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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 칼럼 게시판 내 결과

  • 통계조작 사건 유감(有感) 새창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 교수와 김상조 교수를 감사원이 주택 가격 통계 조작 혐의로 수사 요청을 한 모양이다. [연합뉴스] 감사원 "장하성·김상조·김현미 등 22명 통계 조작"…수사 요청https://www.yna.co.kr/view/AKR20230915035700001?input=1195m청와대 참모는 대통령이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다. 아직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지만 감사원 조사가 전혀 근거가 없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경제/경영학 교수 출신인 두…

    이상돈(sangd) 2023-09-18 11:48:00
  • 자유로운 영혼의 경제학 여정(旅程) <27> 외환위기와 냉혹한 국제금융 자본 새창

    “본인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동 협의 내용을 협의된 대로 이행하곗습니다.”1997년 12월 IMF의 캉드쉬 총재가 한국의 대통령 후보들에게 서명을 요구한 내용이다. 왜 대통령 후보들에게까지 이런 서명을 요구했을까?.한국 정부는 1997년 12월 3일, “대기성 차관 협상을 위한 양해각서”에 동의했다. 이 내용은 한국의 경제정책 주권이 한시적으로 IMF에 넘어갔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한국으로선 치욕스러운 날이었다.1997년 초부터 한국의 외환 보유액에 대한 외신기자들의 전화 문의가 많았다. 필자가 한은의 담당 부서를 통해 보고받기로는…

    김광두(kidoo) 2022-07-02 17:10:00
  • 자유로운 영혼의 경제학 여정(旅程) <26> 금융통화운영위원과 한국은행. 새창

    나는 1995년 9월 금융통화운영위원으로 임명됐다.산업계의 입장을 전해달라는 취지로 대한상공회의소 추천이었다.당시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의장은 재무부 장관이었다. 한은 총재도 위원중의 한 사람이었으나, 재무부 장관을 대신해서 회의를 주재(主宰)했다.한은과 은행감독원이 금통위의 의사결정 대상기관이었다.한은 부총재, 은행감독원장은 회의에 참석했으나 의결권이 없었고, 한은의 임원들은 회의에 배석했다. 위원들은 비상근이었기 때문에 월 15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경제학 교수로서 금통위원으로 일하게 된 것은 영광스럽고 매우 유익한 경험을 쌓는 기…

    김광두(kkkwang) 2022-06-25 17:10:00
  • 자유로운 영혼의 경제학 여정(旅程) <25> 삼성 자동차, 기술은행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 새창

    1992년 여름, 서강대학교 경제과 졸업생들 몇 명이 나의 교수실로 찾아왔다.모두 삼성 그룹에서 일하고 있는 제자들이었다. “교수님, 삼성에 700여명의 서강 졸업생이 있습니다.”“그래? 다들 잘하고 있지?”“네. 그런데 교수님 때문에 좀 난처합니다.”“???~~” 1992년 7월 13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삼성의 자동차 시장 신규 진입을 주제로 토론회가 있었다. 나는 삼성의 자동차 산업 진입에 반대하는 주제발표를 했다. 몇 가지 이유를 제시했지만, 삼성은 반도체산업에 집중 투자를 하는 것이 한국경제와 삼성을 위해서 더 바람직…

    김광두(kkkwang) 2022-06-18 17:10:00
  • 자유로운 영혼의 경제학 여정(旅程) <24> 정치 민주화, 노조 활동의 분출, 그리고 금융실명제.​ 새창

    1988년 2월 직선제로 노태우 대통령이 선출되었다.1972년 말에 유신헌법(維新憲法)이 확정된 이래 16년 만에 국민이 직접 투표로 선출한 대통령이었다.한국 사회는 민주화의 열기로 가득했다.권위주의 정부에서 억눌려 왔던 노조 활동이 화산의 용암처럼 분출되었다. 오랫동안 억압된 반작용으로 때로는 너무 거칠기도 했다.절대빈곤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60년대 이후 1987년까지 한국 정부는 성장 위주의 경제 사회정책을 견지해왔다. 그 과정에서 노조 활동은 억압되었고, 지역∙계층 간 소득재분배와 복지정책은 가볍게 다루어졌다.1987년의 정…

    김광두(kkkwang) 2022-06-11 17:10:00
  • 자유로운 영혼의 경제학 여정 <23> 일본을 알자 ; 히도스바시(一橋)대학 객원교수로.​ 새창

    Rising Sun!1980년대, 세계는 일본 경제를 이렇게 불렀다. 일본의 도요타 승용차가 미국 도로를 누볐고, 일본의 소니 가전제품들이 미국 가정의 부엌과 거실을 채웠다. 일본 투자자들이 뉴욕의 초고층 빌딩들을 매수했고, 할리우드의 주요 영화 제작사들이 일본인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손에 깃발을 든 일본인 관광객들로 붐볐고, 파리의 패션가는 일본 여성들이 누볐다. 런던의 해러즈(Harrods) 백화점은 일본인 고객으로 가득했고 로마의 트레비스(Trevis) 분수는 일본 동전으로 넘쳤다. 2차대전 패배…

    김광두(kkkwang) 2022-06-04 17:10:00
  • 자유로운 영혼의 경제학 여정(旅程) <22> 정치 민주화, 민간 역할 확대, 그리고 기업윤리​ 새창

    서강대 교수 28명이 “시국 선언문”을 발표했다.1986년 4월 25일이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한국의 민주화와 대학 자율화를 위한 우리들의 견해”라는 제목이었다. 당시 한국 정치는 권위주의 체제였다.학생들과 진보 진영의 시민들이 꾸준히 정치 민주화 운동을 벌여왔었고 일부 교수들도 동참했다. 이런 흐름 속에 서강대 교수들도 뜻을 모은 것이었다. 西江大(서강대)교수 28명 時局(시국)성명서 발표조선일보 | 1986.04.25 기사(뉴스)西江大(서강대)교수 28명 時局(시국)성명서 발표조선일보 | 1986.04.25 기사(뉴스)…

    김광두(kkkwang) 2022-05-28 17:10:00
  • 자유로운 영혼의 경제학 여정(旅程) <20> 백골 부대, 그리고 서강 학보 새창

    “학생들 때리지 말아요!”“넌 뭐야?” 백골 부대라 불리는 데모 진압 경찰들이 학내로 들어왔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학생들을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팼다. 심지어 도서관에까지 진입해서 학생들을 붙잡았다. 그들은 머리에 하얀색 철모를 쓰고 있었다. 나는 이들에게 항의했다. 그 와중에 나와 백골 부대 경찰 사이에 시비가 붙은 것이었다. 그들 몇 명이 나를 에워싸고 폭력을 행사하려 했다. 그 순간 학생들이 몰려와 나를 방어하려 했다. “야! 그 사람은 교수야. 손대지 마!” 지휘관인 듯한 사람이 뒤에서 소리쳤다. 그 지휘관은 유일하게 UCL…

    김광두(kkkwang) 2022-05-14 17:10:00
  • 자유로운 영혼의 경제학 여정(旅程) <19> 석유파동, 박정희 대통령 서거, 경기침체​ 새창

    1979년 1월, 정재석 원장이 경제기획원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그는 경제기획원 창립의 아이디어 맨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브리핑의 명수(名手)였다. 그는 경제기획원 초대 경제기획국장을 맡아 경제기획원의 초석(礎石)을 쌓았다. 그가 그의 고향으로 복귀한 셈이었다. 그는 예리하고 깐깐한 완벽주의자 스타일이었지만 인간적으로 따뜻한 사람이었다. “야 이 거지야!” 그가 즐겨 쓰는 말이었다. 처음 듣기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말에 애정(愛情)이 배어있었다. 자기가 아끼는 사람에게 주로 이 말을 내…

    김광두(kkkwang) 2022-05-07 17:10:00
  • 자유로운 영혼의 경제학 여정(旅程) <16> 국제경제연구원(KIEI), 그리고 홍익대 학군단​ 새창

    “해보겠나?”“네!” 1977년 1월 귀국해서 당시 국제경제연구원(Korea International Economic Institute) 정재석 원장(후에 김영삼 정부에서 경제부총리 역임)과 나눈 대화였다. 정재석 원장은 경제기획원 출신의 엘리트 공무원으로 건설부 차관을 지낸 후 이 연구원의 창립 책임을 맡았다. 1973년의 오일 쇼크를 극복하기 위해서 정부는 건설업계의 중동 국가들 진출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지원했다. 그런 정책적 노력의 일환으로 1975년(?) 중동지역의 경제를 심층 분석할 중동문제연구소를 설립했다. 1977년에…

    김광두(kkkwang) 2022-04-16 17: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