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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관이 주도해야 한다.
문화의 힘을 국가의 발전 모델로 삼은 국가들의 경우 정부 주도하에 기획, 설계, 실행하였다. 문화는 민간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삶의 궤적들이지만 문화강국이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과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문화예술 주도국들의 얘기까지 끌고 오지 않고 가까운 역사의 미국의 경우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미국은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 패권국이 되었다. 최강자의 지위를 얻었지만, 문화예술만큼은 후진국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특히 순수예술의 경우는 유럽의 지방 도시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2차대전의 전쟁비용을 미국에 지불해야 하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자존심이 강한 유럽인들은 이런 모든 상황을 인정하기 싫었다. 특히 미국인들이 유럽인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 꼴이 상당히 거슬렸다. 그런 이유로 유럽인들은 미국을 “배부른 돼지”라고 비아냥거렸다. 이에 미국도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품격있으며 문화까지 주도하는 최강대국 미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미국은 각 대도시에 미술관, 음악당, 극장, 박물관 등을 만들었고 이 내부에 담아낼 예술가들을 양성하였고 작품을 수집하였다. 미국 정부 주도의 노력은 현대미술에서 빛을 발했는데 불모지였던 미국의 미술시장은 2024년 전세계 점유율 43%에 해당한다. 전세계 미술시장은 약 575억 달러(한화 약 81조 8천억 원)로 전 세계 음악 시장(약 312억 달러)의 두 배이다. 세계 미술품 거래량은 3,780만건이고, 미술 시장 점유율은 미국이 43%(35조 2천억 원)로 가장 높고 중국 19%, 영국 17% 차지하고 있다. 또한 90년대까지 존재감도 없던 중국의 약진도 관의 주도로 높아진 결과이다.
문화, 예술, 관광 산업 자원은 인재
우리나라에서 문화, 예술, 관광이 산업으로 발달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인재가 매우 많다는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K-POP 경연대회가 방송국을 중심으로 열풍이 일던 2010년대 연예인이 되겠다고 희망하는 지망생 조사가 몇 차례 있었다. 2013년 최초로 100만명 이라는 기사가 TV조선에서 2016년에는 채널A, 2017년 mbn을 통해 기사화되었다. 지망생의 인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미술, 음악인도 대학과 문화 센터 등을 통해 매년 수만 명이 배출되고 있다. 문화, 예술, 관광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산업인 만큼 인재가 있느냐 없느냐가 자원의 유무이다.
인재가 충분히 있다면 산업화해야 하는데 산업화는 인재의 능력만큼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10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 문화, 예술, 관광 인재의 산업적 가치를 연간 100조 원의 가치를 발현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문화, 예술, 관광 인재들은 세계적 공모, 대회, 경연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오히려 너무 흔해서 그러려니 한다. 이런 인재가 다른 나라에서는 추앙받는 존재가 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의 영광으로 끝난다.
개인의 영광이 아닌 국가적 산업으로 만들어지려면 ‘문화, 예술, 관광 산업생태계’를 조성해야한다. K-POP의 경우도 생태계의 조성이 안 되어있음에도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것은 기적이다.
문화, 예술, 관광 산업 생태계는 관이 주도 해야 한다.
K-POP은 대한민국의 대중음악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붙여진 명칭이고 우리는 K-POP을 가지고 있음에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온라인 게임도 우리가 종주국이고 전 세계 게임시장의 3~4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성과가 나타난 과정을 문화강국을 지향하는 국가와 비교하면 철저하게 민간의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2016년 발매된 방탄소년단의 노래 ‘피 땀 눈물’을 들을 때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문화, 예술, 관광업에 종사하려면 이런 각오가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방탄소년단(BTS) 피땀눈물 (Blood Sweat & Tears) MV 뮤비 중에서
우리나라 문화, 예술, 관광에 관한 정부의 인식은 개인이 즐기는 것이라는 쪽에 가깝고 산업화하려는 의지는 부족하다. 오히려 산업화를 막는 경우가 많다. 게임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게임에 관련된 법은 규제를 중심으로 하는 법이지 육성한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게임 개발, 판매에서도 우수하고 게임스포츠 분야에서도 우수하지만, 육성은 미흡했다.
최근 최고조의 관심을 받는 분야인 K-POP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생태계는 조성이 안 되어있다. 음악이 산업으로 커지려면 공연장, 팬미팅장, 음악 서비스 플렛폼, 방송 등등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아직도 5만명 이상의 전용 공연장은 없다. 팬미팅장도 특정 시설이 없다. 우리나라 아티스트들 뿐만이 아나라 해외 아티스트들도 한국은 패싱하는 나라다. 5만명 이상 입장 가능한 아레나 건설에 대한 얘기는 이미 15년 전부터 나왔었다.
관 주도의 생태계 조성은 신도시와 같은 개념이다.
전국에 있는 구도시들은 역사가 몇백 년씩 되며 오랜 역사가 있음에도 사회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불완전한 경우가 많다. 반면 신도시 건설은 계획도시로 한순간에 건설되며 필요한 모든 인프라가 구성되어 입주민들이 들어와서 살기만 하면 된다.
도시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첫 번째가 수입이 보장되고 정주 여건이 좋은 인프라 때문이다. 문화, 예술, 관광을 산업화하려면 아티스트가 도시인처럼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정부가 만들어 줘야한다.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지만 아이돌 음악을 특화한 것, 온라인 게임을 발명한 것 모두 실험정신이 뛰어나고 ‘피 땀 눈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힘 좋은 사람이 산골에 들어가 화전을 일구고 살다 보니 살만하다는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모이며 차차 마을로 확대되는 것과 같다. 그런 이유로 우리나라의 실험정신이 뛰어난 문화예술은 화전민의 손에 굳은살이 박이는 것 같은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럼 어느 세월에 산업화할 수 있다는 것인가?
관점을 바꿔야 나라가 산다. 결과 없이 주는 돈을 결과가 예측되는 돈으로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 문화, 예술, 관광의 정책방향은 영국의 예술위원회 ‘팔길이 원칙-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를 차용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산업화하려는 방향과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문화, 예술, 관광을 육성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형성된 것은 1993년 쥐라기 공원의 영화로 시작되었다. 영화 한편의 수입이 현대자동차 수입보다 크다는 기사가 촉매가 되었고 ‘굴뚝 없는 공장’이라는 수식어가 생기며 관심의 대상이 되었지만 정작 정책의 방향은 문화 향유에 가깝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와 영국의 생각이 다름과 목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팔길이 원칙’은 아직도 산업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아래는 필자가 영국의 예술위원회 ‘팔길이 원칙’을 설명했던 과거 자료를 재인용한다.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 1780년대부터 형성된 산업혁명의 특수한 사회사를 가진 나라이다. 민주주의가 가장 먼저 실현되었고 의회민주주의로 국왕·왕족·귀족·부유계층·젠틀리·노동자가 공존하는 특별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상위층은 국왕·왕족·귀족 등이며, 중위층에는 ‘젠트리(gentry)’라는 중산계층이 있어서 그 폭이 가장 넓고 영국사회의 중심체가 되어 왔다. 이른바 ‘젠틀맨’이라 자부하는 계층이다. 하위층은 농업·어업·광공업·서비스업 등에 속하는 노동층이다. 이런 사회계층의 구조에서 2차 세계대전은 대단히 큰 사회변화의 계기가 되었고 대전 당시인 1942년에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의 사회보장제도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목표를 구호로 하는 사회복지 제도의 실천을 천명하였다. 이런 사회적 변화가 형성된 까닭은 노동이나 전쟁에 내몰린 하위층의 복지사회에 대한 국민적 요구이며 상위, 중위보다 현저히 떨어진 하위층 삶의 수준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참전이 없었다면 패망으로 이를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자존심은 심하게 상처를 받았고 전쟁 후 형성된 국가적 우울증을 해소시켜야하는 사회적 숙제도 작동하여 2차 세계대전 중 ‘예술 및 음악촉진위원회’(the Council for the Encouragement of Music and the Arts: CEMA)가 창설되었다. 현대 복지국가형 경제학의 기초를 제공했던 경제학자인 케인즈(John M. Keynes)가 CEMA의 의장이 되었다는 것은 영국의 예술지원 정책이 전후 복지국가적 주요 담론의 하나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예술 진흥을 위한 국가지원에 대해 케인즈의 의지는 1946년 CEMA가 예술을 지원한 세계 최초의 국가 기관으로 간주되고 있는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of England)로 발전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예술위원회 설립의 기초가 된 왕실헌장(Royal Charter)이 1946년 최초로 제정되었고, 1967년 마지막 조항이 첨가된 새 왕실 헌장에서 영국예술위원회의 설립이념을 다음과 같이 부여하고 있다. 예술위원회는, 첫째 예술에 관한 이해와 지식, 예술적 행위를 발전시키고, 둘째 대중들의 예술에 대한 접근을 높이고, 셋째 위의 목적들을 위해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부처, 그리고 관련된 기관들과 협력하고 서로 조언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이런 설립이념의 기본 바탕에는 ‘팔길이 원칙-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가 작동한다. 영국이 팔길이 원칙을 작동할 수 있었던 조건이 있다. 영국은 국왕·왕족·귀족이 있는 나라이고 이들은 유아기부터 문학, 음악, 미술, 철학, 외국어 등을 학습하고 삶의 일부분으로 실천하며 성장하였다. 또한, 예술위원회 설립될 당시의 예술은 대체적으로 귀족 예술이어서 국왕·왕족·귀족들을 중심으로 예술생태계가 존재하였다. 예술위원회의 위원이 아니라도 우수 예술가, 극장, 기획자의 선별에 문제가 없었고 그 예술적 수준의 높고 낮음을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사회적 거름망 역할을 할 수 있는 계층의 폭이 두터웠다. 따라서 오히려 지원할 때 간섭하는 것은 독일의 나치처럼 재정 지원을 통해 프로파간다를 하게 된다는 사회적 우려로 인하여 자금을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만들어졌다. 당시 독일, 일본, 러시아가 문화예술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했던 것의 반대급부였다. 따라서 우수 예술가나 극장 기획자만 잘 선별하면 되는 구조였으므로 선별의 공정함과 중위, 하위 계층에 복지혜택으로 보급하기 위한 자금 지원이 주된 수단이 될 수 있었다.』
길게 설명했지만, 목적은 전쟁에서 주로 희생당한 하위계층의 마음을 달래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쥐라기 공원’의 영화로 깜짝 놀랐던 산업화가 아니다.
이제 즐기라고 지원하는 돈은 줄이고 산업화할 수 있는 지원을 해야 한다. 결과 없이 주는 돈을 결과가 예측되는 돈으로 바꿔야 한다. 문화강국이 되기 위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
3편에서는 실질적인 ‘문화, 예술, 관광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실험성이 강한 두 가지의 콘텐츠로 예를 들어 설명한다.
(3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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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25년04월21일 11시13분
- 최종수정 2025년04월21일 14시05분
- 검색어 태그 #문화강국 #전완식 #방탄소년단 #피땀눈물 #문화예술관광산업생태계 #쥐라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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