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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 그 화려한 껍데기를 채우려면...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08월27일 22시35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5시11분

작성자

  • 김진해
  • 경성대학교 예술종합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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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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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 그 화려한 껍데기를 채우려면...

 

 역대 대통령 가운데 문화에 대한 이해가 가장 높은 사람은 누구일까? 누구는 김대중 정부를 이야기하고 가장 훌륭한 문화부 장관으로 박지원 의원을 꼽는다. 세간의 평이다. 그 이유는 공공기관을 민간 중심의 위원회 체제로 바꾸었기 때문이란다. 문예진흥원은 문화예술위원회로 영화진흥공사는 영화진흥위원회로 공연윤리위원회는 영상물등급위원회로 명칭을 바꾸고 관 주도에서 민간의 자율기구로 전환했기 때문이란다. 

 

 보수정권은 문화 중심이 아니다. 보수정권에서 문화가 위축되는 이유는 껍데기는 화려하나 내용물이 없기 때문이다. 내용물은 참신성에서 나오는데 체제안정을 지향하는 사고의 틀에서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올 리 없다. 예술가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창조성이다. 이 창조성은 자유정신을 근간으로 탄생한다. 뭔가 현실에 불만이고 안정이 본능적으로 맘에 들지 않을 때 창조정신이 꿈틀거리면서 새로운 예술 정신의 모색이 시작된다.

 

지난 십 수 년 간 국산 영화의 성장세는 놀랍다. 한국 영화는 특히 소재의 검열이 사라진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실미도>, <공동경비구역 JSA>, <태극기 휘날리며>, <쉬리> 등 남북 분단 상황에서 이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큰 흥행을 기록한 바 있다. 이는 스토리의 탄탄함과 전반적인 영화기술의 향상에도 기인하지만 금기시된 소재인 분단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사전검열제도의 폐지가 한국영화 도약의 전기를 마련한 것도 사실이다.

 

 소재의 확장은 사고의 자유로움을 전제한다. <변호인> 역시 영화 소재 확장에 기인한 바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아무도 1천만 관객 돌파를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결과이다. 이 영화를 두고 현 정부는 심기가 매우 불편했고 야권은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했다. 그러나 근 이순신 장군을 그린 <명량>의 대성공으로 보수정권은 돈 안들이고 인기 몰이에 편승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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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이 야권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면 <명량>은 상대적으로 현 보수 정권의 이미지 메이킹에 일조하는 영화다. 바꾸어 생각해 보자. 만일 <변호인>이란 영화를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관들과 함께 관람을 하고 무릇 변호사란 인권을 존중하고 약자를 대변하는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던진다면 어떠했을까? 반대로 영화 <명랑>을 야당의 대표와 국회의원들이 대거 관람하고 구국의 일념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이순신 장군의 애국심에 머리 숙이는 모습을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면 어떠했을까?

 

 영화는 시청각 매체로서 매우 강력한 선전선동성을 가지기 때문에 때로는 대중들을 면 상태로 몰아넣고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기며, 독재자를 미화하기도 한다. 매우 위험한 매체인 영화이기에 집권 세력은 영화에 관심이 많다. 그러기에 항상 통제하기를 원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기보다 창작의 생태계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자금 지원과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 

 

<변호인>의 흥행 성공으로 정부의 심기가 불편했다손 치더라도 영화의 제작사와 투자자를 조사하고 부당한 압력을 가한다면 잘못이다. 그렇다고 <명량>을 제작한 영화사에 정부가 인센티브는 준다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다. 문제는 창작자가 아니라 창작물을 악용하는 정치꾼들에게 있다.

 

문화융성은 문화적 가치의 확산에 기초한다. 문화적 가치란 무엇인가? 인문정신이라 말할 수 있다. 현 정부의 문화융성은 껍데기만 화려할 뿐 가치 정립과 확산에는 매우 미흡하다.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문화융성’과 ‘문화가 있는 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국민이 10명 중 8명이라는 근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가 이를 대변한다. 

 

문화 융성의 기본 가치인 인문정신은 인간의 자유를 더욱 보장하는 것이다. 대 다수의 대 행복을 주창하는 공리주의 철학자 J.S. 밀이 <자유론>에서 주창하는 바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개인의 자유 보장은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담보하는 것”이다. 한편 자유는 질서의 전복을 꿈꾸며, 전복은 기존 가치의 재평가 또는 폐기에 있다. 자유를 보장하지 않은 문화융성은 있을 수 없다.

 

이래서 독립영화나 다양성영화나 실험영화가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하며, 음악, 미술에서는 영 아티스트의 활동 공간과 실험성이 중요한 이유이다. 무엇 보다 예술은 실험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실험성을 제약하고 방해하는 네거티브 예술정책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 못할 뿐 더러 문화융성에도 기여하지 못한다.

 

현 정부의 문화정책은 ‘국민 문화체감 확대’, ‘인문전통의 재발견’, ‘문화기반 서비스 산업 육성’, ‘문화가치 확산’ 등을 4대 전략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문화 융성은 인간의 자유를 더욱 보장하는데서 출발한다. 문화융성을 통한 국민행복을 추구하는 현 정부라면 더욱 더 그러하다. 이것이 문화정책의 기본 이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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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이 화려한 구호와 전략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슬로건 던지기’식의 정책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어느 뇌과학자의 말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명량> 한 편을 탄생시킨 한국 영화의 저력이 문화융성의 초석이 아니겠는가. 영화 한 편으로 우리 시대의 리더십에 대한 토론과 반성이 무성하고 애국심과 충(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영화의 힘이야 말로 문화융성의 토대가 아닌가한다. 

 

구호와 정책만으로 문화의 꽃은 절대 피지 않는다. 문화 융성, 그 화려한 껍데기를 채우려면 영화 <명량>과 같은 감동적인 영화의 탄생을 지원하는 풍토가 필요하다. 그 정책의 방향은 자유로운 비판과 창조정신의 보장 아래 산업적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다. 문화융성으로 국민행복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행복은 감동적인 영화 한 편을 보고 느끼는 쾌감에서 출발한단다. <행복의 기원>이란 저서에서 “행복은 구체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서은국 교수의 말에 따르면 적어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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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5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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