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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환율협상, 그 배경과 과제(課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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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5월04일 17시10분

작성자

  • 김광두
  •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남덕우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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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0년 전,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G5(미국,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 재무장관, 중앙은행총재들이 모였다. 이 회담은 미국이 소집했다.

 

미국에 의해서 불려온 일본, 서독, 영국, 프랑스는 모두 대미(對美)무역 흑자국들이었고, 특히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는 매우 컸다. 당시 미국 내에서는 일본과 독일이 자국 화폐가치의 인위적 저평가를 이용해 미국과 불공정 무역을 해왔고, 그 결과 미국의 무역적자가 지속적으로 악화되었다는 여론이 팽배했었다.

 

당시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회담에서 참석 국가들은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낮추고, 일본 엔화와 서독의 마르크화의 가치를 올리기로 합의했다. 그 이후 2년에 걸쳐 일본 엔화 가치는 1달러 당 240엔에서 120엔으로 두 배 정도 올랐다. 물론 마르크화 등 유럽 국가들의 통화가치도 올랐으나 일본 엔화에 비하면 약간 오른 수준이었다.

 

그 결과 일본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은 약화되었다. 그것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극소화하기 위해 일본은 확장적 통화정책과 초저금리 정책을 시행했다. 이로 인해 주식, 부동산 거품이 증폭되었는데, 이것이 90년대 초반의 버블 붕괴와 이로부터 이어진 ‘잃어버린 10년’의 주요 원인이었다. 물론 그 뒤로도 일본경제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해 ‘잃어버린 20년’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진행 중인 미국의 관세 폭탄 캠페인도 플라자 합의의 배경과 유사하다. 80년대 초 미국이 겪었던 재정적자와 무역수지 적자보다 그 규모가 훨씬 커진 쌍둥이 적자의 누적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플라자 합의 2.0’보다 ‘관세 폭탄’이라는 무기를 먼저 선택한 것은 기본적으로 국제 역학 구도의 변화 때문이다. 

 

1985년 당시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서 압도적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2025년의 미국은 40년 전의 미국이 아니다. 군사력도, 경제력도 80년대보다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중국의 부상, EU의 자율 노선 추구, 위안화(CNY), 유로화(EUR)의 역할 확대, 디지털 화폐의 등장 등으로 80년대처럼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모든 나라가 순응하는 경제, 외교, 국방의 국제질서가 더 이상 아닌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보는 한국은 다르다. 한국은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다수의 정책 카드들에 아주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우선 군사적으로, 한국은 북한과 정전상태의 대치 관계에 있다. 근래에 북한은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밀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국가안보에 있어서 “한미 군사동맹”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이 군사동맹의 가변성을 카드로 내비칠 경우, 한국은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

 

경제적으로 볼 때, 미국은 중국, 유럽과 함께 한국 수출의 3대 시장 중 하나이다. 더욱이 한국의 2000~2024년 동안 대미 무역 흑자 규모는 총 9,000억 달러에 달해 한국이 미국의 주요 관세 폭탄 타깃이 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의 관세 폭탄이 한국 수출에 미칠 영향은 매우 크다. 특히 자동차, 전자제품, 반도체, 배터리 등이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미국이 관세 폭탄을 대체할 수단으로 원화 가치 조정을 요구할 경우, 긍정적으로 검토할만하다. 관세 폐지가 불가능하다면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서 환율 조정을 택하는 것이 차선책(次善策)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4일 당시 최상목 경제부총리 일행이 미국과 “7월 패키지” 마련에 합의하면서 환율정책을 그 대상에 포함시킨 이유가 이런 관점에서 이해된다.

물론 원화절상도 수출에 타격을 주는 것은 관세 폭탄과 동일하다. 그러나 원화절상은 관세 폭탄의 일방적 악영향과 달리 부수적 선기능(善機能)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선책으로 평가된다.

 

우선 물가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원자재, 에너지, 농산물 등 수입품 가격을 낮추어 국내 물가 안정에 도움을 준다.

동시에 수출용 부품, 원자재 수입 가격을 낮추어 수출 원가를 부분적으로 절감할 수 있게 한다. 더하여 수입 시설재 가격의 하락으로 국내 생산 원가를 전반적으로 절감하는데도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국내 물가 안정은 가격효과를 통한 수요증가로 내수 활성화를 촉진하는 성과도 낼 수 있다.

 

더 나아가 한국 자본시장은 원화 가치 상승으로 외국 자본의 유입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채권이나 증권투자를 하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환차손 가능성의 감소”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선책은 관세폭탄 없이 한미FTA를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쌍둥이 적자(무역/ 재정적자)에 대한 위기의식과 미국 제조업 재건에 대한 강한 의지로 보아 이런 기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이 관세 폭탄과 원화 가치 조정 중 하나라면 원화가치 조정이 차선책이라는 뜻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관세는 FTA 수준을 유지하고, 원화 가치의 미세한 조정으로 협상을 마무리 할 수 있다면 최선의 결과라 생각한다.

 

원화 가치가 상승하면 한국 수출이 받게 될 타격도 꽤 클 것이다. 그 결과 한국 경제는 침체를 면하기 어렵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은 단기적으로는 내수시장 활성화로 대응해야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산업 구조 조정을 통한 산업 경쟁력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성공적인 한미 협상 타결을 위한, 그리고 그 이후에 나타날 경제난 극복을 위한, 효과적인 대책을 추진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지금 한국이 처한 정치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앞선다. 정치인들의 권력을 향한 이전투구(泥田鬪狗)로 행정부의 정책 기능은 이미 마비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의회 권력을 이용한 민주당의 “닥치고 탄핵”은 국정을 마비시키고 있다. 대통령 권한 대행의 대행의 대행은 물론 경제 정책의 콘트롤 타워인 경제부총리까지 대행 체제를 만들어 놓았다. 이런 행정 공백 상태에서는 한미 관세 협상의 성공적 타결과 짜임새 있는 후속 대책 마련을 기대하기 어렵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민 후생(厚生)의 유지와 증대가 국정운영의 주요 목표가 아니겠는가? 이재명 민주당은 당리 당략도 중요하지만 국민 후생이 더 중요하다는 점에 유념(留念)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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