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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달러, 슈퍼 엔저와 한국경제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05월08일 11시00분
  • 최종수정 2024년05월08일 10시47분

작성자

  • 강인수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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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킹달러, 장기화되나?

 

지난 4월 16일 원·달러 환율은 오전 장중 한때 1,400원 선을 돌파한 뒤 전날보다 10.5원 오른 1,394.5원에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 2022년 11월 이후 약 17개월 만이다. 지금까지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 진입한 건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미국의 급격한 금리인상 시기 말고는 없었기 때문에 원화 가치 하락에 정부는 물론 시장도 환율 변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글로벌 달러 강세가 지속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가 미루어지고, 이란과 이스라엘의 분쟁이 격화되면서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과거 고(高)환율 문제는 대부분 미국 시장이 흔들렸던 때 발생했다. 그러나 최근 ‘킹달러’ 현상은 미국의 ‘나 홀로 호황’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미국과 다른 국가 간 성장 격차가 커진 데 기인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미중 패권분쟁 심화 등 지경학적 위험이 커지면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것도 킹달러 추세를 심화시키고 있다. 

 

   시장에서는 올해 6월부터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불과 몇 주 사이에 미국의 통화정책 기조가 급변했다. 4월 16일 제롬 파웰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최근 데이터는 금리 인하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했고, 그런 확신을 얻는 데에는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금리 인하 시점이 기약 없이 미루어지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22년부터 높은 물가 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1년 반도 안 되는 기간에 기준금리를 0.25%에서 5.5%로 급격히 올렸다. 그 결과 2022년 6월 9.1%까지 치솟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년만에 3% 수준으로 떨어졌다.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인해 경제가 침체될 것으로 전망되었으나, 미국경제는 예상과 달리 실업율이 3%대로 고용지표가 상당히 양호하게 나타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미국의 2024년 경제성장률을 2.7%(2023년 2.5%)로 전망한 반면, 유로존은 0.8%(2023년 0.4%), 일본은 0.9%(2023년 1.9%)로 전망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선진국 가운데 유독 미국만이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경제가 긴축적 통화정책에도 불구하고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로 꾸준한 이민자 노동시장 유입과 인공지능(AI) 기술을 선도하는 혁신기업들의 성장 등이 거론된다.

 

제롬 파웰 연준 의장이 “빨라진 이민자 유입 속도는 긴축 정책이 수요에 미치는 영향을 어느 정도 상쇄했다”고 말할 정도로 빠르게 늘어난 이민자는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하는 동시에, 미국 내 소비 호조에도 기여했다. 또한, 챗GPT로 AI 돌풍을 일으킨 오픈AI와 독보적인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등의 고속 성장은 미국의 기술주 호황을 주도하고 있다. AI 기술 확산 등으로 인해 미국의 노동생산성이 팬데믹 이후 꾸준히 상승한 것도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미국의 대선과 중동발 리스크 등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아있기는 하지만, 미국 경기가 꺾이지 않는 한 미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킹달러’ 현상은 올해 말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 슈퍼 엔저도 지속되나?

 

동일본 대지진 직후인 2011년 10월 엔화는 역대 최저인 달러당 75.3엔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2012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아베노믹스’ 기치 아래 무제한 양적 완화(돈 풀기)와 엔화 약세 정책에 나서면서 2015년 달러당 엔화 환율은 121엔대까지 다시 올랐다. 그러나 급격한 양적 완화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에 실패한 일본 경기는 살아나지 못했다. 최근에도 엔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지만,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일본은 2021년부터 3년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들어 1월 2일 1달러당 140.8엔이던 엔-달러 환율이 4월 29일 장중에 160엔을 돌파할 정도로 엔화 가치가 가파르게 떨어졌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BOJ)의 개입으로 인해 160.2엔까지 올랐던 엔-달러 환율이 당일 154엔으로 떨어지기는 했으나 1990년 4월 이후 34년 만에 가장 높은 슈퍼 엔저였다. 원-엔 환율도 100엔당 876원으로 내려앉아 5개월여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최근 엔화 약세는 미국의 금리 인하 지연 전망과 중동 불안에 따른 강달러 현상에 기인하지만, 다른 통화에 비해 엔화 평가절하는 유독 심하다. 4월 26일 기준으로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올해 들어서만 12.38% 하락해 원화(-6.77%), 유로화(-3.37%), 캐나다 달러(-3.26%), 위안화(-2.06%), 파운드화(-1.9%) 등 주요국 통화 중 절하 폭이 가장 컸다. 

 

   엔화 가치는 미국과 일본의 5% 포인트가 넘는 큰 금리 격차가 이어지며 1월부터 가파르게 하락했다. 일본은행(BOJ)이 지난 3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했음에도 불구하고 달러화 초강세로 인해 엔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BOJ가 4월 26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엔저가 통화정책 변경을 이끌어낼 만큼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다고 보고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일본이 금리를 인상하기까지 당초 시장의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릴 거란 기대가 확산되면서 엔-달러 환율이 급등했다. 이처럼 미·일간 금리 차가 유지되는 한 ‘슈퍼 엔저’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엔저는 일본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여 수출 증가에 도움을 주지만 과거에 비해 무역수지 개선효과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엔저로 인해 해외 원자재 조달비가 늘고 해외기업 인수합병 비용도 증가해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일본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급격한 엔저로 인해 수입물가 상승이 실질소득 감소와 기업의 실적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슈퍼 엔저를 수수방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일본이 1조 2906억 달러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지만, 외환시장 개입에 쓸 수 있는 금액은 40조엔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에 엔화 가치 방어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3. 한국에 미치는 영향

 

엔화와 함께 원화가 특히 약세를 보인 이유로 재정적자와 높은 한미 금리 역전 폭, 미·중 갈등, 중동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꼽을 수 있다. 최근 들어 반도체 경기 회복 등에 힘입어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대중(對中) 수출이 크게 줄어든 것이 원화 약세에 일조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가 넘던 대중 수출이 18% 수준으로 줄어든 반면, 대미(對美) 수출 비중은 13% 수준에서 18% 수준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올 1분기 대미 수출액은 310억 달러로 대중 수출액(309억 달러)을 넘어서 미국이 2003년 2분기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이 되었다.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최근 원화 가치가 달러화보다 위안화 가치에 연동되고 있고, 엔화 가치에도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위안화와 엔화가 약세일수록 원화 가치도 떨어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주변국 통화와 연동되다 보니 원화가 우리 펀더멘털에 비해 과도하게 절하된 측면도 있다.

 

   한편,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의 재정수지는 총수입은 573조 9천억 원, 총지출은 610조 7천억 원으로 36조 8천억 원 적자였다. 통합재정수지에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를 더한,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인 관리재정수지는 87조 원 적자였다. 적자 폭은 올해 들어 더 확대되고 있다. 재정적자가 지속될수록 국가 빚은 늘어나며 한국 경제를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게 된다. 지난해 말 기준 국가채무(중앙+지방정부 채무)는 1126조 7천억 원으로 전년 말보다 59조 4천억 원 증가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주장하는 전국민 대상 25만원(총 15조원) 지급은 내수회복보다는 재정수지 악화를 통해 원화 절하를 가속화시켜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일 수출경합도가 추세적으로 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엔화의 절하 폭이 원화에 비해 훨씬 큰 것은 수출 측면에서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특히, ‘슈퍼 엔저’ 현상이 장기화되면 국내 수출기업들의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본 철강제품의 국내 유입이 늘어나면서 철강업계의 우려가 커진 것이 대표적이고, 일본과의 수출경합도가 높은 석유제품, 자동차와 부품, 선박, 반도체 등 주력 상품 대부분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2023년 초를 저점으로 경기가 미약하기는 하지만 개선되고 있고,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회복되면서 경상수지가 개선되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외환보유액이 4,130억 달러 수준에서 큰 변동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고, 단기 외채 부담도 줄어들었기 때문에 부동산 PF 문제 등이 상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으로 금융 시스템 디폴트 리스크로 번져갈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킹달러, 슈퍼 엔저'가 장기화될 경우 수입물가 관리가 어려워지고, 내수 회복 기조가 꺾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원화가 과도하게 저평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국제유가와 미국 물가 안정이 핵심변수이기는 하지만,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환율 안정을 위해 단기적인 시장개입보다는 구조조정을 통해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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