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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인물이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 화폐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5년03월17일 20시58분
  • 최종수정 2025년03월17일 20시57분

작성자

  • 박희준
  • 연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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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인물로 채워진 대한민국 화폐

전국 도심을 가득 메운 탄핵 찬반 시위대, 끝이 보이지 않는 건국일 논쟁, 이념을 달리하는 상대와는 연애조차 기피하는 젊은이들, 온라인에 넘쳐나는 상대 진영에 대한 원색적 비난 등 이념으로 양분된 국민들 간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 체계가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견해를 달리할 지라도 국가의 위기적 상황에서 구성원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이념과 가치가 존재하는 지도 의문스럽다. 이념적 논쟁에 휘말려 대한민국의 과거조차 부정하는 우리다.

 

대부분 국가의 화폐에는 건국에 이바지한 인물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인물의 초상이 새겨져 있지만, 대한민국 화폐에는 대한민국 인물의 초상이 보이지 않는다. 화폐는 조선 시대의 예술가, 군주, 학자, 장군으로 채워져 있다. 조선 시대에 국가의 틀을 완성한 세종대왕, 건국 이념인 성리학을 발전시켜 현실 정치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 임진왜란 중에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이순신 장군 그리고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예술가 신사임당이 화폐에 등장한다.

 

화폐 초상은 국가 이념과 가치를 전달하는 매개체

하지만 김구 임시정부 수반을 비롯해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 대한민국의 건국을 견인한 독립 운동가,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통치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의 틀을 확립한 이승만 전 대통령, 자본주의의 틀을 확립하고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고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등의 기업가들은 화폐에 등장하지 않는다. 화폐에 새겨진 역사적 인물의 초상은 국가의 이념과 가치를 상징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인데 말이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6·25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한반도 5천년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평화로운 시대를 열어 왔다. 대한민국은 지난해 기준으로 군사력은 세계 5위, 수출 규모는 세계 6위, 경제 규모는 세계 14위인 강대국으로 우뚝 섰다. 수치로 나타나는 경제력과 군사력 뿐만은 아니다. K-콘텐츠는 글로벌 OTT 시청률 순위에서 상위권에 위치하고, 해외 여행 중에 현지에서 라디오를 틀면 심심치 않게 K-팝이 들린다. 그리고 시내 중심가에 줄을 길게 늘어선 한식당을 접하는 것도 낯설지 않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문화적으로도 성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조선 시대에 갇혀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근 이념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하는 상황에서 좌파는 극일을 우파는 반중을 외치지만, 어쩌면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은 조선일 지도 모른다. 한반도에서 이어진 5천년의 역사를 부정하고자 함도 대한민국의 뿌리인 조선을 부정하고자 함도 아니다. 그리고 화폐에 새겨진 인물들의 업적을 폄하하고자 함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대한민국이 건국과 함께 지향해온 가치가 무엇인지, 견해를 달리할 지라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구현해야 하는 이념과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 답을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서 공유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한 각국의 화폐에는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를 구현한 인물을 새겨 넣기도 하지만 국가의 발전 전략과 궤적을 같이하는 업적을 쌓은 인물을 새겨 넣어 국가의 발전 전략을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국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은 6.25전쟁으로 인한 폐허 속에서 교육을 통한 기술 발전과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을 기반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진 기업인 그리고 교육자와 과학·기술자는 화폐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천연 자원도 부족하고 생산 가능 인구도 감소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성장 전략은 여전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술 확보와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기업가 정신 임에도 말이다.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딥시크의 출현으로 정부와 기업들은 중국과의 AI 관련 기술 격차를 분석하면서 중국에 비해 턱없이 작은 투자 규모를 지적하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유교 사상에 뿌리를 둔 사농공상 문화에서 기인한 과학·기술자에 대한 낮은 처우다. 우리는 여전히 조선의 틀에 갇혀 있는 듯 하다.

 

이념에 치우쳐 국가 이념과 역사를 부정하지 말아야

대한민국의 통치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틀을 확립한 인물도, 경제 발전의 초석은 다진 인물도 우리 근대사에 다수 존재하지만, 그들의 업적이 과오에 묻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 어느 시대건 어떤 분야건 업적을 쌓은 인물들에게는 공도 있고 과도 있기 마련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다윗도 영토를 확장하고 국부를 축적하여 국가의 기반을 닦았지만 말년에 간음과 살인의 죄를 짓는 우를 범했다. 중국 화폐에 새겨진 유일한 인물인 마오쩌뚱이 사망하자 문화혁명과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이유로 그에 대한 격하 운동이 일어나면서 중국 전역이 혼란에 휩싸이자, 문화혁명의 최대 피해자였던 덩샤오평은 ‘공은 일곱, 과는 셋’이라는 말로 마오쩌뚱의 혁명을 평가하며 혼란을 잠재운다.

 

우리는 이념에 치우쳐 역사적 인물의 공을 지나치게 폄하하고 과를 부각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더 나아가 이념에 치우쳐 우리 자신의 과거까지도 부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과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가치를 다시 한번 제대로 정의하고, 그 틀 속에서 구성원을 하나로 묶어내는 리더십이 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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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3월17일 20시58분
  • 최종수정 2025년03월17일 20시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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