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경제와 입법 대응의 한계 논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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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변화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기존 것들을 토대로 해 필연적이고 유기적으로, 부분적인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변화이며, 또 다른 하나는 갑작스럽고 단절적으로 모든 것이 송두리째 바뀌는 변화이다. 전자를 트렌드 변화라고 한다면 후자는 패러다임 변화라고 한다(선원규, 2021).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디지털 기술의 변화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는 경제와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목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잘 인지하며 대응하고 있을까?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즉, 변화는 현재 ‘실제’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사람마다, 집단마다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며, 대응 방식의 차이를 만든다. 실제로 이러한 차이는 현재 세계 각국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디지털기술과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 지원과 공격적 투자를 하는 나라도 있는 반면, 규제 강화를 통해 기술과 산업 발전에 속도를 늦추는 나라들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술기반의 소프트 파워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이며,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디지털 분야의 선도적인 역량을 보유한 나라로, 자국 플랫폼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역량을 보유한 경우,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 변화를 선도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마련이지만 우리나라는 그와 반대되는 행보를 보인다는 점이 매우 아이러니하다. 본 글에서는, 플랫폼 경제의 개념과 특성, 그리고 현황을 살펴보고 우리나라가 플랫폼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는지 논의해 보고자 했다.
플랫폼 경제로의 전환
사전적 의미로 플랫폼(Platform)은 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리는 곳을 의미한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구글, 아마존, 메타 등과 같이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사람들을 ‘연결’하는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디지털 공간의 다양한 행위자가 네트워크에 참여해 연결된 관계를 맺으며 가치를 만드는 체계(System)를 플랫폼이라고 통칭하게 됐다(공병훈, 2023). 플랫폼이라는 개념에서도 알 수 있듯, 플랫폼은 “연결”을 제공한다. 이는 과거 오프라인에서 존재하던비즈니스와 ‘가치창출’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오프라인에서의 비즈니스는 판매를 통해서만 가치가 창출됐다. 사과를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판매해 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하지만 플랫폼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기보다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가치를 창출한다. 이 과정에서 거래비용은 축소되고, 이용자들의 편익이 증대되며, 새로운 기술 활용으로 산업의 가치사슬이 재편된다(김은경, 2020). 그간 선행연구들을 통해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플랫폼은 양면시장, 혹은 다면시장(Multi-side Market), 네트워크효과(Direct & Indirect Network Effect)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을 쉽게 설명하면 경계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경제 이론의 가장 기본은 완전경쟁시장을 전제로 그 안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 경제 이론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명확하게 존재하고 수요와 공급의 교환 행위가 일어나는 시장이 명확하게 존재한다. 또한 거래 행위는 곧 가치 창출을 의미한다. 하지만 플랫폼 경제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구분이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을뿐더러 경제 활동의 범위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다. 예를 들어 한국에 거주하는 대학생이 자신의 일상을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렸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해당 영상에 ‘좋아요’를 눌렀다면, ‘좋아요’를 누른 행위 자체가 직접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지만 영상을 올린 사람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상이 알려짐으로써 간접적인 수익 창출의 ‘가능성’이 생긴다. 직접적 거래 행위가 없더라도 ‘연결’만으로 가치 창출의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경제 구조가 행위자와 경제 행위의 범위 등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분절적 구조였다면, 플랫폼 경제는 행위자와 경제 행위, 그리고 경제 행위의 범위가 복잡하게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에서는 플랫폼 경제를 “플랫폼 생태계(Ecosystem)”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혁신적 변화가 빠르게 일상화되는 데는,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크게 작용 했다. 코로나 이후 만 2년간 경제 ·산업구조 변화를 살펴보면, 디지털산업 부가가치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증가했으며1), 디지털 제조업 분야의 변화는 없는 반면, 디지털 서비스 산업 분야의 성장이 눈에 띄게증가했다(현대경제연구원, 2022). 가장 최근 데이터를 보더라도, 디지털산업은 국내 전체산업 매출의 13.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팬데믹이 종료된 이후에도 플랫폼 경제의 성장이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할수 있으며(한국인터넷기업협회, 2024a), 향후 한국의 디지털 경제 규모는 2021년 기준 370억 달러에서 2030년 520억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DPA, 2022).
또한, 이 과정에서 ‘플랫폼의 생활화’가 진행되며 플랫폼 경제로의 패러다임 변화는 보다 본격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최근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일반시민 1,02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디지털산업이 자기 삶의 질을 개선했는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84.3%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2024a). 이러한 결과는 플랫폼 경제가 기존 경제 구조와는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으나 이 변화가 우리의 삶에 아주 깊이 들어왔음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혁명적 변화는 일상이 됐으며, 플랫폼 경제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본격화됐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플랫폼 경제로의 전환을 경제구조적으로 보았을 때, 매우 획기적인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혁신적변화가 너무 급작스럽게 일상화가 됐다는 점이다. 정치, 문화, 경제, 교육, 제도, 환경 등 사회 전 분야의 변화를 야기하는 전환임에도 방식이나 방향성에 대한 논의를 거칠 시간도 없이 본격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동일한 현상을 마주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대응이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으며, 한 나라 안에서도 이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플랫폼산업에 대한 국내 규제입법 동향과 한계
우리나라의 경우, 디지털 분야의 선도적 역량과 자국 플랫폼 기업을 기반으로 팬데믹을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플랫폼 기업들의 빠른 성장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변화에 대한 대비 없이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하며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발생했으며,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오히려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키는 상황이다. DPA에 따르면 한국의 디지털 경제 규모는 2030년까지 증가하겠지만, 싱가포르나 일본, 인도, 호주 등과비교하면 발전 속도는 상대적으로 지연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DPA, 2022). 이러한 예측의 이유는 디지털 산업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이다.
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2022)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디지털 경쟁력은 63개국 중 8위였지만, 규제 순위는 23위였다. ODCD(2022)에서 발표한 자료에서도 한국의 디지털 규제지수는 85개국 중 51위를 차지했으며, 미국 온라인 플랫폼에 반기를 들며 각종 규제를 시행한 유럽연합(EU)의 독일보다도 한국의 규제가 더욱 심한 것으로 평가됐다(한국인터넷기업협회, 2023).
이러한 결과는 디지털산업에 대한 사전적 규제 움직임이 있고,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규제가 유연하지 못하며, 내용이 경직돼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조선일보, 2023; 중앙일보, 2023). 실제로 우리나라 21대 국회 기간 발의된 디지털산업 관련 규제입법안은 459건이었으며(2023년 10월까지를 기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발의된 법안을 평가한 결과, 용어 정의, 헌법 합치성, 산업 및 기술 이해도, 행정편의주의, 자율규제 가능 여부 등 다양한 평가지표에서 대부분 낮은 평가를 받았다(한국인터넷기업협회, 2024a). 많은 수의 규제입법이 추진되고 있으나, 내용의 질이 낮다는 것은 정부가 변화에 성급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규제안이 발의되기 전에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거치는 것만으로도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는 항목들에서조차 낮은 점수를 받고 있다는 것은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 과정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간 디지털산업에 대한 우리나라 정부의 태도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해하고 새로운 틀을 만들어 시장의 문제를 근본적이고 구조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기존의 틀 속에서 이슈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을 지속해 왔다(박희준, 2022; 한국인터넷기업협회, 2024b). 타다금지법이나 대형마트 의무휴업, 게임 셧다운제와 같이 성급한 규제가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전환 과정에 대한 정부의 신중한 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제언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사회 모든 영역에서의 정책 진공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박희준, 2022). 따라서 모든 국가는 각자 놓인 상황과 환경을 고려해 각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 간다.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을 소유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자국의 기업을 보호하고 플랫폼 기반의 경제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방향성을 명확하게 갖고 있다. 반면 자국 플랫폼 기업이 없이, 자국의 시장을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게 잠식당하고 있는 유럽의 경우, 미국 기업들을 견제하는 법안을 통해 자국 시장을 보호하겠다는 방향성을 뚜렷하게 보인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 동안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보다는 정부의 일방적 의사결정과 법을 통한 집행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가장 대표적으로 한국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몇몇 기업들을 통한 고속 성장을 이루었고, 재벌이라고 불리는 대기업들의 비리, 부당거래, 정경유착 등의 이슈로 재벌개혁을 핵심으로 하는 경제민주화 개념을 헌법에 도입했다. 그러나 개념의 모호함은 여전히 존재하고, 반기업적 규제 정책과 노동친화적 정책들이 경제민주화로 포장돼 정치적 상품으로 등장했을 뿐, 이를 통해 바람직한 경제 구조를 확립하고, 우리나라 경제 성장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했는지는 의문이다. 문제는 시장을 바라보는 정부의 이러한 태도가 새로운 제도와 정책적 틀을 요구하는 패러다임 전환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경제 및 산업에 대한 강한 규제가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규제 완화가 시장의 경쟁을 촉진해 경제 생산성과 성장 잠재력을 높인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Djankov et al., 2006; Caballero andHammour, 1998; Nicoletti et al., 2005). 또한 국가를 통한 공공책임의 지속적인 확대는 효율성과 동태성을 해친다(김상철, 2018). 결국, 플랫폼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직면하는 문제들은 플랫폼 경제가 직접적으로 내포하는 실질적 문제라기보다는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적 접근방식으로 인한 문제가 크다(홍대식, 2023; 박희준, 2022; 안준모, 2022; 김성철, 2018).
우리나라는 자국 플랫폼을 보유한 세계 몇 안되는 국가이지만, 플랫폼 기업들의 규모가 작고,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역동적인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세계 각국이 플랫폼 경제로의 전환을 빠르게 이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기업과 시장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면 글로벌 디지털 패권 경쟁에서도 우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자국기업에 대한 날을 세우던 과거의 정치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플랫폼 경제에 보다 적합한 정책과 제도의 방향성을 전략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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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DP에서 디지털산업 부가가치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9년(1~3분기) 10.9%에서 2021년(1~3분기) 11.3%로 0.4% 증가했다(현대경제연구원,2022).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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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L: https://contents.premium.naver.com/platformstory/knowledge/contents/
230213112341453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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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산업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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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2023), Digital Services Trade Restrictiveness Index
<ifsPOST>
※ 이 글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가 발간한 [SW중심사회 2024년 4월호](2024.4.23.)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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