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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7> 각하, 떡볶이는 혼자 드시옵소서 (下)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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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6월11일 16시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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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를 이끄는 지도자와 그 집단에 대해 야박해서 눈물이 날 정도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그들이 힘들어 울어야 국민이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건… 정책이나 전문가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회지도층이 국민보다 힘들지 않고 편하게 살기 때문이다.> (졸저 ‘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중)

 

우리는 우리가 굉장히 민주화된, 자유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군 출신이 권력을 잡지 않았을 뿐 그 당시와 별 차이 없이 권력이 재벌 총수들을 마음대로 ‘집합’시킬 수 있다면 민주화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2030 부산 엑스포’는 재벌 회장님들의 회사 사업이 아니다. 나랏일에 회장님들을 동원한 거다. 사실 국제 행사 유치하는데 툭하면 재벌 총수들을 동원하는 모습도 이제는 사라져야 할 구태라고 생각하지만, 국익을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런데 유치전에 실패해 위로하는 자리에 모두 함께 데리고 가는 건 아니지 않을까? 오히려 본의 아니게 나랏일에 동원돼 고생한 회장님들을 나라가 위로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다음은 앞서 말한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일 아침(2023년 12월 6일 자 동아일보) 기사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구광모 ㈜LG 대표를 비롯한 주요 그룹 총수들이 6일 부산을 찾는다. ‘2030 부산 엑스포(세계박람회)’ 유치가 최종 불발됐지만, 민관 ‘원팀’ 협력 의지를 이어가고, 지역 경제 발전안을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과 구 대표,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등은 6일 오전 부산에서 열리는 간담회에 참석하는 방향으로 일정을 조정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제단체장 중에서는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참석할 예정이다. 최태원 SK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은 해외 출장 등 일정이 겹쳐 참석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행사에서 경제인들은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로 인한 부산 지역민들의 실망감을 위로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민관이 협력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 지역 명물인 국제시장을 함께 방문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당초 이번 행사는 준비 초기 부산 지역 경제 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추진됐으나, 최종적으로는 부산 엑스포 유치전의 마무리와 격려 자리로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 범위도 당초 4대 그룹에서 시작했다가 10대 그룹 안팎으로 넓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총수의 행사 참석을 일주일 전, 늦은 경우 사나흘 전에 결정한 그룹도 있었다.>

 

부산 엑스포 유치가 실패한 것은 2023년 11월 28일(파리 현지 시각)이고, 윤 대통령은 다음날인 29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대통령실로서는 잔뜩 기대가 부풀었다가 실망한 부산 민심을 달래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더욱이 몇 달 후 22대 총선까지 있으니…. 그래서 어떤 삼류 참모의 머리에서 나온 게 이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의 부산 회동이 아니었나 싶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를 며칠 만에 갑자기 새로 만들 수는 없으니 기존에 있던 부산 지역 경제 발전을 논의하기 위해 기획됐던 행사를 엑스포 유치 실패를 위로하는 자리로 변경하고, 여기에 폼 나게 재벌 총수들을 대거 대동시키려다 보니 앞서 말한 것처럼 회장님들이 갑자기 자기 일정을 변경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게 아닌가 싶다.

 

위 기사 마지막 문장은 ‘이에 총수의 행사 참석을 일주일 전, 늦은 경우 사나흘 전에 결정한 그룹도 있었다’라고 돼 있지만, 대통령 대국민 사과(11월 29일)에서 부산 방문(12월 6일)까지 시간이 일주일 남짓이었던 걸 고려하면, 총수들이 참석 결정을 사나흘 전에 한 게 아니라 대통령실로부터 동행 통보를 받은 게 대부분 사나흘 전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이것보다 더 짧았을 수도 있다.)

이 행사를 기획하고 승인한 사람들은 정말 참된 삼류다. 요즘 세상에 대통령이 재벌 총수 대동하고 내려가 한마디 하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시장에서 어묵, 떡볶이 먹으면 민심이 다독여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처럼 나라의 존망이 걸린 상황이라면 재벌 총수를 붙잡아 데려와서라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비록 큰 행사라고는 하지만 엑스포 유치 실패 위로와 마무리, 격려 자리가 대통령이 10대 그룹 회장님을 전부 대동해 내려가 위로해야 할 정도의 일일까? 부산 엑스포 유치는 삼성이나 LG가 추진한 사업이 아니다. 나라가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회장님들은 도운 것뿐이다. 그런데 왜 유치 실패 후 경제인들이 부산 지역민의 실망감을 위로하고, 지역경제 발전안을 함께 고민해야 하지?

 

여기에서만 그치고 서울로 올라왔으면 그나마 나을 뻔했다. 실질적인 도움은 안 됐겠지만 크게 욕먹을 일도 아니니까. 그런데 아마도 참모들이 보기에 간담회 정도는 화제가 될 만한 뉴스가 안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뉴스가 될 만한 ‘그림’을 궁리하다 보니 재벌 회장님들과 소탈하게 떡볶이를 먹는 대통령의 모습을 연출한 게 아닌가 싶다.

아니나 다를까, 모든 언론이 회장님들의 떡볶이, 튀김 시식 모습을 보도했고, 그 덕에 대통령과 회장님들이 어묵과 떡볶이를 먹었던 가게는 방문 이후 매출이 전보다 5배나 뛰었다는 기사까지 났다. 이 어묵 가게는 이후 관광객까지 찾는 명소가 됐다고 한다. 훌륭한가?

 

너무 삐딱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과 10대 재벌 총수가 하루를 공치고 남긴 게 고작 한 어묵 가게 홍보인 것 같아 씁쓰름하다. 대통령실은 소탈한 우리 각하의 서민적 이미지가 전 국민에게 비췄다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이것이 진정한 삼류들의 모습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생각도 못 하고 오직 눈앞에 있는 나와 우리 집단의 이득에만 급급해하다가 결국 망하기 때문이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득이라도 가져가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이런 부류들은 그것조차 아니올시다다.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수억 원짜리 소파에 앉아 떡볶이를 먹으면 서민처럼 보일 리가 없다. 재벌 회장님들을 병풍처럼 뒤에 세우고 떡볶이를 먹었으니 화제는 됐지만, 사람들 눈에 그 모습이 정말 보기 좋게 보였을까?

 

넉 달 후 22대 총선이 있었다. 그리고 결과가 어땠는지는 우리 모두 안다. 지역구 254석 중 민주당 161석, 국민의힘 90석. 나라가 걱정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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