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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공급과잉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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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3월30일 16시00분

작성자

  • 정은미
  •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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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강산업에서 시작한 트럼프 정부 2기 관세정책이 연일 뉴스에 오르고 있다. 산업경쟁력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착잡하기 그지없다. 바이든 정부의 보조금, 부지제공, 세액공제와 같은 유인책으로는 기대에 못 미쳤는지 거칠게 밀어붙이는 관세율 인상으로 미국내 투자를 재촉하기 때문이다. 전후방 산업파급 효과가 가장 큰 국내 자동차, 철강이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악관에서 대미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것을 보면 실제로 성과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장기화하는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와 건설경기 침체로 인해 철강산업에서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이 철강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현대화를 마무리하던 2015년 무렵, 4억 톤을 겨우 넘어서던 세계 수출시장에 무려 1억 톤 이상의 철강재를 쏟아내면서 불거진 국제가격 폭락과 수익률 악화, 글로벌 철강업체의 대대적인 이합집산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당시 미국, 유럽 국가들이 서둘러 조직했던 국제개발기구(OECD) 산하 ‘철강공급과잉에 대한 국제포럼(이하 GFSEC, Ministerial Meeting of the Global Forum on Steel Excess Capacity) 장관급 회의가 있다. 중국의 비협조와 코로나 팬데믹 수습으로 활동이 뜸했던 동 회의체는 작년 10월 세계적으로 과잉 생산능력이 여전히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다시 경고했다. GFSEC 국가들의 철강 설비 가동률은 80%를 크게 밑돌고 있으며, 90%를 상회하던 GFSEC 비참여 국가들도 최근 가동률이 떨어지는 상황이 이런 심각성을 반영한다. 

 

세계 철강 설비는 2024년에 24.8억 톤이고, 이중 중국이 46%에 달하는 11.4억 톤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전체 철강생산은 2024년에 18.8억 톤이며, 중국은 10.2억 톤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철강 국내 수요가 세계 5위인데도 5천만 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이 저가 철강제품을 5%만 해외시장에 밀어내도 한국 시장 전체를 대체할 수 있는 규모로 크다. 

 

이처럼 철강 과잉설비는 글로벌 의제가 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중국이 포진하고 있다. 그렇지만 세계 철강 과잉설비는 2023년 5억 5,100만 톤에서 2025년 6억 3,000만 톤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인도, 아세안 등 신흥국들의 설비투자가 늘어나는 것도 한 몫을 차지한다. 국제 철강가격은 기본적으로 수요 변화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철강수요가 다소 회복할 조짐을 보이면 과잉설비의 재가동 가능성이 국제가격 약세를 견인했다. 

 

이로 인해 철강산업은 전세계적으로 무역구제 조치가 가장 많이 적용되는 산업이 되고 있다. 미국, 유럽은 물론이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까지 가세하고 있다. 나아가 경쟁환경을 왜곡하고 설비 비효율성을 야기하면서 전세계 CO2 배출의 최대 8%를 차지하는 철강산업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신규 및 기존 기술에 대한 투자여력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우리 철강업체들도 글로벌 공급과잉과 저가의 수입철강재로 인해 내수와 생산 모두 위축되고 있다. 문제는 내수 침체에도 불구하고 중국산 저가재의 유입으로 인해 수입이 2020년 이후 연평균 5%로 여전히 늘어나면서 수입의존도가 20%에 달하고 있다. 그동안 내수부진과 수입증가가 이어지면서 우리 기업들은 수출확대로 대응해 왔으나, 미국의 관세정책으로 인해 이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수익성이 저하하고 교역조건도 악화되면서 국내 철강업체들은 노후설비를 보수하는 대신 폐쇄하거나 가동을 중지하는 결정까지 내리고 있다. 전통적인 철강 집적지역인 포항에서도 지역 활력이 크게 떨어지면서 정부가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관련하여 철강산업에서 구조조정을 통한 설비 합리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지만 기계, 부품, 자동차, 조선, 건설, 사회인프라 등 전반에 걸쳐 광범하게 사용되는 “산업의 쌀”인 철강산업에 대해 설비를 줄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가장 주요한 공급과잉의 원인이 중국에 있으므로 우리의 공급역량을 줄이는 것은 자칫하면 국내 시장을 내어주는 결과만 가져올 수도 있다. 

약 10년 전 유수의 유럽 업체가 더 이상 철강을 주력으로 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유럽이 주도하는 탄소중립에 대응하여 온실가스 다배출산업인 철강부문을 줄이고 기계설비 등 고부가가치업종에 주력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제조경쟁력이 약화 되었고, 지금은 다시 철강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늘리고 있다. 대신 수소환원제철이라는 혁신적 공정에 대한 개발과 상용화를 통해 철강산업을 바꾸고 있다.  

 

한편 미국은 지난 1월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가 오랫동안 보류했던 US Steel에 대한 일본 신일철의 인수합병에 대해 불허 결정을 내렸다. 대선을 앞두고 러스트벨트 지역의 표를 의식한 바이든 정부가 결정을 미뤘다는 예상도 있었지만, 동맹국일지라도 외국기업에 넘길 수 없다는 결정을 바이든 정부에서 내린 것은 경제안보와 기반산업으로서 철강산업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력산업은 대부분 내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자동차, 기계는 물론이고 반도체, 조선, 전자는 국내 생산의 80~90% 이상을 수출한다. 세계시장으로 수출한다는 것은 국제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강도 공급과잉에 대응하여 단순히 국내설비를 줄이는 것보다 한국 산업의 성장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어떻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가 우선해야 한다. 그리고 기술혁신, AI 확산, 기후대응이라는 메가트렌드에 대응해서 한국 제조업의 “대전환”을 위해 철강산업의 근원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 모색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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