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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아낙네들의 민속놀이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09월15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4년09월13일 10시39분

작성자

  • 김용호
  • 전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한국학 박사(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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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추석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명절이다. 

 

음력 8월 대보름 명절인 추석 한가위는 잘 익은 곡식과 과일을 차례상에 올리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풍년에 대한 감사와 은혜의 기쁨을 누리는 명절로 모두 알고 있지만, 그것은 깊게 살펴본 추석 의미와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민족의 추석은 가을 추수하기 전 농사의 중요한 고비를 넘겼을 때 미리 곡식을 걷어 조상에게 제를 올리고 풍년을 기원하는 명절로 더운 여름을 이겨내고 가을 추수를 앞둔 시점에서 조상에게 성묘하며 감사와 풍요, 행복을 소원하는 명절이었다. 현대에 들어온 서양의 추수감사절과는 사뭇 다른 개념으로 우리 한민족은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음력 8월 중순인 보름날에 그 염원을 담았으며 서양은 모든 수확이 끝나는 기간을 정하고 즐기는 축제로 보통 10월과 11월 사이에 두고 풍요의 기쁨을 즐겼다. 

 

추석 명절에는 풍요로운 추수의 기원과 함께 여러 민속놀이도 사회적 유대감을 갖고 함께 즐기는 공동체의 행위로 이어져 왔다. 놀이 역시 기원과 같은 ‘인(人)’과 ‘천지(天地)’ 즉 모든 만물을 중요시하는 사상과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바람이 담겨 있다. 옛 고서인 삼국사기에는 추석 유래가 되는 신라의 전통 명절인 가배를 기록한 내용이 전해져 오는데, 음력 8월 15일이 돌아오면 다 같이 모여 여자는 길쌈 내기를, 남자는 활쏘기를 하며 가무와 온갖 놀이를 즐겼다고 전한다. 그러한 전통놀이는 오랜 세월 이어져 오늘날 적지 않은 수가 우리나라의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유형을 살펴보면 더욱 다양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국가무형유산 제8호 전라남도 진도, 해남의 ‘강강술래’를 비롯해 경상북도 무형유산 제36호 ‘영덕 월월이청청(月月而淸淸)’. 경상남도 무형유산 제36호 ‘거창 삼베길쌈’, 국가무형유산 제47호 궁시장(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등 바로 우리의 삶 속에 함께 이어왔던 값진 전통 무형유산들이다. 이중 궁시장, 활쏘기를 빼고 모두 아낙네들의 민속놀이로 전승되고 있다. 

 

국가무형유산 제8호 ‘강강술래’를 살펴보면 우리는 먼저 이순신 장군이 떠오를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군사적 열세를 감추기 위해 아낙네들이 모여 원을 만들며 춤과 노래를 불렀다>는 기원설로 대중에게 알려졌지만, 사실은 고대사회부터 풍작과 풍요를 기원하며 아낙들의 민속놀이로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이 정론이다. 강강술래는 한민족 여인의 기원을 담은 큰 공동체 행위로 희생과 내조의 원초적 놀이었다. 놀이를 통해 아낙들은 고된 삶의 애환을 담았고 춤과 노래로 그 사연을 풀었다. 그것은 아마도 가족이란 중심을 지탱하고 안으려는 우리 여인의 작지만 큰 움직임이 아니었을까? 다양한 강강술래 노랫말 중 가장 필자가 눈에 띄는 부분이 있어 몇 자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평범한 우리 아낙네의 애환이 담긴 사랑 이야기이다. 

 

<긴 강강술래 가운데 '자진(빠른) 강강술래'>

 

새벽서리 찬바람에. 울고가는 저 기럭아. 

울고가면 너 울었제. 잠든 나를 깨고가냐.

우리 님을 만나거든. 동지섣달 긴긴밤에.

임 그리고 못산다고. 요내소식 전해주게.

기러기는 간데없고. 억만 장의 구름 속에.

달과 별만 남아있네.

 

748a6b552673e07fb16dbc66e08c0616_1726191<강강술래> 출처 국립국악원

 

한반도 서남해안인 전라남도에 아낙들의 한가위 민속놀이 강강술래가 있다면 반대편 동해안 경상북도 영덕에는 ‘월월이청청’이란 놀이가 있다. 이 놀이는 정월 대보름이나 추석날 밤 15세부터 16세까지의 처녀와 25세 미만의 새댁이 중심이 되어 둥근 원을 비롯하여 많은 대형을 만들며 열두 종류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놀이를 하는 형식이다. 놀이에 참여한 여성들은 역동적이며 변화무쌍한 동작을 오가며 그들의 삶을 표현한다. 현재 경상북도 무형유산 제3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라도의 강강술래와 같은 기원을 담고 있지만, 풍요와 더불어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주술·종교적 성격도 함께 띠고 있다. 또한, 평범한 일상 속에 구속된 여인들의 신명 풀이와 남성에 대한 구애 의미도 함께 담겨 있어 그들만의 독특한 놀이 형식을 갖는다. 월월이청청 민속놀이 중 가사를 살펴보면 ‘월월이청청’이란 후렴구가 계속 반복되고 있는데 그것은 ‘밝은 달밤에 노닌다.’라는 의미로 한가위 대보름달을 보는 즐거움의 가사일 수도 있지만 속박된 삶의 여유를 만들고자 하는 아낙들의 간절한 소망일 수도 있다. 후렴구로 계속 반복되고 있는 점이 특이하며 신명의 리듬으로 계속 이어진다. 

 

<생금생금 생가락지> 

 

생금생금 생가락지 월월이청청 호락질로 닦아내야 월월이청청

먼데보니 달일래라 월월이청청 저태보니 처젤래라 월월이청청

저처재야 자는방에 월월이청청 말소리도 둘일래라 월월이청청

글소리도 들릴래라 월월이청청 숨소리도 들릴래라 월월이청청

 

748a6b552673e07fb16dbc66e08c0616_1726191<월월이청청> 출처 국립국악원

 

전라남도 서남해안 진도, 해남의 강강술래와 경상북도 영덕의 월월이청청 민속놀이는 모두 도구 없는 집단 유희로 둥그런 원 형태 놀이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아낙네들의 놀이는 남성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 참여로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었고 추석 한가위 기원과 함께 희망인 사랑, 평등, 자유로움을 담고자 노력했다. 놀이하던 당시의 사회가 권위적이고 계급적이 되면 놀이 속 둥근 원의 형태는 흐트러졌다고 하니 참으로 고귀하고 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둥근 원은 그때의 시대상을 반영하고자 하는 매개체가 아니었나 싶다. 

 

아낙네의 한가위 놀이를 또 찾아보면 흥미로운 내기 소재인 ‘길쌈내기’를 들 수 있다. 유래는 신라 시기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보면 왕녀 2인이 각 부의 여자들을 통솔하여 무리를 만들고 두 패로 나눠 7월 16일부터 매일 모여서 길쌈 내기를 했다고 전한다. 내기의 마지막 날이 바로 한가위인 8월 15일이었고 진 쪽에서 술과 음식을 내놓아 승자를 축하하고 가무를 하며 각종 놀이를 즐겼다. 이것을 선조들은 가배(嘉俳)라 칭했고 추석 민속놀이 행사로 발전시켰다. 길쌈이란 옛날에 누에고치·삼·모시·목화 등의 섬유를 가공하여 명주·삼베·모시·무명 등의 피륙을 짜던 일을 말한다. 우리 여인들은 생활의 중요한 부분까지 삶의 놀이로 승화시키고 즐기며 내조의 삶을 이어나갔다. 아낙들은 이러한 길쌈을 할 때 “베틀가”, “물레노래”, “상사기노래” 등을 불러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길쌈 토속민요 중 한 사설을 살펴보면 참으로 애절하다. 

 

<베틀가>

 

 이 베를 짤아서 누구를 주나. 바디칠손 눈물이로다.

영원덕천(寧遠德川) 오승포(五繩布)요. 회령종성(會寧鐘城) 산북포(山北布)로다.

뇌고함성(雷鼓喊聲)의 영초단(寧綃緞)이요. 태평건곤(太平乾坤)의 대원단(大元緞)이라.

길주명천(吉州明川) 세마포(細麻布)요. 경상도라 황조포(黃早布)로다.

주야장천(晝夜長天) 베만 짜면 어느 시절에 시집을 가나.

닭아 닭아 우지를 마라. 이 베 짷기가 다 늦어 간다.

 

748a6b552673e07fb16dbc66e08c0616_1726191<길쌈-단원풍속도첩> 김홍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렇듯 추석 한가위가 되면 우리 민족의 아낙네들은 남성들과 함께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며 여유의 시간을 보냈다. 특히 흥겨운 놀이로 마음을 나누고 고된 삶의 여정을 서로 위로했는데 곰곰이 돌아보면 한가위 집 앞 작은 마당에서 펼쳐지는 민속놀이도 모두 아낙의 놀이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는 소소하고도 행복한 진실. “그네뛰기”, “널뛰기”, “씨름” 등 우리가 널리 알고 있는 세 가지 한가위 민속놀이 중 씨름을 빼고 모두 여성, 즉 여성을 위한 놀이가 아니었던가? 이제 다가오는 추석 한가위에는 우리 아낙네들의 민속놀이가 알려준 평등, 조화로움, 노고의 의미를 마음속에 되새기며 가족의 일원으로 여성들에게 감사의 속마음을 전하는 것이 어떠할지? 

 

“감사합니다! 그대 덕분입니다.”

 

 

<필자 김용호>

사범대학에서 수학교육을 전공하던 중 판소리에 심취되어 전주로 내려가 이날치의 증손녀 이일주 명창에게 춘향가를 배웠다. 박종선 기악 명인에게 아쟁을 배워 1999년 춘향제 전국국악대전 기악부 최고상인 대상을 수상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2-4호 남해안별신굿 이수자이며 서울시무형문화재 제39호 아쟁산조 이수자이다.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창작 및 표현활동지원 대상자’ 전통음악부문에 선정되었으며 2010년 독자적인 '아쟁' 주제 논문으로 한국 최초 아쟁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부터 수년간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음악원에서 한국 전통음악 Master Class와 연주회를 주도적으로 개최하여 주러시아 한국대사관과 차이콥스키음악원 간 MOU를 성사시켰고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체계적인 국악교육과 연주회를 시행했다. 경북도립국악단 악장, 국립부산국악원 초대 악장, 국립남도국악원 악장, 대구시교육청 대구예술영재교육원 음악감독,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전주대사습청 운영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위원, 예술경영지원센터 정부시상지원 현장평가위원을 역임했으며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북일보 문화칼럼니스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심사위원, 부산문화재단 창작예술지원 현장평가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논문 / “이북5도 무형유산 실태조사”(이북5도청), “전통예술공연 예술단체 활성화의 도정과 모색”(국회), “전주대사습놀이 콘텐츠 전략연구”(무용역사기록학회) 외 다수

# 저서 / “전통문화 바라보기”(도서출판 좋은땅), “박종선류 아쟁산조”(은하출판사), “산조아쟁의 이론과 연주”(부산문화재단), “아쟁 교본”(전북도립국악원)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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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4년09월13일 10시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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