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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기업을 기다리며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4월11일 16시11분

작성자

  • 김동률
  • 서강대학교 교수. 매체경영. 전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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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아내가 두부를 사오라고 명령하면(?) 나는 졸린 눈을 부릅뜨고 반드시 P상표의 두부를 확인한다. 우유 심부름을 시키면 예전에는 꼭 P우유를 구입했다. 하나는 빈민 활동으로, 또 하나는 민족사관학교를 세워 우리 사회에 이바지한 그네들의 순연한 정신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P우유가 제 3자에게 넘어가고 민족사관학교와 무관하다는 뉴스에 이제는 다른 우유를 구입한다. 자본주의의 본산이자 시장주의 국가인 미국의 소비자들도 조금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하겐 다스보다는 벤 앤 제리(Ben&Jerry) 아이스크림을 구입한다. 아마존의 열대우림을 지키기 위해 거액을 지원하는 등 사회공헌 활동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스타벅스는 매력적이다. 조금 비싸지만 파트타임 직원에게도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미국에서 보기 드문 회사라는 점에서 찾는다. 이처럼 기업이 사회에 안기는 다양한 공헌활동에 우리는 감격해 하며 애써 해당 회사의 제품을 구입한다. 

 

그러나 이 같은 기업의 사회적 활동은 시장주의자들의 혹독한 비판에 직면한다. 시장주의자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시장주의와 자본주의의 근간을 해치는 심각한 행위로 비판한다. 기업이 사회문제에 신경쓰는 것은 그만큼 불필요한 비용을 증가시켜 주주들에게 돌아갈 이익을 감소시킨다고 주장한다. 또 이같은 비용은 결국 제품가격에 전가되어 고객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고 해당 기업의 경쟁력 상실로 신규 고용에 실패하게 된다는 논리다. 궁극적으로 국가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나름대로 논리가 있으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의 주창하고 밀턴 프리드먼 등이 강력 주장한다. 그는 기업의 사회적 공헌활동을 탈법이나 불법행위 등 위기국면에 대비해 소비자들의 동정을 노리는 보험들기 정도에 다름 아니라고 거세게 쏘아부친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같은 주장은 보수꼴통이거나 아니면 가진 자, 또는 시대정신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 정도로 욕먹기 쉽다. 설사 문제점이 드러나더라도 그 또한 시장의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시장주의는 한국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비판받고 있다. 그래서 많은 경제학자들은 실제로 시장주의를 강력히 지지하면서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데는 주저한다. 

 

최근 들어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시장주의보다는 CSR을 적극 지지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금의 선거 국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오늘날 시장에서 탈락한 개인이나 집단은 현재의 시장주의, 자유경쟁주의  시스템에서는 달리 구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태백, 사오정이 적절한 예가 된다. 이럴 경우 사회통합은 어렵다. 전통적으로 그동안 복지문제는 정부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흐름에 따라 국가가 과거처럼 시시콜콜 끼어들기가 힘들게 되었고, 이에 비해 시장을 매개로 한 기업의 영향력은 가공할 위력으로 커졌다. 특히 작금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기업은 개별국가나 정부 규제로부터 거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래서 기업이라는 리바이어던이 통제의 고삐를 벗어나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할 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한번 둘러 보라. 일자리, 아파트, 가전제품, 교육, 치료, 심지어 장례식장까지 재벌 기업이 버티고 있다. 기업에 의한 인간 지배가 가능한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한국적인 상황에 기업이 스스로 앞장서는 사회적 책임경영은 현재의 국면을 타개할 대안이 된다. 보다 많은 기업들이 그들이 속한 사회의 어두운 곳에 주목해야만 한다. 그래야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우리사회가 더불어 같이 가는 사회로의 전환이 가능하다. 이 땅의 재벌 기업은 가난한 한국인들의 눈물과 피땀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커왔다. 당연히 빈자의 눈물을 닦는 데 좀 더 노력해야 하고 또 그래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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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4월11일 16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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