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제도의 도입 문제, 논란의 핵심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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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에 정부가 주식회사 이사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를 주주에 대해서까지 확장하는 상법 개정안을 제안했다가 기업들의 반발로 중단했었는데, 11월에 들어서 국회 과반수 의석을 점하고 있는 민주당이 다시 이러한 개정안을 끄집어냈다. 개정안의 문언은 “이사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모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특정 주주의 이익이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 외에도 대기업의 전자주주총회 개최의 의무화, 대기업의 집중투표제의 의무화, 사외이사의 인원수 증가와 독립이사로의 명칭변경, 분리선출할 감사위원의 수 증가에 관한 개정안까지 같이 제시하고 있다. 경제계는 이러한 민주당의 상법 개정안에 대하여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에 대해서까지 확장하는 개정안에 대해 가장 논란이 많으므로 이 글에서는 이 문제에 관해 살펴본다.
회사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개별 출자자가 단독으로 동원할 수 없는 대규모 자본을 모집하고, 영업활동에 따른 손익의 계산과 분배의 간편성 등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된 추상적, 개념적 장치이다.1) 따라서 회사 재산의 궁극적 소유자는 회사의 주주들이고, 회사의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이사, 이사회, 대표이사는 회사재산의 궁극적 소유자인 주주들로부터 그 권한을 위임받은 자들이다. 현행 상법 제382조 제3항(이사의 충실의무)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러한 이사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fiduciary duty)도 ‘수임인은 위임의 본지에 따라 위임인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위임관계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회사에 출자를 한 주주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회사의 경영에 관한 입장을 달리할 수 있으므로 이사의 충실의무의 내용을 결정할 공통의 기준이 필요하다. 그래서 회사라는 단일 법인격체를 상정하여 그 단일 법인격체의 이익을 공통의 이익으로 보아 이에 부합하는 행위이면 모든 주주들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간주한다.
회사의 경영에 관한 주주들 간의 입장 차이로 인해 기업의 인수합병(M&A)과 같은 기업의 경영에 관한 어떤 판단이 일부 주주들의 이해에는 부합하지만, 다른 일부 주주들의 이해에는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충실의무 이행의 상대방의 범위를 회사를 넘어서 ‘주주’로까지 확대할 경우 이사들이 선뜻 회사의 경영판단을 내리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러한 경영판단의 지체는 날로 심해지고 있는 경쟁적 경제 환경에서 기업이 생존하고, 성장하는데 큰 지장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회사의 이사들이 그들을 선임한 지배주주의 입장만 대변하여 소수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면, 이는 주주 각자는 출자한 몫에 따라 회사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이익을 분배받아야 한다는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주주평등의 원칙은 사유재산의 보호라는 자본주의의 기초정신에 입각한 것으로서 이론의 여지없이 우리나라 회사법 전체를 관통하는 대원칙이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인정되는 사유재산 제도의 기본원칙은 사유재산의 소유자는 임의대로 그에 관한 권리를 행사함이 원칙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소유권을 남용하여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유재산의 보호라는 대원칙과 주주권리 남용의 금지라는 2가지 원칙의 적절한 절충점에서 이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고 본다.
통상 회사의 지배주주가 지명하는 자가 회사의 이사로 선임되므로, 이사가 소수주주에게도 충실의무를 부담하느냐의 문제는 결국 지배주주가 소수주주에게 충실의무를 부담하느냐의 문제로 귀착된다. 이 문제에 관하여 판례법이 지배하는 미국에서는 주식은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이므로 주주는 보유주식에 관한 의결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다는 기본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주주총회의 동의를 요하는 회사의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지배주주가 다른 주주들에 대해서도 충실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고 있다. 지배주주의 다른 주주들에 대한 충실의무를 인정하는 근거는 형평법의 원리에 의한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미국 판례들도 지배주주가 의결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다른 주주들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충실의무를 진다고 하지는 않는다. ‘기망적 행위’나 이에 버금가는 ‘배신적 행위’를 하는 것만 금지된다고 보고 있다 2). 이러한 미국 회사법 판례와 이론은 우리나라에서 회사의 임원들로 하여금 회사 외에 주주들에 대해서까지도 충실의무를 지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할 것인지, 도입한다면 그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를 함에 있어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지배주주가 보유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소수주주를 기망하거나 기망에 버금가는 배신행위를 하는 것은 권리남용 금지에 관한 민사법 정신과 사기죄나 배임죄의 성립에 관한 형사법 원리에 의해서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를 이사의 충실의무에 관한 규정에 특별히 삽입하여 언급한다고 해서 이사의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지나치게 확대하여 회사의 경영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적용 범위의 제한을 두지 않고 회사의 경영 및 소유에 관한 이사의 모든 행위에 충실의무가 수반된다고 하는 경우 법 적용의 과정과 결과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회사의 주주가 회사에 대해서 갖는 이해관계는 모든 주주들 사이에 동일하지 않다. 예를 들면, 주식보유에 따른 기업의 손익회계 처리가 어떤 경우에는 지분법에 의해서 반영되고, 어떤 경우에는 원가법에 의해서 반영되기도 한다. 또한 회사의 합병이 있을 경우 주주들은 자기의 이익이 되는 쪽으로 회사의 합병에 찬성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한다. 마치 국민들이 자신의 이념과 이해에 따라 지지하는 정당을 달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입장이 서로 상반되거나 차이가 있는 주주들을 아울러 일률적인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주주의 이익’이란 쉽게 도출하기 어렵다. 그래서 충실의무 이행의 상대방이 될 수 있는 하나의 법인격체가 필요하고, 그것이 ‘회사’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주주의 이익’이란 개념을 이사의 충실의무 이행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미국의 지배적 판례나 이론에서처럼 이사가 회사의 경영에 관한 어떤 행위나 어떤 거래를 함에 있어서 일부 주주를 기망하거나 기망에 버금가는 배신적 행위를 한 경우에 한하여 해당 이사에게 법률적 책임을 묻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어떤 경우가 그러한 기망적 행위에 해당하는지는 일률적으로 재단하기가 어렵고 사안의 구체적 사정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미국법 이론에서는 이사가 주주로부터 회사의 주식을 매수하면서 그 주주에게 전부 또는 일부 허위의 사실을 말하거나 기타 잘못된 진술을 하는 경우 그 이사는 그러한 기망적 행위로 인해 해당 주주가 입은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본다.3) 그리고 이사가 회사에 대해 가지는 급여채권을 수년간 고의로 행사하지 않고 있다가 회사가 재무적으로 곤궁한 상태에 빠지자 이를 행사함으로써 회사의 주주를 포함한 다른 채권자들의 권리를 해하는 결과를 초래한 경우 해당 이사는 주주들을 포함한 다른 채권자들에게 기망행위에 버금가는 배신적 행위를 한 것이므로 형평법 원리상 그 급여채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본다.4)
이사가 주주들에게 기망적 행위나 이에 버금가는 배신적 행위를 한 경우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위반의 책임을 지운다는 이러한 절충적 입장에 따라 이사의 충실의무에 관한 상법 제382조 제3항의 문언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정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국회에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심도 있는 논의와 검토를 거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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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법인의 성격에 관하여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지만, 그러한 이론들의 공통점은 법인은 구성원들의 개인적 이해와 구분되는 집단적 이해를 가진 것으로 국가에 의하여 인정된 허구적(fictitious), 인위적(artificial)인 집단 개념이라는 것이다. Henn and Alexander, LAWS OF CORPORATIONS(West Publishing, 3rd ed. 1983), p. 145.
2) 위 Henn and Alexander, LAWS OF CORPORATIONS, p. 654.
3) 위 Henn and Alexander, LAWS OF CORPORATIONS, pp 645, 646.
4) Pepper v. Litton, 308 U.S. 29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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