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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25> 국정(國政)의 본 원칙과 목표 V. 바른 국정을 도운 인재들 ⑦김종서[金宗瑞(1383-1453), 시호 忠翼公](上) 새창

     V.7 김종서[金宗瑞(1383-1453), 시호 忠翼公]​  황희, 변계량, 허조가 모두 태종의 신임이 두터웠던 사람으로서 태종의 추천으로 세종이 중용한 사람이라면 김종서는 세종 시대에 들어 와 신임을 받은 사람의 대표라 할 수 있다. 김종서는 태종 5년 에 문과 급제하여 10년 뒤 태종 15년에 상서사(尙瑞司) 직장으로 있었다. 상서사란 인사정보 및 관리의 업무나 정부의 각종 관인을 관장하는 매우 중요한 부서였으나 인사관리 업무가 태종 5년 2월 이조와 병조로 옮겨간 이후 한직이 되어버렸다.  태종 시절에 김종서는 곡절이 많았다…

    신세돈(seshin) 2022-06-24 17:10:00
  • 총체적 경험(TX, Total eXperience)의 최 트렌드 새창

    2022년 초, 삼성·LG전자 두 기업이 공통으로 꺼낸 화두는 ‘경험’이었다. LG전자 조주완 사장은 신년 메시지에서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디지털 전환을 추진해 혁신적인 경험을 제공하자고 말했으며, 삼성전자 한종희 부회장 역시 CES 2022에서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맞춤형 경험의 비전을 제시하였다.1) 지난 수년 간 ICT 업계에서 꾸준히 언급되어 오던 경험이라는 키워드가 다시금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글로벌 리서치 업체 Gartner에서는 2021년에 이어 2022년 기술 트렌드로 총체…

    장진철(jangjinchul) 2022-06-22 16:00:00
  •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24> 국정(國政)의 본 원칙과 목표 V. 바른 국정을 도운 인재들⑥변계량[卞季良(1369-1430), 시호 文肅公](下) 새창

    [변계량과의 세종의 의견차이] 세종시대에 들어 죽을 때까지 변계량이 좌천되거나 파면된 일이 없다고 해서 세종과의 관계가 원만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 임금과의 의견 차이를 보였다. 예를 들어 태종의 국상 중에 과거시험을 볼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가 발생했다. 변계량을 위시하여 이원, 정탁, 유관 등 대부분 대신들은 반대했다. 오직 예조판서 김여지만 과거를 보는 것이 해로울 것이 없으므로 폐하지 말자(無害於義 不可廢也)고 했다. 임금은 과거를 보는 쪽으로 결정했다(세종 4년 10월 18일). 또 세종 6년에 사헌부는 광범…

    신세돈(seshin) 2022-06-17 17:10:00
  •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23> 국정(國政)의 본 원칙과 목표 V. 바른 국정을 도운 인재들⑥변계량[卞季良(1369-1430), 시호 文肅公](上) 새창

    V.6 변계량[卞季良(1369-1430), 시호 文肅公] “내게 좋다하고 남 슬흔 일 하지 말며 남 한다고 의 아니면 좇지 마라 우리는 천성을 지켜 삼긴대로 하리라(변계량).”  황희가 세종의 행정의 대들보라면 변계량(호 春亭)은 세종의 학문과 예식의 대들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황희의 명성이 의정(영의정,좌,우의정)직에서 돋보임에 비해 변계량은 거의 20여년에 이르는 대제학(문형,文衡)직에서 두각을 보이기 때문이다. 계량은 고려 말 이조판서를 지내다가 조선조에 들어와 원종공신이 되어 판중추원사를 역임한 변옥란의 둘째아들이다…

    신세돈(seshin) 2022-06-10 17:10:00
  • 한ㆍ미ㆍ일 안보협력 전망: 동력과 한계, 바람직한 접방향 새창

     지난 5월 21일 한ㆍ미 정상회담 이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다양한 분야에서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을 다짐하였다. 그중에는 “북한의 도전에 대응하고(responding to the DPRK’s challenges), 공동 안보와 번영을 수호하며, 공동의 가치를 지지하고,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강화하기 위한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2021년 5월 20일의 한미 공동성명에서의 3국 협력과 관련하여 “북한 문제를 다루어 나가고(…

    차두현(chadoohyun) 2022-06-06 16:50:00
  •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22> 국정(國政)의 본 원칙과 목표 V. 바른 국정을 도운 인재들 ⑤맹사성[孟思誠(1360-1438), 시호 文貞公,계속](下) 새창

    [세종과 맹사성] 세종은 즉위하자 바로 변계량, 박자청과 함께 맹사성에게 말을 한 필 씩 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칭찬했다.    “경이 관습도감제조로 악사들에게 새 가사를 잘 가르쳐 율조와     합치되므로 부왕이 매우 기뻐하셨소.     (卿爲慣習都鑑提調 敎伶人新詞 合      於律調 父王歡愉 : 세종 즉위년 11월 10일)”   맹사성은 음악에 관해 조예가 매우 깊었으므로 세종은 늘 그에게 음악에 관한 자문을 구했다. 악사의 연주를 지켜 본 세종이 잘못을 지적하며 말했다.   “에는 노래 사이에 를 부른다고 했고 에는 생과 용을…

    신세돈(seshin) 2022-06-03 17:10:00
  •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21> 국정(國政)의 본 원칙과 목표 V. 바른 국정을 도운 인재들 ⑤ 맹사성[孟思誠(1360-1438), 시호 文貞公](上) 새창

    V.5 맹사성[孟思誠(1360-1438), 시호 文貞公] 맹사성은 고려 최영장군의 손녀사위로 우왕 12년(1386) 문과 일등으로 급제하여 춘추관 검열이라는 직책으로 관문에 들어섰다. 맹사성의 초기 관직생활은 유난히 곡절이 많았다. 태조 때 예조의랑으로 이씨조선 정부에 발을 들여 놓았으나 개국공신 정희계를 똑바로 기록하지 못했다는 죄로 파면되었다. 태종 3년(1403) 윤11월 좌사간대부로 다시 복직되었지만 이번에는 사간원과 사헌부의 권력다툼에 휘말리게 된다. 이 때 맹사성이 속해 있던 사간원과 사헌부 사이에는 묘한 갈등이 있었다.…

    신세돈(seshin) 2022-05-27 17:10:00
  •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20> 국정(國政)의 본 원칙과 목표 V. 바른 국정을 도운 인재들 ④신개[申槪(1374-1446), 시호 文僖公, 배향공신] 새창

    V.4 신개[申槪(1374-1446), 시호 文僖公, 배향공신] 신개는 황희, 허조, 최윤덕과 함께 세종의 묘정에 배향된 7공신 중에 하나이다. 두 형(양령대군 제와 효령대군 보)과 일찍 타계한 스승 이수의 3명을 제외하면 이 4명이 세종의 묘정에 배향된 ‘진정한 세종의 신하’라고 할 수 있다. 신개는 세종의 공법(貢法)을 강력하게 추진한 인물이다.   신개는 조선 개국과 함께 치러진 과거에 급제하여 태조 1년(1393) 스무 살의 나이로 사관(史官)이라는 공직의 길을 시작하였다. 태종 때에는 주로 사간원에서 봉직하였으며 태종 17…

    신세돈(seshin) 2022-05-20 17:10:00
  •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19> 국정(國政)의 본 원칙과 목표 V. 바른 국정을 도운 인재들 ③허조[許稠(1369-1439), 시호 文敬公, 배향공신](下) 새창

    [명나라 마소요구] 명나라가 조선에 말을 보내줄 것을 요청해왔다. 지난 태종 9년 10월(1409)에도 말 만 필을 요구해 보내었고 세종 3년(1421) 9월에도 보냈는데 이제 또 말 1만 여 필을 요구한 것이다(세종 5년 8월 2일). 이 문제를 여러 재상과 의논하다가 다른 모든 재상들은 물리치고 이조판서 허조와 병조판서 조말생만 남았다. 허조는 말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는 것을 반대했다. 북방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예측이 어렵기도 하려니와 나라 안은 흉년으로 창고가 비었으므로 형편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적미적 대면서 …

    신세돈(seshin) 2022-05-13 17:10:00
  •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18> 국정(國政)의 본 원칙과 목표 V. 바른 국정을 도운 인재들③허조[許稠(1369-1439), 시호 文敬公, 배향공신](中) 새창

    [허조와 부민고소금지법 : 府民告訴禁止法] 예조판서 허조는 이렇게 생각했다.; “천하 모든 국가에는 인륜이라는 것이 있는데 임금과 신하, 위와 아래의 신분질서가 그것이다. 조금이라도 이 질서를 능멸하고 훼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아래 사람이 윗사람을 업신여기고 조금이라도 틈이나 허물이 생기면 그것을 꼬투리 잡아 문제 삼거나 소송을 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허조가 세종에게 이렇게 건의했다; “만약 그런 나쁜 풍조를 금지하지 않으시면 그 폐단은 임금께서 신하를 모으지 못하고 아비가 자…

    신세돈(seshin) 2022-05-06 17: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