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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거수의 디자인 시선 <12> 우리는 왜 도시명, 슬로건 상징물의 효과적인 활용법을 알지 못하는가? (크기, 감성적 접근, 예술적 전략이 만든 공공디자인의 3박자 과제)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5년04월02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4월03일 11시51분

작성자

  • 김거수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미술대학원 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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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도시의 명칭, 슬로건 상징 조형물은 도시가 시민과 외지인 모두에게 남기고자 하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부분 도시들이 도시명 상징물 설치에 있어 핵심적인 전략 부재와 비효율적인 표현 방식으로 인해 그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도시명 상징물은 ‘설치했다’는 행정적 결과보다, ‘어떻게 활용되고 사람들과 교감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도시는 언제나 생동하며 새로운 시각적 경험과 감성적 기억을 시민에게 제공할 책임이 있으며, 그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도시명 혹은 슬로건 상징물이다.

그렇다면 도시의 매력있는 얼굴이 될 수 있었던 지역 이름표가, 왜 강하게 각인되지 못하고 그토록 평범 무색무취하게 잊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느 도시든 첫인상은 ‘도시 이름’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천안’ 하면 호두과자 상자가 떠오르고, ‘전주’ 하면 한옥마을의 기와지붕이 생각난다. 하지만 사실 기와집은 전주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호두과자 역시 고속도로 휴게소 어디에서나 팔고 있다.

이처럼 특별하지 않은 이미지에 의존하는 대신, 미국의 ‘Hollywood’나 네덜란드의 ‘I amsterdam’처럼 특정 지역이나 도시명이나 그 도시의 철학을 담은 슬로건 자체를 시각화한 상징물은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도시의 인상을 각인시킬 수 있는 것이며, 그만큼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도시명이나 슬로건을 활용한 상징물을 설치한 사례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상징물이 설치되어야 할 ‘이유’, ‘목적’, 그리고 기대되는 ‘효과’를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히 외형만 모방한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암스테르담에 가보니 저런 게 있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더라. 우리도 하나 설치하자”는 식으로 겉모습만 보고 비슷하게 서둘러서 본인들의 도시 적절한 곳에 만들지만, 정작 시민들의 반응은 미미하고 기대했던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이 상징물은 타 도시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거나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고, 도시 브랜드 자산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이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도시 명칭, 슬로건 조형물은 무엇이 문제인가? 

- 먼저 상징물의 진정한 가능성과 힘에대한 이해의 과정이 없으며 무엇을 담을지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다. 상징물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다. 목적과 용도를 구분하고 그 상징물을 통해서 시민과 국내외국인 관광객의 ‘즐거운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전략과 기획이 있어야, 설치했을 때 그들도 그 설계에 맞춰 반응할 것 아닐까? 

글자 몇 개를 세워두고, 꽃과 잔디로 주변을 장식해두면 그것이 시민과 관광객을 감동 시킬 수 있을까? 가까이 가서 좀 보려고 해도 가기 전에 화단이나 잔디에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어 그저 예쁘지도 않고 볼 것도 없는 텍스트를 감상하라고 무언의 강요만 하는 듯하니 외면받는 것이다. 도시 명칭, 슬로건 상징물은 단순한 설치물이 아니라, 도시 브랜딩의 핵심 도구로 기회를 살려야 한다.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보고, 만지고, 기억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의 장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효과적인 도시명칭 상징물은 무엇이 달라야 할까?

이제는 세 가지 관점에서 진단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바로 ‘큰 사이즈와 접근성’, ‘감성적 스킨십과 소위 CMF(Color, Material, Finishing)’, 그리고 ‘입체적 조형성과 심미성’이라는 세 가지 3박자의 설계다. 자세히 하나씩 살펴보자. 


1. 큰 사이즈와 브랜드 접근성 

– 도시 브랜딩은 눈에 띄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사람은 일상적이지 않은 것에 반응한다. 작은 글씨보다 큰 글씨에, 작은 사물보다 거대한 구조물에 더 오래 시선이 머문다. 이는 디자인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헐리우드의 언덕에 새겨진 HOLLYWOOD’라는 거대한 알파벳 구조물, 회화에서도 ‘마그리트의 방 안에 놓인 거대한 사과’가 인상적인 이유도 바로 크기 자체가 가진 전달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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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의 도시명 상징물은 대체로 크기가 작다. 

어느 도시를 가도 어깨너머로 힐끔 보고 지나치는 정도의 높이에 그치고 만다. 큰 제작비를 들이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현실적인 제약 때문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그것이 큰 의미를 지니리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중요한 것은 크기만이 아니다. 크기는 곧 ‘접근성’과 연결된다. 크게 만들수록 더 멀리서 볼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인지할 수 있으며, ‘시야의 명당’을 확보할 수 있다.

시청 앞, 기차역 앞, 공항 출입구, 중심 광장 등 도심의 중심지에 위치한 도시명 상징물이 사람들의 눈높이를 충분히 넘어설 때, 그것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조건이 시작된다. 

 

2. 감성적 스킨십과 CMF; 소재(Color), 질감(Material), 마감(Finish)

– 만져보고, 기대보고, 사진 찍고 추억 남기기-

도시명 상징물은 감상만 하는 대상이 아니다. 사용하는 대상, 머무는 공간이자, 추억을 만드는 플랫폼으로 바라보자. 우리는 무의식중에 공간을 기억할 때, 촉각과 감성을 함께 저장한다. 아이들이 ‘O’자 알파벳 안으로 들어가 숨고, 연인들이 ‘A’자 위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고, 노부부가 ‘L’자에 등을 기대어 나란히 앉아 쉬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그 순간 그 도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닌 감정의 주체로 자리 잡는다. 바로 이런 ‘감성적 스킨십’이 브랜딩에서 가장 강력한 접촉이다.

도시명칭 상징물을 통해 형성되는 추억은, 크기와 접근성뿐 아니라 ‘컬러’, ‘재료’와 ‘표면’, 즉 CMF(Color, Material, Finish)의 감각을 통해 완성된다.

매끈하면서도 날렵한 스틸일까? 정교하게 마감된 스테인리스일까, 혹은 부드러운 알루미늄일까? 특수 섬유를 합성한 따뜻한 감성의 소재일 수도 있고, 대리석처럼 오묘하게 빛나는 발광 플라스틱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구성이 강하면서도 감성적인 목재 소재로 표현된 상징물일 수도 있다. 도시의 문화적 배경과 정체성에 따라 마감과 질감을 달리하고, 그 속에 고유한 스토리를 연결해 탄생한 상징물을 상상해 보자. 이처럼 CMF 전략은 관광객에게는 ‘감각의 기억’을 남기고, 시민에게는 ‘생활 속 애착’을 형성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도시 상징물 디자인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핵심 전략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많은 도시에서는 이 중요한 과정이 생략된 채, 상징물이 설치되고 있는 현실이라 매우 안타깝다.

 

3. 입체적 조형성과 심미적 예술성 – 평면의 글자에서 공간의 조형으로

‘도시명’은 본래 평면적 텍스트, 상징물은 입체다.-

평면을 입체로 전환하는 순간, 조형성과 예술성은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한다. 평면의 글자를 조형물로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크기를 확대하는 의미 그 이상이다.

빛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명암, 관찰자의 시점에 따라 변하는 형태, 가까이에서 보면 보이는 디테일은 모두 입체적 조형의 아름다움이다. 이러한 시각적 즐거움은 단순한 읽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경험하는 텍스트’로 확장된다. 게다가 입체적 조형물은 ‘가변적 변화’와 ‘상황적 응용’을 통해 도시 콘텐츠의 플랫폼으로 확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멜버른의 페더레이션 광장(Federation Square)에서는 광장의 상징 조형물 ‘FEDSQ’에 계절과 테마를 반영한 다양한 그래픽 페인팅을 입혀, 마치 온라인의 ‘구글 두들(Google Doodle)’의 오프라인 버전처럼 시민들에게 신선한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단순한 조형물에 그치지 않고, 도시의 감성과 시기적 이벤트를 연결하는 공공 아트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호주 오픈테니스의 로고, AO(Australian Open) 조형물은 로고 조형물 내부를 상징 요소인 수천 개의 실제 테니스공으로 채워 대회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강조했다. 행사와 계절, 도시의 흐름에 따라 조형 요소를 유연하게 조정하며, 시민과 방문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콘텐츠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단순한 구조물을 넘어, 도시와 스포츠, 일상을 감각적으로 매개하는 도시 아이덴티티의 상징으로 사랑 받으며 도시 브랜딩의 중요한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의 도시 상징물도 계절마다 변주되고, 시민들의 축제를 담는 캔버스가 되며, 때론 위트와 유머를 담은 메시지 플랫폼이 된다면 어떨까?

그것이 진정한 ‘살아 있는 브랜딩’이다.

도시명 상징물, 그저 설치물인가? 혹은 도시의 정체성을 담은 감성 플랫폼인가? 도시명 상징물은 더 이상 ‘공공조형물 사업’으로만 다뤄져선 안 된다. 그것은 도시 브랜딩의 시발점이며, 시민과 관광객이 도시의 감성을 만날 수 있는 감각의 통로다.

지금 우리는 크기도 작고, 접근도 어려우며, 스킨십도 불가능하고, 조형미도 부족한 ‘소극적 상징물’에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바꿔야 한다. 도시명을 입체화하여 브랜딩의 플랫폼으로 만들고,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만지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하고, 심미성과 상상력으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로 승화해야 한다. 디자인은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채우는 일이다. 도시명칭 슬로건 상징물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도시를 기억하고, 도시를 사랑하게 될 수 있다. 그 시작은 ‘세 가지 조건’ – 크기, 감성, 조형성을 정교하게 기획하는 것에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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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4월02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4월03일 11시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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