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續)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19> 장기표, 당신은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습니까 ⑥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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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를 이끄는 지도자와 그 집단에 대해 야박해서 눈물이 날 정도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그들이 힘들어 울어야 국민이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건… 정책이나 전문가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회지도층이 국민보다 힘들지 않고 편하게 살기 때문이다.> (졸저 ‘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중) |
2024년 7월 19일 자 조선일보
<‘영원한 재야’로 불리는 장기표(79)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담낭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고 공개했다. 장 원장은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친구, 지지자들에게 쓴 편지를 올렸다. 그는 “며칠 전에 건강 상태가 아주 안 좋아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은 결과 암이 다른 장기에까지 전이돼 치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며 “물심양면의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기대에 부응하기는커녕 갑자기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하게 돼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와 특별한 관계를 맺어온 많은 분께 더 이상 연락드리지 못하게 됐음을 양해해 달라”고 했다. …(중략)… 장 원장은 글에서 “과도한 양극화, 위화감과 패배 의식, 높은 물가와 과다한 부채, 온갖 사건 사고로 고통을 겪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지만 ‘앞으로 더 살기 어려운 나라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엄습해 온다”며 “이를 극복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정치는 ‘무지의 광란’이라 불러 마땅할 팬덤 정치가 횡행해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고 했다. …(중략)… 장 원장은 다음 주 월요일 입원할 예정이다. 그는 본지에 “제 몸이 아픈 게 기삿거리는 아닌 것 같다”며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기사를 보며 지난 겨울 거리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국회의원 특권 폐지 집회를 열고 있던 그의 사진 속 모습이 떠올랐다. 이미 암이 상당히 퍼진 상태에서 요양 대신 집회를 열고 있었단 말인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내 몸이 만신창이인데, 나라를 바꿔보겠다고 한겨울에 거리에서 집회를 열다니…. 그 정도 상태면 증상이 없었을 리가 없었을 텐데, 그는 왜 그렇게까지 필사적이었을까. 한참 동안 창문만 바라보다가 문득 4년 전 첫 인터뷰 때 그가 했던 말과 표정이 떠올랐다. 당시 민주주의를 조롱하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행태가 너무 꼴 같지 않아서 홧김에 아무 잘못도 없는 그에게 상당히 아플 수도 있는 질문을 했는데, 그는 마치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듯 몹시 괴로운 모습으로 답했다.
“선생님은 민주화를 위해 한평생을 바쳤는데 지금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된 겁니까.”
“그 생각을 하면 자괴감이… 어쩌다 이렇게 완전히 거꾸로 된 세상이 됐는지…. 문재인 정권이 군사독재정권에서 파생된 정권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을 팔아서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까… 내가 절대로 가만둘 수가 없습니다.”
“이 정부 하는 걸 보면 그러다 다시 감방에 가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영광이지요.”
최근 투병 사실을 밝힌 그의 페이스북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그런데 더 가슴 아픈 것은 평생 나라의 민주화와 민족 통일, 그리고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해 왔건만 요즘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꼴을 보노라면 이런 나라 만들려고 그토록 열심히 노력해 왔나 싶어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적어도 몇 년 동안,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그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투병 사실을 안 뒤에도 나는 안부 전화를 못 했다. 사실 인터뷰 한 번, 그리고 식사 두세 번 한 게 전부이니, 내가 마치 지인처럼 걱정돼서 전화한다는 것도 내 딴에는 좀 어색한 것 같았다. 그리고 더 큰 이유는, 무슨 말을, 어떤 말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지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암 판정을 받고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젊었을 적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옳지 못한 것을 바로 잡고, 굽은 것은 펴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강한 자들과 맞선 인생. 그 길을 걷기 위해 대한민국 최상층으로 살 수 있었던 삶을 버린 것이 참 바보 같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대학 동기들처럼 판검사, 변호사가 돼서 할 수도 있었고, 그랬더라면 최소한 강남에 아파트 한 채는 가진, 높은 공직이나 국회의원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던질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차일피일, 주저주저하며 연락을 미루고 있는 사이, 덜컥 그날이 왔다. <⑦편으로 계속>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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