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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가을은 어디나 축제의 계절이다. 지역마다 역사나 문화유산, 특산품을 기반으로 한 축제들이 펼쳐진다. 지역축제는 원래 지역 주민들의 화합과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었지만, 요즘에는 외지의 관광객을 유치하여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목적이 더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관광형 축제로 인해 지역의 특성을 살리기보다는 인기 있는 타지역의 행사를 모방한 유사한 축제들이 경쟁적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이로 인해 본질로부터 멀어진 작위적인 축제들이 늘어나고 있는 폐해도 지적되고 있다. 수도권 인구집중과 농업은 물론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로 관광산업은 지역 경제를 살리는 주요한 요소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지역정체성과 무관한 축제의 난립은 예산만 축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축제의 주요 목표인 관광산업은 지역의 문화적 자산을 통해 차별화를 꾀함과 동시에 관광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성공한 축제들은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며, 지역의 경제효과에도 이바지하는 긍정적 의미가 있다. 정부는 이러한 축제를 명품축제로 지정하여 지역축제의 전범으로 삼고 있다. 진주 유등축제, 보령머드축제, 천안흥타령축제, 금산인삼축제, 안동탈춤 축제 등등이 그것이다.
최근 필자는 함평군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지인 작가의 개인전 참석을 위해 함평을 다녀왔다. 함평 엑스포공원은 4월 25일부터 열리는 그 유명한 나비축제 준비로 분주했다. 27회째를 맞는 <함평대나비축제>는 문체부 공식 인증 전국 884개 지역축제 중 명품우수축제 부문 18선에 등재되며, 함평군이 세계축제도시로서 위상을 높이는데 이바지했다. 연간 3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하여 입장 수익만으로 흑자를 기록하는 등 함평의 대표적 이미지로 자리를 잡았다.
함평은 나비 이외에도 황금박쥐로도 유명하다. 천연기념물로 멸종위기에 처한 붉은박쥐(황금박쥐)가 1999년 고산봉 일대의 금 폐광 동굴에서 서식하고 있음을 발견한 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08년 황금박쥐 조형물을 조성했다. 제작 당시 순금 매입 비용만 27억 원에 달해 세금 낭비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지만, 금값이 치솟으면서 지금 시세로는 금의 가치가 약 15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조형물은 홍익대 디자인공학연구소에 의뢰해 제작했는데, 이를 제작한 장본인이 이번 개인전의 주인공인 금속조형예술가 변건호 작가이다. 이 조형물은 커다란 원환(圓環)구조의 공간에 황금박쥐 5마리가 날갯짓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순금 162kg, 은 281kg 등으로 제작된 조형물의 크기는 가로 1.5m, 높이 2.1m 규모로 안전을 위해 원통형 투명 아크릴 구조물 속에 설치되어 있다.
초기의 비난은 옛이야기가 되었고 요즘은 이 황금박쥐가 엄청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박쥐가 가진 상징성 때문인데, 한자로 박쥐를 나타내는 편복(蝙蝠)의 ‘복(蝠)’과 ‘복(福)’자는 행복을 나타내는 동음이자(同音異字)이다. 때문에 다섯 마리의 박쥐는 오복 즉, 인생의 다섯 가지 행복을 상징하며 박쥐를, 두 마리 쌍으로 배치한 쌍복(雙福) 문양은 복이 겹쳐서 들어오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박쥐는 전통미술에선 신선과 함께 있거나 귀신을 쫓는 표상으로 그려진다. 홍복(紅福)은 특히 만복을 뜻하기도 했다. 박쥐가 가진 이러한 의미 때문에 많은 관람객의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다.
함평은 <나비대축제>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한 밤의 축제를 구상하고 있는데, 함평의 또 다른 콘텐츠인 ‘황금박쥐’를 이용한 <함평 황금박쥐 페스티벌>을 통해 지역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 전략을 짜고 있다고 한다. 함평의 <나비대축제>는 특별한 문화자원이 없는 군 단위의 지역을 전국적으로 이름난 지역으로 각인시켜 왔다. 곤충이나 동물이 가진 스토리텔링을 통해 성공적인 축제의 모델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지역의 관광산업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이렇듯 한국은 대도시나 지역을 막론하고 축제를 개발하여 관광산업을 확장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열악하고 인구 소멸이 가속화되는 지역일수록 관광산업에 더 열중한다. 이러한 관광산업의 중핵은 지역의 문화적 요소와 자원이다. 관광객들도 대개는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즐기고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 하지만 유명관광지를 찾아가며 자신의 생활양식을 과시하고자 하는 관광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 관광객을 고급문화 명소를 방문하는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는 전통적인 관점은 19세기 유럽에서 절정에 달했던 그랜드 투어(Grand Tour)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과시적 여가’는 원래 문화 교육을 완료하기 위해 장기간 여행을 할 여유가 있는 사회적 엘리트 계층을 위한 것이었다. 19세기 중반부터 비롯된 관광의 민주화는 문화 관광 시장을 점차 확대하고 더욱 다양한 문화 여행지를 개척했다. 20세기에는 항공 여행이 대중 관광의 성장을 촉진하면서 사람들이 더 멀리 여행하고 새롭고 이국적인 장거리 여행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되면서 문화 관광은 더욱 활성화되었다. 국가들은 문화를 활용하여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고 동질적인 국가 문화를 형성했다. 지역과 도시들은 비교적 부유한 방문객들의 소비를 통해 경제 발전을 도모하며 문화를 활용하고 있다. 지역의 유명한 축제는 문화관광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지역마다 많은 축제가 생겨나지만, 성공을 거두는 축제들은 모두가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원천콘텐츠를 바탕으로 하여 이를 창의적으로 해석해내는 공통점을 가진다. 빼어난 역사적 유산을 가진 도시라 하더라도 이를 근간으로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을 창출해 내지 못하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문화적 자원이 없는 도시라 하더라도 자연생태나 지역 출신의 인물들과 같은 콘텐츠를 가공하는 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점점 더 관광객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단순한 볼거리나 먹거리의 일회적 경험으로는 그들을 붙잡을 수 없다. 체류형 관광이 새로운 화두로 대두되는 것이 이러한 이유이다.
체류형 관광을 위해서는 지역의 이질적 문화에 매료되어 지역의 삶을 체험토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지역에서 며칠간 체류하며 지역의 생활상을 스스로 체험하는 방식의 여행이 그러한 사례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이 먹고 마시며, 지역의 주민들과 단기간이지만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시골이나 산골 등 도심을 벗어나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새로운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여행을 위해서는 지역에 고급 호텔보다는 주민들이 사는 주거인 민박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그리고 영농이나 어로의 체험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최근에는 체류형 관광에서 한발 더 나아가 관광객이 관광지의 주민들과 함께 자신의 경험을 공동으로 창조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창의적 관광’의 개념으로까지 관광이 진화하고 있다. 창조적 관광은 관광에 창조산업을 결부시키는 것인데 개발에 예술적, 문화적 자원을 엮어 도시 재생을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간과된 도시 공간을 활성화하고 지속 가능한 관광 이니셔티브를 촉진한다. 이들의 통찰은 창조적 관광의 변혁적 힘을 강조하며, 단순한 경제적 영향을 넘어 문화 보존을 강화하고 지역사회의 회복력을 강화한다. 창조적 관광은 종종 장인 공예, 요리법, 향수, 도자기 페인팅, 무용과 같은 분야의 관행을 통해 수용지역 공동체의 일상적인 창의성과 연결되어 있다(Richards and Wilson). 한 연구에서는 이러한 창작 활동이 지역 경제의 지속 가능성에 크게 기여하고 토착 공예품과 전통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촉진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한다. 창의적 관광은 기존 관광의 전환점이 되고 있다.
즉, 창의적 관광은 일상적인 것, 무형적인 것, 창의적 경험의 자발성, 그리고 전문적인 관광 공간이 아닌 평범하지만, 창조계층들에 의해 생성된 역동적 공간에 매력을 느낀다. 이는 관광과 관련하여 ‘지역’의 위상에 대한 중요성을 예고하며, 지역이 진정성의 새로운 결정권자가 되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교적 성공한 축제인 함평 <나비대축제>에 이은 <황금박쥐 페스티벌>의 확장계획 소식을 접하며, 그들은 어떤 축제와 관광의 개념을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함평의 사례뿐만 아니라 중요한 지역축제들이 단순한 볼거리나 먹거리에 의존한 축제나 관광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 체험형 관광이나 창의적 관광을 수용할 수 있는 축제로 전환하는 고민을 기대해 본다.
<ifsPOST>
- 기사입력 2025년04월28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25년04월26일 16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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