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택정책> (6)역대 정부의 주택정책(Ⅲ) : 공통된 특징(stylized facts)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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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 역대 정부 통틀어 정책 의도대로 주택 시장이 움직인 적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과거 주택정책은 대부분 실패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목적 중의 하나이다. 지금 단계에서 그 원인을 종합적으로 논의하기보다는 그 원인을 파악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그간에 추진된 정책들의 특징을 정리하고자 한다.
일부 지역의 가격 안정을 목표
주택정책의 기본 의도가 주택가격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추진된 주택정책의 내용의 상당 부분이 주택가격을 사회적으로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수준으로 조정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리고 동원한 정책수단의 대부분이 가격조정 수단이었다. 이 수단을 통하여 주택의 수요 및 공급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당장의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의도가 강하였다. 한편 가격 안정 이외에도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주택 공급 확대도 주택정책의 주요한 목표로 추진되었지만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일반 주택가격에 관한 정책적 대응이다.
특히 전국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특정 선호 지역의 아파트 매매 가격을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이 지역의 아파트 매매 가격이 전국 주택가격을 견인한다고 보고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였다는 점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하거나 널리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정책 수단을 동원하였다. 요컨대 그동안의 주택정책은 주택가격 안정, 특히 일부 지역의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고자 정책적 노력을 집중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제도적 요소를 활용한 정책 수단
한편 주택정책의 주요 수단은 주로 규제나 규정 등 제도적 요소들이었다. 예컨대 세율이나 대출 관련 규정 등은 사실 미리 정해진 일종의 규칙이나 약속에 해당하는 제도들이다. 제도는 내용적으로 규율하는 바가 사전에 정해져 있고 그를 준수하여 행동하는 경우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제도적 요소들을 시장 상황에 따라 수시로, 그리고 이해당사자들의 예측과는 다르게 변경하는 방식으로 동원되었다.
이러한 제도적 요소를 정책수단을 활용하는 경우에는 정책 시차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시장상황을 인식하는 데에서부터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을 거쳐 그것을 제도화하고 실행하는 등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된다. 결과적으로 주택정책은 시장의 움직임에 뒤따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게 된다. 게다가 한 번의 대책으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 보다 더 강력한 대책을 강구하여야 하기 때문에 일종의 규제 악순환(vicious circle of regulation)이 발생한다.
이러한 시차로 인하여 때에 따라서는 주택경기의 진폭을 더욱 키우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예를 들면 2001년 5.23 조치에서는 2001년 연말까지 취득하는 주택에 대하여 취득세 및 등록세를 감면하고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금을 지원하는 등의 혜택을 부여하였다. 하지만 2001년 연초부터 주택시장에서는 재건축아파트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결국 때 늦은 정책으로 주택시장의 과열을 가속화시키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또 다른 예로 분양가 상한제의 영향을 들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주택가격 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수도권 일원에 민간택지에 공급되는 주택에 대해서도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2007년 4월 20일)하였다. 주택건설사들은 이 규제를 피할 목적으로 규제가 적용(2007년 9월)되기 이전에 대규모로 아파트 건설에 착공하였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 주택들은 분양되지 않았고 건설사들의 부도 위기, PF 대출 부실 등 문제를 야기하였다. 한편 수도권에서는 이 규제 이후 신규 주택건설이 콘 폭으로 감소하였다. 이에 따라 서울 등 수도권의 주택시장 경기는 2010년대 들어 극심한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사후적 대책
이러한 정책수단이 지니는 한계로 인하여 우리나라 주택정책의 대부분은 시장의 움직임에 대한 사후적인 반응 형식으로 추진되었다는 특징이 나타난다. 즉 주택가격이 상승하거나 하락하고 나서 대책을 수립하는 방식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미리 준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주1)
※주1) 주택정책 당국에서는 ‘주거종합계획’을 매년 작성하고 10년 단위로 장기주거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예컨대 2018년에는 제2차 장기주거종합계획(’13~’22)의 수정계획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계획에서도 현재 문제가 되는 선호지역의 주택 가격 급등에 과제에 관한 인식과 대책이 전혀 없었다. 저소득층 주거 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다만 주택 공급 정책의 경우에는 다년간 추진된다는 측면에서 장기적인 관점이 적용된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공급 확대 정책을 입안하게 되는 배경이 극심한 가격상승을 경험한 이후에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미리 준비하거나 예상한 경우는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강압적, 일방적, 자의적 정책
한편 정책수단의 동원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면 주택 가격의 변동 범위나 기준선을 어느 정도 설정해두고 이 범위를 벗어난 경우 정책을 시행한다면 정책의 명분이나 공감대가 형성될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책 당국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정책 시행 여부를 결정된다. 심지어는 관련 통계들마저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주택가격은 통계를 집계하는 기관마다 다른 데 특히 변동률에서는 큰 차이가 난다. 이 상황에서 정책당국은 주택가격 변동률은 크지 않다고 하면서도 강력한 규제정책을 발동하였다. 이와 같은 모순이 야기되는 것은 정책집행의 기준 등이 명확하지 않고 당국이 자의적으로 집행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반면 수요자의 바람을 충족하고자 하는 의도가 부족하였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해당 시장 참가자가 바라는 것(공급 확대)을 제대로 수용한 적이 없다. 선호지역의 주택을 확대 공급하는 대신에 일방적으로 임대주택 공급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식이다. 선호지역에 버금가는 대체지역을 개발하고자 하는 시도도 많지 않았다. 편리한 여건을 갖춘 곳의 양호한 주택에서 살고자 하는 주택수요자들의 여망을 주택정책이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단기 관점과 미시적 접근
결과적으로 주택정책의 관점이나 안목이 단기에 머물렀다는 특징도 유도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 주택정책의 단견적 시각은 여러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가격 변동률이 크지 않으면 주택시장이 안정적이라고 해석한다는 점이다. 한 번의 정책을 시행하고 이에 시장이 일시적으로 관망세를 보이더라도 시장이 안정되었다고 자평하는 식이다. 정책의 대부분이 단기적 효과를 기대하는 수요관리방식이다. 비교적 단순한 수요 공급 법칙의 틀에 입각하고 그중에서도 수요에 치중하는 것이다. 공급을 등한시하는 데 더하여 구조적 요인에 대해서는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정책수단의 부작용이 나타는 시계(time horizon)도 감안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개의 경우 단기적으로 의도한 효과에만 치중하여 정책수단을 동원한다. 그것도 몇 번씩 비슷한 수단을 반복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나중에는 정책 의도와는 달리 그 부작용이 누적되어 오히려 역효과가 커지는 경우도 많았다.
시간적 측면에서 단견적이라면 공간적 측면에서 시야가 좁았다는 특징을 꼽을 수 있다. 이 시리즈에서 강조하는 바와 같이 주택시장에서는 대세적 흐름이 있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 이제까지 주택시장은 내생화된 힘에 의해 움직이다가 외생적 충격 등으로 기대가 변하면서 대세적 흐름이 바뀌는 모습을 보여왔다. 정책적 의도를 반영한 가격 조정 수단으로는 시장에서 형성된 대세적 추세를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타 정책 등과의 연계 관계도 감안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거시경제정책 기조에 더하려 다른 사회 및 복지 정책 등과의 연계관계도 치밀하지 않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주택정책을 미시정책으로 일관하였다는 점도 한 가지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겠다.
사실 그동안의 주택정책을 통해 당국자들이 사안을 다룸에 있어서 한 가지 측면만을 강조하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 사례가 주택문제를 경기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다. 주택가격의 등락을 통해 주택 경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단편적 사고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택보급률이 100%가 되면 주택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도 좁은 시야를 반영하는 사례이다. 이 사례는 일인가구 증대 등 주거 문화의 변화, 제2 주택(second home) 수요 확대, 마찰적 수요에 따른 주택 수요의 발생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주택 수요가 다양하게 세분화되는 데 부응하려는 정책적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역별로 주택시장의 특성이 달라지는 데다 주택의 질적 측면도 고급화 내지는 세분화되는 추세에 있다. 이에 더하여 연령별 계층별로도 주택수요가 차별화되고 있다. 젊은 층의 일인가구에서 노인 가구에 이르기까지 주택의 수요는 세분화되고 있다. 저소득층에게는 집값 그 자체가 문제되기보다는 전월세 등 당장의 주거비를 부담해야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이와 같이 주택시장이 세밀하게 분화되는 추세인 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주택정책은 여전히 전국을 단일시장으로 보고 주택가격을 관리하고자 하는 미시경제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소득수준이 낮으면서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주택에 거주하는 가구도 많은 반면 수입억원의 전세보증금을 내는 무주택자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모든 정책은 주택의 유무를 기준으로 집행되는데 재산세 등의 부과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주택정책에서는 폭 넓은 관점을 종합적으로 적용하고자 하는 노력 부족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장기주거종합계획(’13~’22)의 수정계획‘ 등을 보면 정부에서는 상대적 약자에 해당하는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혹은 도움을 주는 데 정책적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일반 서민(혹은 시민)들이 평안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주택의 구입과 사용, 그리고 처분에 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문제가 된 것은 이러한 일반 주택시장이었다. 예상치 못한 과제가 출현함에 따라 단기적으로 시급히 그 문제를 해결하여 시도하였던 것으로 유추된다.
유사 정책을 반복하는 정책
한편 정책집행방식에서도 몇 가지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같은 정책을 반복한다는 특징이 크게 부각된다. 대부분의 정책 수단은 과거에 이미 시행된 적이 있다. 정권별로 유사한 정책을 되풀이 한 것도 문제이지만 단일 정부 내에서는 유사한 대책을 여러 번에 걸쳐 반복적으로 동원하였다. 당국에서 과거 정책 수단들이 효과가 있었는지 여부를 전혀 평가하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반면에 시장에서는 반복되는 주택정책에 대하여 미리 예상하고 그 효과를 감안하여 대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치적 이념의 개입
마지막으로 주택정책이 정치적 이념이나 입장을 지나치게 반영하게 되었다는 것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모든 정권이 부동산 시장 동향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여 왔다. 주택이 국민들에게 지니는 중요성에 비추어 주택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는 주택정책의 영역이 이념 충돌의 장(場)이 된 감마저 없지 않다. 규제 만능과 시장 만능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에서는 거창한 공약과 그로 인한 과격한 정책 동원 등으로 주택시장이 구조적으로 왜곡되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과 관련하여 역대 정부 모두 거창한 공약을 제시하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집값만은 잡겠다,” 반값 아파트 공급,“ “서민 주거안정과 실수요자 보호”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그에 비해 실현 가능하면서도 실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은 제시되지 못하였다. 그러면서 종전의 정책수단에 의존하고 마는 식이었다. 강력한 공약으로 주택정책 목표를 제시하고 나면 그것이 정권 전체의 부동산 정책기조로 굳어졌다. 이로 인해 정책당국은 시장 상황의 변화 등에 신축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변신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 결과가 유사한 정책을 반복 되풀이하는 정책집행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통해 우리나라 주택정책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일종의 전형적인 사실(stylized facts)로서 요약해보았다. 이는 나중에 주택정책방향을 생각하는 데 기초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이 특징들을 놓고 보면 바람직한 주택정책의 방향을 모색하기가 참으로 지난한 과제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그것이 가능할 것으로 믿으면서 다음 편에서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주로 동원한 주택정책 수단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생각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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