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동의 문화시평 <44> 문화로 지역을 살리는 일의 수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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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전남 광양에 지역미술인들의 행사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전남도립미술관에서 가진 학술행사에 함께 초대받은 P 교수로부터 AI가 미술 분야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순천이 고향인 P 교수는 뉴욕주립대학을 졸업한 분으로, 그는 지난 10월 2일 광양에서 개최된 실험적인 영상미술제 《광양·린츠 미디어아트 교류전》의 공동감독을 맡아 행사를 막 끝낸 후였다. 광양시와 오스트리아 린츠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AEC)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 행사는 광양시의 청사와 시의 유휴공간들에서 개최되었다. 이 행사는 오스트리아 작가 수시 구츠제(Susi Gutshe)와 이이남 등 국내 작가 6명을 초대한 전시로 세미나를 곁들인 매우 실험적이며 알찬 내용이었다. 광양은 린츠와 매년 교류전을 개최함은 물론 AEC와의 협업을 통해 광양을 대한민국 미디어아트의 성지로 만들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다. 부디 성공적인 결과를 기대한다.
사실 광양에서 세계적인 AEC와 협업 전시는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연유를 알아보니 광양과 AEC가 있는 린츠가 자매도시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다. 광양과 린츠는 제철소가 있는 공통점 때문에 상호 간 1991년 국제 자매도시를 체결하여 올해로 33주년을 맞고 있다 한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린츠는 오스트리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전형적인 철강 산업도시였지만 유럽 문화 수도(2009년)와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 도시(2014년)로 지정되는 등 문화도시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린츠는 산업도시였지만 제철산업의 쇠락으로 도시의 생명력을 잃게되었는데, AEC 덕분에 가장 독창적이며 미래지향적인 경쟁력을 가진 도시가 되었다. 매년 새로운 과학기술과 예술을 융합하는 미디어 영상 페스티벌이 열리고, 세계 각국에서 수천 점의 작품이 출품되고 있다. 최고의 영예인 ‘골든 니카(Golden Nica)’상은 “디지털 아트의 오스카상”으로 치부되고 있는데, 작년 한국 작가 김아영이 ‘뉴 애니메이션 아트’ 부문에서 이 상을 받은 바 있다. 이를 계기로 한국 작가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매년 이곳에 큐레이터 연수 지원을 통해 행사의 노하우와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AEC는 1979년 9월에 첫 번째 페스티벌을 시작했다. 당시 젊은 미디어 아티스트와 음악가, 과학자, 방송국 음악 PD 등 네 사람이 가볍게 시작한 것이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페스티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페스티벌은 처음에는 2년마다 열렸고 1986년 이후로는 매년 열리고 있다. 1987년 시작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상(Prix Ars Electronica)’은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으며,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린츠’는 1995년에 유한회사로 설립되었다. 1996년에는 청소년과 일반을 대상으로 한 미래의 교육프로그램인 퓨처랩(Futurelab)이 문을 열었다.
AEC는 여러 기관 및 국가들과 협업을 맺으며 활동하고 있는데, 특히 일본과의 협업은 주목할 만하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저팬(AEJ)’은 2009년경부터 협업이 시작되었는데, 일본 예술가들이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 참여도가 높고 다수의 작가가 수상한 바 있다. AEJ는 일본을 위해 교육 및 문화 프로그램, 컨설팅 및 미디어 아트와 관련된 고급 연구를 실천한다. 시민, 일본 크리에이터, 교육 공공 기관 및 산업과 함께 미래 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창의적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AEJ는 일본과 린츠 간의 창의적인 프로그램의 교류를 통해 역동적인 상호 작용을 만들어 왔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프로젝트는 문화적 이니셔티브, 컨설팅, 연구 및 개발에서 교육적 계획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활동을 포괄하고 있다. 문화적 구상은 다양한 지역의 예술가 및 시민들과 함께 미래 사회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문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도쿄의 미드타운에서 열리는 ‘미래를 위한 학교’, 도쿄 인근 마츠도(松戸)의 토조가오카역사공원(戸定が丘歴史公園)에서 열리는 《마츠도국제과학예술축제》, 오사카의 ‘지식의 수도’ 등 린츠에서와 같이 독특한 프로그램이 일년내내 실현되고 있다.
또한 AEJ는 기업 파트너와 협력하여 컨설팅에서 연구 개발에 이르기까지 이슈와 사회적 구현을 추출하기 위해 예술적 관점을 적용한다. AEJ는 일본 통신 회사 NTT와 협력하여 스웜(swarm)디스플레이 봇 시스템을 개발하여 새로운 종류의 스포츠 시청 경험을 만들었다. 세계 최고의 태블릿 제조업체 중 하나인 와콤(Wacom)과 협력한 <Future Ink> 프로젝트를 통해 미래의 창의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또한 일본 최대의 공영 방송 기관인 NHK와 협력하여 차세대 초고화질 TV 기술인 8K 해상도의 창의적인 사용을 탐구하는 연구 프로젝트 등을 수행한다.
역점을 두고 있는 교육프로그램은 미래의 문화 리더를 육성하고 고도로 전문화된 학술 연구를 수행하는 데, 2021년부터 정부의 문화청과 함께 실무 중심의 특별 교육프로그램인 차세대 문화 프로듀서 육성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AEJ는 게이오대학과 협력하여 예술의 비판적 관점에서 현재 사회를 논의하는 『예술 저널리즘』이라는 제목의 과정을 운영하며 또한 일본 최대의 광고 커뮤니케이션 회사 중 하나인 하쿠호도(博報堂)와 협력하여 예술과 예술가의 사고를 사회에 적용하여 사회적 혁신의 행동 기반을 만드는 <예술 사고(Art Thinking) >프로그램을 홍보한다.
린츠의 아르스 일렉트로닉스는 제2의 빌바오 프로젝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쇠락한 도시에 문화로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도시의 경제적 발전은 물론, 미래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미래지향적인 아이템을 선점하여 특화한 결과 오늘에 이르렀다. 광양의 협업프로젝트가 향후 어떻게 발전할지 모르지만,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경우, 몇 사람의 창의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절대 아니며 정부와 지자체, 시민들의 의지와 열정이 종합적으로 이루어 낸 결과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문화도시, 도시재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해 왔고 아직도 유사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지역의 재생이나 발전 전략에 대한 인식이 싹튼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규모 면에서나 특성 면에서 차별화된 내용보다는 획일화되고 유형화된 프로그램들로 채워졌고, 심할 경우, 실질적으로는 지역예술인들의 고용 창출이란 목표로 용두사미가 된 경우가 허다하다. 지역축제에 숱한 재원을 투입했지만, 세계적인 축제 하나 만들어 내지 못했다. 마을만들기 프로젝트는 지역마다 특색 없는 ‘벽화 만들기’ 밖에 떠오르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
고만고만한 내용으로 다양한 요소들을 늘어놓고 취사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광주의 ACC와 같이 대형프로젝트를 목표로 설계된 조직 역시 아직도 제대로 된 정체성 확립이 미흡하며, 특화된 콘텐츠를 생산해 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관 주도형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70%의 응답자가 한국이 문화강국이라 평가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았다. 신뢰하기 어렵지만, 실제 문화강국이라면 그에 걸맞게 좀 더 섬세하면서도 대담한 프로젝트로 지역을 살려야 하지 않을까?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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