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억지 춘향전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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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춘향의 미모는 소문과 달리 별로였다.
2.
춘향이 따스한 봄볕 동무삼아 시냇가 빨래오니 벌써 봄이 한창이다. 시냇물 졸졸 소리 내어 흘러가고 수양버들 푸릇푸릇 물이 올랐다. 하늘 높은 곳에서는 지지배배 종다리가 쉼 없이 울고 여기 저기 노란 꽃 붉은 꽃 처녀 가슴을 설레게 했다. 춘향은 빨래방망이 두들기다가 문득 고개 들어 종다리를 찾아보지만 머리만 어지러웠다.
그런데 저만큼 봄날에 들뜬 자신의 가슴보다 더 설레게 하는 멋쟁이 총각이 걸어가고 있었다.
이 고을에 소문난 사또네 이 도령이었다.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 마라.”
같이 빨래 온 옆집 동무가 그 도령을 멍하니 쳐다보는 춘향의 머리카락을 당기며 핀잔을 줬다.
오르지 못할 나무가 더 설레는데 어떡하란 말인가...
그날 이후로 자나 깨나 그날 본 그 늠름한 이 도령 생각뿐이었다. 멍하니 지내기 일쑤이고 걸핏하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어떤 때는 한번 눈물이 나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기도 했다. 춘향의 병이 깊어갔다. 용하다는 의원의 약도 지어 먹었으나 소용없었다. 그러다간 곧 죽을 것 같았다. 그런 딸을 지켜보는 월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광한루의 산천경계는 볼 때마다 입이 벌어질 정도로 수려했다. 그날도 이 도령은 광한루에 올라 연신 감탄사를 내질렀다. 방자의 부추김도 있었지만 모처럼 책을 멀리하고 밖을 나서니 기분이 한결 맑아졌다. 날씨도 좋고 옷자락에 감기는 바람까지 좋았다. 명사들의 싯귀가 저절로 떠올라 가만히 읊조리고 있는데 방자가 옷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도련님. 저기 좀 봐요.”
“하늘도 구름도 빛깔이 좋구나!”
이 도령 눈에는 먼 산 위 둥실 떠가는 구름이 보였다.
“그쪽이 아니라 저기 그네 타는 아가씨!”
방자는 부근 큰 나무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제법 날렵하구나.”
이 도령은 방자의 유도에도 무덤덤했다.
“멋있지 않아요?”
“옷만 화려하지 얼굴은 별로 같은데...”
“가까이 가서 보면 다를 겁니다. 이 고을 최고 예뿐이라 소문난 춘향이라고 합니다.”
방자의 부추김에도 이 도령은 여전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월매가 죽어가는 딸을 위해 방자를 매수해 벌인 일이었지만 결국 그날 그네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월매는 고심 끝에 다시 이 도령을 가지 집으로 불러들였다. 맛난 고기 안주에 좋은 술을 준비했다. 지금껏 자신이 기생을 하면서 익힌 모든 기술을 동원했다. 이 도령이 술에 얼큰히 취할 무렵 춘향이를 그 방으로 들여보냈다. 술 탓인지 춘향의 화장 탓인지 순간 이 도령은 얼마 전 그네 타는 춘향과 다른 모습에 홀딱 반해버렸다. 결국 둘은 그날 백 년 인연을 맺고 말았다.
다음 날 술에서 깬 이 도령은 춘향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몹시 난처했다. 간밤에 본 모습과 너무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다.
“수일 내 다시 들리겠소.”
도망가 듯 월매집을 나온 이 도령은 다시는 그 집에 걸음하지 않았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춘향이는 인편을 통해 여러 번 편지를 보냈다. 그때마다 한양 가서 성공하면 데리러 올 것이라는 간단한 방자의 전언뿐이었다. 그리고 이 도령은 한양으로 갔다. 한양 간 이 도령은 그 뒤로 영영 소식이 없었다.
그것이 춘향과 이 도령 이야기의 전부이다.
결국 춘향은 이 도령을 그리다 죽었다. 몇 해가 지난 뒤 남원 고을에 흉년이 계속되었다. 춘향이라는 처녀귀신의 원혼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래서 춘향의 원혼을 달래는 춘향굿이 시작됐고 춘향굿은 판소리 춘향가 되었고 거기서 춘향전이 나왔다.
3.
춘향이 너무 예뻐서 변 사또가 억지 수청 들게 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억지춘향’이란 말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못생긴 춘향이가 억지로 이 도령을 사모했기 때문에 생긴 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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