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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외교는 모든 한국외교의 출발점이다
한국의 근대역사는 일본에게 ‘당하면서’ 시작되었고 근대외교는 일본의 침탈의도 속에서 시작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일본과 얽힌 역사의 트라우마가 한국사회의 근저를 흐르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에게 포위되어 있고, 분단상태로 인해 외교적 취약점은 더 커졌다. 그 조건에서 한국은 1945년 해방 이후 80년간 일본과 과거사와 관련된 갈등을 관리하는 외교를 해오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그리고 유럽제국들은 그런 한·일외교를 들여다보면서 한국의 외교능력을 평가할 것이다. 그래서 대일외교는 한국외교의 출발점이다.
한·일관계에는 늘 미국이 관련돼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의 양자동맹을 통해 안보정책이 간접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일본은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의 핵심이고, 한·일간 협력은 그 전략의 중요한 기반이다. 그래서 한·일관계가 전환될 때마다 미국이 개입한 흔적이 남는다. 2023년 일사천리로 진행된 한·일관계개선 과정도 역시 그렇다. 3월6일 박진 외교부장관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피해자 배상을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발표한 직후인 3월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을 공식 방문했고, 4월26일 미국을 국빈방문했다. 이어서 5월 일본이 주최하는 히로시마 G7정상회담에 초청국으로 참석한 후 8월18일 한·미·일 정상이 워싱턴 인근 캠프데이비드에서 3국협력을 강화하는 캠프데이비드 선언을 발표했다. 그 모든 일정은 잘 짜여진 각본 같다. 한·일관계는 단지 양자만의 관계는 아니다.
안보여건의 압박은 한국과 일본을 접근시킨다
미·중간 패권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AI와 첨단기술이 선도하는 4차산업혁명 등 안보상황의 급변으로 인해 협력적인 한·일관계와 한·미·일 협력이 더욱 중요한 안보조건이 되었다. 다행히 트럼프2기 정부는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바이든 정부가 구축한 아시아의 격자형 안보협력망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 같다. 지난 2월7일 미·일정상회담에서 그러한 정책의도를 드러냈다. 미·일공동성명은 “미·일동맹이 인도·태평양지역과 세계의 안보와 번영의 초석(conerstone)이며 쿼드, 한·미·일, 미·일·호주, 미·일·필리핀 3국협력 등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like-minded) 국가들간의 협력을 촉진한다”고 천명했다. 트럼프 정부에서도 한·미·일협력이 중시된다면 협력적인 한·일관계를 유지해야할 이유도 그만큼 더 커졌다.
정상적이고 유리한 한·일외교 조건 만들기
한국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대일외교를 전환해야 한다. 한국 스스로의 역사 반성이 그 선결조건이다. 우리의 ‘국가’는 과거 역사 속에서 자기 국민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했던 역사적 책임이 있다. 물론 일본에 대해서는 진정한 역사의 반성을 계속 촉구해야 한다. 1988년 레이건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미국정부가 12만 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수용소에 억류했던 잘못을 인정하고 그 피해자들에게 사죄했다. 의회는 법률을 제정하여 피해자들에게 일인 당 2만 달러의 보상금을 일괄 지급했다. 2022년 강제억류 80주년에 바이든 대통령도 거듭 사과했다. 사후에라도 국가가 국민에게 폭넓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반성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이자 저력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대일관계 개선조치 이전에 강제동원피해자 배상에 관한 대법원의 판결을 ‘행정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국내정치적인 기반을 미리 다졌어야 했다. 필자는 그런 문제점을 ‘마치 수학시험에서 정답만 쓰고 문제 풀이과정을 쓰질 않아 대폭 감점을 받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우리 대통령도 역사속의 국민들에게 국가의 역사적 책임을 상기시키고 사과할 수 있어야 한다. 취임후 최초로 돌아오는 8.15 광복절 경축사, 또는 3.1절 기념사를 통해서 ‘일본이 역사책임을 회피하는데 유감을 표명하고, 근대 역사에서 우리 국민이 희생되고 피해를 입은 데 대해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보호 하지 못한 역사적 책임을 사과하고, 이와 관련된 우리 대법원의 모든 관련 판결을 존중하되 외교적 현실을 감안하여 우리 정부가 그 ‘배상’을 대신 변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 줄 것을 국회에 요청‘하는 내용의 선언적 연설을 하면 좋겠다. 그 연후엔 일본이 역사의 반성과 사죄의 책임을 ‘역사적으로’ 안고 가야하게 된다.
편의적 공존관계 만들기
역사상 이웃국가들이 ‘우호적’이었던 적은 없다. 이웃국가간의 ‘우호’란 그저 ‘평화적’이기만 하면 족했다. 유럽의 인근국 관계가 다 그랬다. 외교는 안전과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는 것이다. 한·일외교는 안전하게 공동번영하기 위해서 서로를 잘 이용하는 것이다. 외교갈등을 잘 관리하며 그때그때 필요한 분야의 협력을 하는 ‘편의적 공존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역사경험상 한·일관계의 최대기대치이다.
물론 역사문제 등 국가의 자존심과 품위에 관한 문제는 철저하게 따져야 한다. 그와 동시에 일본과 전략적인 협력을 병행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안보분야에서의 신뢰구축조치(CBM: Confidence Building Measures)처럼, 양국 간 역사교육에 관한 신뢰구축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일본은 이미 1982년 “근린제국에 대한 배려”를 약속했으나 최근에는 그 공약을 오히려 손상시키고 있다. 또한 양자간 협력분야는 물론, 지역적·세계적 차원의 과제를 협의하는 전략대화체제도 필요하다.
우리의 대일외교 이니셔티브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논거(내러티브)를 정리할 필요도 있다. 대중매체와 SNS가 극한적으로 발달한 첨단기술환경에서 프로파간다는 외교의 핵심이다. 점잖게 표현하자면 ‘공공외교’다. 양국 국민들이 성숙한 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할 때 갈등은 완화될 수 있다. 외교는 물론 역사와 국제정치 학문분야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외교의 격을 높이고 일관성을 보장한다.
(한국의 탄핵정국의 혼란을 틈타 일본이 과거의 버릇처럼 한국의 등 뒤에서 북한과 일을 꾸민다면 당장 단호하고 강하게 대응해야할 것이다. 상품권 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이시바 총리가 어떤 방향으로 튈지는 한국의 단호한 예방외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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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25년03월30일 17시01분
- 최종수정 2025년03월22일 13시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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