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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기자의 유쾌한 명상 체험기 쉐우민 이야기 열 두 번째 이야기 망상은 즐겁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9월09일 18시36분

작성자

  • 김용관
  • 동양대학교 교수(철학박사), 전 KBS 해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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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마홀

  한국 사찰의 선방 분위기는 엄격하다. 엄격하다기를 넘어 살벌하기까지 하다. 규율이 엄하고 위계질서가 분명하다. 앉는 자리가 수좌(참선수행자)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선방의 자리는 승랍에 따라 정해진다. 고참일수록 선방의 중앙에, 신참일수록 변방에 자리가 정해진다. 상석이 있고 말석이 있다. 죽비소리에 맞춰 앉고 죽비소리에 맞춰 일어난다. 수좌 중 최고참이 죽비 잡는 입승이 된다. 선방의 규율을 담당하는 유나, 대외적인 일을 맡는 지객 등의 소임이 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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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마홀은 쉐우민의 선방이다. 한국의 선방이 군대 내무반이라면 담마홀은 피씨방이다. 승속이 섞여있고 오고 감이 자유롭다. 위계도 없고 소임도 없다. 맘에 드는 자리를 스스로 골라 떠날 때까지 앉는다. 인종이 섞이고 승속이 섞이고 장유가 섞여있다. 매시간 정시에 시작해 정시에 마치는 것으로 묵시적으로 정해져 있지만 중간에 일어나 나가거나, 중간에 들어와 앉아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더구나 좌선과 경행이 뒤섞여 있다. 담마홀 중앙 통로는 늘 넓게 비워둔다. 좌선을 하다 졸리거나 힘들면 조용히 일어나 담마홀 중앙을 전후로 오가며 경행한다. 정시에서 30분이 지나면 경행하는 수행자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아무튼 겉모습은 그렇다. 하지만 24시간 스승의 지침대로 수행만 하는 수행자는 없다. 많은 시간을 수행과 상관없는 생각, 즉 망상으로 보낸다. 군대 가서 보초 설 때 온갖 생각을 다 하듯. 물론 수행이 익어가면서 망상은 점점 줄겠지만. 떼자니아 사야도는 같은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건 그 생각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몸은 일상의 대부분을 선방주변을 지키면서도 마음은 늘 망상으로 분주하다. 사야도의 지적처럼 그 망상들이 때때로 즐겁기도 하다. 적어도 망상은 수행자 혼자만의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가 이해되시는가? 선방하면 엄숙함과 정숙함이 먼저 떠오르지 않는가? 하지만 쉐우민 담마홀은 정숙하지만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쉐우민의 이런 분위기는 ‘탐욕으로 수행하지 말라’는 가르침 때문이다. 수행의 목표는 지혜를 기르는 일이다. 지혜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 즉 번뇌의 상대 개념이다. 진리나 깨달음에 대한 욕심도 욕심이다. 그 욕심으로 수행하면 탐욕이 크고 지혜에서 멀어진다. 수행자는 수행하기 전에 마음자세부터 점검해야 한다. 마음에 탐욕과 분노의 찌꺼기가 남아있으면 수행은 지혜가 아니라 번뇌를 기르는 결과를 낳는다. 깨닫기 위한 수행은 그래서 이미 수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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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원통(耳根圓通)

  쉐우민 숲속에는 까마귀가 많다. 이 녀석들이 한꺼번에 울어재끼면 조용조용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다. 점심공양을 위해 긴 줄을 서 있을 때 이 녀석들의 울음소리는 새삼스럽다. 우리나라 절에서는 보통은 목탁을 쳐서 공양 시작을 알린다. 쉐우민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 키 크기의 나무둥치로 만들어진 거대한 목탁(우리나라 목탁과는 다르다. 그저 속이 빈 통나무 모양이다)을 나무망치로 두들겨 알린다.

  까마귀들은 이 목탁소리에 부화뇌동한다. 목탁소리에 맞춰 일제히 소리를 지른다. 소리에 관대한 미얀마 문화 탓에 쉐우민은 하루 종일 엄청난 소음 속에 있다. 확성기 소리, 경운기 소리 등 인공의 소음에 자연적인 새 울음까지 다양하고 또 다양하다. 떼자니아 사야도는 ‘소음은 대상일 뿐’이라고 늘 강조한다. 오히려 소음이 있어서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느냐고 말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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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산사에서 조용히 지내던 스님들은 좀처럼 적응이 안 되는가 보다. 사야도 인터뷰 시간에 푸념하는 스님들이 많았다. 그런데 사야도의 가르침은 사실이다. 소리를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두면 소음을 즐기는(?) 경지에 이른다. 

  그 경지에 이르면 한데 섞여 들리던 새소리들이 하나하나 나뉘어 세세하게 들린다. 세상에~! 소리의 무더기들 안에 그렇게 다양한 소리들이 있을 줄이야. 열대의 새소리는 가히 오케스트라이다. 음악 매니어들이 경지에 이르면 오케스트라 속의 현과 관악기, 더 나아가 바순과 혼, 트럼펫 소리를 구분해서 세세히 듣는 것처럼. 

  새들의 오케스트라 안에 저렇게 다양한 소리가 섞여있을 줄이야. 뾰옹, 뾰롱뾰롱, 쫙쫙, 까욱까욱, 꼬오옥, 찍찍찍찍찍, 뾱뾱, 쪼쪼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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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야도는 나아가 대상을 ‘알아차림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대상과 대상을 아는 마음을 함께 보라고 가르친다. 소리에 관한 한, 소리의 요가인 ‘수랏 사브드’와 수능엄경의 이근원통의 수행법과도 통하는 가르침이다.

  수랏 사브드 요가는 ‘내면의 소리에 의식을 기울이는‘ 수행법이다. 수능엄경은 수능엄삼매(또는 금강삼매)를 얻기 위한 수행법으로 관세음보살을 주인공으로 이근원통을 설하고 있다. 소리를 듣고 아는 앎을 자각하라. 앎을 유지하면 그 앎은 더욱 밝아지고 뚜렷해진다. 앎이 일상이 되면, 앎은 눈이고 진여가 된다. 대략 이런 취지다. 

 

  농단 경행  

  “국정을 농단하고...” 이 말을 TV에서 매일 듣던 시절이 있었다. 5공 청문회... 이제 퍽 오래 전의 일이 됐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사건이었다. 국회가 저런 일도 할 수 있구나, 하는 반가움으로 매일 같이 청문회 중계를 지켜본 기억이 있다.  스타 정치인들이 등장했고, 그 중 한 분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내고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농단... 이 말은 맹자 ‘진심 상’에 나오는 말이다. 한 장사치가 시장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갔다. 장이 서면 물품 거래 동향을 알아야 한다. 언덕에 올라간 장사치가 홀로 정보를 독점하고 시장을 쥐락펴락했다는 맹자의 고사가 ‘농단’이다.

  정보를 선점하는 자가 시장의 주도권을 쥔다. 모든 경쟁의 승리자가 된다. 정보전쟁의 원리, 보이는 자와 보는 자의 싸움의 승패는 명약관화하다.

  쉐우민 센터 담마홀 2층 베란다에서는 길다란 경행로가 한 눈에 들어온다. 경행로는 눈짐작으로 길이가 대략 5백 야드 쯤 된다. 최경주가 드라이버샷을 잘 해놓는다면 투온이 가능한 롱홀 정도의 거리? 담마홀은 이 코스 딱 중간에 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면 나무가 우거진 초입을 제외하고는 전 코스가 모두 내려다보인다. 오전 8시 타임에 나는 즐겨 이곳에서 경행을 했다. 스스로 이름 붙이기를 ‘농단경행’이라 하였다. 

  이곳에서는 요기들의 다양한 경행모습을 볼 수 있다. 스위스에서 온 여신은 오늘도 파스텔 톤 그린 바탕에 스카이 블루 문양 숄을 걸치고 경행을 한다. 그녀는 후문에서 담마홀까지 파4 거리를 오간다. 어느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아 늘 혼자다. 수행자들은 이 여신이 TV 화면처럼 자신들의 세상 건너편에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늘 귀에 이어폰 끼고 있어서 내가 ‘이어폰 스님’이라는 닉네임을 선사(하지만 스님 자신은 선사 받은지 모를꺼다)한 스님은 오늘도 정처 없이 걷는다. 8시 반쯤이면 사야도 오피스 앞에 요기들이 모여든다. 쎄이 굿바이 하는 사람들이 오고 썸씽 투 쎄이 할 사람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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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체코 삔지리(요사처 청소소임을 요리저리 피하는 행태를 보여 이 닉네임을 선사했다)와 부산의 모 대학 원어민 강사(그는 7년째 그곳에서 가르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가 오피스 앞을 서성인다.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인 점으로 봐서 사야도에게 뭔가 위안이 되는 한 마디를 구하는 듯.

  농단경행을 하면 드론을 타고 지켜보듯 수행자들의 부감샷이 훤히 보인다. 화엄에서는 티끌 하나에 우주법계가 들었다고 하는데, 이따금 사람 하나하나가 하나의 세계라는 경이감에 젖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이감이 ‘무아’의 철학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지 아직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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