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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기자의 유쾌한 명상체험기 쉐우민 이야기 열세 번째 이야기 비승비속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9월16일 18시42분

작성자

  • 김용관
  • 동양대학교 교수(철학박사), 전 KBS 해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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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국제건달 

  수행처에 모이는 사람들, 수행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행처에서는 수행자들을 ‘요기’라고 부른다. 요기들은 보통 수행을 삶의 중심에 놓는 사람들이다. 출가자가 아니면서도 출가의 삶을 흉내내 사는 사람들, 비승비속의 수행자도 적지 않다. 요기들 가운데는 그렇게 남다른 삶의 궤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스스로를 국제건달이라고 부르는 K 거사의 삶은 이런 점에서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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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젊은 시절 독일에 유학한 유학생이었다. 보통의 젊은이들이 그렇듯 세속주의자이자 유물론자였다. 유학 4년차인 그의 삶을 바꾼 건 독일을 방문한 한 승려를 통역으로 돕다가 나누게 된 대화 중 받은 질문 하나였다. 그 때 그 질문, “너는 누구냐”에 답하기 위해 유학생활을 때려치우고 귀국해 출가를 했고, 선방을 다녔다.

  그러다가 더 오리지널을 찾기 위해 인도에 가서 수년간 산스크릿을 공부하고, 수행처를 돌아다니며 가르침을 구했다. 호주까지 건너가 고앵까 수행을 4년 하다가 10년전 미얀마에 와서 떼자니아 사야도와 인연을 지었다. 쉐우민 센터에서 출가해 2년간 비구로 생활했다. 테라바다 승려의 신분으로 귀국했는데 한국에서는 몸을 의탁할 곳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승복을 벗었다. 그 후 K 거사는 태국과 미얀마의 수행처를 오가며 수행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전형적인 비승비속의 삶을 산다. 돈을 벌지 않고 가속을 거느리지 않으니 승에 가깝다. 하지만 승가의 계율 속에 있지 않으니 속에 속한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더 가깝게 접근하려고 테라바다 신앙을 선택했지만 그가 사는 삶은 어쩔 수 없는 소외의 삶이다. 한국의 테라바다 상가가 더 성장하기를 바란다. 비승비속을 사는 수행자들을 보듬어 줄만큼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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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이치 돌쇠  

  그를 처음 본 것은 탁발행렬을 지원하는 손수레에서였다. 그 일은 지난 해 내가 자원해서 했던 봉사 소임이었다. 손수레를 밀고 탁발행렬에 앞서 가 기다리다가 스님들의 발우가 공양물로 가득차면 커다란 밥통에 받아 싣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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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하던 어눌한 스킬과는 너무도 다르게 이 일을 세련되게 해내는 사나이. 서양사람 치고는 작달만한 키에 땅땅한 체구, 온 몸의 문신은 알 파치노가 출연하는 갱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인상의 40대 사나이. 그의 소임은 그 뿐이 아니었다. 하루 두 차례 공양 때 스님들의 상을 차리고, 공양이 시작되기 전 불전에 공양물을 올리고, 아침 공양이 끝난 뒤에는 사야도 거처 앞 낭하와 마당을 매일 정성스럽게 쓸었다. 오후 4시 주스 마시는 시간 30분 전이면 선방에 앉아 있다가 슬며시 일어나 나갔다. 주스 봉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방에 앉아 정진하는 시간보다는 밖에서 일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독일에서 날아와 자원해서 머슴살이를 하는 그에게 나는 ‘도이치 돌쇠’라는 닉네임을 지어주었다. 공양 때 줄을 서서 받아먹기만 하는 우리는 그가 밥을 먹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는 우리들 수행자와 거의 섞이지 않는 ‘주최 측’인 것처럼 보였다. 영어를 그다지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걸로 봐서는 높은 교육을 받은 독일인은 아닌 듯했다.

  사람은 가까이서 자세히 살펴야 제대로 보인다는데 나는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렇겠지, 호기심은 호기심일 뿐이지. 돌쇠를 별난 서양 사람으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일 테다. 하지만 하루 종일 몸이 부숴지도록 일하게 하는 돌쇠의 파토스가 무엇인지는 못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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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룸메 법진거사

  그는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엘리트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고등학교에 스카이 출신이고,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40대에 대기업 자회사 CEO를 지낼 만큼 잘 나가는 사나이였다. 그렇게 잘 나가기만 했다면 나와의 인연은 애당초 없었을 테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 사태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회사 빛 청산에 재산을 털어 넣고 그래도 남은 빚에 근 10년을 법정출입하며 맘고생을 했다. 불교에 입문한 것도 그 때문이다.

  파란만장한 삶만큼이나 그의 신심은 나보다 훨씬 깊다. 수행 떠나기 일주일 전, 느닷없이 함께 가자는 바람에 그와 나는 룸메가 됐다. 같은 방에서 그와 함께 지내면서 “아하~ 범생은 이렇게 사는구나”를 알았다. 삼소나이트 특대형 가방에 슬리핑백을 비롯해서 미숫가루까지 (절대 먹지 않았음. 아니... 딱 한 번 먹었음) 온갖 것을 다 챙겨왔다.

  나이도 같고 사는 수준도 고만고만해서 서로 호흡이 잘 맞았다. “이번 시간 좌선 재낍시다”, “커피 한 잔 하고 천천히 갑시다” 등 의사는 말로 할 필요도 없이 눈빛만으로 소통이 됐다. 뽕짝이 너무 잘 맞아서 수행처 내무생활에 도무지 긴장이 없었다. 법진거사, 그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수행이 여일하다. 10년을 하루도 아침 108배를 거르지 않았다는 그는, 이제는 108배 대신 좌선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고.

 

  ‘천 코 만 코 그물에 고기 걸리는 건 한 코’

  10여 년 전의 인연을 쉐우민에서 우연히 만났다. 아침식사를 위해 서있던 줄에서 서로를 알아보았다. H 법사가 바로 그분이다. 나는 직장 발령을 받아 제주에서 2년쯤 살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이런 저런 인연을 모아 수행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분은 한 달에 한 번 자비를 들여 제주까지 와서 우리에게 초기불교에 대해 가르쳐주시던 고마운 분이다. 

  7살 어린시절 부친에게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늘 그때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평생을 불법을 펴고 실천하며 사신 분이다. 파란만장한 사업가의 삶을 살면서도 불법에 대한 배움의 열의를 놓지 않았고 우연히 큰 스승을 만나 40대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신 분이다. 그가 스승과 공저한 ‘반야심경 해석’을 읽고 한 동안 충격적 감동에 빠졌던 기억이 내게 있다. 20년쯤 전 니까야(초기경전)의 한글번역을 위해 연구소를 설립하고 사재를 털어 넣었다. 연구소는 현재 빨리어 4부 경장 ; 맛지마, 앙굿다라, 디가, 쌍윳따 니까야의 국역을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아비담마 상하와 청정도론 등 방대한 논서들도 번역했다.

  H법사는 수십 년 경전을 공부하고 선을 수행했지만 가닥을 잡지 못하던 자신의 눈을 뜨게 해준 초기불교를 되도록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H법사는 만나는 모든 인연에게 기회만 있으면 부처의 가르침을 얘기해준다. 그가 전하는 불법은 체계적이고 쉽고 감동적이다.

  그는 늘 이렇게 얘기한다. “그물에 천 코 만 코가 있지만, 고기가 걸리는 그물은 한 코라는 

어느 선지식의 말이 있지요. 내가 쏟는 수고가 한 사람에게라도 무명의 족쇄를 풀어버릴 수 계기가 된다면 그것으로 그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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