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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은 노벨상을 잘 타고 한국은 못 타는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11월19일 17시02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8시08분

작성자

  • 국중호
  • 요코하마시립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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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왜 일본은 노벨상을 잘 타고 한국은 못 타는가?

 

노벨상을 잘 타기 위한 세 요건

한우물 파기, 세대간 연속성, 이타자리(利他自利)라는 세 요건을 들어가며 일본이 노벨상을 잘 타는 이유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노벨상 수상에는 철새처럼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라 더러는 바보스러우리만큼 끈질기게 한 분야를 파고드는 한우물 파기가 요구됩니다. 한우물 파기도 특정 세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세대간 연속성이 있어야 노벨상 수상에 유리합니다. 이에 더해 자신의 노력이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그것이 결국은 자신을 이롭게 한다는 이타자리(利他自利)의 마음이어야 노벨상 취지에 잘 들어 맞습니다.

 

한우물 파기 문화

역사적으로 일본의 한우물 파기 문화는 ‘일소현명(一所懸命)’의 의식 형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소현명은 선조대대로 계승되어 온 토지를 목숨을 걸고 지킨다는 뜻으로 중세 일본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영지(領地)를 목숨걸고 지키며 생활터전으로 삼아 살아감이 일소현명의 본래 의미입니다. 일반 백성들도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의 자유없이 소속 영지에서 일생동안 살아왔기에, 요즈음은 ‘일생현명(一生懸命)’이란 말로 변형하여 사용합니다. 일소현명은 일본이 정주형(定住型) 사회로서 한 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한우물파며 살아왔음을 상징합니다.

한우물을 판다고 하는 것은 그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를 낳게 합니다. 일본인이 탄 노벨상을 분야별로 보면, 물리학상 11명, 화학상 7명, 의학∙생리학상 3명, 문학상 2명, 평화상 1명, 경제학상 0명입니다. 흔히 쓰는 말로 표현하면, 문학, 평화, 경제와 같은 문과 분야보다는, 물리, 화학, 의학과 같은 이과 분야에서 노벨상을 주로 수상하고 있습니다. 물리나 화학과 같은 기초∙응용과학 분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끈질기게 기술이나 지식을 쌓아 나아가야 일가견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일소현명의 한우물 파기 문화’는 비록 융통성은 떨어지기만, 기술이나 지식축적을 많이 요구하는 물리나 화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는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고 하겠습니다.

 

세대간 연속성

일본에서는 ‘계속은 힘이다’ 라는 관용구를 곧잘 사용합니다. 한 세대가 자기 세대에서 마무리짓기 보다는 세대간의 연속성을 중시하기에 몇백년 된 상점이나 기업도 즐비합니다. 일본인들은 형사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전형적인 줄거리는 ‘세대간 연속성’입니다. 예컨대 처음에 아버지와 자식 간에 의사소통의 오해가 있고, 아버지가 사건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합니다. 극속에는 대개 부모 자식간 애정을 둘러싼 곡해가 있습니다. 사건이 파헤쳐지면서 아들/딸은 아버지가 자신을 엄청나게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부모 세대가 이제까지 이룬 가업을 잇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자각하며 열심히 매진해 가겠다는 다짐으로 끝이 납니다.

노벨상에서도 지도 은사가 기초를 다져놓고 그 제자가 해당분야를 이어가는 연속성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물리학상에서의 도쿄대(東京大) 라인을 들어보겠습니다. 2002년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교수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뉴트리노라는 미립자를 관측한 업적으로 물리학상을 받았고, 2015년에는 그의 제자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교수가 뉴트리노에 질량(무게)이 있음을 증명하여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더불어 이들 두 사람 사이에는 뉴트리노 연구 기반시설(슈퍼 카미오칸데) 구축에 일생을 바치다 죽어간 도츠카 요지(戶塚洋二) 전 도쿄대우주선(宇宙線)연구소 소장이 자리하고 있어 잔잔한 충격을 줍니다. 노벨상 수상 회견에서 가지타 씨는, “도츠카 선생의 공적이 커 그가 살아있었다면 공동수상했을 것”이라며 깊은 감사를 표했습니다. 세대간 연속성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타자리(利他自利) 중시

일본인들의 소박하고도 소중한 꿈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쪽으로 수렴됩니다. 그들은 사회의 구성일원으로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이타(利他)정신을 아름답게 봅니다. 이타심이 자신을 이롭게 한다는 자리(自利)로 받아들이기에 ‘이타자리(利他自利)’라 하겠습니다. 존경받는 기업경영인 교세라(京セラ)의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회장도, 인간의 가장 소중한 것으로서 ‘이타의 마음’을 듭니다(그의 저서 『삶의 방식』). 이타를 우선하는 마음가짐이 자신의 행동을 자유로이 해방시켜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열대지방의 감염증 특효약 개발로 2015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은 오무라 사토시(大村智) 씨는 ‘무언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은 없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해 왔다고 누누히 말합니다. 인공다성능줄기(iPS)세포를 만든 공적으로 2012년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수상한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 교수도 ‘지금은 고칠 방도가 없는 척추손상 환자를 어떻게 해서든 고치고 싶다’는 비장한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타자리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노벨상 수상 등 큰 업적을 이루는 쪽으로 나타납니다.

 

한국의 노벨상 타기 전략 

일본인들은 한국사람과 외견은 비슷하지만 참으로 다른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입니다. 일본이 전통 위에 기술과 지식을 쌓아가는 스톡(stock, 쌓임) 사회인데 비하여, 한국은 이리저리 활발하게 움직이는 플로(flow, 흐름) 사회입니다. 좋은 면으로 동적(dynamic)이라 할 수 있지만 한국은 특정분야를 다지며 쌓아가기 어렵습니다. 한우물 팔라치면 왜 그런지 고리타분하게 여깁니다. ‘못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보도 있어 설사 천재가 출현해도 그 기량을 펼치지 못하고 사그러들곤 합니다. 한국 드라마에서 잘 나오는 주제는 ‘남들이 내 앞에서 무릎 꿇도록 하겠다’는 지배욕입니다. 자신을 내세우며 이전 사람이 이루어놓은 것을 부정하려 하기에 세대간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일본의 노벨상을 시기적으로 보면 2000년 이전(1949~99)이 8명, 2000년 이후(2000~15)가 16명으로 21세기 들어 부쩍 늘어났습니다. 그 동안 쌓아놓은 스톡(축적)이 역량을 발휘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축적이 많은지라 앞으로도 노벨상 수상 가능성은 한국보다 높습니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타기 위한 전략으로 첨단기술을 갖는 미국의 연구환경을 이용하는 것도 유력한 방법이겠지만, 일본의 스톡을 활용하는 방법이 빠르고 현명할 수 있습니다. 제가 비록 노벨상 탈 재목은 아니더라도 한일관계 전문가 축에는 들 수 있도록 노력해 갈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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