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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는 대통령과 비전 있는 대통령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01월20일 20시5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7시12분

작성자

  • 최정표
  • 건국대학교 교수, (전)경실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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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는 대통령과 비전 있는 대통령

 

 대통령은 힘도 있고 비전도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국가 미래에 대한 비전이 확실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으면 그런 대통령은 성공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역사에서는 이런 대통령이 없었다. 특히 경제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누구도 분명한 비전이 없었다. 비전이 없으니 힘이 있은들 무슨 소용이었겠는가. 다행히 정치민주주의에 대해서는 힘과 비전을 가진 대통령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정도라도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경제민주주의는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 재벌의 천국이고 갑의 천국이다. 시장경제는 겉모습일 뿐이고 시장은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정글의 세계이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점점 심화되고 사회는 양극화의 늪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통령은 언제쯤 나올는지.

 

  최근에 서거한 김영삼 대통령은 힘도 있었고 비전도 있었다. 그는 정치민주주의를 실천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경제민주주의도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있었고 비전도 있었다. 적어도 임기 초기에는. 그러나 경제민주주의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재벌체제에 대한 문제점을 간파하고 있긴 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어떤 일을 했으며, 이런 행태가 국가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해 체험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확신과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재벌개혁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취임과 동시에 재벌을 바꾸어 보려고 시도했다.

 

   그렇지만 김영삼은 취임 100일 만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말도 안 되는 ‘신경제100일 계획’을 추진하다가 모든 것이 도루묵이 되었다. 경제란 것이 100일 만에 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변화가 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재벌에게 굴복하면 경제가 뜰 줄 알았다. 지략 없이 조급하게 서둘다가 재벌개혁 조차도 물 건너 가버렸다.

   그때 한국경제는 이미 재벌의 인질이 되었는데도 재벌들의 소리 없는 저항을 간과했던 것이다. 재벌들의 소리 없는 사보타지에 굴복하고 말았다. 거기다가 재벌 우호세력인 주위의 참모와 관료들의 미혹에 흔들리고 말았다. 재벌개혁은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김영삼의 신념과 비전이 매우 허약했던 것이다. 경제민주주의는 실패로 끝나고 임기 중에 IMF 구제금융이라는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맞고 말았다. 이 때문에 다른 혁혁한 업적까지 묻히고 말았다.

 

    경제민주주의는 재벌의 저항을 이겨내야 성공할 수 있다. 진보 대통령은 그 저항을 이겨내기가 매우 어렵다. 색깔몰이를 당하기 때문이다. 온갖 보수언론까지 합세하여 종북 몰이를 해대면 이겨낼 재간이 없다. 경제민주주의는 보수 대통령만이 해낼 수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따라서 김영삼 대통령은 경제민주주의까지 해낼 수 있는 최고 적임자였다. 그는 보수의 확고한 지지를 등에 업은 힘 있는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전이 부족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비전은 있었지만 힘이 없었다. 외환위기의 수습은 재벌을 개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김대중은 외환위기 수습을 구실로 재벌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보수층과 기득권층의 저항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진보진영의 한계였다. 그리고 김대중의 한계였다. 1년 반 만에 IMF 졸업을 선언하면서 재벌개혁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재벌들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승승장구하였다. 재벌은 더 갑이 되고, 더 재벌적이 되고, 경제력 집중은 더 심화되어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힘도 없었고 비전도 없었다. 재벌문제에 대한 이해도 없었다. 이 기간에는 재벌규제가 오히려 더 완화되었다.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의 어쩔 수 없는 귀착점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비전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경제민주화는 실천되지 못했을 것이다.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재벌의 저항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없었다. 보수 언론의 융단폭격을 배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힘도 없었고 비전도 없었다. 재벌에서 큰 사람이니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비전이 있을 리 없었고, 힘도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오히려 재벌 프렌들리를 내세웠으니 힘이 필요치도 않았다. 재벌 프렌들리 정책은 대통령이 손 놓고 있어도 재벌의 힘만으로도 되는 것이니. 경제민주화는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힘은 있지만 비전이 없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철학이 아예 없다.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 외쳤을 뿐이다. 당선과 동시에 사라져 버린 대표적 공약이 경제민주화이다. 만약 선거 때 말했던 대로 경제민주화 철학이 있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보수 대통령으로서 확실한 지지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재벌의 저항을 이겨낼 수 있는 대통령이다. 말하자면 박근혜는 경제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힘 있는 대통령이었다. 만약 경제민주화를 실천했다면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고, 역사에 길이 남는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너무 늦었다. 

 

   우리나라는 왜 이리 대통령 복이 없는 나라일까. 특히 경제에 대해서는 대통령 복이 지지리도 없다.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는 한국경제가 회생할 수 없는데 아직 그런 대통령을 가지지 못했으니 말이다. 경제도 정치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가 되지 않고는 번영할 수 없다. 시장경제라는 것이 바로 경제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점점 경제 독재로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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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7시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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