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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과 복지 마피아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5년03월10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3월10일 10시52분

작성자

  • 옥동석
  • 인천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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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학계와 시민단체(대표적으로 경실련)는 정부회계에 발생주의를 도입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기존 정부회계는 현금주의였기에 현금지출입이 없으면 회계처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장의 현금지출이 없더라도 지출의무가 발생했다면 반드시 이를 회계처리하여 장래의 지출에 대비해야 한다. 발생주의는 현금지출입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의(또는 자산과 부채의) 변화를 기록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다. 정부가 발생주의에 따라 지출의무에 상응하는 충당부채를 인식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정부는 유동성 위기에 빠지고 정부가 약정한 재정적 의무들을 이행하지 못하여 ‘국가’라는 ‘사회계약’ 자체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2007년 ‘국가회계법’을 제정하여 정부회계 전 범위에 발생주의를 도입​

이러한 경고가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으면서 정부는 2007년 ‘국가회계법’을 제정하여 정부회계 전 범위에 발생주의를 도입하였다. 정부는 2011 회계연도부터 자산과 부채를 기록하는 재정상태표를(기업의 대차대조표에 상응하는) 작성하여 국회에 제출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재정정보는 ‘장기충당부채’인데, 이는 ‘과거 사건이나 거래의 결과로 인하여 국가가 부담하는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자원이 유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금액’을 보고하는 것이다. 당장의 현금지출은 아니지만 장차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장기충당부채를 인식하는 것은 재정건전성 관리에 매우 긴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정부부문 장기충당부채의 대부분은 정부의 직접 고용 인력들에 대한 지급의무​

정부부문에서 발생하는 장기충당부채의 대부분은 정부가 직접 고용하는 인력들에 대한 지급의무이다. 정부 종업원들이 –공무원, 군인, 공무직근로자- 퇴직하면 정부는 이들에게 연금(공무원과 군인), 퇴직수당(공무원과 군인), 퇴직급여(국민연금 대상인 공무직근로자)를 지급해야 한다. 따라서 이들이 근무하는 동안 정부는 장차 이들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을 연금충당부채, 퇴직수당충당부채, 퇴직급여충당부채로 각각 평가하여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정부는 이들을 매년 평가하고 있는데, 2023년말 이들 전체의 GDP대비 비율은 53.4%(각각은 51.2%, 2.2%, 0.03%)에 달한다. 이들을 제외한 국가채무 비율이 46.9%임을 감안한다면 이 규모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심각한 수치이다. 

 

4대 공적연금 중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충당부채만을 인식하고 국민연금과 사학연금의 충당부채를 인식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4대 공적연금 중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충당부채만을 인식하고 국민연금과 사립학교교직원연금(이하, 사학연금)의 충당부채를 인식하지 않는다. 국가결산보고서는 그 이유를 “첫째, 공무원과 군인이 제공한 근로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국가가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을 제공하고 있으며, 둘째, 이 제도의 재원 부족에 대하여 국가가 보전할 의무를 법률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충당부채는 정부의 직접부채이기 때문에 재무제표의 본문에서 그 금액을 평가하여 인식하지만, 국민연금과 사학연금의 충당부채는 정부의 우발부채이기 때문에 굳이 그 금액을 평가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회계처리는 발생주의 도입의 근본 취지를 망각하는 것​

정부의 이러한 회계처리는 발생주의 도입의 근본 취지를 망각하는 것이다. 연금충당부채는 연금제도로 인해 지금까지 발생한 지급의무의 현재가치를 평가한 값으로, 그 어떤 연금이건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이다. 설령 연금의 종류에 따라 정부의 직접부채와 우발부채를 구분하는 것은 법적 경제적인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국민연금과 사학연금의 충당부채 규모를 평가하지 않는 것은 –그것도 차별적으로- 정부가 이들에 대한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기하는 것이다. IMF의 재정통계지침도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제도의 연금충당부채를 우발부채로 간주하지만 그 규모를 주석에서 분명하게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IMF, Government Finance Statistics Manual 2014, 문단 7.261).

 

지금까지의 정부회계 관행은 연금개혁에 대한 국민의 판단을 흐리고 있다

국민연금과 사학연금의 충당부채 규모를 추정하지 않는 지금까지의 정부회계 관행은 연금개혁에 대한 국민의 판단을 흐리고 있다. 2024년의 국민연금 개혁 논의에서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의 다양한 시나리오별로 연금충당부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는 제1안과 제2안의 차이를 주로 기금고갈 시점으로 설명할 뿐 연금충당부채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설령 두 안의 기금고갈 시점이 동일하다 하더라도, 연금충당부채의 규모가 서로 다르다면 당연히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율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는 2025년의 국민연금 개혁 논의에서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급기야 ‘재정안정파’로 불리는 연금연구회는 다양한 시나리오별 ‘미적립 연금부채’ 규모를 추정 공개하였다. 여기서 ‘미적립 연금부채’란 ‘연금충당부채’(장차 지급해야 할 연금의 현재가치)에서 연금적립금(평가시점까지 적립된 보험료 수입과 투자수익)을 공제한 금액을 말한다. 이는 장차 보험료 수입으로 보전해야 할 사실상의 부채인 것이다. 다음의 표는 보험료율을 현재의 9%에서 13%로 인상하는 것을 전제로, 소득대체율 40~50%의 다양한 시나리오별 미적립 연금부채 규모를 보여주고 있다. 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제1안(소득대체율 40%)에서만 미적립부채가 현재보다 어느 정도 줄어들 뿐 그 외의 안들에서는 대체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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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재정은 이를 보전할 여력이 없​어

이렇게 미적립부채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소위 ‘소득보장파’로 불리는 복지학자들은 소득대체율 44% 이상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국민연금에 대한 국고지원을 법률로 의무화하면 국가재정에서 미적립부채를 보전할 것이기에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국가재정은 이를 보전할 여력이 없다. 표의 마지막 행에서 보는 것처럼, 국회예산정책처의 장기재정전망은 2050년 GDP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07.7%로 급증한다고 추정한다. 이는 대부분 복지지출 등 의무지출 증가에 기인하는데, 국민연금에 대한 재원보전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조건을 전제하고 있다. 만약 ‘소득보장파’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적립부채를 국가재정에서 모두 떠안게 된다면 2050년 국가채무 비율은 제1안에서도 210%에 달한다. 

 

국가재정이 수행해야 할 역할과 기능이 너무 많기 때문​

장기재정전망이 국민연금의 적자보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데도 이렇게 비관적인 것은, 그만큼 국가재정이 수행해야 할 역할과 기능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국방, 외교·통일, 공공질서·안전, 일반·지방행정, 교육,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보건·복지·고용, SOC, 농림·수산·식품, 문화·체육·관광, 환경, R&D 등 모두가 국가재정의 기본적 기능이다. 더구나 국가재정은 끊임없이 재물이 솟아나는 화수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뼈아프게 지켜내야 할 공유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국가재정의 공유지에서 우리 모두가 더 많이 누리고자 약탈적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면, 마침내 우리 모두는 공멸하는 '공유지의 비극'에 처할 것이다. 

 

복지 마피아의 등장

국가재정의 공유지에서는 수많은 이익집단들이 국가 공동체의 파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언론은 이들을 지금까지 ‘마피아’라고 불렀는데, 우리가 접했던 ‘마피아’들은 매우 다양하게 존재한다. 금융마피아, 관료마피아, 도로마피아, 철도마피아, 건설마피아, 원전마피아, 노조마피아, 시민단체 마피아, 교육마피아, 방산마피아, 의료마피아 등 국가재정에서 더 큰 몫을 차지하고자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의 연금개혁에서는 또 다른 마피아가 등장하고 있다. 각종 연금은 여러 세대에 걸쳐 그 자체로 수지균형을 이루어내야 하는데, 미래세대로 빚을 떠넘기며 그 빚은 국가(재정)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는 복지 전문가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현재 문제는 현재 세대의 책임

우리가 재정 공유지의 비극을 피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익집단들을 견제하여 이들이 자기책임을 느끼며 우리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헌신할 수 있도록 재정 거버넌스를 만들어내야 한다. ‘소득보장파’가 우려하는 것처럼 노인빈곤율을 낮추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면 그것은 국민연금이 아니라 당장의 조세와 지출조정으로 해결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개인들이 미래를 대비하고자 저축하는 사회보험이기에, 현재의 노인빈곤 해소는 현재의 조세를 인상하거나 현재의 다른 용도 재정투입을 전환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현재의 문제는 현재의 세대가 책임지도록 하는 세대별 책임원칙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연금개혁의 궁극적 목표

국가재정을 이렇게 포괄적으로 조망한다면, 연금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4대 공적연금의 미적립 연금부채를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특히 적립금이 고갈되었을 때 연금 적자를 보전하기 위한 채권발행이 국내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미리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 높은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이러한 분석들이 엄밀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지기 어렵다면, 미적립 연금부채를 당장 더 많이 또 지속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이 –기존 연금수급자의 희생도 필요하고, 자동안정장치도 필요하다- 최선의 방책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4대 공적연금 사이의 형평성을 보장하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은 국민연금과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 국민연금과 퇴직금(또는 퇴직연금)을 보유하는데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에서는 이 두 가지 성격이 혼재되어 있다. 이들 직역연금에서 국민연금 성격과 퇴직연금 성격을 구분회계하고, 국민연금 성격의 연금에 대해서는 국가의 지급보증을 모두 폐지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들도 국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전 국민과 함께 국민연금의 위험을 분담해야 한다. 물론 국민연금 성격을 제외한 퇴직연금 성격의 연금에 대해서는 그 관리의 책임을 국가, 지자체, 교육청, 사학단체 등으로 분리하는 것이 연금재정의 자기책임과 형평성에 가장 부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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