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국경조정(CBAM)의 확산, 한국에 위험일까 기회일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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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나 국가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최대한 줄인 후 잔여량을 흡수해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은 파리협정 체제하에서 주류가 되어 가고 있다. 특히 탄소중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국가 간 탄소규제 격차를 관세 등을 통해 조정함으로서 불공평한 산업경쟁력의 일방적 악화를 방지하는 조치들이 주목받고 있다. 바로 탄소국경세를 포함한 탄소국경조정이다.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는 탄소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생산시설이 이동하는 탄소누출(carbon leakage) 문제를 방지하고 EU의 탄소중립 목표인 ‘Fit for 55’(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를 달성하기 위해, EU로 수입되는 철강, 시멘트 등 제품의 탄소 배출량에 EU 배출권거래제와 연동한 탄소 가격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CBAM은 2021년 7월 EU 집행위원회가 처음으로 초안을 제시하였고, 2022년 12월 EU 집행위원회, EU 각료이사회, 유럽의회가 3자협의로 도출한 잠정합의를 통해 CBAM 대상품목과 탄소배출 범위가 확대되었다. 수소의 경우 집행위원회 초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품목이나 잠정합의안에는 추가되었고, 향후 유기화학품 및 플라스틱 등 탄소누출위험이 있는 제품이 지속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원칙적으로 CBAM은 직접배출(direct emission)에 적용되는데, 특정 요건 하에서 간접배출(indirect emission, 제조업체가 사용하는 전기의 생산에 수반되는 탄소배출 등)을 포함시키는 것도 합의되었다.
2023년 4월 25일에는 EU이사회가 유럽의회의 표결을 통과한 ‘Fit for 55’ 정책패키지의 5가지 핵심 법안들을 승인해 CBAM 도입안과 배출권거래제도 개편안이 최종 확정된 후, 5월 관보에 게재되면서 발효되었다. 또한, 동년 6월 13일 EU 집행위원회는 전환기간부터 적용되는 수출품 배출량 보고의무 이행을 위한 방법론을 규정한 CBAM 이행규정(Implementing Regulation) 초안을 발표하였다. 이행규정은 보고항목, 보고절차, 배출량 산정식 등을 규정하고 있고, 도입 첫해인 2024년 말까지는 수출품목에 내제된 배출량을 EU 자체 산정방식뿐만 아니라 한국 등 제3국의 배출권거래제도의 배출량 산정방식도 한시적으로 인정한다. CBAM 이행규정은 7월 중 의견수렴을 마쳤으며 EU 회원국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최종 표결을 거쳐, 8월 17일 EU집행위는 이 이행규정을 채택(adopted)하고, 9월 15일에 EU관보에 게재되었다.
이에 따라 10월 1일부터 시범운영 기간에 해당하는 전환기간(transition period)이 개시되었고, 2026년 1월부터 전환기간의 종료와 함께 본격 시행에 들어가게 된다. 전환기간 중 EU 수출 기업들은 CBAM 대상품목의 제품별 탄소배출량(직접배출 및 일부 간접배출)에 대한 보고의무를 부담하게 되며, 시범운영 기간이 종료된 이후에는 관세 성격의 부담금에 해당하는 CBAM 인증서 구매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전환기간 중에는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기, 수소를 수입하는 EU 역내 수입자가 수입품의 탄소배출량 및 이미 납부된 탄소비용을 보고할 의무를 부과받게 되고, 본격 시행시에는 해당 제품 수입자는 실제 배출량에 기초한 탄소배출량만큼의 탄소 인증서(CBAM certificate)를 구매하고 다음해에 신고 및 인증서를 제출한 후 매년 5월 31일에 정산해야 한다.
CBAM이 점진적으로 도입되는 과정에서 EU 배출권거래제 개편도 병행되었다. 특히, 배출권거래제 무상할당을 2026년부터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될 예정이다. 무상 할당은 철강ㆍ화학ㆍ시멘트 등 EU 내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탄소 배출권을 무상으로 확보함으로써 역외 수출기업과 가격 경쟁 등에서 불리하지 않도록 만든 일종의 보호 장치다. 그러나 CBAM 시행으로 역외 기업들도 EU와 동등한 수준의 탄소 가격을 지불하게 됨에 따라, 역내 무상 할당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2022년 12월 무상할당 폐지를 포함한 EU 배출권거래제 개편안까지 잠정 합의되면서 CBAM 본격적인 시행 시기 등도 확정될 수 있었다.
이러한 CBAM의 등장은 한국에 위험일까 기회일까? 2021년 한국의 CBAM대상 품목 EU 수출 규모는 약 48억 달러에 이르는데, 그 중 철강과 알루미늄의 EU 수출 규모가 각각 43억달러와 5억달러로 거의 대부분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대(對)EU CBAM 품목 내재배출량에 따른 CBAM 인증서 비용 추정치는 2,596억이고, 국제 기후변화 싱크탱크 E3G의 분석에 따르면, CBAM 시행으로 한국이 부담해야 할 금액이 2026년 약 1,300억원에서 2035년 약 4700억원으로 증가한다고 한다. 또한, 2021년 9월까지 1년 간 EU와 한국의 배출권 1일 가격 최대 차이인 55.4달러로 가정하면 알루미늄산업은 21.9%, 철강산업은 20.6%의 EU 수출 감소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산업연구원은 전망했다. 더욱이 2021년 기준 한국-EU 배출권 가격차보다 현재(8월1일기준) 배출권 가격차가(84.6달러) 훨씬 큰 점, 앞으로 대상 제품이 주요 수출품인 석유화학, 자동차, 배터리 분야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으로, 한국의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또한, EU가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하고 합의해 가는 과정에서 WTO 제소 가능성 등을 충분히 고려했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므로, CBAM이 완화되거나 축소 이행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더욱이 우리나라가 2015년부터 시행해 온 시설 단위 배출권거래제와 달리,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제품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해당 제품의 원료 단계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까지 포함해야 하는 부담도 추가됐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탄소국경조정에는 기회도 공존한다는 점이다. 탄소국경조정으로 우리나라 보다 더 부담스러운 나라는 세계 1위 탄소 배출국인 중국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절대적 영향도 중요하지만 수출경쟁국과의 상대적 영향 차이도 중요하다. 미국이 중국의 태양광패널 수입을 규제해 상대적 영향이 덜한 우리 태양광 산업에 도움이 된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각 국가별로 CBAM의 영향에 대해 서로 다른 전망과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EU는 CBAM이 다른 국가 탄소가격제도 도입을 촉진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반면, 미국은 국가별로 탄소가격제도 유무에 따른 제조업에 불공평한 페널티를 부과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중국은 CBAM을 보호주의라고 비판하며 기후협력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고, 브라질은 대상 제품 중 일부는 EU에 수출되지 못하고 다른 지역에 보급되는 해당 지역 산업이 취약해질 것을 우려했다.
국회미래연구원이 발표한 ‘탄소국경조정제도의 영향과 중장기 대응전략’에 따르면, 유럽연합이 수입한 1차 금속 제조업 제품에 포함된 탄소의 규모는 전반적으로 비유럽연합 국가들이 단위 당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이러한 경향은 인도, 러시아, 중국 등 개도국에서 강하게 나타나며 이들 국가는 자국 내 배출량 비중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 유럽연합 국가는 유럽연합 내 교역 비중이 높으나 단위 당 탄소배출량은 대체로 낮고 우리나라 역시 유럽연합 국가들보다 탄소배출량이 커 제도가 시행되면 직격탄을 맞게 될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탄소국경조정제도가 시행되면 유럽연합 국가들의 역내 교역이 증가하고 비유럽연합 국가들의 유럽연합 수출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고, 특히 비유럽연합 국가 가운데 거래액 대비 탄소배출량이 높은 국가들에 더 큰 타격을 받게 되는 바 우리나라의 산업 역시 수출이 감소하지만 중국, 인도, 러시아, 튀르키예, 브라질과 같은 국가보다는 타격이 작을 것으로 분석했다.
탄소가격제도를 2015년부터 실행하고 있고 주요 경쟁국인 중국에 비해 탄소배출량이 적은 우리나라는 어떠한 전망과 주장이 맞더라도 기회가 공존한다. 물론, 국내 재생에너지 비율이 비교적 낮고 알루미늄은 가공역할만 담당하고 있어 원재료 산지로부터 배출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난제인 면도 있다. 그러나, 이제 국제사회는 국가단위의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처음으로 접하고 있고 모든 국가가 준비나 대응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 CBAM을 어떻게 활용해 위험을 줄이고 기회를 극대화할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나마 우리나라는 탄소배출권거래제의 경험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금번에 도입된 CBAM을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흐름속 국가간 탄소가격부여의 시작점으로 이해하고, 탄소배출권거래제 역량을 활용해 위험과 기회를 균형있게 판단함과 동시에 국내 탄소중립 이행을 촉진하는 모멘텀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중국, 미국, 러시아, 터키 등 CBAM의 영향이 큰 국가들의 대응전략을 모니터링하면서 EU 및 개별 회원국 등과 긴밀히 소통해 국내 탄소가격이 CBAM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취약 산업으로 예상되는 주력 수출업종들의 가치사슬에서의 탄소배출량 측정 및 정보를 분석해 취약산업에 대한 보호와 지원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기존에 진행하던 공정내 에너지효율 향상은 물론이고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촉진하는 것도 병행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처음 시행하는 CBAM에 바르게 대응하는 것이 후속될 climate club 등 확대된 형태의 탄소국경조정에 대한 준비도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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