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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과 융통성 사이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06월06일 23시29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6시27분

작성자

  • 나은영
  •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대학 교수, 사회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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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인간의 욕망은 사회라는 엔진을 가동하는 증기다.” 이 말은 대중관계(Public Relations), 즉 홍보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1928년에 <프로파간다>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각자의 욕망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욕망이 들끓고 있고, 이를 에너지 삼아 사회가 움직이는 것이다.

 

물건을 팔고 싶은 사람과 사고 싶은 사람의 욕망이 잘 조화를 이루고 그들의 욕망이 올바른 방법으로 충족되면 그 사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욕망이 서로 충돌하거나 개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과정이 정당하지 못할 때 그 사회는 엉뚱한 방향으로 향한다. 개인의 욕망을 옳지 못한 방법으로 충족시키려 하는 과정에서 편법이 사용된다.

 

□ 융통성을 빙자한 편법 따라 하기

 

‘편법’의 사전적 의미는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은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으로서 부정적 함의를 지닌다. 절차의 정당성을 희생한 채 좋은 결과만을 추구할 때 주로 편법의 유혹을 받는다. 반면에, 원칙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다는 측면에서는 편법과 공통점을 지니면서도 다소 긍정적인 뜻을 포함하고 있는 또 다른 단어가 ‘융통성’이다. 융통성이란 “그때그때의 사정과 형편을 보아 일을 처리하는 재주”를 말한다. 편법은 원칙을 벗어나 주로 사익을 추구할 때 사용되는 말이며, 융통성은 큰 범주의 원칙 안에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도리에 맞는 사회 전체의 이익과 통합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예컨대, 오래 사용하여 이미 낡은 세월호를 값싸게 들여와 무리하게 증축해서, 보다 많은 사람을 태워 “간편하고 손쉽게” 부를 축적하려 한 사람은 편법을 사용한 것이다. 반대로,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에서 “당장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서는 윗선의 허락을 받을 시간이 없어 현장에서 우선 빨리 구조 행동을 시도한 사람이 있었다면, 이 사람은 융통성을 발휘한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편법을 사용하여 사익을 추구했기 때문에 처벌받아 마땅하다면, 후자의 경우는 비록 명령 하달까지 기다리지 않고 행동을 했더라도 항명이라 보기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융통성을 빙자한 편법이 많은 것이 문제다. 겉으로는 융통성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편법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 하나의 예로, 명문대에 입학할 실력이 되지 않는데도 서류만 그럴 듯하게 꾸며 입학사정관제의 허점을 이용하거나, 도시에 살면서도 거주지를 교묘하게 농어촌으로 옮겨 농어촌 특별전형의 허점을 이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렇게 해서 ‘입시 대박’을 터뜨리고 나면 주변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편법을 비난하기보다 그 결과에만 감탄하며 너도 나도 따라 한다.

 

□ 우직한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를!

 

이러한 편법이 들어설 자리가 없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욕망으로 가득 찬 사회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지름길이라 생각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세 가지다. 편법을 사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한 사람이 큰 손해를 보게 되는 규정, 그 규정이 예외 없이 공정하게 집행되는 실천 과정, 그리고 고지식하게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성공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큰 보상과 인정이다. 편법을 사용한 사람이 승승장구하고 원칙을 지킨 사람이 불행해지는 상황이 없어야 하며, 다들 편법을 사용하는데 “나만 재수 없이 걸렸다”고 생각하지 않게 공정한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수많은 규정들이 있어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국가의 기관이든 정부의 조직이든 외형의 변화만으로는 실효성을 거두기가 어렵다. 기본에 충실하며 편법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 개개인의 욕망 실현에 더 도움이 된다고 믿을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과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말보다 실천, 형식보다 내용, 기관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하드웨어도 훌륭한 소프트웨어 없이는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잔머리 굴리는 사람보다 우직하게 제 할 일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 제대로 보상 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겉보기의 잔재주로 사람을 현혹시키기보다 속이 꽉 차고 흘러넘쳐 많은 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점점 더 많아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그 시스템이 성숙하게 굴러가야 한다.

 

□ 융통성과 소통으로 경직성에서 벗어나자

 

지금 한국에는 융통성을 가장한 편법은 난무하지만 진짜 융통성은 부족한 현실이다. 좌우 이념대립의 경직성이 융통성 부족의 상징이다. 실제로 설문조사를 해 보면 한국에는 중도층이 다수로서 50% 가까이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포함한 크고 작은 매체들은 강경한 쪽의 보수와 진보를 대변하는 많은 말들을 쏟아낸다. 그래서 마치 한국은 극보수와 극진보가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표현 방식도 최대한 상대 쪽에 상처를 주는 용어를 선택하여 사용함으로써 상대의 상처가 자신의 영광이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다 보니 너도 나도 ‘힐링이 필요해!’라고 외치며 여기저기서 상처받은 마음을 달랠 곳을 찾는다. 편 가르기를 해 놓고 각 편에서 내부의 결속만을 다지려 하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융통성은 다양성을 수용한다는 점에서 소통과 통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욕망이 들끓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단일한 원칙이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의견이 다른 상대까지 포용할 수 있는 융통성과 소통이 필요하다. 융통성을 가장한 편법에는 단호히 대처하되, 함께 잘 살기 위한 융통성은 통 크게 발휘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살아 온 방식대로 반응한다. 예전에 성공했던 방식대로 대응하기 마련이다. 사람들마다 살아 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상황에서 서로 달리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것을 ‘나와 다르다(different)’고 하여 ‘너는 틀리다(wrong)’고 생각하면 소통이 힘들어진다. ‘상대방도 그 상황에서 나름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면 서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고, 그러면 한 단계 위의 커다란 틀 안에 모두를 포용할 수 있다. 한 차원 높은 곳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같은 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함께 힘을 합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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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6시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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