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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의 문화시평 <34> 기후운동가들과 예술품 테러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06월10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4년06월10일 20시14분

작성자

  • 김찬동
  • 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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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 중인 모네의 작품 <아르쟝티유의 양귀비>에 한 여성이 양귀비의 색과 같은 붉은색의 넓은 스티커를 부착하는 폭력을 자행했다. 이 여성은 기후 위기에 대처하며 지속 가능한 식량 생산을 옹호하는 단체인 “Riposte Alimentaire (Food Response)”의 일원이었다 하는데 현장에서 경비원들에게 체포되었다. 2020년대에 들어 예술 작품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빈번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루브르의 <모나리자>에 케이크를 바른 사건이라든지,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 중인 고흐의 <해바라기>에 토마토수프를 던지는 사건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영국의 “져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이란 단체의 일원이 화석 연료 사용중단을 촉구하며 이러한 행위를 통해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한 긴급성을 강조하고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과격한 행위를 시도했다. 이외에도 로마의 트레비 분수에 뛰어들어 분수의 물을 검은색으로 물들이는 일이라든지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에 올라 주황색 페인트를 쏟아붓는 등 문화유산들에 다양한 위해를 가하는 반달리즘이 성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와는 다르지만, 최근에는 루브르에 전시되고 있는 여성의 음부를 적나라하게 그린 구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에 한 여성이 “ME TOO”라는 단어로 낙서를 벌인 뒤 작품 앞에서 작품에서처럼 자신의 치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성적 담론과 연관된 시위도 발생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 인종과 성차별, 권력의 남용과 인권 침해 등을 주제로 한 벽화로 유명한 리언 골럽(Leon Golub)이 그린 필라델피아의 벽화 <생명보다 큰 영웅들(Larger Than Life Heroes)>를 파괴한 사례도 있다. 이 벽화는 지역사회와 예술 애호가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었으며,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흰 페인트로 덧칠되어 거의 완전히 지워졌다. 이처럼 좀 더 정치, 사회적 입장을 표출하는 테러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다양한 예술품의 파괴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들이 예술품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펼치는 이유는 일반인들과 언론의 관심 촉발을 통해 소기의 목표를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러한 시위들은 논란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술 작품은 문화유산으로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시위자들은 급진적인 방법을 통해서만이 대중과 정부의 시선을 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엇갈리며, 예술품 테러 시위의 정당성과 효과성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이러한 행위는 예술 작품에 대한 중대한 훼손으로 중요한 유산들이 유실되거나 파괴되는 것은 물론, 시민들이 가졌던 소중한 문화적 기억들이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케 하는 야만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예술 작품을 대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한 테러는 1914년 영국의 한 여성 참정권운동가가 내셔널 갤러리에 걸린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비너스의 거울>이란 유명한 작품에 위해를 가하는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메리 리처드슨(Mary Richardson)이란 이름의 여성은 작품에 여러 차례 칼로 찢는 손상을 입혔다. 리처드슨은 체포된 후, 이 행동이 에멀린 팽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라는 여성 참정권 운동 지도자의 체포에 대한 항의였다고 밝혔다. 팽크허스트는 자주 체포되곤 했던 당시 여성 참정권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리처드슨은 작품파손에 대한 이유를 언급하면서 “나는 아름다운 여성의 몸을 사랑한다. 나는 이 아름다운 것을 파괴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훨씬 더 값진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파괴하기로 결심했다.”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여성 참정권 운동의 과격한 측면을 부각하며 영국 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는 리처드슨의 행동을 비난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를 통해 여성 참정권 문제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예술 작품에 대한 공격이 정치적 시위의 수단으로 사용된 초기 사례 중 하나로, 이후의 다양한 시위 형태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어떠한 목적이라도 폭력이나 테러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결국은 이러한 반달리즘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 작품을 손상치 않고 이와 관련된 문제들에 관해 의견을 개진하는 방법은 없는가? 실제로 많은 예술가가 이러한 사회나 제도적 문제에 대해 언급하며 예술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사례는 하나의 시사점이 될 것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예술계에는 기존 예술제도는 물론, 정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작품을 통해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성향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1968년 이후 학생운동이 촉발한 사회문화적 차원의 혁명적 사고들은 이를 뒷받침하였다. 미술 분야에서는 ‘개념미술’이란 양태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났다. 과거 예술의 본질을 물질적 속성과 형식으로 간주하던 입장으로부터 정신이나 개념을 본질로 인식하고자 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많은 사례 중 그 대표적인 초기 사례는 1970년 한스 하케(Hans Haacke)의 작품 <모마 투표(MOMA Poll)>이다.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서 개최된 전시에 출품작으로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과정과 결과를 제시한 작품이다. 설문과 투표의 내용은 MOMA의 주요 기부자이자 이사이며 뉴욕 주지사였던 넬슨 록펠러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음으로써 그가 미술관 이사의 자격이 적합한지를 투표하는 것이었다. 투명한 아크릴 상자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 과정과 결과를 작품화하면서 결국 미술관 제도에 관한 비평적 개념을 다룬 것이었다. 미술관이 가진 제도적 문제점을 직설적인 구호나 격렬한 시위가 아닌 방식으로 예리하게 처리했다.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사례 중 하나는 미국의 사진작가 낸 골딘(1953-)이 중독성 진통제 옥시콘틴 (OxyContin) 의 생산을 통해 오피오이드 전염병을 조장해 온 제약업체 퍼듀 파마(Purdue Pharma)를 고발한 퍼포먼스이다. 그녀 자신도 옥시콘틴에 중독되었던 적이 있고 1999년 이래로 20만 명 이상이 이 약을 먹고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제약회사 측은 중독증상이 없는 안전한 약으로 선전해 왔다. 퍼듀 파마를 운영해 온 새클러 가족 구성원들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구겐하임, 루브르 등 전 세계 박물관의 중요한 기부자이기도 했다. 낸 골딘은 이들이 기부한 미술관 내에서 약병 투척과 시체처럼 바닥에 드러눕는 등 관람자들과 함께 옥시콘틴의 폐해와 제약회사의 부도덕성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통해 이들을 퇴출했다. 그녀의 운동은 2022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탄 다큐멘터리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에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최근에 빈번히 나타나는 기후운동가들의 예술품 테러는 벌써 싫증이 나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러나 운동가들의 순수한 의도나 정신이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자신들의 입장을 공공재에 위해를 가하지 않으면서 세련되게 처리할 수 있는 대안을 찾고 있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예술적 어법을 통한 성숙한 대안을 찾아보면 어떨까?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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