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민주당과 한총련, 그리고 진보당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바뀌어버린 민주당의 대주주와 이재명의 정치 역정.
길 닦아 놓으면 거지가 먼저 지나간다는 속담이 있다. 길은 많은 사람에게 개방된 제도나 기술을 의미하고, 거지는 그것을 발 빠르게 활용하는 불청객 혹은 악당을 의미한다. 인터넷, 스마트폰, 개인 미디어(SNS) 등 정보통신 기술이 대중화되자, 음란물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민주정(democracy)이라는 길을 닦아 놓으면, 찾아오는 포퓰리스트와 중우(衆愚)와 폭민(暴民)이라는 불청객 방지책은 18세기 후반 미국 독립혁명을 주도한 건국의 아버지들도 고심한 일이다. 당대표‧최고위원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권리당원(민주당)이나 책임당원(국민의힘) 당비를 각각 월 1천원으로 낮게 책정하고, 유력 주자들이 추동을 하자 편향된 이념‧종교 집단과 온라인을 주름잡는 정치 훌리건(폭력을 서슴지 않는 극성팬)들이 당에 대거 들어와 공당인 민주당의 대주주가 되어 버렸다.
이재명 대표가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당시 열린우리당) 경기도당 문을 두드렸을 때, 비공식적이지만 일종의 예비 공천 면접을 했던 지인으로부터 전후 사정을 들어본 적이 있다. 첫 면접을 해보니, 기존 공천 신청자와 느낌이 너무 달랐단다. 그래서 그를 잘 알만한 사람들에게 탐문해 보니, 성남시 주사파(나중에 경기동부연합)와 꽤 가까운 관계라는 얘기를 들었단다. 게다가 뚜렷한 운동권 경력도 인맥도 없고, 당시 범죄 전과 3범(무고 및 공무원 자격 사칭, 특수공무집행방해 공용물건손상 등)이라, 공천을 받기 힘들겠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하였다.
그런데 2006년 지방선거는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열세가 뻔히 예상되는 상황이라, 성남시장으로 나설 사람이 없어서 결국 공천을 줬는데, 이재명은 득표율 23.8%로 낙선하였다. 이를 발판으로 2007년 대선 경선 때는 정동영 사조직인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공동대표를 했다. 2008년 총선 때도 당시 통합민주당(손학규 박상천 공동대표) 박재승 공관위원장의 공천 기준으로는 공천탈락 사유가 명확했다.
박 위원장은 “뇌물·알선수재·공금횡령·불법정치자금·파렴치범·개인비리 및 기타 모든 형사범을 포함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사람은 심사에서 제외한다”는 원칙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오랜 정치 동업자로 인정한 안희정, 박지원, 신계륜(사무총장), 이상수, 김민석, 김홍업, 이용희, 설훈 등 11명의 거물들을 공천 탈락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은 마땅한 출마자가 없어서 경기 성남 분당갑 공천을 받았지만 득표율 33.2%로 낙선하였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으로 성남시장에 당선(51.2%)된 것은, 두 번의 낙선으로 쌓은 인지도가 큰 정치적 자산이 되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2010년 7월 1일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에 취임한 이후부터 나는 그의 페이스북을 통해 그의 말과 행동을 쭉 지켜봤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성남시 모라토리엄 선언"을 했다. 당시 성남시 재정은 경기도 지자체 중에서 1~2위를 달릴 정도로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라토리엄 선언을 하여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이후 이런 황당한 일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메르스 사태 상황 공개는 지자체의 업무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지자체장들이 지자체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상황을 알렸으나, 이재명은 자신의 개인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알렸다. 그러니 페이스북 구독자 수가 늘어날 수밖에!
수도권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토지이용규제권(토지 용도 형실 변경과 종상향 등)으로 막대한 이익을 특수관계자에게 몰아줄 수도 있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대장동이나 백현동 방식으로 소수의 개발 사업자들에게 막대한 이득을 주는 일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무대에 등장한 한총련
1990년을 전후하여 벌어진, 중국 천안문 사태, 베를린 장벽 붕괴, 소련 해체를 목도하고, 자신의 머리로 역사관, 국제관, 인간관과 정치체제를 고민하던 운동권은 큰 충격을 받고, 깊은 성찰 반성을 통해 노선을 크게 전환하거나 전향하였다. 1970~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한 서울대, 고대, 연대, 성대 출신 운동권이 이런 전환에 앞장섰다.
그러나 1993년에 출범한 한총련은 민중민주파(PD)와 민족해방파(NL)의 대립이 가시화되기 전에 학생운동을 주도한 전학련•삼민투(1985년, 함운경, 허인회, 정태근, 고진화, 김민석 등 1982학번 주도)는 말할 것도 없고, 1984~1989학번들이 주도한 전대협에 비해 종북주사파들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1970년대 학번에서 1980년대 초중반 학번까지 운동권은 풍찬노숙하는 독립지사처럼, 동 세대에 인간적 권위가 있었다. 하지만 한총련은 더 이상 인정받고 존중받는 독립지사라기보다는. 이념 성향이 좀 독특하거나 다른 목적이 있는 특이한 집단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이 한총련 간부 출신들이 이재명을 통해 민주당의 중심으로 진입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
한총련의 종북성과 폭력성이 가장 두드러진 시기가 1997~1998년이다. 1997년 한총련 5기 의장은 강위원(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고, 한총련 산하 조직 중 가장 큰 세력으로 알려진 남총련 의장이 정의찬(당시 조선대 총학생회장)이었다. 1997년 5월 27일 정의찬을 포함한 한총련 간부들은 광주 송원전문대학 졸업생인 이종권을 경찰 프락치라며 집단 구타 고문하다가 사망케 하고, 이를 은폐 조작하려다가 발각된 사건이 발생했다.
정의찬은 상해치사죄로 징역 5년을 살고, 만기 출소한 뒤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12월 특별사면·복권됐다. 이종권 상해치사 사건 일주일 뒤에는 한총련 출범식을 앞두고 한총련 간부들이 23살 선반기능공 이석 씨를 경찰 프락치로 지목하여 15시간 감금·폭행을 하여 사망케 하였다. 당시 강위원은 사건 현장엔 없었기에, 7월에 검거는 되었으나 살해 혐의로 기소되지는 않았다. 대법원은 1998년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였다. 강위원은 이재명 경기지사 시절 경기도 농수산진흥원 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이재명의 원외 사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 사무총장을 맡아 비명계 공격에 앞장서고 있다. 정의찬 역시 이재명 경기지사 시절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사무총장을 맡았다. 이들 모두 2024년 총선에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8년 한총련의 주사파의 핵심인 조국통일위원장 이석주 ‘촛불백년이사람’(이재명 지지 3040모임) 상임대표도 경기도청 갈등조정관을 거쳐, 민주당 보건의료특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1994년 한총련 중앙위원이자 경기대 총학생회장이었던 구자필은 이재명이 성남시장 시절(2010~2018년)부터 측근으로 일했는데, 경기도 일자리재단청년일자리본부장을 거쳤다. 이들도 현재 연고가 있는 지역에서 지역구 출마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당과 진보당의 물밑 연대 가능성.
그런데 실은 한총련 간부 출신들의 국회 입성은 오히려 작은 문제다.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헌재 판결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후신으로 인식되고 있는 진보당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시중에서는 이재명 민주당과 진보당의 연대가 이뤄질 가능성도 크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10만 당원을 자랑하는 진보당은 민노총에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진보당 지도부가 결정하면 10만 당원이 민주당의 월 1천원짜리 권리당원으로 변신할 수도 있다. 아마 그들중 일부는 이미 변신했을 지도 모른다. 이중 당적은 불법이지만, 정당이 확인해 주지 않는 한 이중 당적 여부를 확인하기 쉽지않다. 바로 이점을 노려 이재명 민주당은 지난 4월 전주을 재선거에서 무공천을 고수하여 진보당 강성희 후보가 당선되도록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도 가능하다.
강성희는 한국외대 글로벌(용인) 캠퍼스 언어인지학과를 졸업하였는데, 이석기(외대용인 캠퍼스 1982학번)의 직계 후배이고, 민노총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장 출신이다. 윤희숙 진보당대표는 광화문 광장에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반대 집회를 하고, 강성희는 선거운동 중임에도 불구하고 전주지방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였다. 오랜 민주당원으로, 완주군수(2006.7.1.~2014.6.30.)를 역임한 임정엽 무소속 후보도 선거 과정에서 “주사파 정당이 전주를 점령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민주당은 ‘탈당해 출마한 사람은 당선돼도 복당시키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등의 방식으로 노골적으로 진보당 후보 당선을 도왔다. 강성희 후보는 ‘고맙습니다 민주당’이라고 쓴 현수막을 걸고 선거운동을 벌였고, 결국 투표율 26.8%에, 무소속 임정엽은 32.11%, 강성희는 39.07%로 당선되었다. 진보당은 통합진보당의 후신답게 그 이념과 주요 인물이 거의 그대로 부활했다. 당 강령은 ’4.3민중항쟁‘ ’한미관계 해체‘ ’중립적 통일국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간첩 수사와 관련해 ‘국정원을 해체하라’는 논평을 냈고, ‘한미 연합 훈련을 중단하라'고 요구한 바도 있다.
이런 움직임들을 종합해 보면 이재명 대표가 진보당과 물밑 연대로 민주당 장악력을 한층 강화하려 하는게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재명, 한총련, 진보당의 정치적 기반의 공통점과 한국 정치의 과제
이재명 대표는 민주화 투쟁을 한 적이 없지만, 스스로를 비주류, 소외자, 피해자,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한민국 주류보수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그의 정치적 기반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한총련, 진보당도 비슷한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다고 본다. 이것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 다른 나라와 어떻게 다르고, 과거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발전의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패를 가를 중요한 화두라고 본다.
정치적 경쟁 상대를 청산·척결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뚜렷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마그마처럼 가슴 깊숙한 곳에서 들끓고 있던, 증오·적대는 2009년 노무현 자살과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7년 박근혜 탄핵과 문정부 출범과 2020년 민주당의 총선 압승을 계기로 화산처럼 폭발했다. 청년대학생 시절 전대협·한총련·전교조·민노총·민언련 등의 활동으로 혐오와 증오의 역사관·세계관 세례를 받은 운동권과 지지 대중(박수부대)들이 사회의 중추 세대로 부상한 것도 일조했을 것이다. 이들이 공유하는 윤석열 정부와 국힘당과 자유보수에 대한 혐오, 증오, 적의가 어디서 오는지는 한국 정치학, 사회학, 역사학, 심리학 등이 풀어야 할 국가 존망이 달린 수수께끼가 아닐까 한다.
<ifsPOS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