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사례로 본 고령화와 세대 갈등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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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난민, 하류노인, 노인파산’
최근 일본에서 쏟아져 나오는 신조어(新造語)들이다. 이들 신조어의 공통점은 현역으로 소득을 얻고 있을 때는 그런대로 괜찮은 삶을 살다가 은퇴한 후 삶이 피폐해지면서 빈곤층으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은퇴한 후 삶이 피폐해지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 고령화와 그에 따른 의료비의 급증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살게 되면서 각종 질병과 부상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의료비가 늘어나면서 파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하류노인 또는 노인파산으로 빠져드는 가장 큰 이유가 의료비라는 점에서 노인파산은 곧 의료파산을 의미하는 셈이다.
일본의 고령화율, 즉 총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의 비중이 27.7%(2018년 3월 기준)로 3,500만명을 넘고 있다. 노인들의 의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파산하는 노인들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정부의 의료비 지원 또한 급증한다는 문제점을 발생시킨다. 이 때 어느 나라 정부도 무한정 노인들의 의료비를 지원할 수는 없다는 점은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현실이다. 정부부채 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30%를 넘어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일본 정부로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일본 정부, 고령층에 대한 의료복지 축소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2017년 8월부터 고령층에 대한 의료복지를 본격적으로 축소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기존 공적 의료보험은 70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 의료비 본인 부담액이 일정액에 이르면 초과분을 돌려주는 ‘고액요양비제도’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그 혜택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은 물론 75세 이상 후기고령자에게 제공하고 있는 의료비 경감 특례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질문 하나. 일본 정부가 고령세대에 대한 의료비 지원을 축소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령세대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일본에서 고령세대에 대한 지원을 줄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정책의 전환이다. 정치인들이 투표만을 겨냥한다면 오히려 고령세대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하는데도 반대로 고령세대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있는 것은 그만큼 젊은 세대들의 불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젊은 세대들, 특히 현재의 20~40대는 부모세대보다 못 사는 첫 세대로 부모세대 또는 조부모세대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고도성장기를 거친 윗세대들이 혜택이라는 혜택은 다 누리고 정작 자신들에게는 장기불황만 물려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은 60대 이상 가구가 전체 가계 금융자산의 65.7%를 보유하고 있어 20~50대의 젊은 세대와 비교할 때 압도적으로 부유하다. 따라서 의료비 문제만 하더라도 혜택을 누릴 만큼 누린 세대들이 정부의 지원을 지나치게 받음으로써 그로 인한 부채를 현 세대 및 다음 세대에 떠넘기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말 그대로 세대 갈등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의 세대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폭주(暴走)노인’ 또는 ‘단카이(團塊) 몬스터’는 일본의 대표적인 베이비붐세대인 ‘단카이세대(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49년 사이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한 고령세대를 비아냥거릴 때 쓰는 신조어들이다. 이외에도 ‘착각에 빠져 사는 은퇴자’, ‘쓸 수 없는 베테랑’, ‘어린이 같은 아저씨’ 등이라면서 적개심을 드러내는데 거침이 없다. 일부 젊은 세대들은 “고도성장이라는 배부른 잔치를 실컷 즐긴 고령세대들이 음식 구경도 못해본 젊은 세대들에게 설거지를 시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만큼 고령세대들이 소통하지 못하면서 자신들만의 성(城)을 쌓고 있는데 대한 젊은 세대들의 불만이 크다는 것이다. 일부 젊은 세대들은 “정치를 바꾸지 않으면 이 같은 세대 갈등은 물론 세대간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면서 정치세력화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일본의 공적연금 통합
이 같은 세대 갈등은 고령세대에 대한 의료비 지원 축소를 넘어 공적(公的) 연금 개혁, 정년 연장 등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공적 연금 개혁을 들여다보자. 일본의 공적 연금은 크게 국민연금(우리나라의 기초연금과 비슷)과 후생연금(근로자, 공무원과 교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에 해당)의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고령화와 연금재정 적자를 고려하여 공적 연금의 수급연령을 2013년부터 60세에서 65세(2025년)로 단계적으로 늦추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2015년에는 공무원과 교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제연금을 후생연금으로 일원화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통합한 셈이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공무원과 교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제연금이 직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후생연금에 비해 가성비가 크게 높다는 지적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조치들은 급격한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에 따른 연금재정의 고갈 및 그에 따른 개혁 필요성을 정치권과 정부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호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표는 고령세대들이 더 많이 가지고 있지만 젊은 세대들의 불만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정치권과 정부가 과감한 개혁에 나선 결과라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언급한 일본의 사례를 읽으면서 독자들이 과연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자못 궁금하다. “이거 우리나라의 10년, 20년 후를 말하는 거 아냐?” “우리나라는 지금부터라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의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 “과연 우리나라가 일본과 같은 개혁을 할 수 있을까?” 당연히 필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된 질문들이다. 하지만 고령화와 저출산이 일본보다도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의 경우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에서 이미 발생하고 있거나 발생이 예상되는 세대 갈등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고령화율은 14.3%(2018년 추정)로 일본의 27.7%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초저출산과 장수화의 지속으로 2060년이면 고령화율이 40%를 넘어서면서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있다. 이런 흐름에서 고령세대의 의료비 급증은 이미 사회적·국가적으로 문제화되고 있는 이슈중의 하나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고령사회를 대비한 노인의료비 효율적 관리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65세 이상 의료비 총액이 2015년 22.2조원에서 2030년 91.3조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65세 이상 1인당 의료비도 2015년 357만원에서 2030년에는 760만원으로 2배가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함께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일로에 있다. 올해부터 적자로 돌아서면서 2025년에 가면 적자가 20조원을 넘어서고 현재 21조원인 적립금은 2023년에 고갈될 것이라는 추산이다. 특히 건강보험 지출액 중 노인의료비 비중이 작년 39.9%로 올해 40%를 넘어서고 2025년이면 49.3%까지 급증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앞으로 국민건강, 특히 고령자는 물론 젊은 계층을 포함한 국민들의 건강을 누가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공적 연금에서는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세대 갈등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입자 수가 2,100만명이 넘고 있는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2060년에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추정이 나와 있다. 최근에는 국책연구원의 한 연구자가 기금고갈이 2055년으로 당겨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그만큼 기금 고갈이 앞당겨졌으면 앞당겨졌지 뒤로 늦춰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50대 이상들은 제대로(?)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겠지만 20~30대 미만 세대들이 막상 은퇴할 때가 되면 국민연금 수령액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라도 부자여서 정부재정으로 메워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럴 가능성 또한 극히 낮다고 할 수 있다.
여기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이미 적자상태에 빠져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3월 내놓은 ‘2017 회계연도 국가결산’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국가부채(국가 재무제표 상 부채)는 1,555.8조원으로 이 중 연금충당부채가 845.8조원(54.4%)에 달했다. 연금충당부채는 공무원과 군인 퇴직자 및 예비 퇴직자에게 미래에 지급할 연금액을 추정한 뒤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한 금액이다. 정부가 직접 빌린 돈은 아니지만 연금 조성액이 지급액보다 부족하면 세금으로 메워야 하므로 연금충당부채가 늘어날수록 미래의 국민 및 국가 부담이 가중된다는 의미이다. 이 같은 점에서 공무원을 계속 늘리는 것이 당장의 일자리 증가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미래 세대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한 일이다. 결국 공적 연금분야에서 미래 세대의 후손들에게 부담을 적게 넘겨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국민연금은 물론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도 (보험료는) 더 내고 (연금수령액은) 덜 받는 것은 물론 수령나이도 계속해서 높여나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군인연금을 일본처럼 통합하는 등의 과감한 개혁에 하루 빨리 나서야 할 것이다.
정년연장과 청년실업률의 상승
청년실업률의 상승 또한 여러 가지 면에서 세대 갈등을 불러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글로벌 흐름에 따른 일자리 감소는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치더라도 국내적으로 갑작스런 정년 연장의 시행은 청년들의 취업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2013년 5월 그간 권고조항으로 되어 있던 정년을 의무조항으로 바꾸면서 60세로 연장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에 따라 2016년부터 공기업과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었고 2017년부터는 국가 및 지장자치단체, 상시근로자 300인 미만 등 전 사업장에 적용되어 실시되었다. 당시 노동시장에서의 충격 및 청년 고용 감소를 완화하기 위해 정년연장을 단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묻히고 말았다. 최근의 높은 청년실업률(2018년 3월 현재 11.6%, 체감실업률(확장실업률)은 24.0%)에 여러 가지 복합적 이유가 있겠지만 정년연장이 하나의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년이 55세였던 사업장에서 정년이 갑자기 60세로 늘어나면 5년의 퇴직예정인원이 한꺼번에 잔류하면서 추가 고용여력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아버지·어머니 세대가 사업장에서 자리를 계속 지키면서 딸과 아들 세대들이 취직을 못해 떠도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구직자당 일자리 수가 1.5개를 넘고 있는 최근의 일본처럼 고령화가 더 진전되면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청년들의 실업이 해결될 것이라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당장에 1~2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평생 실업자로 살 확률이 높은 청년들에게 10년, 20년 후에나 일어남직한 상황을 말하는 것은 더 잔인한 일이기 때문이다.
‘의료비, 연금, 일자리’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결론적으로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세대 갈등의 핵심은 ‘의료비와 연금, 일자리’에 있다. 의료비·연금·일자리를 놓고 고령세대와 젊은 세대가 서로 다른 견해와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왜 젊은 세대가 당하고만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과 같은 제도와 시스템이 계속 간다면 현재의 우리나라 젊은 세대들 역시 고령세대가 남겨놓은 부채와 먹다 남은 음식 설거지만 해야 하는 미래가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의 젊은 세대들은 잡 푸어(job poor)에서 시작해 워킹 푸어(working poor), 하우스 푸어(house poor· 여기에서는 집을 보유하고 있지만 무리한 대출로 인한 이자 부담 때문에 빈곤하게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아예 내 집을 가져볼 엄두도 못 내는 빈곤층을 뜻함), 메디 푸어(medical poor·의료 푸어)를 거쳐 은퇴한 후에는 연금도 부족한 연금 푸어(pension poor)로 살다가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의 젊은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들도 부모세대보다 못 사는 첫 세대가 될 것이다. 온갖 푸어란 푸어는 다 겪을 세대로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는 미래 자체가 암울하다고 말해도 지나친 과장은 아닐 듯 싶다.
실상을 제대로 알고 나면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들도 일본의 젊은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부글부글 끓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만간 임계치(critical mass)를 넘어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젊은 세대들이 폭발하기 전에 ‘의료비와 연금, 일자리’ 등에서 보다 합리적인 사회적·국가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젊은 세대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고령세대를 포함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사회적·국가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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