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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피아’ 이후의 혁신과제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6월07일 19시41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09시35분

작성자

  • 이달곤
  • 前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前행정안전부 장관

메타정보

  • 37

본문

‘관피아’ 이후의 혁신과제

 

 관피아 척결만이 능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발전국가(development)의 후속 체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박정희 정부 이후 제도화된 한국의 발전국가 핵심에는 정부가 있었다. 경제부처와 공안부처가 핵심이었다. 정부는 국가와 사회 모든 분야의 설계자였고 조종자였다. 정부가 핵심이 되고 대기업 자본이 제2대 지주 역할을 하였다. 목표는 기획부서에서 만든 수치적 성장이었고, 단합과 일치를 통한 에너지의 집결이었다. 그것에 반대하는 세력은 제거되거나 약화되었다.

 

 하지만 정부에서 일을 해보면 정부시스템은 물론이고 경제.사회의 상당부분이 재설계되어야 하고, 운영의 원리는 진정으로, 어떤 경우에는 정반대로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절감한다. 아니 상당히 늦었다. 군데군데 내버려진 구식 제도는 이제 마비(paralysis) 상태를 지나 새로운 싹을 지질러놓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관피아 척결도 여기에 기인한다. 공무원이 퇴직 이후 각종 관변단체나 사회단체의 수장 자리에 내려가서 재취업하는 관행이 도마에 오른 지 오래되었다. 산하기관이 많은 부처는 3년 임기를 한번 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두 번 하는 경우도 있다. 공직에 있을 때 앞으로 갈 곳을 찾아보고 일을 바로 처리하지 않으니 문제라고 하여 철퇴를 가한 것이다. 물론 발전국가가 통하던 시절에는 관피아의 필요성이 높았고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에 고착된 것이다. 그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보다 먼저 발전국가를 지향하였던 일본에서는 다반사였다. 소위 아마구다리(天下 혹은 天降)이라 하여 하늘에서 ‘강림한다’는 의미로 공무원의 산하기관 재취업 관행을 묘사하였다. 이러한 관행은 다소 변화를 겪었지만 아직 여전하다. 발전국가의 구체적인 양태는 국가마다 다르지만, 그 핵심에 있는 공무원 집단과 대기업 경영자가 사회적 엘리트로서 맡은 분야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했다. 강력한 세력을 이룬 핵심집단이 노동이나 복지를 한계 공간으로 밀어내면서, ‘자,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창도체제(advocacy system)였던 것이다. 여기에 정치적 권위주의가 결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동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몇 나라는 이러한 체제를 지금 복제하려는 노력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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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료가 가장 높은 수준의 엘리트의식을 가지고 경제발전을 구상하고 성장을 이루어내었고, 생활이 나아진 국민은 그들에게 정당성을 안겨 주기도 하였다. 권위주의가 수용되어 문화가 된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유와 민주의 욕구가 분출하였고 경제적 부가가치가 창조성에 의하여 결정되면서 새로운 체제를 향하여 전환을 시도하게 되었다. 관료적 획일주의가 창의와 주인의식을 막고 종국에는 망국병의 원인으로 몰리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여기서 터져 나온 병폐를 이름한 것이 ‘관료망국론’이었다. 관료들이 정치화되고 세력화되면서 그들 중심의 사고와 문화를 만들었고, 정부가 모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 예상 못한 문제를 낳은 경우가 비일비재해졌다. 정치와 결탁하여 정부지출을 늘리면서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꼭 같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기업경영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경제개발기의 호황이 지속될 것 같은 착시현상을 극복하지 못한 것도 한 요인이었다. 정치인과 공무원 편의 위주의 관행이 생겨서 사회간접자본이 과잉투자되었고 그것이 바로 정부의 재정적자로 결과된 것이다.

 

   문제는 관피아가 된 공무원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을 편하게 쓸 수밖에 없는 정부와 그 이외 기관간의 수직관계이다. 좀 더 넓게 보면 소위 발전국가체제의 문제다. 그러면 어떤 혁신 방안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철학적으로, 정부중심의 구도를 점점 시장과 시민사회 등 소위 국가-시장-시민사회 간의 균형을 잡아 가는 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정부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전제하여 나서기 보다는 시장이 작동하고 시민사회가 자율을 가지도록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부터 정부중심으로 문제를 대응하려는 자세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제도를 만지는 국회도 마찬가지다. 최근까지 정부가 시장과 시민사회를 지원하고 진흥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제는 친숙하지 않는 문제가 다소 발생하더라도 시장이, 그리고 시민사회가 나설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보와 통일 그리고 급박한 질서의 문제가 아니라면 정부는 성급하게 나서는 것을 억제하여야 한다. 한국의 경제와 시민들도 이제는 국가.사회와 공익에 공헌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본다.

 

   둘째는 정부가 민간을 동원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수많은 조직과 운동체 그리고 기관을 해체하거나 축소시키는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대통령과 정치권이 나서야 하고, 진정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관변단체가 너무 많다. 그 중에서도 관의존단체(官依存團體)가 대부분이고 세금사용단체(稅金使用團體)가 많다. 사실 반관반민이라고 하지만 민낯은 관(官)이었고, 공무원이 주인인 것이 적지 않다. 정부 중심의 사회운동기구는 물론이고, 공기업이나 출연연구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기능의 폐지 및 축소 그리고 민영화가 추진되어야 한다.

    각종 기관의 지방분산 이전으로는 분권이 이뤄진다고 할지 몰라도 그것은 껍데기다. 실질적인 분권에 해당하는 시장원리의 확충과 시민사회의 활력으로까지는 나가지 못한다. 분권의 최종 도착점은 시장원리의 확대이고 시민사회의 권력회복이다.

 

    셋째는 법률과 시행령, 부령, 규칙, 명령, 지방조례 등에 대한 지속적인 검토를 통하여 행정재량권 행사의 기준과 방법을 보다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법령의 곳곳에 늘려있는 ‘주무관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규정을 보다 세분화하여 구분하고 행정지도나 재량권의 일탈과 남용을 축소하는 행정개혁을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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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째는 각종 정부에서 운용하는 진흥용 보조금 및 지원금을 대폭 축소하여야 한다. 보조금은 정치도 나쁘게 하고 행정도 비효율을 낳게 만든다. 대학의 경우 교육당국에서 만든 수많은 연구개발 프로그램과 교육방법 프로그램을 통하여 학생과 교수의 연구를 규정하고 있다. 관료의 손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창의성이 가장 강조되는 대학을 어떻게 몰고 가고 있는 가는 조사해볼 필요도 없다. 수행과정은 공무원보다 더 관료적이고 성과에 대한 평가는 무책임이다. 수많은 대학에서 퇴직관료가 총장에서부터 교수 아닌 교수의 타이틀을 달고 활동하고 있게 만들었다. 중소기업이나 벤처에 대한 기업의 지원프로그램도 시장원리에 부합하게 시장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수많은 연구개발 조직들도 지속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수많은 특허가 정부지원프로그램에서 나왔다지만 대부분이 휴면특허이고 생산가치로 연결되는 특허는 정말 소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발전국가에서는 정부가 가장 앞서고 효율적이며 전략적이라고 믿어 왔지만, 후기 발전국가체제 (post-development state)에서는 가장 비효율적이고 장기문제에 둔감한 기구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혁신을 하여야 한다. 이러한 과제가 총리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고 참여와 힘이 작용할 수 있는 시민사회, 그리고 진정 글로벌 경쟁기업이 우리가 바라는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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