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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집중화와 고령화 등으로 지방 소도시들은 점점 더 생산성 약화와 원도심의 공동화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도시재생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이는 지역 소도시 주거와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높이며 지역 경제와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를 위해 도시재생의 범주를 나누고 정책적 지침을 제공한 뒤 주민들 주도로 지자체가 추진하는 체계를 가진 것이었다. 이는 지역의 실정에 맞게 2024년까지 추진되었다. 도시재생이란 도시개발과 달리 지역의 역사적 전통을 유지하면서 환경을 개선하여 도시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고자하는 의도가 강한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 이에 따라 관 주도 보다는 대체로 주민들이 사회적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실시되었다. 하지만 불충분한 경험과 학습효과, 그리고 미흡한 인식으로 진행된 곳이 많아 지원사업이 종료되고 난 뒤 곧바로 개발로 방향을 선회하거나 여전히 재생이 진행되어야 하지만 예산이 지속적으로 확보되지 못하여 도시재생 사업이 당초의 기대효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곳이 많다. 국토교통부가 중심이 되어 추진한 도시재생 사업은 재생이 필요한 지역에 마중물 역할을 하기 위해 엄청난 재원을 투입하였지만, 마중물의 투입이 끝나고 난 뒤 그 펌프질은 누가 할 것인가? 그리고 과연 물이 계속 나오는 곳에 펌프를 설치했는가? 등등 물음이 제기되며 그 추이를 볼 때, ‘과연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반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서구의 경우, 1970년대 후반부터 2차 산업이 쇠퇴하면서 산업도시가 발전의 한계를 맞게 되었다. 인구가 빠져나가며 쇠락하는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많은 도시가 앞다투어 도시재생에 몰두했다. 특히 문화 주도형 도시재생(Culture-led Urban Regeneration)이 큰 붐을 일으키게 되었다. 문화 주도형 재생이란 문화 활동이 도시재생의 원동력이자 촉매제로서 역할을 하도록 하는 전략이다. 도시 발전을 위해 문화 영역을 우선으로 삼아 차별화된 복합용도 건물의 건설, 워터프런트·엑스포 부지 등과 같은 열린 공간을 재개발하는 방식을 택한다. 또한 특정 장소의 명소화를 위한 예술축제·이벤트·공공예술 계획 등을 수립하여 추진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그뿐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문화 활동을 환경·사회·경제 부문에서 다른 활동과 함께 전략적 분야로 연관시키는 방식을 사용하는 문화적 재생(Cultural Regeneration)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는 경제·산업·사회 등 타 분야와 통합되는 문화사업 실시하거나 특정 지역의 재생을 위해 문화 활동 추진하는 전략을 말한다.
우리도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다양한 문화 관련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했다. 문화역사 가꾸기 조성 사업(2002~), 공공디자인 시범도시 조성 사업(2005~), 생활공간 문화적 개선 사업(문화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 2006~),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 사업(2008~), 지역 근대산업 유산 활용 예술창작벨트 조성 사업(2008~2011), 생활 문화공동체 만들기 시범 사업(2009~), 마을 미술 프로젝트(2009~), 문화 이모작 사업(2010~), 문화도시조성사업, 산업단지 및 폐산업 시설 문화 재생 사업(2014~), 유휴공간을 활용한 생활문화센터 조성지원 사업(2014~) 등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사업들은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고 그 추진 과정에서 사회가 일정 부분 학습효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주민주도 형의 형식은 빌렸지만, 정부의 재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국토교통부의 사업과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일회성으로 끝나버린 사업들이 대다수이며, 이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형성시키지 못한 면이 적지 않다. 이를 지속 가능케 하려면 지역의 전문 인력들을 육성시켜 사명감을 가지고 지역을 살리는 시스템을 구축했어야 하지만, 중앙의 몇몇 프로그램 매니저들에게 의존하여 유형화된 사업 아이디어를 전파하는 등 이 역시 충분한 경험과 학습효과가 지역의 자산으로 남아 주민들 또는 예술가들 스스로 자립의 기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지역은 여전히 자립적으로 도시재생과 문화도시를 만들어 나가는데 적확한 방법을 찾기 힘든 실정이다.
2015년 세계적인 터너상 수상자로 ‘어셈블 (Assemble)’이란 이름의 마을만들기 그룹이 선정되었다. 획기적인 일이었다. 언론 매체들은 예술가가 아닌 이들에게 상을 준 것에 대해 터너상이 사망했다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지만, 마을만들기가 예술로서 사회와 소통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했던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었다. 이들의 성공 사례는 우리의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 방법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어셈블’은 2010년 결성된 30대 젊은 건축가와 디자이너, 작가 등 18명이 모인 집단, 즉 어셈블이었다. 그들은 전통적인 도시계획이나 건축 설계 방식에서 벗어나 주민 주도형 도시재생을 실현한 혁신적인 사례로 주목받았다. 그들의 수상은 영국 중부 항구 도시 리버풀의 낙후된 공공 주택 단지를 되살려낸 공로 때문이었다. 이곳은 극심한 실업과 경제난으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발생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역의 오래된 공공 주택 단지인 그랜비 포 스트리츠(Granby 4 Streets)는 1900년대부터 노동자들의 생활 터전인 집합 주택 단지가 있었던 곳으로 주거 환경이 열악했다. 인종 차별과 실업난으로 1981년 폭동이 일어난 후, 시 정부가 집들을 사들이면서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 슬럼화됐다. ‘어셈블’은 거주자들이 떠난 빈집을 리모델링하고 실내에 독특한 정원을 만들었다. 버려진 주유소를 극장으로 개조한 ‘시네롤리움(The Cineroleum)’, 우범 지역인 고속도로 다리 밑을 문화 공간으로 만든 ‘폴리 포 어 플라이오버(Folly for a Flyover)’, 제당소 일대 건물을 예술가들의 작업장으로 만든 ‘야드 하우스(Yard house) 그리고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변하는 놀이터(Baltic Street Adventure Playground) 등을 만들었다.
들의 성공 요인은 대체로 네 가지 점을 들 수 있다. 우선 지역 주민과 깊은 협력에 있는데 ‘어셈블’은 지역 커뮤니티 그룹인 ‘Granby Four Streets Community Land Trust (CLT)’와 긴밀히 협력했다. 주민들이 1990년대부터 직접 폐가를 청소하고 꽃을 심으며 지역을 살리려 했던 오랜 노력에 ‘어셀블’이 디자인과 자원 연결이라는 방식으로 조력자 역할을 한 것이다. 주민의 의견과 필요를 설계 단계부터 반영하여, 상향식(bottom-up) 접근할 수 있었다. 둘째로. 자립형 경제 모델을 도입한 것이다. 지역 주민과 함께 ‘그랜비 워크숍’이라는 공방을 만들었고, 이곳에서 만든 수공예 타일, 조명, 가구 등을 주택 리노베이션에 사용했다. 이로써 경제적 가치가 지역사회 내부에서 순환되도록 했는데. 단순히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지역의 일자리와 자존감도 재건한 셈이다. 셋째로 비전문가와 전문가 간의 경계 허물기라 할 수 있다. ‘어셈블’은 자신들을 ‘건축가’라기보다는 ‘참여형 제작자(participatory makers)’로 여겼다. 주민들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공간을 만드는 데 있어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작업에 직접 참여하게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화와 예술의 적극적 활용을 들 수 있다. 공간의 단순한 복원보다는, 예술적 감각이 살아있는 재생을 통해 주거 환경의 질을 높였다. 재활용 자재, 독특한 타일 디자인, 주민의 이야기로 만든 가구 등은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처럼 ‘어셈블’은 리버풀 도시재생에서 ‘공공 참여’, ‘공동 제작’, ‘지역 기반 경제’, ‘지속 가능한 예술을 키워드로 주민과 행정가가 함께 만드는 도시의 미래를 제시했다.
도시재생은 여전히 우리에겐 미완의 프로젝트이다. 관 주도나 주민 주도의 성격으로부터 전문 집단이 함께하도록 지역에 창조 계층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국가가 이러한 조건을 갖추도록 견인하고 이런 지역에 지원을 집중하여 몇가지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결과 민과 관, 그리고 ‘참여형 제작자’라 할 수 있는 전문 집단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주민들 역시 하나의 지역경제 조직을 만들어 사업의 결과로 자립형 경제 모델을 형성하도록 해야한다. 이를 통해 그 경제적 가치가 지역사회 내부에 순환되게 함으로써 주민들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고 자존감을 재건토록 해야 한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많은 젊은 예술가나 창조자들이 모두가 예술시장에 몰입하는 경쟁에서 벗어나 지역에서 활동하며 자신들의 역할을 찾게 함으로써 문화 주도형 도시재생을 다양화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적 노력을 재설계해야 한다.
<ifsPOST>
- 기사입력 2025년04월14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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