  자기 세계가 확실히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 분의 경지를 헤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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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깔로로 떠난 히로 씨

  앞서 얘기했던 대로 히로 씨는 쉐우민에서 나의 첫 룸메였다. 여러 해 쉐우민에서 지낸 고참 수행자다. 그의 적응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적응 못하고 빼싹 마른 양쥔과는 딴 판으로 그의 안색은 늘 건강색이어서 트레이드마크인 콧수염이 잘 드러나 보인다. 잘 먹고 잘 자는 데다, 가라테 개인 수련에, 그룹으로 하는 태극권까지 빠지지 않는다. 쉐우민에서 수행자로 그렇게 오랫동안 지내면서도 “비구 될 생각 없느냐”는 물음에는 손사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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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그가 어느 날 전출명령(?)을 받았다. 샨 스테이트의 고원도시 깔로에 있는 또야(암자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로. 그곳의 또야는 떼자니아 사야도가 개창한 곳이다. 쉐우민 센터에서 오래 지낸 수행자들이 집을 지키면서 수행한다.

  깔로의 또야로 ‘발령났다’고 히로 씨가 내게 말했을 때 나의 상상력은 엉뚱한 곳으로 번져갔다. 샨 스테이트는 미얀마 북부의 고원지대로 샨족들이 주로 사는 곳이다. 샨족들은 미얀마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버마족과는 생김새가 많이 다르다. 피부색이 더 희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미남 미녀가 많은 종족이다. 샨 스테이트를 여행하면서 그런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샨족 애기들의 커다란 눈망울은 신비스럽게 조차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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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깔로는 영국 식민지 시대 영국인들의 여름 휴양지로 개발된 고원도시인데 이전 행선지였던 바간과는 달리 날씨가 선선했다. 아직도 서양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깔로에서 미얀마 최대의 호수 인레로 넘어가는 2박3일 트레킹 코스 때문이다. 샨족 원주민 집에서 자며 산맥을 넘는 트레킹은 나도 언젠가 꼭 한 번 경험해보고 싶다.

  아무튼, 신도들과 수행자들의 지원이 많은 쉐우민 센터와는 달리, 먹을 것도 변변찮고 여러 가지로 지원이 소홀한 그곳에서 히로 씨는 여전히 그 탁월한 적응력을 발휘하며 틀림없이 잘 지내리라. 

 

 

  미얀마에서 비구가 된다는 일

  미얀마의 수행처들은 여러 나라 비구들로 붐빈다. 위빠사나 수행법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탓이다. 쉐우민 센터도 마찬가지다. 겨울철 쉐우민 센터에는 한국 조계종의 비구스님 비구니스님들이 20여명 정도가 늘 머문다. 이분들은 수행은 테라바다 상가(상좌부 승가)에서 하지만 어디까지나 조계종단의 외호를 받는다. 한국에 돌아오면 기댈 곳이 있다는 말이다. 겨울철을 정기적으로 미얀마 수행센터에서 지내는 스님들도 많다. 한국의 매서운 겨울 추위에 비하면 우리나라 선선한 가을 날씨 같은 미얀마의 겨울은 천국이다.

 

  한국 스님이지만 미얀마 가사를 입은 스님들도 몇 분 눈에 띤다. 이분들은 한국에서 출가하지 않고 미얀마의 센터로 직접 출가한 스님들이다. 갈색 가사를 입고 있지만 용모는 미얀마나 태국, 스리랑카 등 동남아 스님들과 달라서 그곳에서는 이질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 테라바다 상가로 출가했지만 언어장벽을 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혹서를 견디면서 미얀마에 머물면서 몇 년 씩 빨리어와 니까야를 배우고 선수행을 하는 스님들도 여럿이다. 하지만 이 분들은 한국에 돌아오면 머물 곳이 없다. 쉐우민 센터에서 출가해 테라바다 승복을 입고 한국에 돌아왔다가 머물 곳을 찾지 못해 결국 승복을 벗었다는 안타까운 체험담도 들었다.

 

  한국의 테라바다 상가는 이제 걸음마 단계에 있다. 몇 해 전 테라바다 협회가 출범했지만, 세력은 미미하다. 이들 스님들을 외호할 신도들도 많지 않다. 법에 대한 신심과 신념에 따라 출가했지만 한국 테라바다 스님들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이 매우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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