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바디스, 한국경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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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스가 폭풍처럼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 그 와중에 경제에는 어두움이 더 짙게 깔리고 있다. 지난 4년여 지속된 내수 침체에, 금년 들어 수출마저 감소하면서 경제전망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금년 1분기의 평균소비성향(소비지출/가처분소득)이 72.3%였다. 2003년 1분기 이후 최저치이다. 같은 기간 중 유가 하락 등의 교역조건 개선으로 국내 총 소득 증가율이 6%를 상회했지만, 민간소비 증가율이 2% 수준에 불과했던 이유다.
금년 1월부터 5월 사이에 우리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5.6% 감소했다. 그 추이는 더욱 염려스럽다. 1월의 1% 감소가 5월에는 10.9% 감소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금년 내수와 수출의 동반 부진으로 금년 GDP 성장률은 연초의 4% 전망에서 2.5~3%로 낮아졌다. 어둡다. 1997년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 1997년의 외환위기는 국제금융시장의 한국경제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구조적 상황은 2015년 현재보다는 단순했다.
당시에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고, 기업수지 악화로 부실기업의 위험성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는데도 원화 강세가 유지되고 망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이 정부의 인위적 힘으로 생존하고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고비용-저효율”로 인해 한국경제가 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로 인해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어 해외 시장에서 중국 등에게 고객을 뺏기고 있음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구조개혁정책을 내세워,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중적 인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가 임기 초에 추진한 신경제 100일 계획은 대표적인 임시처방식 대증요법이었다. 속으론 병들어 가는데, 돈을 풀어 마약효과로 고통을 견디어 보려는 정책 대응이었다. 그 결과 경제는 구조적으로 체질이 더욱 약화되어 가고 있었다.
국제금융시장의 분석가들은 그러한 한국의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국내에선 얻기 어려운 정보까지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한국내의 정책 운용은 일관성을 잃고, 땜질 정책을 남발했다. 국내정치의 상황과 부처 간 입장 차를 극복하지 못하여 경제 체질 강화를 위한 구조개혁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금융실명제 도입 등 역사적으로 남을 개혁조치를 했음에도 김영삼 대통령이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2015년의 한국 경제는 장기침체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현상적으로 경제성장률이 3% 수준 이하로 갈 가능성이 높은데, 이것이 구조적 이유 때문이라서 장기화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국면에 효과적 대응을 못하면 2020년 이전에 1% 수준의 성장을 감수해야 하고, 청년실업률은 현재의 10%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다.
우선 내수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가계부채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증대됐는데, 근로자의 실질임금 총액은 정체된 상태이다. 고령화와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도 가중되고 있다. 부채의 힘으로 거래 활성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부동산·증권시장은 인구구조와 기업수익성 추이를 고려할 때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다. 금년 들어와 심화되고 있는 수출 감소는 세계적 초과공급 설비, 중국의 수입대체 진전, 일본의 엔화 약세, 한국 상품의 국제경쟁력 약화 등 구조적 변화의 결과이다.
내수와 수출이 모두 구조적 요인 때문에 부진하기 때문에, 그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좋아지기 어려운 것이다.
더 나아가 장기침체기를 겪은 국가들에서 나타난 노동시장의 경직성, 심화된 재정적자, 고용불안, 포퓰리즘에 바탕을 둔 땜질식 정책운용 등의 현상이 그대로 우리 경제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어떤 나라가 경험한 것보다 더 위험한 수준의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1997년의 외환위기는 경상수지 적자 누적과 기업부실 심화라는 병적 현상에 잘못된 대응을 해서 발생했다. 2015년 한국경제는 그보다 더 심각한 병에 걸려있다. 내수부진, 수출 감소, 위험수준의 가계부채, 부실기업(이자보상배율 1이하)의 증가추이, 재정적자 심화 등.
그런데 1997년이나 2015년이나 정책대응과 정치적 리더십은 비슷하다. 정책은 단편적 땜질식이고, 구조적이고 근본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려 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안 보인다. 2000년대 초의 침체된 독일경제와 슈뢰더-메르켈 총리가 떠오른다. 경기침체에 대한 구조적 접근, 대화와 소통을 통한 정치적 설득과 자기희생. 오늘의 독일경제는 이렇게 해서 선순환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는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를 참담할 정도로 땅에 떨어뜨렸다. 공무원 연금 개혁의 경험은 우리 정치권의 개혁 불감증을 잘 보여줬다.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 심화는 경제흐름에 대한 구조적 대응능력의 무력화로 저성장 기조를 고착시킬 수 있다. 우리경제의 앞날에 밝은 빛은 언제 비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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