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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의 문화시평 <27> 60회 베니스비엔날레 참가를 앞둔 한국 전시들과 K-ART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02월05일 17시04분
  • 최종수정 2024년02월05일 10시12분

작성자

  • 김찬동
  • 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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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금년도 국제미술계의 큰 행사 중 하나는 오는 4월 20일부터 7개월간 개최되는 《베니스비엔날레》가 아닐까, 한다. 1895년 세계 최초로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이 행사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명성과 권위를 가지는 미술 행사이기 때문이다. 이를 모델로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 다양한 비엔날레가 만들어졌고, 국내에서도 비엔날레라는 용어는 광주비엔날레 등을 통해 일반에게도 낯설지 않은 명칭이 되었다. 올해는 베니스비엔날레가 60회를 맞는 해이고, 비엔날레에 한국관이 설립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여서 국내외적으로 특히 관심이 높다.

베니스비엔날레는 19세기 유럽의 만국박람회 형식을 미술 분야에 적용해 이탈리아가 자국 미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홍보하기 위해 출범하였다. 이것은 박람회처럼 본 전시와 자르디니 공원에 마련된 국가관 전시로 나뉘는데, 각국은 국가관 전시에 국가대표급 작가를 출품시켜 자국의 미술 역량을 과시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한국은 1995년 마지막으로 국가관을 마련하는 행운을 얻었다. 부지확보 등 행정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여건이었지만 여기에는 작가 백남준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1993년 백남준은 독일관의 작가로 참가하여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얻었는데, 그가 베니스 당국을 설득해 낸 것이다. 어쨌든 한국관의 확보는 한국미술의 국제적 위상이 높이는 데 기여해 왔다. 하지만 음악이나 영화 분야가 보여주는 것처럼 K-아트의 맥락에서의 미술 분야가 거둔 결정적 성취는 여전히 부족하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본 전시는 상파울루 미술관장인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가 총감독을 맡았다. 그는 남미와 아프리카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 속의 원주민, 여성, 동성애자 등의 문제를 다룬 전시인 《히스토리아스(Histórias)》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그간의 주요 관심사를 인정받아 감독 위촉을 받았다. 최근 들어 서구의 주요 비엔날레는 새로운 미술 담론 개발을 위해 비유럽·비서구의 인물들을 총감독으로 선임하는 경향이 유행이다. 페드로사는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를 ‘어디에나 외국인’으로 정했다. 이 주제는 국가, 민족, 영토, 국경을 넘어 사람들의 이동과 존재에 관한 다양한 위기가 만연한 세계적 정황에 관해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서 번역, 인종, 정체성, 국적, 성별, 성적 지향, 자유, 부에 따른 차이와 불평등의 문제를 다루고자 하고 있다. 그는 이번 본 전시를 위해 《Nucleo Contemporaneo》와 《Nucleo Storico》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총 331명을 선정하였다. 

 

Nucleo Contemporaneo》의 주요 주제는 “다양한 성적 취향과 성별 내에서 활동하며 종종 박해받거나 불법화되는 동성애자 예술가; 독학 예술가, 민속 예술가, 대중 예술가, 그리고 원주민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예술계의 변두리에 있는 아웃사이더 예술가를 주목한다. 《Nucleo Storico》는 “글로벌 모더니즘과 글로벌 사우스의 모더니즘”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며, 이를 세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초상화와 표현, 추상화, 글로벌 사우스의 이탈리아 디아스포라를 다루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주로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및 아시아 출신의 남반구 출신 예술가 112명이 1905년부터 1990년 사이에 만든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여기에는 싱가포르나 한국과 같은 이전 개발 도상국에 기반을 둔 예술가와 뉴질랜드의 마오리 예술가가 포함된다. 본 전시에는 한국 작가로 작고 작가인 이쾌대와 장우성, 생존작가로 원로 여류조각가 김윤신과 LA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 이강승 등 4인이 선발되었다.

 

  한국은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한국관 전시 이외에도 다양한 전시프로그램을 가지고 K-ART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할 예정이다. 올해 한국관의 전시 감독은 덴마크 아트 허브 코펜하겐 관장인 야콥 파브리시우스와 덴마크 쿤스트할 오르후스 이설희 큐레이터가 공동으로 맡았고, 광주비엔날레의 감독을 역임한 바 있는 영국 휘트워스 미술관장 이숙경 씨가 일본관의 커미셔너를 맡았고, 부산비엔날레 감독을 맡았던 김해주 씨가 싱가포르관의 커미셔너를 맡았다. 한국미술계의 전문가들이 국제무대에 약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 할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본 전시에 초대된 한국 작가 4인, 한국관 참여 작가인 구정아의 전시를 비롯하여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기념하는 《모든 섬은 산이다》전, 광주비엔날레 건립 30주년 기념전, 그리고 문화재단과 상업화랑, 미술 단체와 연관된 다양한 전시 총 11개의 전시가 참가할 예정이다. 따라서 올해 베니스비엔날레는 어느 해보다도 한국미술을 제대로 홍보하고 소개하려는 노력과 활력이 넘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여건에서 전시 수가 많다는 것만으로는 그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비슷 비슷한 전시가 행사 기간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나 한국관을 운영하는 문화예술위원회는 이번 계기를 통해 K-ART의 참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하고 있지만, 11개의 전시 중 확실하게 K-ART를 특징지을 만한 전시는 별반 없는 정황이다. 대략적인 내용을 보면 공적인 전시인 한국관 건립 30주년 기념전은 개관 때부터 한국관 전시에 참여했던 역대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보여준다거나, 광주비엔날레를 사전 홍보하기 위한 전시이다. 나머지 전시들은 몇몇 미술재단이나 상업화랑에서 자신의 전속 작가들을 프로모션하기 위한 다분히 상업적 목적의 전시가 대부분이다. 유영국문화재단의 《유영국: 무한세계로의 여정》전,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의 《이성자:지구 저편으로》전, 한솔문화재단의 이 배 작가 개인전 《달집태우기》전, 현대화랑의 《신성희 개인전》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성격이 다른 독특한 전시가 있다면, 필자가 커미셔너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 작가 다수가 포함된 다국적 작가연합인 나인드레곤헤즈의 《노매딕 파티》전으로 본전시의 주제와 맥을 같이하는 비정형적 전시가 있을 뿐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베니스비엔날레는 새로운 미술 담론 생산의 장이기도 하지만, 거대한 국제 문화산업 시스템이다. 베니스는 이 제도를 이용하여 시의 재정을 확충한다. 수도 없는 많은 전시프로그램에 베니스의 라이센스를 팔아 공식적인 병행 전과 행사를 유치하여 거액의 수익을 창출하는 마당이다. 행사를 운영하는 주도 세력들은 전시를 명분으로 엄청난 미술산업의 국제적 비즈니스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비엔날레를 이권과 미술 정치의 각축장으로 그리고 국제미술계에 권력 행사의 장으로 만들기를 욕망한다. 최근 비엔날레에서의 ‘반(反)유대주의’적 논의는 복잡한 국제정치적 맥락이 비엔날레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의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복잡한 시스템을 인지하지 못한 채 단순한 미술 행사의 참여라는 순수한 아카데미즘적 태도로 접근한다면, 한국의 전시들은 엄청난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며 그들의 잔칫상에 구색을 갖추는 차원을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정부에서는 비엔날레 등의 미술 행사를 순수하게 K-ART를 알리는 장으로 삼고자 하지만, 이렇듯 거대한 제도를 넘어서거나 차별화된 도전적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아무런 이슈도 만들지 못하고, 예년처럼 그저 자화자찬식 국내용 기삿거리로만 남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국제미술 생태계가 가진 정치, 사회, 미학적 여건들의 복잡성 때문에 해답이 그리 단순치는 않다. 2022년 카셀 도큐멘타에서 인도네시아 기획자들을 초대하거나,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남미의 총감독을 세워 비서구적 담론으로 새로운 미술 상품을 만들어 내는 사례에서 보듯, 비엔날레가 가진 끊임없이 새로운 담론을 찾는 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여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서구적 영역에서는 극동보다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 등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극동으로 분류되는 한·중·일에서는 이미 중국과 일본은 검증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타 지역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며 글로벌 무대에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만의 독특한 담론을 살려낸다면 매우 승산이 있다. 비근한 예로 융복합 정신이나 ‘풍류’나 ‘신바람’의 담론은 우리가 가진 매우 독특한 영역이다. 우수한 작가는 물론, 역량 있는 전시기획자를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 지구적 담론을 다루는 전시콘텐츠를 양산해 내는 길이 기본이 되어야 하며. 국가가 전략적으로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역량을 가진 국가대표급 기획자를 집중 발굴, 육성, 지원하는 방법이 급선무다.

       

  이번에 베니스에 선보이는 11개의 전시는 서로가 미리 치밀한 전략 속에 준비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개별 주체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준비된 것일지라도 서로 전시의 특성을 숙지하고 전시마다 우리가 가진 공동의 담론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노매드 파티》와 같이 다국적 협업을 통해 한국미술의 다원성을 효율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다. 장기적이며 큰 과제는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의식을 공유하며 질적 차별화를 기하지 못한다면, 올해의 K-ART를 알리고자 하는 열망 역시 베니스라는 거대한 제도에 함몰되어 참가의 의의로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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