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망하는 확실한 법칙 혼군 #20 : 북제 창업자 고환의 업적을 다 까먹은 아들 고담과 손자 고위 <D>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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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서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년에 가까운 나이(17세) 이상에 군주가 된 사람으로서 둘째로 상당 기간(5년) 군주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군주의 역할이나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 군주로써 셋째로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거나 혹은 제거되거나 혹은 돌연사 한 군주로써 국가의 존립기반을 크게 망쳐 놓은 군주를 혼군이라고 정의하였다. |
<24> 황제를 죽이지 말라는 진주자사 고환(AD530)
이주조는 경종의 명령으로 군대를 몰고 들어오는 흘두릉보번을 막기 위해 서둘러 진양(태원)으로 돌아갔고 낙양은 이주세륭에게 맡겼다. 이 때 붙잡혀있던 경종 원자유도 함께 진양으로 끌려갔다. 진주(산서성 임분)자사 고환은 이주조에게 황제를 다치게 하지 말 것을 권고했는데 이주조는 묵살했다. AD530년 12월 23일 이주조는 경종 원자유를 진양의 삼급불사에서 목을 매어 죽였다. 그의 나이는 24세였다. 그리고 장광왕 원엽을 황제로 옹립했다. 흘두릉보번의 군대가 진양을 공격하여 크게 이겼고 이주조는 진주에 있던 고환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고환의 측근들은 반대했지만 고환이 말했다.
” 이주조가 급해서 그런 것이니 다른 일은 없을 것이요.
내가 그것은 보장하겠소.“
고환은 일부러 진군속도를 늦추어 이주조가 핍박을 심하게 받게 한 다음 흘두릉보번을 공격하여 목을 베었다. 이주조는 고환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형제의 의를 맺었다.
<25> 병주와 사주와 진주지역을 장악하는 고환(AD530)
병주(태원 부근)과 사주(태원 북쪽 흔현)에는 갈영의 무리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이주씨의 종족인 계호(거란계통 호족)로부터 박대를 심하게 받았으므로 항상 반란의 염려가 있었다. 이주조가 그 고민을 고환에게 묻자 심복으로 하여금 통솔시키게 하면 된다고 했다. 이주조가 누가 적임자냐고 묻자 곁에 있던 하발윤이 고환을 추천하자 고환이 주먹으로 하발윤의 얼굴을 쳐서 이빨을 부러뜨렸다.
” 천하의 일을 의논하는 차에
하찮은 사람이 끼어들어 저런 망령된 말을 했으니
청컨대 그를 죽이십시오.“
이주조는 고환의 충심을 믿고 그에게 병주와 사주 지역을 맡겼다. 고환은 이주조가 생각을 바꾸기 전에 나가서 선언했다.
” 위임을 받아서 주의 병사를 통솔할 것이니
분하 동쪽에 모여서 나의 명을 받으라.“
이주조의 측근 모용소종이 이주조에게 경고했다.
” 고공(고환)의 재주가 세상을 덮을 지경입니다.
교룡에게 구름과 비를 주는 격이니
장차 통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주조가 말했다.
” 향불을 피우고 의형제를 맺은 사이인데 무엇을 의심하는가?“
모용소종이 반박했다.
” 친 형제도 믿지 못하는 세상인데 하물며 의형제야 어떻겠습니까?“
고환의 뇌물을 받은 이주조의 측근들이 모용소종은 과거 나쁜 관계 때문에 고환을 악담을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자 이주조는 크게 화를 내면 모용소종을 가두고 고환에게 서둘러 임지로 나가라고 명했다.
태원을 나와서 임지로 향하던 고환은 도중에 북향장공주를 만나 장공주의 말 300필을 탈취했다. 이주조는 고환에게 속은 것이라고 판단하고 즉시 모용소종을 풀어주면서 대책을 물었다. 모용소종은 고환이 독 안에 든 쥐일 뿐이라고 가볍게 말했다. 이주조는 급히 고환을 추격했지만 교량다리가 부러지면서 건널 수가 없게 되었다. 고환이 강 건너에서 말했다.
” 제가 말을 뺏은 것은 훔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장공주의 앞길에 도적이 있어서 그걸 피하게 하기 위한 선제 조치였습니다.
장공주의 모함만 들으시고
저를 추격하시니 제가 건너가 죽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장차 분주와 사주 무리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겁이 납니다.“
이주조는 오해를 풀고 강을 건너가서 고환에게 칼을 주면서 오해한 자신의 목을 치라고 했다. 고환은 목을 놓아 울면서 말했다.
” 천주장군께서 죽은 후
내가 누구를 우러러 볼 수 있겠습니까.
대가(이주조)께서 천수 만세하셔서
저를 힘껏 활용하시기 바랄 뿐입니다.
지금 측근의 말로 이간질을 당하고 있으니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이주조는 미안한 마음에 서로 부둥켜안고 한 참을 같이 울었다. 마침내 칼을 들어 백마의 목을 자르고 다시 한 번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고환의 측근 울경이 그 참에 장사를 숨겨 이주조를 잡아 죽이려고 했으나 고환이 울경의 팔을 깨물며 막으며 말했다.
” 지금 죽이면 반드시 그의 군대들이 결성하여 공격해 올 것이다.
지금 군사는 배고프고 지쳐 있으니
싸움에 이길 가능성도 적고
또 그 틈을 타고 여러 곳에서 반란을 일으킨다면
피해가 더욱 심할 뿐이다.
이주조는 용감하기는 하나 꾀가 없으니
도모한다고 할 것도 없는 사람이다.“
다음날 이주조가 병영으로 돌아가서 고환을 불렀는데 고환이 가려는 것을 소등이 극구 말려서 가지 않았다. 이주조는 물을 사이에 두고 고환에게 심한 욕을 하고는 태원으로 돌아갔다.
<26> 원공의 즉위(AD531)
이주세륭의 형제 이주중원과 이주언백 등은 장광왕 원엽이 인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더 가까운 혈통으로 교체하기를 바랐다. 원엽은 탁발홍의 아들이므로 죽은 원자유의 작은 아버지였다. 그러나 광릉왕 원공은 원자유의 사촌 동생이면서 똑똑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황문시랑까지 역임했지만 AD523년 원차가 정권을 휘두르는 동안에는 벙어리인척 피하여 숨어살았다. 설효통이 이주천광에게 말했다.
” 광릉왕은 고조(원굉)의 조카이며 명망이 좋고 침착하며
여러 고난을 겪어 본 사람이라서 신중합니다.
주군으로 모시면 하늘과 사람에게 알맞고 화합될 것입니다.“
이주천광이 이주세륭 등과 협의한 끝에 벙어리가 아닌 것과 실제 재능을 확인 한 다음 원공을 설득하여 주군으로 영입했다. 원공은 형식적으로 세 번을 사양한 다음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AD531년 2월 19일) 절민제 또는 전폐제라고 불린다. 고환이 세웠다가 폐위시킨 원랑을 후폐제라고 부른다.
<27> 이주씨의 폭정(AD531)
북위 조정은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노군왕 원숙은 태사, 회양왕 원흔이 태부, 이주세륭이 태보, 장손치가 태위가 되었는데 장손치는 사양했다. 조군왕 원심이 사공, 이주천광은 옹주자사, 이주중원은 서주 및 연주자사, 이주조는 병주자사 및 천주대장군으로 임명되었지만 삼촌의 직함(천주대장군)만은 받을 수가 없어서 사양했다. 고환에게도 발해왕 작위를 하사했지만 고환은 거절했다. 이주영이 실권을 장악했을 때에는 이주세륭이 행동을 매우 조심하고 또 사람들을 후히 대접하여 민심을 많이 얻었는데 이제 상서령이 되어서 정치를 장악하게 되자 교만하고 탐욕스럽고 음란한 사람이 되어갔다. 이주중원도 서주와 연주에서 폭정을 거듭하면서 민심을 잃었고 이주조 또한 병주와 분주에서 폭정을 거듭했다.
<28> 고환의 동쪽 이동과 이주씨 토벌 선언(AD531)
고환은 진주자사로 임명되어 호관(산서성 장치부근 노성)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주씨의 폭정으로 전국의 민심이 흉흉해지자 신도를 토벌한다고 하고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달려갔다.신도는 기주의 중심지로써 반란을 일으킨 유령조에게 동조하던 고건과 고오조 형제가 점거하던 곳이었다. 고환이 군사를 이끌고 신도로 온다고 하자 주민들은 전쟁이 일어날까봐 매우 불안해했지만 고건은 고환의 사람 됨됨이를 알고 있었으므로 걱정할 것 없다고 위로하였다. 그리고 10여 기병을 거느리고 비밀리에 고환을 만났다. 고환은 고건의 생각과 계획을 듣고 크게 기뻐하고 휘장막 안에서 잠을 자면서 같이 움직이기로 결의하였다. 갈영의 반란무리에 동참했다가 이주영에게 발탁되었던 이원충은 이주영이 시해당하고 경종 원자유마저 피살되자 은퇴해 있다가 고환이 가까이 온다고 하자 군사를 규합하여 고환과 합류하였다. 고환은 부하장수들에게 특별히 명령하여 주민들에게 절대로 피해를 끼치지 말 것을 당부하였으므로 주변에서의 평판이 매우 좋았다.
하북성 기주(신도)에 정착한 고환은 이주씨를 공격하기 위한 군사를 일으켰다. 제일 먼저 태원에 있는 이주조가 대상이었다. 군사를 출병하기 전에 거짓 편지를 써서 이주조가 그곳 주민들을 강제로 병탄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주민들은 이주조에게 복속하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였다. 고환은 손등과 울경이라는 두 장수를 보내 불안한 주민들의 힘을 규합하여 이주조를 타도하자고 다짐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원충은 은주(하북성 석가장 부근)방면을 공략했다. 고환은 은주를 지키고 있는 이주우생을 돕는 척하면서 군사를 보낸 다음 이주우생을 사로잡고 목을 베었다. 고환이 이주우생의 목을 받아들고 선언했다.
” 오늘 이 순간 이주씨를 토벌하는 반란을 결정했다! “
<29> 이주조와 고환의 광아(하북성 융요) 대전(AD531)
고환의 참모 손등이 고환에게 주군을 세우지 않으면 영이 서지 않으므로 서둘러 황제를 세우자고 강청했다. 고환은 장무왕 원융의 아들 안정왕 원랑을 황제로 세우고 신도성 서쪽에서 즉위식을 거행했다. 원(탁발)융은 탁발황의 증손자로 AD526년 9월 갈영과의 전투에서 죽었다. 고환은 시중, 승상, 도독중외제군사가 되어 북위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였다.
AD531년 10월 13일 이주중원과 이주도률은 곡사춘, 하발승 가현지와 더불어 대군을 이끌고 올라와 양평(하북성 관도현)에 진을 쳤다. 이주조는 군사를 이끌고 남하하여 광아(하북성 융요)에 주둔했다. 고환은 반간책을 써서 이주조 군영에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 이주세륭이 이주조를 죽일 계획이다.“
동시에 이주중원의 군대 속으로는 이런 말을 퍼뜨렸다.
” 이주조가 고환과 함께 이주중원을 죽일 것이다.“
이런 소문이 돌자 이주조군대도 내려가지 못하고 이주중원 군대도 올라오지 못했다. 이주중원은 하발승과 곡사춘을 보내 사실이 아니며 헛소문이라고 타일렀다. 이주조는 기병 300을 이끌고 이주중원 군막으로 들어와 상황을 확인하였지만 이주중원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말을 돌려 돌아갔다. 이주중원은 하발승과 곡사춘을 급히 보내 오해라고 설득하려했지만 이주조는 두 장수를 잡아 가두어버렸다.
고환은 이주조의 대군을 걱정하여 싸움을 망설이고 있었다. 부장 단소가 이렇게 말했다.
” 군사 무리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사력을 얻는 것이고
그들이 강하다고 하는 것은 천하의 마음을 얻는 것
(所谓众者,得众人之死;所谓强者,得天下之心)입니다.
이주씨가 천자를 시해하였고 공경신하들을 도륙하였으며
백성에게 포학하여 대왕께서 군사를 일으키신 것이어서
마치 끓는 물에 눈을 들이대는 것과 같은데
어찌 그들에게 강성함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걱정이 된 고환이 말했다.
” 적은 수를 가지고 큰 것을 대적하니
하늘의 명령이 없으면 움직이기 어렵다.“
단소가 다시 강조했다.
” 제가 듣기에 ‘
작은 것이 큰 것을 대적할 수 있는 것은
작은 것이 정도이고 큰 것이 음란할 때다‘(小能敌大,小道大淫)하였습니다.
또 하늘은 가까이 하는 사람이 없고 오직 덕망이 있는 사람이 돕는다’
(皇天无亲,唯德是辅)고 하였습니다.
이주씨는 천하를 어지럽히고 안으로 영웅들의 마음을 실망시켜서
지혜로운 사람은 그들을 돕지 않고
용맹한 사람은 그들을 위해 싸우지 않아서
이미 인심이 물러났습니다.
어찌 하늘의 뜻이 돕지 않는 것이겠습니까?“
고환은 적은 군대를 가지고 광아에서 이주조의 대군을 격파하고 갑병 5천을 포로로 잡았다.
<30> 곡사춘과 하발승의 이주씨 제거 모략(AD532)
인심을 크게 잃은 데다 같은 이주씨 종족 사이에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본 곡사춘이 비밀리에 하발승에게 말했다.
” 저렇게 민심을 잃은 사람에게 우리가 채용되어있으니
우리 미래도 며칠 남지 않은 것 같소.
그들을 도모함만 못하지 않겠소?“
하발승이 말했다.
” 이주조와 이주천광이 각기 한 지방을 거느리고 있으니
그들을 하나 하나 제거하려면 매우 어렵지 않겠소?“
곡사춘이 말했다.
” 그 문제라면 쉬운 문제요. “
먼저 이주세륭을 설득하여 이주천광이 고환을 공격하도록 움직이게 했다. 걱정에 싸인 이주천광이 하발승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묻자 하발승은 고환은 형편없는 군대라서 이주씨가 마음을 합하기만 하면 걱정할 것이 없다고 했다. 다만 지금은 이주씨 의견이 서로 다르므로 먼저 관중(서안부근)까지 가서 근거지를 견고히 한 다음에 기다렸다가 힘과 마음을 합하여 고환을 공격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주천광은 듣지 않았다. AD532년 3월 이주천광은 군대를 몰고 장안을 떠나고, 이주조는 진양을 출발하고 이주도률은 낙양, 이주중원은 하남성 활현을 출발하여 네 갈래 20만 대군이 고환이 있는 업으로 집결하였다. 이주천광의 대군은 하북성 안양시 주변 원수(洹水)를 끼고 진을 쳤다.
고환은 이부상서 봉륭지에게 업성을 맡기고 업성 서부에 군진을 펼쳤다.(AD532년 윤3월19일) 고환의 군대는 다 합해도 3만을 넘기지 못했으므로 숫적으로 불리했다. 둥글게 진을 치는 원진을 만들고 죽기를 각오하고 20만 대군을 맞이했다. 이주조가 고환에게 배반했다고 나무라자 고환이 답했다.
” 원래 군대를 일으킨 것은 황실을 돕자는 것이었다.
지금 천자(죽은 원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주조가 말했다.
” 영안(원자유)이 천주(이주영)를 억울하게 해서 내가 복수한 것 일 뿐이다.“
고환이 외쳤다.
” 내가 예전에 천주장군의 계책을 들었을 때 너도 거기 서 있었지 않느냐.
천주장군이 배반한 것을 왜 모르느냐.
그리고 주군이 배반하는 신하를 죽인 것이 어찌 복수의 대상이 되느냐.
오늘부터 의리를 끊을 것이다.“
이주조와 고환이 결전을 펼쳤다. 고환은 중군을 맡고 고오조는 좌군, 고악은 우군을 거느렸다. 처음에는 고환이 불리했으나 고악이 500기병으로 이주조의 예봉을 꺾었고 곡률돈은 흩어지는 군사를 모아 이주조의 배후를 쳤으며 고오조가 천명의 기병으로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이주조를 율원에서 대패시켰다. 이주조의 부장 하발승과 두덕은 고환에게 투항했다. 이주조는 진양으로 퇴각했고 이주중원도 활현으로 돌아갔다. 이주언백은 군사가 패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물려 황하대교를 지키자고 건의했으나 이주세륭이 허용하지 않았다.
고환의 대도독 곡사춘은 이 기회를 타고 이주씨를 절멸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두 배의 속도로 군사를 몰아 낙양으로 진격했다. 곡사춘은 황하대교 북쪽 성문을 지키고 있던 양숙연을 거짓으로 설득하였다.
” 이주천광이 서쪽 사람이므로 낙양을 약탈하고
도읍을 장안으로 옮기려고 생각하고 있소.
나를 받아들여 그것에 대비하여야 할 것이오.“
양숙연은 곡사춘의 말을 믿고 그의 군사를 받아들였다. 곡사춘은 성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황하대교를 장악한 다음 이주씨 군사를 모두 죽였다. 이주천광과 이주도률이 군사를 시켜 곡사춘을 공격하였으나 큰 비와 지친 몸 때문에 이길 수가 없어서 곡사춘의 군대에게 사로 잡혔다. 곡사춘은 바로 장수 가현지와 장환을 기병과 함께 낙양으로 들여보내 이주세륭을 기습 체포하였다. 달아나던 이주언백도 사람들에게 잡혀 들어왔다. 낙양 서문 밖에서 이주세륭과 이주언백의 목을 벤 다음 잡힌 이주천광과 이주도률과 함께 고환에게 보냈다. 이주천광의 장수 후경이 안정왕에게 항복했고 이주중원은 양나라로 투항했다. 이로써 이주씨 세력은 완전히 소탕되었고 고환이 주원의 새 강자로 군립하게 되었다.(계속)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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