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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는 야권 근본 재편의 기회, 놓치면 미래 없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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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5월27일 17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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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일
  •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단국대 석좌교수, 前 국회의원,前 중앙일보 정치부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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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세상사를 논할 때 ‘운칠기삼(運七技三)’을 종종 이야기한다.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운동경기의 과정과 결과를 보면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 스토리를 거론하면서 ‘운(運)이 기량이나 실력보다 더 많이 작용한다’는 뜻으로 이 말을 곧잘 사용한다. 

 

 서양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고대 로마에선 포르투나(Fortuna)와 비루투스(Virutus)란 말을 자주 썼다. 포르투나는 행운의 여신을 뜻하는 단어로, 우리가 말하는 운과 상통하는 것이다. 비루투스는 역량, 능력, 힘을 의미한다. 결국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이 두 가지라는 게 로마인들의 인식이었으니 동서양의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로마인들은 포르투나의 영역은 통제할 수 없고, 행운의 여신이 언제 변덕을 부릴지 알 수 없는 만큼 비루투스, 즉 실력과 역량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도 이 점에 주목했다. 군주가 주어진 포르투나를 비루투스로 잘 통제하고, 관리하고, 극복할 수 있는 가에 군주의 성패가 달려 있다며 비루투스를 함양하는 것이 군주의 덕목이라고 마키아벨리는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운은 좋지만 역량은 미지수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겐 비루투스가 많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후임자인 문재인 대통령에겐 포루투나의 힘이 강력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태,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촛불시위 분위기에서 대선을 편안하게 치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국정을 맡은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 정부의 성공과 실패를 언급하긴 이르지만 미흡한 점, 불안해 보이는 것들이 꽤 많이 있다고 본다. 지난해 5월 대선 때 행운의 여신이 문 대통령 편에 선 덕에 집권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역량, 비루투스는 훌륭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문 대통령은 ‘국정의 만사(萬事)’라고 하는 인사에서 우리가 탄복할 정도의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임기 초 장·차관급 인선에서 낙마한 사람들의 숫자가 박근혜 전 대통령 초기보다 많은 8명이나 되고, 정부기관 책임자들 중엔 무능하다고 평가받는 이들이 제법 많다. 

 

 경제부총리와 외교부 장관은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교육부총리는 수능 절대평가 전환, 유치원 영어 금지 등과 관련해 오락가락해서 혼란을 초래한데다 대입 정책은 위원회로 결정 책임을 미뤄 무능하고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조 출신인 고용노동부장관은 편향된 사고로 특정 기업을 괴롭힌다는 비판을 들었고, 환경단체 출신인 환경부 장관은 재활용 쓰레기 처리 문제 등에서 역량 부족을 드러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라돈검출 침대 문제와 관련해 혼선을 빚고 국민을 불안케 해서 총리가 대신 사과했고, 한때 업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식약처장은 총리의 꾸지람을 들었다.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혼란을 주는 발언을 남발해 대통령의 경고를 받았고, 문제의 특보와 갈등을 빚은 국방장관도 청와대의 경고를 먹었다. 

 

 

  민생 나아지지 않았지만 정부는 태평, 적폐도 답습

 

 새 정부가 들어선지 1년이 지났으나 민생은 나아진 게 별로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중산층과 서민이 체감하는 경기는 1년 전보다 나쁘고, 물가는 오르고 있으며,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과 노동시간 단축 등으로 일자리가 줄어 서민과 청년들의 고통은 한층 커졌다는 지적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 측에서 경제를 걱정하는 고위층은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거의 유일하고 대다수 관계자들은 태평스럽고 한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들은 몇 가지 통계를 내밀며 “현재 나쁘지 않고, 곧 더 좋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그들을 보며 ‘믿음이 간다. 듬직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대통령 지지율이 상당히 높은 상황에서도 소수이지 않을까 싶다. 

 

 적폐를 청산한다는 정부에서 같은 적폐를 반복하는 일도 국민은 목격하고 있다. 덩치가 크고 중요한 공공기관에 전문성도 없고, 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인사들이 낙하산으로 내려 와 좋은 자리를 꿰차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게 그 단적인 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청와대에서 야당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허언이 되어 버렸다. 언론과 야당이 이를 비판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청와대와 정부의 모습은 그들이 욕하는 과거 정권을 많이 닮았다.  

 

 문재인 정부의 비루투스는 이처럼 빈약해 보인다. 그럼에도 포르투나는 아직 현 정부의 편이다, 정권을 견제해야 할 야당이 한심해도 너무 한심하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나 정부는 여전히 ‘운칠기삼’ 이상의 운을 누리고 있다. 

 

 

 자유한국당, 덩치만 컸지 혁신도 없고 실력도 없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얼굴도 밉상이고 머리도 비어 있다. 당의 얼굴인 대표는 천박하고 품격 없는 언행으로 당 전체와 보수의 이미지를 망치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에서 ‘한국당 대표는 우리의 산타클로스’라며 고마워하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이니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런 한국당 대표에 대해 불만을 가진 이들이 당내에도 많이 있지만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독설에 능한 대표를 괜히 건드려서 본전도 찾지 못할까봐 웬만하면 귀 막고 눈 감고 넘어가는 의원들이 모여 있는 곳이 한국당이다. 그런 그곳에 변화나 개혁의 기운이 일지 않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야당으로 전락했어도 웰빙 체질은 버리지 못한 이 당엔 혁신위원회라는 것이 있지만 도대체 무엇을 혁신했는지 국민은 알지 못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명하고, 친박 핵심의원 몇 명의 당협위원장 자리를 박탈한 게 혁신의 거의 전부인 듯싶고, 당은 예나 지금이나 당권을 가진 사람의 사당(私黨)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으니 혁신위원회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이 당의 소속 의원 숫자는 114명이나 된다. 그러나 정책 생산능력은 의석 30석의 바른미래당이나 6석인 정의당에 비해 우수하다고 할 수 없으니, 그런 한국당에 국민세금으로 지원되는 국고보조금과 의원 세비를 생각하면 오호통재(嗚呼痛哉), ‘아 슬프다’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집안싸움으로 날 새는 바른미래당에 무슨 미래 있을까

 

 제2의 야당인 바른미래당의 행보도 엉망진창이다. 안철수·유승민 세력이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중도보수 정당을 만든다고 했을 때 “의석 수는 작아도 개혁도 변신도 하지 않는 한국당보다는 나을 것”이라며 기대를 건 국민들이 많이 있었다. 두 세력이 바른미래당 출범 준비를 했을 때의 지지율이 한국당보다 높게 나왔던 건 그런 기대감의 표출이었다. 하지만 6.1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선을 20여 일 앞둔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 인재다운 인재를 충원하지 못하고 정책다운 정책을 내놓지 못한 것도 실망스러운데 양대 세력이 죽도록 싸우는 풍경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국회의원 보궐선거 지역 한 곳의 공천을 놓고 옹졸하게 티격태격해 온 양측의 알력과 갈등은 바른미래당의 미래를 스스로 없애버리고 복(福)과 운(運)을 차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제2야당이 내부 싸움에만 골몰하고 있으니 한국당으로선 고맙기 그지없고, 민주당으로선 반갑기 짝이 없다. 한국당은 지지층을 바른미래당에 잠식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게 생겼으니 긴장할 이유가 없다. 웰빙 체질의 한국당이 긴장할 게 없으니 그 당에 변신의 몸부림이 있을 수 없고 바뀌는 것도, 달라지는 것도 없다. 여당인 민주당에게 이 이상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민주당이 누리는 이런 행복은 국민에겐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민주당이 야권 지리멸렬로 얻게 된 반사이득에 취한 나머지 오만해 질 수 있고, 청와대와 정부는 국회에서 여당이 가진 힘만 믿고 독주할 수 있어서다. 이럴 때엔 정책 실패, 정치 실패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경우 피해는 국민이 입게 되는 만큼 야당이 달라져서 정부·여당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어야 야당에게도 좋고 국민에게도 좋다.

 

 

 6·13 선거 계기로 통합 대안 야당 만들어야 정부·여당이 긴장한다

 

  다가오는 6.13 지방선거는 이런 쓸 만한 야당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야권이 지방선거 치르고 나서 미래지향적이고 개혁적인 모습으로 전면 재편되는 드라마를 연출한다면 국민은 야권을 다시 볼 것이고, 민주당과 정부는 긴장할 것이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야권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겠지만 결과는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선거, 12곳의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참담함을 금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 가능성이 크다. 이런 두 야당에게 중요한 건 선거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는가다. 실의에 빠져 자포자기하거나, 당내에서 알량한 당권을 노리고 당파 싸움을 벌이거나, 양당이 자기의 몸집만을 불리기 위해 상대정당에서 사람을 빼내는 일에 치중한다면 양당엔 미래가 없다.  

 

 양당이 “차라리 잘 됐다. 폐허에서, 무(無)에서 다시 시작하자. 이제 소리(小利)와 아집을 버리자”는 데 뜻을 모으고 신진인사들과 함께 ‘헤쳐 모여’ 방식으로 개혁적이고 통합적인 대안 야당을 건설한다면 미래의 희망을 가꿀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야당을 태동시키는 과정에서 그간 국민의 지탄을 받았던 인사들은 배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를 실현하는 일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기싸움이 치열할 것이고, 양당의 진로에 대한 구성원들의 의견도 크게 엇갈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당 인사들이 근시안적이고 편협한 생각을 버리고 어떻게 해야 야권을 재건할 수 있을지 나의 입장이 아닌 국민의 눈높이에서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지혜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처지는 ‘운공기공(運空技空), 즉 ’운 제로, 기 제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야당이 무기력하고 무능하기 때문에 운도 없고, 역량도 없다는 얘기다. 양당은 이걸 인정하고 이 지점에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국민 다수의 눈에 한국당은 수구꼴통, 바른미래당은 콩가루당으로 비치고 있다. 그런 두 당이 선거 후에 당 대표나 최고위원 정도를 바꿔서 그대로 유지된다고 할 때 누가 그 당을 신뢰하겠는가. 두 야당이 선거 후에도 ‘그 나물에 그 밥’으로 남아 있다면 국민의 지지가 과연 올라가겠는가.

 

 

 한국당, 바른미래당 해체하고 신진세력과 합쳐 새로운 야당 건설해야

 

 이제 두 당은 ‘나 혼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나에겐 운도 없고, 실력도 없고, 국민 신뢰도 없다. 내가 모든 걸 내려놓아야 좋은 대안 야당이 들어설 공간이 생긴다’고 판단해야 한다. 양당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선거 직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절차를 밟아 당을 해산하고 기득권을 모두 버리는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럴 경우 국민은 야권의 혁신적 변화를 기대하고 지지를 보낼 것이다. 참신하고 훌륭한 바깥의 인재들도 새로운 야당 건설에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양당(국회 의석의 단순합계 143석) 의 사려 깊은 인사들이 이 일을 주도해서 성사시킨다면 국회 의석 130석 안팎의 새로운 야당이 탄생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참신하고 훌륭한 인재들이 대거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가 화석처럼 굳어져 버린 데다 변화한다고 해도 ‘오십보 백보’일 게 틀림없는 두 야당이 사라지고, 보다 합리적이고 열려 있는 중도보수 성향의 통합 야당이 출현할 경우 민주당 독주를 걱정하는 국민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민주당은 신경을 곤두세울 것이다. 

 

 새로운 야당 건설이 쉽지는 않겠지만 어려운 일을 해 내는 것이 바로 역량이고 비루투스다. 그 일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북한을 비핵화하는 것보다는 쉬을 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주장하는 두 야당이 이기심을 버리고 판단만 제대로 한다면 감동적인 성공 드라마를 쓸 수 있다고 본다. 

 

 

 선거 후의 민주당엔 변화 없을 터, 야권이 변신하면 행운의 여신도 미소지을 것

  

 지방선거 후의 민주당은 어떤 모습일까. 바뀌는 건 당 지도부뿐일 것이다. 8월 전당대회를 통해 민주당 당권을 장악할 세력은 ‘친문(친문재인)’일 것이다. 그런 민주당에 변화의 바람이 불 것 같은가. 국민은 지방선거 결과에 도취해서 자만에 빠지는 여당, 지난 1년과 다름없이 ‘청와대 출장소’ 노릇을 하는 그들만의 여당을 계속 보게 되지 않겠는가.

 

 이런 그림이 그려지는 상황에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당의 간판까지 내리면서 강도 높은 변혁의 몸부림을 친다면, 그리고 일부 인물들에 대한 인적 청산을 단행하고 훌륭한 신진들과 함께 새로운 대안 야당을 건설한다면 민심의 기류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야권이 이런 역량을 발휘할 때 저 멀리 떠나간 것처럼 보였던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도 다가와서 미소를 보낼 것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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