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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39)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朱木)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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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1월15일 17시00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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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첫 나무사랑 글을 쓰면서 ‘나무의 효용’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나무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다양한 가치를 베풀어줍니다. 그 모든 가치들을 넘어서서 필자는 나무들이 참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우리가 얻고 있는 효용도 매우 크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나무들 중에는 곧으면서도 대단히 빠르게 자라서 울타리가 필요한 곳이나 무엇인가 가려주는 역할이 필요한 곳에 적절한 나무들도 있습니다. 많은 수입된 나무들이 이런 역할을 맡고 있지요. 메타세콰이어, 이깔나무, 리기다소나무, 아까시나무 등이 생각납니다. 이들 나무들은 우리 주변의 산에 심어져서 (그 빨리 자라는 성질을 활용하기 위해서) 산을 녹화시키고 산사태를 막아주는 역할도 훌륭히 수행하고 있지요. 

 

반면에 대단히 느리게 자라는 성질 때문에 큰 나무가 필요한 곳에서는 효용이 떨어지지만, 나무 모양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좋은 특징을 이용하여 많은 공공기관의 현관 근처 정원에 심어져서 대접을 받는 나무들도 있습니다. 섬잣나무, 주목 등이 그런 나무들이지요. 또한 이들 나무들은 느리게 자라는 성질 덕분에 그 재질이 매우 단단하므로 여러 가지 단단한 재질이 필요한 용도에 쓰이고 있지요. 작지만 단단해야 하는 가구라든지, 연필, 도장 등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아파트 주변 낮은 울타리로 쓰이는 회양목도 그렇고 향나무, 주목 등의 나무들이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느리게 자란다는 의미는 또한 많은 햇빛을 받아 활발한 광합성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이런 나무들은 음지에서도 훌륭히 적응하는 음수​(陰樹)이기도 합니다. 정원의 큰 나무들이 해를 가려 버리는 그늘진 곳에 심어도 문제가 없다는 말이지요. 어쩌면 세상은 이렇게 다양한 성질을 가진 생명체들이 서로 보완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야 더욱 완벽한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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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29일 용인 레이크사이드CC에서 만난 잘 자란 주목

 

이번에 소개하려는 주목은 느리게 자라는 나무의 대명사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100년이 되어도 10m 정도밖에 크지 않는다고 하니까요. (다 큰 주목은 17m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이렇게 느리게 자라기 때문에 어릴 때는 키가 작다는 약점을 가지게 되는데, 그래서 우리나라 자연을 대표하고 있는 산에서 다른 빠르게 자라는 나무들에 비해 경쟁력이 결정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 가까운 대부분의 산에서 잘 발견되지 못하는 나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위에서 언급했듯이 거의 모든 공공기관의 정원, 공원, 아파트단지의 정원 등에 곧잘 심어지고 있어서 그 희소가치를 잘 느끼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인터넷에서 나무 정보를 찾아보면,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주목은 제주도, 울릉도, 태백산, 덕유산, 지리산같은 해발고도 700m를 넘는 높은 산이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소백산 비로봉 근처의 주목군락이 특히 인상적으로 남아 있습니다만, 휴대폰 보급 이전에만 탐방했기에 주로 인물들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느라 그런 멋진 주목들의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아 매우 아쉽습니다. 백록담 근처에만 군락을 이루고 자생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나무인 구상나무와 함께 이들 높은 산들에서 자라는 주목의 군락을 보면, 마치 압도적인 세력으로 쳐들어오는 참나무, 서어나무, 물푸레나무 등의 공격에 거의 모든 땅을 내어주고 높은 산으로 밀려나서 버티고 있는 고립무원의 외로운 작은 나라 같은 모습이기에 더욱 고귀한 가치를 지닌 나무의 자리를 차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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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2일 오른 덕유산 정상 근처의 오래된 주목들 모습

 

주목은 그 자람이 느린 성질 때문에 큰 나무로 자라는 데 100년은 넘어 걸리고 곧잘 수백년 동안 자라는 개체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수명을 다한 뒤에도 그 나무가 단단하고 조밀한 덕분에 잘 썩지 않아서 이른바 높은 산의 정취를 높여주는 오래된 ‘고사목​(枯死木)’들의 대부분도 바로 이 주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예찬하는 글로서 남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표현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눈 덮인 소백산에 올라 주목의 고사목들의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것이 필자에게는 버킷 리스트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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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2일 오른 덕유산 정상 근처의 고사목이 정취를 더해준다.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주목은 비교적 작지만 제법 훌륭한 수형을 자랑합니다. 안정적인 원뿔꼴의 나무로 아래까지 잎을 덮고 있는 모습이 아담하지만 힘도 있어 보이지요. 주목의 잎은 조금 도톰한 바늘 모양으로 가지 양쪽에 줄을 서서 빼곡히 달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다지 뾰족한 침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느낌을 주지요.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군자 나무인 주목은 그늘 속에서도 지나가는 작은 햇빛이라도 잡아서 광합성을 하려고 잎에 클로로필을 잔뜩 머금어 짙은 녹색을 띠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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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3일 탐방한 창덕궁 후원에서 발견한 오래된 주목의 모습

 

대부분의 침엽수들이 종자를 담을 열매를 솔방울의 형태로 달고 있는데 주목은 특이하게도 먹음직스러운 모습의 빨간 열매를 맺습니다. 묘한 것은 그 빨간 열매 한가운데에 종자가 거의 밖으로 드러나 있는 점인데, 씨방이 드러나 있다 해서 나자식물이라 불리는 침엽수의 특성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필자가 가장 인상적으로 열매를 본 것은 세종시에서 근무할 때 2015년 9월 7일 다른 기관장과 함께 오찬을 하기 위해 들른 세종시 근처 산채 전문 식당에서 나물처럼 주목 열매를 내놓은 경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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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25일 새벽에 들른 지산퍼블릭CC의 주목의 열매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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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27일 세종시 근처 산채 음식점에서 내어놓은 주목 열매와 잎.

 

주목 이름의 '朱'자는 붉을 주입니다. 빨간 열매 때문이 아니라 이 나무가 나이가 들면 등걸이 벗겨지는데 그 자리가 상당히 붉은색을 띠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쉽게도 주변에서 만나는 녀석들은 그 모습을 잘 보여주지 못하고 위에서 언급한 700m가 넘는 높은 산에서 자라는 고목들이 참으로 붉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소백산, 덕유산 정상 근처에서 만난 주목들의 등걸 색깔이 바로 그 붉은 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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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1일 방문한 시립대 캠퍼스 안의 주목: 필자가 본 등걸 중 가장 붉은 빛으로 보인 나무이다.

 

주목은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주목은) 유방암, 인후암, 후두암에 잘 듣는 독성 물질인 ‘탁솔’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국립수목원장을 지낸 이유미 선생은 그 함유량이 너무 적어서 100년 정도 자란 주목 1만2천 그루를 베어야 겨우 2kg의 탁솔을 얻을 수 있으므로 그 실질적인 가치는 떨어진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필자도 이런 이유미 원장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주목의 참 가치를 자연 속에서 찾는 노력이 더 커져야 하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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