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국의 문화전망대 <6> “테스 형, 정치가 왜 이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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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의 은퇴 공연 발언
며칠 전 은퇴 무대에서 가수 나훈아(78)는 요즘 혼란스러운 시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 정치논쟁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트로트 가황(歌皇)의 은퇴 공연이 정치적 공방에 파묻히는 바람에 그의 기념비적 ‘음악 인생 58년’의 문화사적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아 아쉬웠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오늘날 우리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발신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은퇴 무대에서 남긴 그의 발언과 이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을 재구성해보면 어느 정도 드러난다.
나훈아는 1월 10일 은퇴 무대에서 최근의 정치 상황을 두고 “왼쪽이 오른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생난리다”라고 말한 뒤 왼쪽 팔을 가리키며 “니는 잘했나”라고 쏘아붙였다. 해당 발언이 알려지며 화제가 되자 정치권, 특히 야권 인사들을 중심으로 SNS에 잇달아 비판적 언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왼쪽이 잘한 게 없으니 비상계엄도 그냥 넘어가잔 건가”, “양비론으로 물타기 하고 사회 혼란을 부추길 일이 아니다” 등.
나훈아는 이런 야권 인사들의 비판에 대해 다시 1월 12일 무대에서는 “왼쪽이 오른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막 그런다. 그래서 내가 ‘니는 잘했나!’라고 한 거다”라고 했다. 그는 “이게 무슨 말이냐면, ‘그래 (오른쪽도) 별로 잘한 게 없어. 그렇지만 니는 잘했나’ 이런 이야기다”라며 이틀 전(1월 10일) 발언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이걸로 또 딴지를 걸고 있다”면서 “오늘 마지막 공연이니까 속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작심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안 그래도 작은 땅에서 선거할 때 보면 한쪽은 벌겋고, 한쪽은 퍼렇고,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거다”라면서 “1년만 내게 시간을 주면 경상도 출신은 전라도에, 전라도 출신은 경상도에서 국회의원에 나가도록 법으로 정하게 하겠다. 동서화합이 돼야 한다. 우리 후세에 이런 나라를 물려주면 절대 안 된다. 갈라치긴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훈아는 결국 여야 모두를 겨냥해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정치, 국민통합과 화합의 정치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훈아는 이날 은퇴 무대에서 자신의 ‘58년 음악 인생’ 동안 박정희부터 윤석열까지 바뀌어온 대통령 11명의 얼굴을 LED 화면에 띄우기도 했다. 이는 자신의 활동기간이 그만큼 오래됐음을 나타내려 한 의도였지만, 이것도 ‘정치 무상’ ‘권력 무상’의 메시지를 발신하려 한 것으로 보여진다. 당대에는 서슬 퍼렀던 정치 권력도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니 너무 목매달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 추석 콘서트에서도
이번 은퇴 무대만이 아니었다. 나훈아는 2020년 9월 추석 비대면 콘서트에서도 정치적 발언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당시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극심했던 시기에 KBS 2TV를 통해 방송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공연에서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나라를 지킨 것은 보통의 우리 국민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정치적 의도를 부인하며,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을 향한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였다고 밝혔다. 이때 그는 신곡 ‘테스 형’을 불렀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테스 형’이라고 부르며 ‘세상은 왜 이래’ ‘사랑은 또 왜 이래’라고 푸념하는 곡이다. 이 노래는 ‘라톤(플라톤) 형’ ‘맑스(마르크스) 형’ 등의 패러디가 등장하는 등 밈(모방과 복제로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으로 당시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모았다.
일관된 그의 정치 메시지
하지만, 2020년이나 지금이나 그의 정치적 메시지는 분명하다. 일관되게 그는 ‘국민 중심의 가치관’을 강조했다. 국민이 권력에 종속돼 정치인에게 휘둘리지 말고 주권자로서 자신의 정치적 위치를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이 국민을 무섭게 여기도록 해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또 정치인은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국민을 갈라치기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작금의 어지러운 정치 상황을 나름의 통찰력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의 노랫말을 빌리자면, 그는 “테스 형, 정치가 왜 이래”라고 절규하는 것 같다.
이를 통해 나훈아는 단순한 대중가수를 넘어서, 사회적 공감과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는 시대의 거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발언은 은퇴 공연에서의 '작별 인사'를 넘어 국민과 정치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팬 앞에 무릎 꿇은 거장
호랑이 같은 카리스마를 뿜어내던 가황도 은퇴 공연 말미에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무대에서 무릎을 꿇은 채 한평생 자신을 지지해 준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 행위도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언제 우리 정치인은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을 이렇게 존중해준 적이 있었던가. 오늘날 우리 정치가 나훈아에게서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영혼의 모습
나훈아는 은퇴 무대에서 “그동안 안 해본 것 해보고, 안 먹어본 것 먹어보고, 안 가본 데 가보려 한다”면서 “장 서는 날 막걸리와 빈대떡을 먹는 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조만간 시골장터에서 은발을 휘날리며 막걸리와 빈대떡을 먹는 자유로운 영혼의 그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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