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 갈등의 종착역은 어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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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11월10일)을 앞두고 벼랑 끝에 서있다. 국정 운영 지지도는 역대 최저치(19%)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가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을 언급한 육성 통화 녹취가 공개돼 여권 전체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한 대표는 11월 4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윤 대통령의 독단적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커졌다”면서 “국정 기조의 내용과 방식이 독단적으로 보인 부분이 있는지 점검하고 시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7일 '대국민담화‧기자회견'을 가졌다. 하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 “안 하느니만 못한 회견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 이유는 첫째, 윤 대통령이 진솔하게 사과하고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제 주변의 일로 국민께 염려를 드렸다.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부덕의 소치”라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은 “알맹이 없는 사과, 구질구질한 변명, 구제 불능의 오만과 독선으로 넘쳐났다”며 “시종일관 김건희 지키기에만 골몰했다”고 혹평했다. 이렇다 보니 “윤 대통령은 사과를 했는데 무엇에 대한 사과를 했나"라는 질문마저 받게 됐다.
둘째, 고강도 국정 쇄신책이 포함되지 않았다. 한동훈 대표가 요구한 김 여사가 대통령실 비선라인을 활용해 인사·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는 고강도 쇄신책에 대한 즉각적인 인사 조치는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셋째, 김건희 여사 문제를 끊어낼 수 있는 대안이 제시되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좀 도와서 어쨌든 선거도 잘 치르고 국정도 남들한테 욕 안 얻어먹고 좀 원만하게 잘하기를 바라는 그런 일들을 국정농단이라고 그런다면 그것은 국어사전을 다시 정리를 해야 될 것 같다”면서 김 여사 국정 개입 등 의혹을 부인했다. 여권이 배제된 김건희 여사 특검도 반헌법적이라며 반대했다.
넷째, 협치의 제도화 구상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 불참한 것과 관련 “(야권이) 공직자 탄핵과 특검법(추진)을 반복하고 동행 명령권을 남발하는 것은 국회에 오지 말라는 이야기”라고 했다. 야당이 협치를 막고 있다는 입장이다. 협치는 본래 야당이 아니라 권력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주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협치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한동훈 대표는 윤 대통령 기자회견 전에 윤 대통령의 사과, 김건희 여사의 대외 활동 중단, 대통령실 참모진의 쇄신, 특별감찰관 임명 등을 공개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기자회견에서 이런 요구들이 적극 반영되지 않았다. 여당 내부에선 “당이 윤 대통령을 방어하기 어려워졌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 기자회견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향후 윤한 갈등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현재 권력(대통령)과 미래 권력(집권당 대표 또는 유력 대권 후보) 간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지난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후보 교체론과 검찰의 DJ 비자금 수사 연기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던 신한국당 이회창 대선 후보가 김영삼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다. 이 후보는 3김정치를 부패한 정치구조로 규정하고, 3김정치 청산을 선언하면서 김 대통령을 정면 공격하는 승부수를 던지면서 사실상 결별을 선언했다. 결국 ‘대통령 압박 → 대통령 탈당 → 대선 패배(정권교체)’의 결과를 초래했다.
박근혜 정부 초반 비박 김무성 대표가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을 압도적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이후 박 대통령은 김 대표를 무시하고 독대 요청도 묵살했다. 2016년 공천 파동을 거치면서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제2당으로 전락했다. 급기야 ‘대통령의 당 대표 무시 → 친박 대 비박간의 파국적 균형’ → 비박의 박 대통령 탄핵 동조→ 대선 패배(정권교체)로 귀결됐다.
‘김영삼-이회창 모델’과 ‘박근혜-김무성 모델’은 상대방을 굴복시켜 승리하려는 ‘치킨 게임(chicken game)’의 전형이다. 윤 대통령이 집권당 대표를 무시하고, 한동훈 대표가 대통령을 압박하며 전투태세를 보이며 충돌하는 ‘치킨 게임이 지속될 경우 윤한 갈등은 공멸로 향할 것이다.
단언컨대, 한동훈 대표가 이회창과 김무성의 길을 간다면 미래는 없다. 따라서, 한동훈 대표는 대통령을 압박하면서 조급하게 차별화하는 것을 피하고 “때가 되면 행동할 것”이라는 대통령을 자극하는 메시지를 던져서는 안 된다. 윤한 갈등의 정치적 해법은 ‘치킨 게임(chicken game)’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이득을 주는 ‘사슴 잡기 게임(stag-hunt game)’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이 게임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프랑스 철학자인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가 기술한 이야기를 따서 만든 게임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두 명의 사냥꾼은 각각 토끼나 사슴을 잡을 수 있다. 두 사람이 사슴을 사냥하기 위해 서로 협력해 원을 그리면서 포위망을 좁혀간다. 그러던 도중 한 사냥꾼의 눈앞에 토끼가 보인다. 그가 토끼를 잡기 위해 포위망에서 이탈해 토끼를 쫓아가는 순간 포위망이 열려 사슴은 그쪽으로 도망가게 된다. 포위망에서 이탈한 사냥꾼은 토끼를 확실히 잡아 이득을 챙길 수 있지만 사슴을 쫓던 다른 사냥꾼은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2008년 이명박(MB) 정부 초반 ‘친이 대 친박’ 간의 갈등은 거의 내전 상태였다. 박근혜 전 대표의 MB 정부에 대한 파상적인 공격으로 거의 분당 상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MB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맞이하기 직전인 2010년 8월 21일 두 사람은 극비리에 만나 돌파구를 마련했다. 여당 실권자 박 전 대표는 국정 협력을 약속했고, MB는 대선 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을 약속했다. 박 전 대표는 청와대 인적 쇄신을 거론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전략적 차별화 → 이․박 협력 체제 구축 → 정권 재창출로 이어졌다․ 여하튼 ‘이명박-박근혜 모델’은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간의 갈등이 여권 분열로 치닫는 것을 막고 정권 재창출로 이어지도록 한 협력 게임의 대표적 사례다.
국민의힘 시·도지사협의회는 11월3일 “대통령은 인적․쇄신에 나서고 한동훈 대표는 분열서 벗어나 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상임고문단도 “대통령은 취임 당시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 목소리를 잘 경청하고 판단해달라”고 했고 한동훈 대표에 대해서는 “당내 화합과 대야 투쟁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했다. 이런 제안들은 윤한 갈등을 종식시키고 윤한 협력 게임으로 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단언컨대, 윤 대통령이 한 대표 고립화(퇴진) 전략을 추진하고 한동훈 대표가 대통령 압박을 통한 조급한 차별화 전략을 지속하면 윤한 갈등의 종착역은 공멸이다. 이대로 가면 한 대표가 윤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거나, 윤 대통령 지시를 받은 의원들이 한동훈 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사태로 발전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국민의힘이 분당으로 치달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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