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행정부의 대외정책 전망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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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 기조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대선 레이스 과정에서 ‘초접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혼전을 거듭하던 판세와는 달리 트럼프는 카멀라 해리스를 상대로 압승을 거두었다. 트럼프가 다툼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실한 승리를 거둔 탓에 개표도 예상보다 빨리, 그리고 조용히 끝났다. 이번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의회 선거에서도 공화당은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을 장악했다. 결과적으로 공화당 대통령에 의회도 공화당이 장악한 ‘단점정부(united government)’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내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트럼프 1기에 비해 매우 강력한 정책 추진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2기 집권기 동안 자신의 레거시를 남길 어젠다를 마음껏 밀어부칠 수 있게 됐고, 사실상 트럼프의 독주를 제지할 아무런 제동장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현행 국제정치의 성격과 그 속에서 미국의 역할을 보는 시각 자체가 대조적이다. 우리가 익히 알던 규칙기반 국제질서의 주도자, 혹은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고립주의로 나갈지 선택의 기로에서 미국인들은 공화당이 내세우는 미국우선주의를 선택한 것이다.
민주당의 정강정책은 공화당에 비해 국제적 관여와 동맹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민주당 정강은 외교정책과 국내적 도전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하에 미국의 세계적 리더십 회복에 중점을 둔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이 동맹 및 우방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미국이 오히려 더 고립되고 경제는 침체되었고 안보는 불안해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트럼프가 추구하는 미국 우선주의 외교의 핵심은 기존 글로벌(globalist) 외교를 탈피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공화당은 트럼프 이전의 미국 외교가 민주·공화 할 것 없이 글로벌 외교였고, 이는 미국의 국익에 직접 이익이 되지 않는 국제분쟁에 끝없이 개입하고 글로벌 제도를 국가보다 중시하는 특징을 보였다고 비판한다. 트럼프는 미국의 국익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 해외 군사활동에 미국인들의 세금을 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잘 알려진대로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모든 문제를 거래적 접근(transactional approach) 관점에서 바라보며 본능적으로 손해 보는 거래를 거부한다. 트럼프는 대외관계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고 다른 나라들만 이익을 취하는 불균형 구조를 시정하는데 중점을 두겠다는 입장이다. 그가 말하는 미국과 세계 사이의 불균형 구조란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막대한 미국의 무역적자를 말하며 군사·안보 분야에서의 불균형은 미국 동맹국들의 불충분한 안보 기여(미흡한 방위 분담, GDP 2%에 못 미치는 국방비 지출)를 말한다. 이는 중국 같은 적대국에 대해서는 물론, 한국, 일본 같은 가까운 동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리다. 동맹에 관해서 트럼프는 이를 활용해야 할 안보 자산(asset)이라기보다는 미국의 부담(burden)이라는 인식을 갖고있다. 이는 해리 트루먼부터 조 바이든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동맹을 전력증강(force multiplier) 요소로 보던 시각과 완전히 상반되는 시각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외교안보 분야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예상된다. 트럼프의 복귀는 사실상 2차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건설된 규칙기반 국제질서의 종언과도 같다. 금년 7월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NATO 창설 75주년 기념행사를 주관했다. NATO는 지난 75년간 미국 글로벌 리더십의 상징으로서, 그리고 강대국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한편 민주주의 방어의 초석으로서 기능해왔다. 트럼프 당선자는 이러한 질서 유지를 위해 더 이상 미국인들의 세금을 쓰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천명했고, 오늘날 세계경제의 번영에 기여한 자유무역제도를 관세장벽으로 대체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아직 미국의 민주주의 동맹국들 중 일부는 여전히 미국의 핵우산에 의지하고 있는데, 이들이 믿는 핵우산은 미국 새 대통령의 변덕에 따라 언제든지 거둬질 수 있는 처지가 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그의 2기 취임식에서 ‘모든 국가, 모든 문명권에서 민주주의 성장을 추구하고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임무이다’라고 했던 민주주의 확산도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공식적으로 종언을 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취임하게 되면 한국은 특히 세 가지 어려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한미동맹과 대북정책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방위비 분담 증액 요구가 확실시되고 대북정책에서는 북미 직접 대화를 통한 알맹이 빠진 핵 타협 혹은 거래 가능성이 우려된다. 둘째, 한미 경제관계의 조정 요구다. 특히 한국의 막대한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한 FTA 추가 재협상 가능성, 인플레감축법(IRA) 폐기로 인한 경제안보 협력 차질 발생이 우려된다. 셋째, 미국의 대중국 압박에 한국의 동참 요구가 커질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대중국 압박에 가담할수록 부수적 피해는 불가피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어떤 인물들이 들어갈지도 중요하다. 현재 트럼프 주변에는 세 그룹의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첫째 그룹은 미국의 압도적 우위, 지배적 위상을 중시하는 미국우위파(Primacist)들이다. 마이크 폼페오 전 국무부장관이나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국의 전통적 영향력 우위를 중시하는 인물들이 이에 속한다. 둘째 그룹은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를 구분, 아시아, 특히 중국에 집중하자는 우순순위파(Prioritisers)들이다. 프레드 플라이츠 미국우선주의연구소 부의장,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부차관보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셋째는 불필요한 국제문제 개입을 자제하려는 고립주의자(Isolationists)들이다. 리차드 그리넬 전 국가정보국장 대행, 키스 켈로그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 중 어느 그룹이 중용될지, 그리고 그 중에 아시아 및 한반도 전문가가 얼마나 포함될지가 중요하다. 이들이 국제질서에 대한 포용적 시각을 가질지, 아니면 더욱 공세적인 미국 우선주의를 추구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트럼프 1기 때 참여했던 균형감 있는 인사들 상당수가 퇴진했고, 트럼프 2기는 그가 불신하는 직업관료들이 배제되고 트럼프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거 참여할 것으로 가정한다면 트럼프 2기는 1기의 확대재생산 버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의회까지 장악한 공화당의 지원 아래 트럼프 2기는 더욱 무모한 추진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 주요 외교정책 이슈별 현안과 전망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하면 미국의 대외정책과 글로벌 정세에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첫째, 현재 진행 중인 글로벌 핫스팟 발화점들이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우크라이나 관련, 트럼프는 본인이 취임하면 24시간 내에 러-우전쟁을 끝내겠다고 호언하고 있다. 트럼프는 신속한 종전 합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러시아가 점령한 동부 지역 영토 포기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미군의 개입 없이 외교적 해법을 통해 빠른 종전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일거에 중단하여 우크라이나가 불리한 조건에서 종전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되면 미국과 NATO 사이의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또 다른 핫스팟인 중동에서 아마도 트럼프 승리를 가장 반길 사람 중 하나는 이스라엘의 벤자민 네타냐후 총리일 것이다. 이스라엘 우파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가자 지구에 유대인 정착민을 재이주하는 정책을 지지하고 이란에 대해 더 강경한 군사작전도 지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는 2017년 6일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스라엘 수도를 이전하는 데 찬성했던 인물이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는 자신이 집권하면 조 바이든 대통령처럼 대만을 방어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대만을 지원하는 경우에도 대만이 비용을 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대만의 독립 추구 움직임은 약화되고 트럼프 시기 양안관계는 다소 긴장이 완화될 전망이다.
둘째, 국제 통상무역 환경은 세계적으로 보호주의 성향이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리스와 트럼프의 경제정책은 외견상 차이가 커 보이지만 실상 민주당, 공화당 모두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미국우선주의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미국우선주의는 되돌릴 수 없는 미국 사회의 변화를 대변하며, 미국 언론은 이를 미국 정책의 트럼프화(Trumpification)라고 부른다. 미국의 통상정책은 팬데믹 이후 집권당에 상관없이 보호무역 성향이 강화되는 추세이다. 다만 트럼프는 관세, 바이든은 보조금을 주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차이뿐이다. 트럼프는 국내 제조업 활성화와 보호에 중점을 둔 ‘경제적 민족주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미국의 무역 관계와 협정이 미국 경제에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이익이 되도록 조정하는 한편 무역 협정이나 관행의 부적절성, 불공정성 개선을 강조한다. 트럼프의 주장에는 미국 시민의 제조업 일자리 감소와 산업 손실에 대한 우려와 반감이 반영돼 있다. 트럼프는 석유, 천연가스, 원자력 등 모든 에너지 생산 증대를 위해 민주당이 중시한 에너지 관련 규제 전면 해제를 약속했다. 또한 트럼프와 공화당은 인플레감축법(IRA)에 부정적인 입장이며 여러 차례 이의 폐기를 공언한 바 있다.
셋째, 중국 정책은 더욱 강경해질 전망이다. 트럼프의 대중국 정책은 거래적이며 즉각적인 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화당에게 중국은 반드시 경쟁에서 이겨야 할 대상이며, 서구사회 전체에 대한 문명적 도전(civilizational challenge)이다. 트럼프는 미국이 수입하는 모든 물품에 보편관세 10%, 중국에 대해서는 60~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고, 멕시코를 통한 중국의 우회수출도 강력하게 통제한다는 입장이다. 그의 중국 관련 공약에는 중국의 항구적 정상무역관계 지위(PNTR) 철회, 중국산 필수 재화(전자제품, 철강, 의약품) 수입 단계적 중단, 중국인의 미국 부동산 및 기업 구매 금지, 중국산 차량 수입 금지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강경 일변도 공약과는 달리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트럼프 측근들 사이에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전 국방부 부차관보는 유럽으로 분산된 미국의 자원을 인도·태평양으로 결집, 중국에 초점을 두는 공격적 접근을 주장한다. 맷 포틴저 전 NSC 선임보좌관은 보다 장기적인 전략 투사를 강조하며, 즉각적인 충돌을 회피하면서도 준비태세를 견고하게 할 수 있는 신중한 접근을 강조한다. 트럼프의 대중국 정책은 경쟁과 협력의 공존을 지향하고,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de-risking)을 선택한 바이든 행정부에 비해 훨씬 강경한 내용을 담고 있다.
넷째, 대북정책의 변화이다. 해리스의 대북정책은 현행 바이든 행정부 정책을 대부분 승계하여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국을 포함한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을 통한 견제와 억제력 강화로 요약된다. 김정은과의 정상회담도 필요할 경우 실무차원의 철저한 준비를 거쳐 바텀업(bottop-up) 방식으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여전히 개인외교(personal diplomacy)를 통한 빅딜에 우선점을 두고 있다. 트럼프는 그동안 수 차례 본인이 권위주의 국가들의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자랑하면서 “김정은과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트럼프 2기에서 북한의 핵보유 불용 입장이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그동안 미국 내에서는 사실상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이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고 핵군축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문제는 트럼프와 김정은 간의 빅딜이 비핵화 관련 알맹이는 빠진 채 보여주기식 회담으로 끝날 가능성이다. 그럴 경우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게 되는데, 이는 한국으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진전이다. 또 다른 변수는 트럼프가 다시 한번 김정은 위원장에게 러브레터를 보내더라도 이에 호응할지 여부이다. 이미 싱가포르와 하노이, 그리고 판문점에서의 깜짝 만남까지 세 번의 미북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실상 북한이 얻은 건 아무것도 없다. 트럼프 측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탐스러운 제안을 하지 않는 한 북한이 트럼프의 초대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한미관계에 미칠 영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한미동맹이 이미 굳건한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진화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으나 트럼프 2기가 시작되면 실무 차원의 정책적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2기에 한미관계는 세 가지 어려움이 예상된다. 우선 방위비 분담 증액 요구다. 트럼프는 유세 중 한국에게 방위비 분담 9배 증액을 요구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는 분명히 비현실적 요구이며, 선거용 레토릭으로 보이지만 일부 증액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미 양국은 최근 2026~2030년 기간에 적용될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타결했다. 이에 따르면 2026년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보다 8.3% 인상한 1조 5192억 원으로 합의하고, 향후 물가상승률에 연동해 분담금을 인상하기로 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자가 이 합의를 무시하고 재협상을 지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 방위비 분담 문제에 대해 우리도 거래적 관점을 적용해 방위비 분담을 증액하되 우리가 챙길 것은 챙기자는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만일 트럼프 당선자가 재협상을 요구하면 한국은 신의성실 입장에서 협상에 임하고 합리적인 수준을 제시하면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래로 본다면 우리도 반대급부로 요구할 리스트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요구 사항은 원자력 농축 및 재처리 권한 확보, AUKUS 선례를 따라 핵추진 잠수함 요구, 방산협력(특히 군함, 항공기 정비 등 MRO 분야) 등을 꼽을 수 있다.
또 다른 변화는 통상무역 관계 변화다. 한국 기업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CHIPS and Science Act와 인플레감축법(IRA)에 따라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등 핵심 분야에서 대규모 미국 투자를 결정했거나 추진 중에 있다. 2022년 8월에 제정된 CHIPS and Science Act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내 반도체 생산 확대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기술 연구에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다는 것이다. 인플레감축법은 2022년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고자 정부 지출을 줄이자는 취지로 제안된 법안이지만 환경 규제 관련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만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IRA를 폐기하거나 공급망의 프렌드쇼어링을 더욱 강화할 경우 한국 기업들의 어려움은 커질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대중 강경 무역 조치로 한국이 부수적(collateral) 피해를 입는 경우도 빈발할 것이다. 미중간 지정학적 긴장으로 인해 매우 민감한 첨단 분야에서 중국에 많이 투자했던 한국 기업들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미 의회는 대중국 강경정책에 대한 초당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전방위적인 견제 법안들을 추진 중이다. 의회에서 거론되는 주요 대중국 견제 수단은 고율의 관세조치, PNTR 지위 철회, 멕시코 등을 경유한 우회수출 방지, 무역구제 법제 강화, 무관세 최소허용 기준 변경(최소허용기준은 일부 역외산 원재료가 기준 비율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완제품의 금액 또는 중량 대비 일정 비율 범위 내에 들어오는 원재료라면 완제품 원산지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 등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대중국 강경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미·중 사이에 낀 한국 기업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 한국에 대한 시사점 및 우리의 대응 방향
지금은 한국에게 유례없는 위기의 시대다. 국내정치, 글로벌 상황 모두 우려스런 징후들이 넘쳐 난다. 최근 글로벌 차원의 지정학적 상황은 매우 혼란스럽다. 파편화된 세계질서 하에서 새로운 진영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글로벌 곳곳에서 다양한 갈등과 충돌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증대하는 추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심해진 국제체제의 분절화(systemic fragmentation), 혹은 파편화된 국제질서 도래로 모든 국가들이 자국 이익 위주로 격돌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촉발된 국제공급망 교란, 지정학의 귀환, 강대국 경쟁의 재현, 국제제도와 레짐의 기능부전, 글로벌 거버넌스의 난맥상 등이 이런 환경을 조성하는 요인들이다. 이를 배경으로 이미 진행 중인 미중 전략경쟁에 더하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격 침공은 서구사회의 단합된 대응을 초래해 세계질서가 빠르게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체제의 대립 구도로 재편되는 중이다. 더 나아가 세계는 미국과 서구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웨스트(Global West), 중·러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이스트(Global East), 그리고 인도, 브라질 및 중간지대의 나머지 다양한 비서구 발전도상 국가들을 포함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로 삼분되는 양상이다. 현재 국제질서의 핵심은 글로벌 웨스트와 글로벌 이스트 사이의 경쟁, 특히 미중관계이다. 미중관계는 정치와 경제, 이념과 체제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당분간 적대적 경쟁관계가 지속될 전망이며, 글로벌 사우스를 상대로 경쟁적 ‘세 결집’(coalition building)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파편화와 진영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글로벌 및 아태지역의 다양한 발화점(flash point)을 둘러싼 돌발사태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홍해 민간 상선에 대한 후티 반군의 공격 여파로 대만해협 및 남중국해의 군사적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북한 핵위협의 급진전에 의해 평화프로세스가 붕괴하면서 안보위협이 고조되는 추세이다.
이처럼 2024년 국제정세는 당분간 뚜렷한 글로벌 리더십이 부재한 가운데 모든 국가들이 자국의 안보와 경제 이익 확보를 최우선시하는 추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지금은 세계 전체가 하나의 전역(戰域)으로 연결되고, 지구촌 그 누구도 타 지역의 전쟁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 결과 우리가 알고 있던 2차대전 이후 형성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혹은 규칙기반 국제질서는 현재 새로운 신양극체제, 혹은 새로운 다극체제 질서로 전환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2기는 세계질서를 그런 방향으로 더욱 확실히 이끌고 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러한 글로벌 정세에 더하여 트럼프 2기가 초래할 한미관계의 여러 불확실성과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 상기했듯이 당면한 이슈는 방위비 분담 문제와 북미간 직접 핵 타협 혹은 거래의 위험성, 한미 경제통상 관계의 조정, 미국의 대중국 압박에 한국의 동참 요구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렇게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지배적인 상황에서는 균형감과 탄력적 대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은 미국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자유, 평화, 번영의 국가안보전략 추구를 통해 미국과의 가치외교 공통분모 확대를 지향해야 한다. 그와 함께 한미동맹에 더하여 유사입장(like-minded) 국가들과의 네트워킹 확대, 중견국 연대력(coalitional power)을 잘 활용해야 한다. 국제정세가 불확실할수록 균형과 탄력성(resilience)에 기반한 유연한 전략적 스탠스를 잘 유지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지금부터 내년 1월 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취임할 때까지 약 2개월 반 정도가 인수위가 활동하는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트럼프는 국가안보와 정보, 주요 현안 등에 관해 브리핑을 받게 되는데, 이 기간 중 한미동맹 현안과 안보상황, 한국이 가진 우려를 트럼프 진영에 가감없이 전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트럼프 2기 출범을 기다리지 말고 트럼프 2기 출범 전이라도 한미간 공감의 폭을 넓히기 위해 대미특사 파견 등 접촉면을 넓히는 한편 가능한 다양한 계기에 우리 정부 차원의 정보가 미국 새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비록 미국 대통령의 권한이 압도적이지만 미국 외교에서는 행정부 못지않게 의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의회도 공화당이 지배하는 상황이 되긴 했지만, 의회는 지역구와 이슈별로 대통령과 입장이 반드시 같지만은 않다. 예를 들면 트럼프가 폐기를 공언하는 IRA의 경우 실제로 대다수의 투자는 공화당 우세 지역에서 이뤄졌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IRA 계기 법안을 내더라도 의회가 이를 막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행정부와는 별개로 대의회 외교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행정부 차원에서는 국무부와 국방부 등 동맹과 외교를 실제 담당하는 부서들과의 협업체제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실상 행정부 내 실무부서의 입장은 여전히 동맹을 중시하고 비확산 외교 등 기존의 업무를 지속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실무 부서 차원의 교류와 협력이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배전의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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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한 [세종포커스] (2024.11.12)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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