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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라라고 합의는 합의가 아니라 구상에 불과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소위 마라라고 합의(Mar-a-Lago Accord)에 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마라라고(Mar-a-Lago)는 플로리다 남동부 해변가에 있는 휴양지로 트럼프 대통령이 1985년 구입하여 골프 클럽으로 개조한 뒤 개인용 사저로 거주하는 지명이다. 누가 마라라고 합의(The Mar-a-Lago)라는 명칭을 처음 붙였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2025년 1월 트럼프 대통령 2기 정부가 출범할 즈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에 관심을 가진 월가 혹은 금융가 분석가가 붙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1985년에 달러 강세를 교정하기 위하여 체결한 G-5 국가간의 비밀 협정, 즉 플라자 협정(The Plaza Agreements)에 빗대어 합의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실제 마라라고 합의의 내용 안에는 국가 혹은 기구 간의 합의나 협정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합의’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마라라고 구상’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2) 마라라고 구상의 핵심 내용은 달러 약세다.
마라라고 구상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회(CEA:The council of Economic Advisors) 의장인 스티븐 미란이다. 그가 2024년 11월 당시 재직 중이던 증권회사 Hudson Bay Capital 연구원으로써 발표한 글, 즉 『세계교역체제 구조조정의 지침서(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에서 마라라고 구상의 핵심 내용을 주장하였다. 이 논문의 주제는 세 가지다. 첫째, 달러 가치가 너무 강세이므로 달러 가치를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 둘째로 미국의 관세 부과가 세계무역의 불균형, 즉 미국의 무역적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주장과 셋째로 미국의 부채부담을 줄이기 위해 획기적인 부채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3) 왜 달러 강세가 시정되어야 하는가?
미란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달러 강세가 미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면서 고질적인 미국 무역적자와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회복과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서는 달러 약세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미란은 달러 강세의 근본적인 이유가 세계 유일의 리저브 통화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세계 각국이 리저브 통화인 달러를 보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달러 강세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세계 각국이 달러 리저브를 충분히 보유하게 하기 위해서 각국은 무역수지 흑자를 쌓아야 하고 미국은 필연적으로 무역적자 및 재정적자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달러 강세는 달러화가 국제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현상이었다고 해석한다. 문제는 이런 쌍둥이 적자 상황이 무한정으로 지속될 수는 없으며 때가 되면 달러 가치가 급격히 붕괴하면서 달러 자산에 대한 수요마저 붕락하는 위기상태, 즉 ‘트리핀 위기(the Triffin Crisis)“가 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를 미연에 예방하기 위해 달러가치는 적절하게 약세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미란의 구상은 영구적인 달러 기축통화 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미국의 무역적자는 해소되어야 하고 과도한 달러 강세는 시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4) 플라자 합의 때와 같은 구체적인 달러 약세 방안은 없다.
그러나 미란의 논문에는 달러 약세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1985년 플라자 합의 때에 있었던 G-5 중앙은행 및 재무장관 사이의 구체적인 협조 개입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만약 플라자 합의를 최근의 상황에 도입하여 적용한다면 미국은 금리를 낮추고, 달러 통화 공급을 확대하고, 다른 G5 혹은 G7 혹은 G20 국가들은 조직적으로 시장에 개입하여 달러를 시장에 공급하고 자국통화를 사들이며 자국 금리를 인상하거나 자국 통화공급을 축소하는 정책협조를 해야 한다. 그러나 미란의 논문에는 이런 제안이 들어있지 않다. 오히려 미국 연준은 금리를 동결하거나 본원통화를 줄여 나가고 있는 상황이고 다른 주요국(일본 제외)들도 대부분 자국 금리를 낮추거나 자국 통화의 약세를 묵인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1985년과 같은 주요국의 정책협조는 기대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5) 마라라고 구상의 또 다른 핵심 내용은 관세부과다.
미란의 또 다른 핵심 구상은 관세 부과다. 관세 부과를 통해 수입을 억제하여 국내생산을 확대하고 관세수입을 획득하며 동시에 관세압력을 통해 상대국으로부터 달러약세(=자국 통화강세)와 같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 판단은 치명적인 약점을 내포하고 있다. 관세를 부과하면 수입상품의 가격이 오르고 이에 따라 국내생산업자의 자국 내 생산이 촉진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가격이 오른다고 해도 국내생산이 늘어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멕시코산 주류나 한국산 김치에 대한 관세가 높아진다고 해서 미국 내에서 멕시코 주류나 김치 생산이 늘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만약 관세 상승에도 불구하고 가격만 상승할 뿐 국내공급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소비자가의 주머니에서 국가의 관세수입을 지불하는 꼴이 되고 만다. 둘째로 관세 수입이 생각보다 작다. 미국의 연간 수입액은 약 3조 달러인데 모든 수입상품에 대해 25% 관세를 물린다고 해도 수입량의 감소 효과를 감안하면 관세 수입은 7천억 달러가 안 될 것이다. 만약 10대 대미흑자국의 대미 수출(2024년 2조 2412억 달러)에 대해 25% 관세를 물린다고 하더라도 관세수입은 6000억 달러가 되지 않는다. 이 정도의 금액이라면 30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 GDP의 2%에 불과한 금액이다.
(6) 달러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백년채 방안
자국의 GDP 규모를 초과하는 미국의 국가채무도 트럼프 정부가 문제 삼는 중요한 정책 과제 중의 하나다. 국가부채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은 대체로 세 가지를 제안하고 있다.
하나는 외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를 이자가 없는 반영구 비유통 백년채로 ’사실상 강제로‘ 전환시키는 방안이다. 이를 촉진시키기 위해 미국 국채를 매입 혹은 보유하는 경우 일정률의 ’사용료(users fee)‘를 청구하자는 의견이 제안되기도 했다. 미국국채를 반영구채로 전환하는 외국에게 제공할 인센티브로는 국가 방위상의 안전보장 혜택에 더하여 만일의 긴급한 금융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비상 신용라인을 허용하자는 아이디어가 제시되고 있다.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둘째 방안으로는 연방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금 등 실물자산의 재평가 이익을 활용하여 국가부채를 줄이자는 아이디어다. 예컨대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금은 장부 가격이 온스 당 $41인데 이를 현 시세인 $3000로 재평가하면 약 1조 달러 정도의 이익이 발생하므로 이를 통하여 정부채 규모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7) 숨어있는 악마의 디테일
트럼프 캠프에 관여한 사람들 대부분이나 혹은 일부 트럼프 행정부에 우호적인 증권가 분석가들은 미란의 마라라고 구상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고 있지만 냉정하게 평가해 보면 거의 망상에 가깝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첫째로 인위적으로 달러 약세를 유도할 방법이 없다. 특히 인플레 우려가 상존하고 있고, 또 고율의 관세부과로 인플레가 더욱 우려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 인하 가능성은 제한될 것인데 다른 나라들이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자국 통화의 강세에 흔쾌히 동의하기가 어렵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지위를 고수하려고 하면 할수록 달러 가치 하락 유도는 어려워진다.
둘째로 반영구 백년채로 강제로 전환시킬 방안이 없다. 강제로 팔을 비틀려고 하는 순간 미국국채 가격은 폭락하면서 수익률이 급등할 것이고 그 여파가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으로 파급되면서 달러환율도 크게 불안정해 질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고안한 마라라고의 소프트-랜딩 시나리오가 퍼펙트-스톰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로 관세부과로 인한 인플레와 경기 부진과 금융시장 불안 때문에 어느 누구도 트럼프 정부와 협력하기를 꺼리는 분위기로 바뀔 것이다. 마라라고 구상은 베센트 재무장관이 말한 바와 같은 새로운 글로벌 질서 만들기(global economic reordering)가 아니라 한여름 밤의 팔 비틀기 환상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ifsPOST>
- 기사입력 2025년03월28일 18시38분
- 최종수정 2025년03월28일 18시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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