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딜(Small Deal)과 종전선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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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미북 정상회담의 일정이 잡히면서 북핵 해결에 대한 한국 국민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미북 정상회담이 한국 국민이 원하는 ‘북한 비핵화’는 영영 잡을 수 없는 ‘호수 속의 달’일지 모르며, 오히려 한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스몰 딜(small deal)’의 가능성이 어렴풋이나마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스몰 딜’이란 북한이 과거핵과 현재핵을 인정받고 미래핵만 포기하는 일종의 ‘핵동결’을 미국이 받아들이고 그 대가로 상당한 반대급부를 주는 핵타결을 말한다. 즉, 북한이 눈가림식 조치들만을 취하고 미국 정부가 ‘사탕발림(sugar-coating)으로 이를 자찬하면서 동맹이완 조치들을 합의해주고 한국 정부가 이에 가세하여 ‘평화 쇼‘를 벌이는 것이다. 이 경우, 당장 우려해야 하는 것은 섣부른 종전선언일 것이다.
북핵 폐기는 여전히 ‘호수 속의 달’
미북 핵대화가 한국 국민이 원하는 ’북한 비핵화‘를 좀처럼 끌어내지 못할 것으로 보는 비관적 전망은 주로 세 가지 이유에 근거한다.
첫째, 북한이 미 핵우산을 포함한 미국의 영향력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해온 ‘조선반도(Chosun peninsula) 비핵화’ 개념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 표현은 영어로 하면 ‘denuclearization of Korean peninsula’가 되고, 이것이 다시 번역되면 한국에서는 ‘Korean penisula’가 되고 북한에서는 ‘Chosun peninsula’가 된다. 북한은 이 표현을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 9.19 평양선언 등에서도 고수했고,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신년사에서 ‘핵 불필요’를 언급할 때에도 “미국의 모든 대북 위협이 제거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북한이 실질적 핵포기 조치와는 거리가 있는 눈가림식 조치들만을 취하고는 “이제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라”며 버티어온 것도 ‘조선반도 비핵화’ 논리에 따른 것이다. 북한은 이 기만적인 표현으로 미국과 국제사회를 농락했고, 문재인 정부는 ‘조선반도’ 표현을 생략한 거두절미 표현으로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다”며 국민을 호도해왔다.
둘째, 중국이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를 밀착 지지하고 있다. 중국은 겉으로는 대북제재에 동참하면서도 뒤로는 북한 정권의 생존을 돕는 이중적인 ‘중북 핵공모(nuclear collusion)’을 지속해왔다. 중국은 북한과의 정상회담 직후 늘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지지한다” 등의 말을 해왔는데, 이는 ‘조선반도 비핵화’를 지지하며 한미동맹을 역외로 축출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지만, 한국 정부는 마치 중국도 북한 비핵화를 원하는 것처럼 아전인수식 해석을 해왔다.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미국을 역외로 축출하는 것은 북한과 중국 모두에게 있어 최우선 전략목표이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중국이 부분적으로나마 대북제재에 동참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대중 압박에 의한 것이다.
셋째, 한미 간 동맹신뢰가 바닥인 상태에서 진행되는 미북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의 안보이익을 얼마나 자상하게 배려할지 의문이다. 혹자들은 방위비 분담금을 놓고 한미 양국이 태격태격하는 것을 두고 돈 문제 때문에 동맹이 흔들린다고 하지만, 이는 본말을 전도시킨 매우 안일한 진단이다. 동맹은 이미 그전부터 중병을 앓고 있었고,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증세 중의 한 가지가 드러난 것일 뿐이다. 현재 한미동맹은 한반도발 ‘남북공조’ 태풍과 워싱턴발 ‘트럼프 허리케인’이라는 두 종류의 광풍 앞에 휘청거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이래 전례없는 탈미통북(脫美通北) 정책들을 펼치고 있으며, 미국의 세계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에 불참하면서 충분한 동맹협의를 거치지 않은 9·19 남북 군사분야합의에 서명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남북한 정부가 공조(?)하여 미국에게 종전선언과 대북제재 해제를 종용하는데도 한국이 지켜주어야 할 동맹국인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트럼프 광풍’ 역시 초강력이다. 후보 시절부터 동맹국들에 대해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경제민족주의를 내세우고 방위비 분담금의 규모를 시비했고, 연합훈련을 중단시키면서도 고심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미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전통적인 ‘좋은 경찰(good cop)’의 역할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를 위해 돈을 쓰거나 피를 흘리지 않겠다”고 하는 중에 동맹이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북한이 자의로 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잡을 수 없는 ‘호수 속의 달’이다.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
북한이 핵포기를 결단하여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나란히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것은 이론상 최상의 시나리오이지만, 북한이 ‘핵포기 의사 부재’가 거의 확실한 현 시점에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스몰 딜(small deal)’이라는 ‘나쁜’ 시나리오를 예방하는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은 핵실험 치 미사일 발사 중단, 동창리 핵실험장 발사대 및 엔진실험 시설 해체 착수, 풍계리 핵실험장 입구 폐쇄, 영변 핵시설에 대한 사철 수용 용의 표방 등이 “완전한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한 용단이었다”고 상기시키면서 대륙간탄도탄(ICBM) 생산 및 시험발사 중지를 포함한 약간의 추가 조치를 내놓을 수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미북 연락사무소 설치,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수용, 대북제재 완화, 종전선언 등을 반대급부를 내줄 수 있다. 이런 합의에 서명한 후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적인 타결’로 자찬할 수 있으며, 한국 정부와 방송언론들은 ‘항구적 평화를 향한 위대한 첫발’이라며 거들고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합의와 자축(自祝)은 한국의 안보를 고립시킬 뿐이며, 당장 우려해야 하는 것은 성급한 종전선언 서명과 그 이후 가시화될 수 있는 주한미군의 감축 또는 철수 가능성이다. 종전선언은 법적으로 한미동맹이나 유엔사령부와 무관하지만, 한국내 좌파세력들을 크게 고무하여 동맹이완과 미군감축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다분하여 북한과 중국은 한미동맹 해체라는 목표를 향해 한발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
현재로서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문제가 미북회담의 ‘공개’ 의제가 될 가능성은 없지만, 최악 상태인 동맹의 건강성과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성을 감안하면 미군 감축은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미 의회가 ‘국방수권법’을 통해 2만2천 명 이하로의 감축을 견제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기만 한다면 현 2만8천5백 명에서 6천 5백 명을 철수할 수 있다. 미국이 7월에 순환근무 기간이 끝나는 4500명 병력의 제1기갑여단의 후속부대를 보내지 않는 방법으로 전투병력을 줄인다면 주한미군은 행정요원 위주의 ‘껍데기 군대’로 전락할 수 있다.
종전선언 서두르기보다 동맹 추스르기가 더 시급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는 동맹신뢰를 감안한다면, 지금은 이제 북한군의 전면 남침 시 미군 병력 69만 명, 항공기 2,000대, 함정 160척, 항모전단 5개 등을 전개한다는 연합작전계획(OPLAN)-5027이나 수정 보완된 OPLAN -5015는 한국 언론들이 쓰는 소설일 뿐이다. 이런 와중에 한일관계마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카네다 공군기지에서 이륙하는 미군기들이 날아와야 하고 증원되는 미군에게 병참지원을 담당할 유엔사 후방기지들도 일본에 있다. 게다가 미일동맹은 미영동맹을 능가하는 최강의 동맹이며, 그래서 미국은 한미일 3국 간 안보협력을 원해왔다. 문재인 정부가 현재의 통북(通北)·종중(從中)·반일(反日) 기조를 고수한다면, 미국이 조만간 주한미군의 비중과 규모 그리고 지위를 격하시킬 수 있다.
요컨대, 지금은 종전선언이 급한 것이 아니라 동맹 추스르기가 급하다. 종전선이나 평화협정은 상호간 흑심(黑心)을 품지 않은 나라들 사이에는 필요하지 않으며, 흑심을 품은 나라와의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은 스스로의 안보의식을 허물어 전쟁을 유발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따라서 문제 해결의 핵심은 북한이 흑심을 가지지 않은 나라로 변화하는 것이며, 그 이후에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 종전선언이요 평화협정이다. 한국으로서는 한미동맹이 한국의 생존과 번영에 긴요함을 인정한다면 너무 늦지 않게 동맹 추스르기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인 진단과 함께 근본적인 정책기조 변화가 있어야 한다. 정부는 평양을 향한 ‘외길 달리기’만을 고집해서는 안 되며, ‘탈미·통북·친중·반일’라는 감상적 수정주의로는 자유민주주의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담보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동맹위기에 대해 호르라기를 불어야 할 정치권, 언론 그리고 지식인들도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미국도 그렇다. 미국이 진정 군사력과 도덕적 지도력을 겸비한 패권국가로 존속하기를 원한다면 미국인들도 트럼프식 동맹정책이 어떻게 동맹을 망가뜨리고, 어떻게 미국의 중장기 이익을 훼손할 것인지를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동맹 수호론자들은 “동맹의 전쟁억제 효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논리로 방위비분담금의 투명성 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좌파 NGO들의 동맹 흔들기를 방어해왔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합의와 관례를 묵살하고 상업적 손익만을 앞세우면서 적성국을 대하듯 밀어붙인다면 이들조차도 할 말을 잊고 말 것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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