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관련링크
본문
MAGA와 미 통상정책의 이해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지만 예상을 뛰어넘었다. 이미 트럼프 1기 정부 때부터 시작된 ‘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정책은 2기 정부에 들어서 그 실행 의지가 더 강해지고 추진 속도도 더 빨라졌다. 트럼프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외국산 철강, 알루미늄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고, 마약류 유통 및 불법 이민 등을 이유로 캐나다, 멕시코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잠정 유예 중)한 데 이어 오는 4월2일에는 미국이 무역적자를 보는 주요국가들에 대한 ‘상호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어서 우리나라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렇게 서두르는 것은 미국의 만성적 무역적자가 근본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데다가 중국과의 경쟁이 더 심화되고 있고, 지지기반인 서민층의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MAGA의 근저에는 2차대전 이후 수립된 자유무역 체제와 신자유주의로 인한 과도한 세계화로 미국이 불이익을 당했다는 피해의식이 깔려있다. 전 세계적인 AI의 확산 속에서 주요 산업에서 중국 등 경쟁국에 대한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여 과거 절정기의 ‘강한 미국’을 다시 세우고자 트럼프 정부는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오늘날 일방적으로 보호무역 정책을 밀어붙이는 미국의 행태가 매우 거칠어 보이고 당혹스럽긴 하지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세기를 넘긴 미국 보호무역주의의 긴 역사를 먼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19세기 초이래 관세 수입을 이유로 20세기 초까지 고관세 정책을 유지하다가 그 이후 고성장에 따른 고물가에 시달리면서 저관세를 유지하기도 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농업을 위시한 국내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했다. 당시 스무트-홀리(Smoot-Hawley)법의 제정(1930, 평균관세 60%)은 세계 각국의 관세율 인상을 촉발시켰으며 이는 세계 무역의 급감과 세계 경제 공황의 악화를 초래하기도 했다. 1930년대 이후 미국은 개방주의를 표방하며 ‘상호주의적 무역협정법’을 제정(1934년)하고 다수 국가와 쌍무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한편 GATT/다자간 무역협상을 통해 자국의 평균관세율을 10% 수준까지 인하하는 등 60년대 까지는 전반적으로 자유무역 기조를 유지 하였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선진국 및 일부 개발도상국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국내 산업이 경쟁력을 상실해 감에 따라 다시 보호주의 경향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NAFTA 등 지역 경제통합에 노력하고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WTO의 출범을 주도하였으며. 2000년대 들어서도 한국을 포함한 다수 국가와 FTA를 체결하는 한편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Free Trade Area of Americas)를 창설하고 도하라운드협상(DDA, 2001.11)을 주도하는 등 세계 자유무역 질서 재편과 유지에 앞장섰다.
이렇듯 미국의 통상정책은 자국의 국내 상황에 따라 보호주의와 자유주의 사이를 오갔지만 이는 결코 양자 택일의 문제는 아니었다. 1960년대 까지 미국의 통상정책이 전반적으로는 개방주의적 기조를 띤 시기에도 미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확보하였다. 무역피해구조조치의 원조격인 GATT 19조(자유무역 원칙 예외조항)제정에도 미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오래 전부터 상계관세제도, 반덤핑법 등 자국의 무역피해구제를 위한 국내 법적 장치를 구축하는 한편, 수입피해에 대응한 무역조정지원(TAA, Trade Adjustment Assistance)조치를 도입하여 무역자유화에 일찍부터 대비하였다. 미국은 다자적 자유무역 체제를 강조하고 주도하면서도 항상 자국의 산업이 요구할 때는 WTO협정에 기반한 긴급수입 제한 또는 일방적 무역 규제조치(수퍼 301조등 국내법적 조치)를 강구하면서 자국 산업 보호에 앞장서 왔다.
무역적자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앞서 언급했듯이 트럼프 통상정책의 근저에는 자유무역에 대한 피해의식이 깔려있다. 일자리 상실로 저렴한 제품을 소비하여 얻는 이득(소비자 후생 증가)이 자유무역을 정당화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미국 무역적자의 근본적 원인은 과잉 소비와 전통 산업(제조업)의 경쟁력 상실에 있다. 저렴한 수입 소비재 덕분에 긴 세월에 걸쳐 이어져 온 소비성향(과소비의 습성)을 경쟁력을 상실한 국내 제조업(제품)이 감당할 수 없기에 무역적자가 단시일 내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고관세 및 긴급수입 제한 조치 등 무역 규제의 실효성은 한계가 있어 보인다. 무역적자의 해결이 어려운 또 하나의 근본적 원인은 달러 가치 변동의 비탄력성이다. 무역적자 확대가 달러 가치 하락, 가격경쟁력 상승으로 이어져 무역적자가 개선되는 것이 정상인데 미 달러는 무역적자와 무관하게 고평가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자체의 무역 거래와 무관하게 기축통화인 달러에 대한 외국의 막대한 수요(무역 및 비무역)가 존재하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그러지 않아도 경쟁력을 잃은 산업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가 근본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트럼프의 통상정책과 다자 무역 체제
트럼프의 정책을 들여다보면 일관성을 결하고 모순된 측면이 많다. 과거에 자국이 주도해서 만들어 놓은 국제 무역 규범과 질서(WTO체제)는 물론, 각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한미간 KORUS, 북미 NAFTA를 대체한 USMCA 등)을 무시하는 일방적 무역조치는 다분히 자기 부정적이다. 또한 자국이 기술우위를 점하는 산업에 대하여는 자유 무역을 주장하고 열위에 있는 산업에서는 수입 규제를 서슴치 않는 행태는 일관성을 결하고 있다. ‘상호 관세’의 개념 안에 상대국의 관세뿐만 아니라 비관세 장벽까지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포함하는 것도 비논리적이다. 또한 WTO 무용론을 제기하며 WTO 탈퇴를 거론 하는 미국이 정작 DSB 상소 위원 임명을 거부하여 상소 중재 재판 기능을 마비시키는 등 WTO를 무용하게 만들고 있음도 자기 모순적이다.
트럼트 관세정책이 단기적으로는 미국 이익에 부합하는 듯 보일 수 있지만 미국발 관세정책은 세계 무역을 감소시키고 결국에는 미국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의 최근 일방적 조치에 대해 이미 캐나다, 중국, EU 등 주요 무역상대국들이 WTO/DSB에 제소하였으며 미국도 이에 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러한 일방주의로 인해 미국 내 물가 상승과 경제 침체의 유발, 주요국의 반미 연합 결성과 미국의 고립화 등 부작용이 미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면 트럼프정부도 언제까지나 보호주의 정책을 밀어붙일 수는 없을 것이며 결국은 자유무역주의 기조로 돌아올 것이다. 그간에 보여진 트럼프식 협상 전략을 고려하면 일방적 조치를 통해 미국이 얻어내는 한계 이익보다 그로 인한 한계 상실이 더 크다고 판단되는 시점에는 미국은 반드시 자유무역과 국제 협력의 기조로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2025.3.24.) 현대자동차의 대미 31조원(210억 달러) 투자계획을 환영하면서 ‘관세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고 자찬하였는데 이러한 성과가 쌓여 무역조치의 댓가를 충분히 받아냈다는 판단이 섰을 때 미국은 서서히 자유무역으로 회귀할 것이라 보여진다.
WTO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WTO뿐만 아니라 국제 협력 전반에 걸쳐 국제기구의 앞날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미국은 이미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탈퇴했고, 트럼프 1기 때 탈퇴했다가 바이든 행정부에서 재가입한 파리협정(기후변화협약)에서도 다시 탈퇴하였다. NATO체제도, 심지어는 UN도 언젠가는 효용성 논란에 휩싸일지 모른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면 다자주의보다 자국의 이익을 내세운 일방주의 내지 쌍무주의를 우선하는 트럼프의 통상정책 앞에서 세계무역기구(WTO)의 앞날은 어두워 보인다. .
최근 미 트럼프 정부의 일방조치 이전에도 WTO의 앞날에는 이미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많은 쌍무적 FTA 및 ‘메가 FTA’가 확산 중이고 세계무역의 50% 이상이 FTA 등 경제통합 권역 내에서 이루어져 WTO의 존재감이 전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개발도상국들과 일부 세계 NGO들은 WTO가 미국, EU 등 선진국 위주로 운영되어 세계적 불평등을 조장하는 원흉이라 비판하고 있다. 미국 역시 도하라운드 협상 의제(지재권, 서비스, 노동, 환경, 경쟁 등)에서 중국 등 개도국들과 많은 이견을 보여 협상이 중단된 상황과 분쟁해결기구(DSB)에서 자국이 패소한 많은 사례들로 인해 WTO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국은 트럼프 1기 때부터 WTO 무용론을 제기하며 WTO 탈퇴까지 거론 한 바 있다.
이렇듯 지역주의(경제통합)의 확대와 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한 보호주의의 만연으로 다자 무역 체제는 시련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관론은 지나치게 단기적이고 피상적인 관찰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길게 보면 자유무역을 통한 상호 이익이 보호무역 효과보다 훨씬 클 것이기에 자유 무역의 대세는 다시 이어질 것이라 본다. 세계 대부분의 교역국(166개국)을 회원국으로 두고 세계 무역의 98%를 관장하는 WTO는 세계 무역질서를 관장하는 유일한 국제기구로서 위상을 유지할 것이다. 더구나 WTO가 갖추고 있는 포괄적이고 명확한 국제 무역 규범(10,000 페이지에 달하는 30개 협정), 세계 유일의 무역 분쟁 해결 기능, 전문성을 갖춘 인프라(데이터 베이스, 600여명의 전문인력 등), 그리고 75년의 역사를 통해 쌓인 많은 경험과 정보는 WTO가 상징적 존재를 넘어서 명실공히 세계 무역 질서를 주도하는 유일하고 유효한 국제기구로서 앞으로도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비록 현재로서는 미국의 보호주의적 무역 조치들로 자유무역이 폄훼되고 있고 다자간 무역협상(DDA)이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등 WTO가 다소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1995년 출범이래 지난 30년간 WTO가 이룬 성과를 무시할 수 없다. WTO의 공시 자료에 따르면, WTO는 도하라운드가 교착상태에 빠진 2011년 이후에도 정부조달협정의 확대(1,000억 달러 확대된 조달 규모), 무역 절차 개선(무역 거래비용 14% 절감으로 연 1조달라 상당 무역 확대 기대), 연 1.3조 상당 규모의 200개 IT 품목 관세 제거, 수산물 보조금 협정 발효, 식량위기 및 COVID-19에의 다자적 대응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지역 경제 통합 협정이 확산되고, 미국, 중국 등 주요 무역국들의 일방적 무역 규제가 만연하는 가운데서도 중요한 실적을 쌓으며 세계 무역 질서를 지키고 있는 WTO의 역할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격랑의 무역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미동맹이 굳건한 가운데서도 한미통상 마찰은 늘 첨예하였다. 필자가 과거 경험한 한미 통상협상(쌍무, 다자 포함) 과정에서 ‘동맹’에 대한 고려는 없었으며 철저하게 주고받는 ‘냉정한’ 협상만 있었다고 기억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리스트’나 상호관세 적용에서 무조건 예외 적용을 받고자 하는 시도는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품목이나 산업에서 글로벌 공급망 구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여 관세 및 내국세 감면 또는 기술 허용이나 협력을 얻어내는 치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우선 미국의 통상정책에 대해 우리는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수출지향적 성장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유무역의 수혜국이면서도 많은 보호무역주의적 정책을 시행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자유무역과 공정무역을 내세워 우리의 시장 개방을 끈질기게 요구하였고 일방적인 무역 규제조치들(수퍼 301조, 결과지향적 목표 설정 등)로 압박하기도 했다. 우리는 미국 정부가 자국 산업계가 요구할 때는 언제든지 보호주의적 정책 수단을 꺼내들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미리 대처해 나가야 한다. 트럼프정부의 위협이 허풍이 아니라 실력(시장력과 기술력)에 근거한 ‘신뢰할만한 위협(credible threat, 단순 위협이 아니라 실현 가능하고 실효적인 위협)임을 인식한다면 미국과 적극적인 협상을 통해 상호 이익이 되는 타협점을 모색하는 게 현실적인 대응 방안이다. 일본과 비교해서 국내정치 상황이나 외교안보 전략상 우리가 불리한 여건에 있다고 너무 위축되거나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첫째, 미국과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협상 대안을 마련하는 한편, 민관을 망라한 포괄적 채널을 통해 미국측을 설득하고 소통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이러한 대안은 관세. 비관세 조치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 차원의 글로벌 공급망(조선, 배터리, 원전, 반도체, AI 등 전통제조업과 미래 산업을 포괄하는) 참여를 위한 무역, 기술, 투자, 전문인력 교류 등 광범위한 협력을 포함하여야 한다.
둘째, WTO 체제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EU 등 강대국들의 부당한 무역 조치에 대해 경우에 따라 우리 독자적으로, 또는 다른 나라와 연합하여 WTO 분쟁해결 기구(DSB)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근래 우리는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반덤핑 조치, 철강제품에 대한 불리한 가용정보(AFA, Adverse Facts Available) 적용 등 미국의 부당한 조치에 대항하여 WTO/DSB에서 승소하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앞으로도 치밀한 준비와 전문성을 쌓아 미국의 일방적 조치에 슬기롭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 또한, WTO의 방대한 정보와 전문성을 활용하고 언젠가 WTO/다자간 무역협상이 재개될 날에 대비하여 평소에 WTO 사무국과 긴밀한 교류를 유지하고 통상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
셋째, 경제통합에 참여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는 뒤늦게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지만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어 일본 등 경쟁국들에 비해서도 많은 나라들과 협정을 맺은 결과 ‘경제영토’를 크게 확대하여 안정적 수출 기반을 마련했고 소비자 후생을 높였다. 이제는 수출입에서 더 나아가 안정적 공급망을 확충하는 데 목표를 두고 많은 나라들과 FTA를 확대해야 한다. 또한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 등 ‘메가 FTA’를 통한 무역 확대도 적극 시도해야 한다. 한편, 미국이 한미 FTA(KORUS)의 재협상을 요구(농산물 개방 등)해 올 경우에도 대비하면서 차제에 KORUS를 단순한 무역협정이 아닌, 글로벌 공급망 협력을 포함한 포괄적 ‘경제동맹’으로 격상시키는 방안도 검토해 볼만 하다. 양국 간 군사동맹이 경제동맹과 연계될 때 국익을 위한 상승효과는 클 것이다.
<ifsPOST>
- 기사입력 2025년03월27일 18시30분
- 최종수정 2025년03월27일 17시54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