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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우 휴전 협상의 역학과 유럽의 대응: ‘의지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을 통해 본 한계와 시사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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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25년04월04일 11시49분
- 최종수정 2025년04월04일 11시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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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하 러-우 전쟁)이 3년째 지속되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출범과 동시에 미국 주도의 휴전 합의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측근 관료들은 취임 이전부터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러-우 전쟁의 종식 필요성과 미국의 중재 역할에 대한 자신감을 강하게 피력해왔다. 미국은 오는 부활절인 4월 20일까지 완전한 휴전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목표하에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실무진과 개별 실무회담을 개시하고 첫 번째 30일간의 (부분)휴전합의를 도출했다. 이는 의미 있는 성과이지만 여전히 완전한 휴전 협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상황이다.
2025년 3월 25일 리야드에서 협상이 타결되던 시점,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양자회담 이후 ‘생산적인 논의’ 또는 ‘실질적인 진전’이라는 평가를 내놓은 반면, 러시아는 ‘휴전 협상의 시작 단계’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고 협상 결과의 과대포장을 경계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향후 세부적인 휴전의 조건과 방식, 나아가 종전을 통해 궁극적으로 수호하고자 하는 레드라인(red line)과 핵심 국익에서 첨예하게 대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미국은 러-우 전쟁의 중재자로서 협상을 주도하면서 휴전의 조건에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결부시켜 경제적 민족주의(economic nationalism)에 기반한 거래주의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합의가 진척될수록 협상의 복잡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전쟁에 관여한 유럽 또한 평화 협상의 주체를 자처하며 협상 조건으로 지역의 확실한 안보 보장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전쟁의 시작부터 ‘국제전’이자 ‘대리전’의 성격을 띠었던 러-우 전쟁은 상충하는 각국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정교하게 조정되어야만 종결될 수 있는 쉽지 않은 국면에 놓여 있다.
본고는 먼저 짧은 기간 내에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러-우 전쟁 휴전 합의의 주요 내용을 복기하면서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협상의 쟁점을 진단하고 향후 협상 전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나아가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휴전 협정의 양상 속에서 휴전 이후 확실한 안전 보장을 원하는 유럽의 전략적 고민과 대응을 살펴보고, 그 지정학적 함의와 한계를 조명할 것이다. 유럽은 접경 지역에서 실존적 위협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미국 주도의 휴전 협상 과정에서 주변부에 머무르며 안전 보장을 위한 자구책을 구상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유럽의 현실은 트럼프 행정부 2기를 마주하고 풀어가야 할 안보 이슈가 적지 않은 우리와 닮아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 트럼프 2.0 미국 중심의 휴전 합의와 주요 진전 사항
러-우 전쟁의 종식은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하면서 마주한 가장 중대한 대외정책 과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동시적인 대화를 주도적으로 추진해 왔다. 주목할 점은 미국의 러-우 전쟁 접근법의 변화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내세웠던 ‘가치 중심적’ 접근 대신 국익에 부합하는 ‘러시아와의 관계 재설정’과 ‘우크라이나 지원 검토’를 대화의 기본 접근 방향으로 설정하고 이 틀 안에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월 13일, 미 국방장관은 NATO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평화를 쟁취하기 위한 방식에 있어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있으며 미국이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하며, 러-우 전쟁 종식에 대한 미국의 접근법을 분명히 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휴전 협상을 둘러싼 역학 관계는 점차 복잡하게 전개되며 협상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지난 몇 주간 미국 주도로 이루어진 휴전 협상의 타임라인과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협상의 위기와 진전: 2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 및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평화적 분쟁 해결’의 필요성을 전달했고, 이어 2월 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개최된 미–러 회담에서는 평화 구축에 대한 러시아의 협력 의사를 확인했다. 상호 간 평화 의지는 확인되었지만 미국 주도의 미–러, 미–우 대화는 그간 부침을 겪어왔다. 특히 2월 28일, 오벌 오피스에서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간의 논쟁적 회담은 파국적 양상을 띠었다. 이 회담 이후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 및 정보 공유를 즉각 중단하면서 휴전 합의는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3월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개최된 미–우 양자회담에서는 30일 휴전안(러시아의 동의 및 동시 실행 조건)을 도출하며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다. 30일 휴전안에는 1. 러시아-우크라이나 양측 합의에 따른 즉각적인 30일 휴전 및 연장 옵션 2. 지상, 공중, 해상 등 전선 전반에서의 미사일, 드론, 폭탄 등 모든 형태의 공격 중단 3. 미국의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 및 정보 공유 재개 4. 전쟁 포로 및 민간인 구금자 석방 및 강제 이송 어린이 송환 등이 중요 내용으로 담겼다.
2025년 3월 13일, 미국의 중동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가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에게 30일 휴전안을 전달했으며 이에 대해 러시아는 신중하고 조건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대통령은 휴전에 대한 원칙적인 아이디어에는 동의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제시한 세부 휴전안의 집행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전면적인 수용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약 2,000km에 달하는 방대한 전선의 감시 및 준수 보장 방식과 전투 중지 명령 위반 여부를 판단할 주체의 모호성이 문제로 제기되었다. 러시아는 특히 30일간 서방의 군사지원 확대와 우크라이나의 재무장 가능성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휴전안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러시아는 1. 우크라이나 NATO 가입 포기 2. 크림반도 및 동남부 4개 지역(도네츠크, 루한스크, 헤르손, 자포리자)의 러시아 합병 인정 3. 우크라이나 침공 및 점령 지역, 특히 쿠르스크 지역에서의 우크라이나군의 후퇴 4. 우크라이나 영토 내 러시아어권 인구에 대한 권리 보호 조치 5. 서방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병력 충원 및 무기 지원) 중단 등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러시아가 수용할 수 있는 협상안의 세부 조건 마련을 촉구했다.
(부분) 휴전 합의안 도출: 교착 국면을 보이던 협상은 3월 18일,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부분 휴전의 세부 조건을 조율하면서 진전의 실마리를 찾았다. 러시아는 전력망, 발전소 및 민간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타격 중단을 제안했고, 미국은 이에 동의했다. 통화 직후, 우크라이나가 제시했던 인도주의적 조치인 175명에 대한 상호 포로 교환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러시아가 제시한 휴전 조건을 기반으로, 3월 23일과 24일 양일에 걸쳐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미국과 개별회담 형식으로 진행된 휴전 협상은 처음으로 가시적인 휴전 합의안을 도출하는 데 이르렀다. 합의된 휴전안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휴전의 범위는 흑해에서의 해상 휴전 및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공격을 30일간 중지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전선 전체가 아닌 국지적인 휴전 범위가 적용된 배경에는 우크라이나의 재무장에 대한 러시아의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재 러시아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전선에서 전투는 지속되는 가운데 특정 시설에 대한 국한된 휴전에 합의함으로써 전장 전체에서의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쿠르스크 지역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에 대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어 군사적 승리를 달성하기 위해 해당 전선을 휴전 지역에서 제외하는 것이 유리하다.
| 휴전 협상의 역학: 전략적 이익과 쟁점, 그리고 향후 과제
(부분) 휴전 합의와 전략적 이익: 부분적인 휴전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었지만 이것이 완전한 휴전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성취로 볼 수 있을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휴전 합의가 구체화될수록 영토 보전, 안전 보장, 철군 등 양측이 쉽게 양보하기 어려운 쟁점들이 산재해 있어 조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까지 부분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었던 배경은 몇 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지금까지의 합의 내용에는 상대적으로 첨예한 이익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미국 주도의 휴전 협상 속에서 미–러–우가 각각 취할 수 있는 중·단기적 이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우크라이나는 궁극적으로 영토 회복과 안보 보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축소된 미국의 지원 속에서 전황은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현재 전선을 방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휴전을 통해 즉각적인 전투 중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휴전을 통해 민간 피해 복구, 주요 인프라 보호, 군사적 안정 확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상황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군사 지원 재개와 정보 공유의 지속적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전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러시아는 즉각적인 휴전 합의 자체보다는 근본적인 갈등 원인의 제거와 자국 영향권 유지를 위한 외교ㆍ군사적 보장조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가 중·단기적으로 휴전 협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이익도 없지 않다. 그것은 바로 미국과의 관계 형성이다. 제한적 휴전안을 수용하며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을 국제사회에 보여줌으로써, 제재 완화와 무역 정상화를 위한 협조 기반을 미국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부분 휴전을 통해 지상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전력을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러–우 전쟁 협상의 중재를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첫째, 미국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불필요한 개입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라는 대외정책 기조 속에서, 명분에 얽매인 분쟁에 대한 개입과 지원을 줄이고 선택적 개입을 통해 미국 중심의 우월한 영향력 유지를 필요로 하는 지역에서 강력한 태세(posture)를 유지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더욱이 주목해야 할 점은 평화 협상을 통한 국익 극대화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찍이 러–우 전쟁의 종식을 대선 기간부터 공약으로 활용해왔으며 휴전 협정의 타결을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적 성과로 돌리려는 의도가 큰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러시아에 대한 제재 완화 등 다양한 카드를 활용해 휴전 협정 과정에서 미국의 경제적 이권 확보를 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와의 협정에서 미국은 군사 지원과 안보 보장을 조건으로 천연자원 특히 희토류의 공동 개발과 원자력 발전소 운영권 확보를 위한 지속적인 협상을 진행 중이다. 러시아와의 협상에서도 미국은 유사한 접근을 취하고 있다. 미–러 간 회담에서는 미국이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에 대한 접근 및 투자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역 장벽 해소를 위한 제재 완화를 원하는 러시아와의 휴전 협정 과정에서 미국은 거래 기반의 경제적 실리를 공격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휴전 합의의 쟁점: 러–우 간 종전 부분 협의안이 도출되었지만 향후 협상에서는 여러 가지 쟁점이 부각될 가능성이 크며 각 쟁점에 대한 양측의 입장이 크게 갈려 협상의 난항이 예상된다. 영토 분쟁은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다. 러시아는 크림반도와 돈바스 일부 지역을 자국 영토로 간주하고 자치권을 인정받고자 요구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해당 지역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영토 문제와 연계하여 철군 조건과 절차 또한 협상에서 중요한 아젠다가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자국 영토 점령 지역에서의 완전하고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지만 러시아는 이를 수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러–우 간 협상 역학은 점령 지역 내 전략적 자산 통제와 관련해 뚜렷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자포리자 원전은 현재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우크라이나는 원전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원전 운영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안전 보장과 서방의 지원 역시 합의 도출이 어려운 분야 중 하나이다. 우크라이나는 휴전 이후 러시아의 재침공에 대비해 NATO 가입과 국제적 수준의 안보 보장을 원하고 있으나 러시아는 NATO 확장과 서방의 군사 지원에 대해 원칙적으로 강하게 반대하며 양측 간 인식 차이가 크다.
또 다른 주요 쟁점은 러시아에 부과된 제재 해제 시점에 대한 합의 이행 조건이다. 휴전 발효 시점에 대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해석 차이가 큰 상황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휴전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농산물 및 비료 수출의 정상화와 관련 지원에 합의한 바 있다. 러시아는 자국의 농업은행과 농산물 수출 관련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 해제와 해당 기관들의 SWIFT 복귀가 이루어진 이후에 해상 휴전이 발효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합의 사항의 즉각적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대한 무역 제재 해제가 선제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금융 및 농업 제재가 약화되고 러시아의 합의 파기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점령지의 합법화, 안전 보장, 군사 원조, 전력 자산 통제 등은 여전히 협상의 큰 장애물로 남아 있다. 상호 신뢰가 매우 낮은 상황에서 향후 협상 조건의 세부 조율과 원만한 합의 이행은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 유럽의 대응: 의지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을 통해 본 한계와 시사점
영구적인 분쟁 종결과 평화 유지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EU 및 NATO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보이며 유럽의 자체 방위력 강화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과 러–우 전쟁 휴전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 간의 균열은 심화되는 추세다. 특히 휴전 합의가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유럽의 요구는 협상 역학에서 주변부에 머물고 있는 형국이다. 비록 협상 주도권을 쥐지 못했지만 전쟁의 직접적 영향권에 놓여 경제⸱군사적 부담을 감당하고 있는 유럽은 휴전 협상 이후 실질적 평화 정착 과정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해당사자로서, 러-우 전쟁 종결을 둘러싼 지정학적 역학에서 결코 배제될 수 없는 행위자이자 중요한 변수이다.
유럽이 휴전 협상 국면에서 쟁취하고자 하는 핵심 목표는 첫째 휴전 이후 지속 가능한 평화 구축, 둘째 협상 이후 안보 보장을 위한 자체적인 방어 태세 유지로 정리될 수 있다. 유럽은 평화 협상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원하고 있다. EU 외교정책 수석 카야 칼라스는 2025년 2월 12일, “우크라이나와 EU를 배제한 휴전 합의는 실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 및 안보 보장을 위한 계획은 유럽 주도 안보 연합체인 ‘의지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3월 초 오벌 오피스에서의 트럼프–젤렌스키 회담 실패 이후,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영국과 프랑스가 우크라이나와 협력해 평화 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발표했다. 약 30여개국이 참여하는 의지의 연합은 미국의 지원 감소 국면에 대비하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재정적 지원의 지속과 휴전 이후 평화 유지 및 러시아의 재침공 억제를 위한 유럽 국가 주도의 집단 방위 노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
평화 유지 노력의 일환으로 유럽 주도의 안전보장군(Reassurance Force) 창설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월 24일, 영국은 우크라이나와 160억 파운드 규모의 협정을 발표했으며 수출 금융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5,000발 이상의 방공 미사일 구매가 가능해졌다. 또한 스타머 총리는 필요시 영국군의 지상군 및 공군 투입과 연합군에 대한 세부 임무 부여 논의가 구체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유럽이 의지의 연합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는 여러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의지의 연합은 평화 유지 활동 또는 무력 사용에 대한 국제법적 정당성 확보 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연합’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다자간 협약이나 조약이 아닌 정치적 선언에 기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참여국의 공약 이행 여부를 강제할 수 없다는 한계가 명확하다.
작전 수행 범위 또한 불분명하다. 의지의 연합은 NATO를 우회해 유럽 주도로 유연한 안보 연합체로 구상되었지만, NATO가 보유한 체계화된 작전 지침, 지휘 구조, 표준화된 통신 및 병참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 NATO 산하 신속대응사령부(ARC: Allied Rapid Reaction Corps)가 영국 주도의 지휘 구조라는 점에서 의지의 연합과 간접적 작전 연계 가능성은 존재하나, 직접적인 군사 작전 수행에는 제도적 제약이 크다. 같은 맥락에서 EU의 공동 안보 및 방위정책(CSDP)은 군사 작전의 국제법적 준수를 보장하는 법적 기반을 갖추고 있으나 의지의 연합은 이와 같은 틀 밖에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파병에 대한 참여국 간 의사 조율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휴전 협정 준수를 위한 평화 유지 차원의 군사적 참여, 나아가 유사시 전투 임무까지 수행하는 파병에 있어 각국의 입장은 유동적이다. 특히 연합군 파병은 러시아로 하여금 군사적 도발로 간주될 수 있어 에스컬레이션(확전)의 위험을 수반하며 이는 파병국에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독일과 이탈리아는 지상군 파병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개입이 결여된 의지의 연합은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군사 연합체로서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연합체는 미국의 안보 공백을 보완하고 휴전 이후 안보 보장을 위한 자구책으로 조직되었지만, 역설적으로 미국의 공조가 필수적인 구조다. 공중 방어, 군수 지원, 정보 제공, 미사일 방어 등에서 미국이 갖는 압도적인 군사적 존재감의 부재는 결국 러시아에 대한 제한적인 억제력만을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충분하고 지속적인 재정 확보 방안도 뚜렷하지 않다. 3월 15일, 스타머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구상은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하에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종합하자면, 현시점에서 의지의 연합은 법적 정당성과 구속력, 나아가 작전 수행의 조율 및 집행 측면에서 실질적 제약이 많은 만큼, 평화 보장을 위한 안보 구조로서의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양한 구조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지의 연합이 추진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의 대응이 우리에게 던지는 몇 가지 시사점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의지의 연합은 휴전 합의 준수와 향후 조치에 대한 집단적 의지와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전달하는 상징적·외교적 기능을 지닌다. 또한, 구조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연합은 미국에 대한 과도한 안보 의존을 완화하고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강화를 도모하기 위한 실천적 대응 매커니즘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동맹 구조의 분권화라는 측면에서도 의지의 연합은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출범과 동시에 미국 주도의 동맹 구조는 신뢰성이 낮아지고 불안정해지고 있다. 또한, 미국의 방위비 분담 요구와 역할 재조정 압박 속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안보의 중심축이었던 NATO가 더 이상 유럽의 안보를 전적으로 책임질 수 없다는 위기 인식이 대두되고 있다.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지의 연합은 지역 국가 간의 협력을 통해 미국과의 불안정한 동맹 관계를 보완하거나 NATO와 병존할 수 있는 유연한 안보 협의체로 발전할 잠재성을 지닌다.
현재 유럽의 상황은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하다. 당면한 위협 속에서 안보 논의의 주변부에 머물지 않기 위해 우리의 안보 이익 및 요구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상징적·외교적 플랫폼의 개발이 필요하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유럽 주도의 ‘의지의 연합’은 개별 국가를 넘어 지역 단위의 공동 목표와 행동 의지를 미국과 러시아에 동시에 보여주는 기능을 수행하며 미약하나마 억제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역시 공동의 이익과 위협 인식을 공유하는 국가들과 유사한 협력 구조의 구축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구체화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 안보의 축인 한미동맹은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동시에 미국 정책 변화에 따른 동맹 리스크를 완충할 수 있는 분권화되고 다변화된 안보 협력 네트워크 확장과 강화를 위한 구상과 실행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 「세종포커스』에 게재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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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한 세종포커스(2025.4.2)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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