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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14> 국정(國政)의 근본 원칙과 목표 V. 바른 국정을 도운 인재들 ① 황희[黃喜(1363-1452), 시호 翼成公, 배향공신](中) 새창

    [세종의 황희 중용의 이유] 태종 18년 재위기간 중 네 번, 기간으로는 약 8년 동안 파면되었던 황희는 세종 32년 재위기간 중에는 두 번 밖에 파직되지 않았다. 그것도 합하여 11개월 밖에 안 되는 짧은 파직이었다. 세종 재위기간으로 본다면 거의 파직되지 않은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만큼 세종은 황희를 신뢰했다는 말이다. 세종이 황희에 대해 전폭적인 신뢰를 한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아버지 태종의 유훈이라 할 수도 있다. 태종은 진정으로 황희를 믿고 신뢰했었기 때문에 진심으로 아들이 그를 중용해 주기를 바랐다. 세종의 말이 그…

    신세돈(seshin) 2022-04-08 17:10:00
  • 나라를 망하게 하는 확실한 법칙 혼군 #17 : 용렬한 후연 2대 황제 모용보(F) 새창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

    신세돈(seshin) 2022-04-08 17:00:00
  •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13> 국정(國政)의 근본 원칙과 목표 V. 바른 국정을 도운 인재들 ① 황희 [黃喜(1363-1452), 시호 翼成公, 배향공신] (上) 새창

    세종이 즉위한 바로 다음날 대대적인 인사개편이 단행되었다. 좌의정에 박은, 우의정에 이원, 예조판서 변계량, 예문관대제학에 유관, 호조참판 이지강, 이조참판에 이명덕, 예조참판에 탁신, 지신사에 하연, 옥천부원군에 유창 등이 임명되었다. 이들 중 박은, 이원, 유창, 유관, 이지강 은 세자 때 세종의 사빈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승진 발령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인사는 태종의 인사라 할 수 있다. 태종이 구체적으로 이름을 들어 승진을 지시한 것이다. 이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세종 스스로 즉위교서에서 부왕의 유지와 큰 사업(丕業)…

    신세돈(seshin) 2022-04-01 17:10:00
  • 나라를 망하게 하는 확실한 법칙 혼군 #17 : 용렬한 후연 2대 황제 모용보 (E) 새창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

    신세돈(seshin) 2022-04-01 17:00:00
  •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12> 국정(國政)의 근본 원칙과 목표 IV. 사람 중심의 바른 정치 4. 이런 인재가 필요하다 ② 새창

    [넓이보다 깊이이다(정숙관천,精熟貫穿).] 어느 경연 도중에 한 경연관이 이렇게 지적했다. 한(漢)나라 선비들은 한 가지 분야를 전문적으로 깊게 학문하기 때문에 대단히 자세하고 상세히 보게 되나 우리나라는 이것저것 잡다하게 공부하기 때문에 연구를 해도 깊이 얻는바가 없다는 것이다. 바로 그 부분에 세종이 동감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이것이 내가 학자들에 대해 근심하는 바이다. 과 백가제사를어찌 하나같이 통달할 수 있겠는가. 요즈음 학자들이 을두루 읽다보니 밝게 깨닫는 게 없다. 치밀하고 깊이 꿰뚫어 읽기를해야 하는 곳으로는 경전을 …

    신세돈(seshin) 2022-03-25 20:15:00
  •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11> 국정(國政)의 근본 원칙과 목표 IV. 사람 중심의 바른 정치 4. 이런 인재가 필요하다. 새창

    IV.4 이런 인재가 필요하다. 국가정치의 근본이 사람이라는 ‘민유방본(民惟邦本)’의 철학적 원칙과 ‘어짊(仁)’으로 정치를 펴겠다는 ‘시인발정(施仁發政)’의 실천원칙은 인재를 정치의 가장 중요한 핵심요체로 두겠다는 ‘위정인최(爲政人最)’의 행동원칙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사람이 국가의 기본이라는 (of the people)이라는 철학이 민유방본의 정신이고, 인(仁)으로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 사람을 위한 정치라는 (for the people) 정신과 닿아있다면 '위정인최'의 원칙은 인재에 의한 정치(by the peo…

    신세돈(seshin) 2022-03-18 17:10:00
  •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10> 국정(國政)의 근본 원칙과 목표 IV. 사람 중심의 바른 정치 3. 재판이 잘못됐다!④ 새창

    IV.3 재판이 잘못됐다!④                          [제대로 살펴 굶주림과 추위를 면하게 하라(常加存恤 使免飢寒).] 공주의 박생이라는 맹인이 노비판결이 억울하다고 임금께 호소하여 사헌부로 하여금 다시 조사케 한 일이 있었다(세종 13년 12월 24일). 사헌부 조사가 한창 진행 되는 도중에 박생은 당시 지면천군사 박안신이 노비 두 명과 우마 각 두 필과 잡곡 150석을 뇌물로 받고는 제대로 처결하지 않았다고 감사와 수령을 함께 고소하였다. 참판이 되어있었던 당사자 박안신은 즉시 항변하였다. 박안신의 주장은 이…

    신세돈(seshin) 2022-03-11 17:10:00
  •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8> 국정(國政)의 근본 원칙과 목표 IV. 사람 중심의 바른 정치 3. 재판이 잘못됐다!② 새창

     IV.3 재판이 잘못됐다!②                              [고문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가(菙楚之下 何求不得者). : 수구문 살인사건]   서울 동쪽 지금의 광희문인 수구문 아래 초막촌에서 4월 9일 새벽에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초막에 머물던 중 한명이 명화도적에게 피살된 것이다. 같이 있다 살아남은 중 해전은 동네 석공들 소행이라고 제보했고 의금부는 즉각 주변 석공들을 잡아들여 문초했다. 잡혀온 자 중에 막산(김경의 노비의 남편)이 말하기를 서중, 박연, 두지, 부존 및 미마이의 5인 일당이 초막법당을 터…

    신세돈(seshin) 2022-02-25 17:10:00
  • 나라를 망하게 하는 확실한 법칙-혼군#16-2: 전한(前漢)원제 유석(BC75-BC49-BC33) <Q,끝> 새창

     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져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   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

    신세돈(seshin) 2022-02-25 16:50:00
  • 유능하지만 인성이 모자라는 군주의 병폐 : 중국 고대사에서 배운다 <4,끝> 후조(後趙)의 석호(하) 새창

    (24) 석호의 황위 등극과 요익중의 석호 질책(AD349) 조왕 석호는 마침내 황제로 등극했다. 섭조천왕이 된지 12년 만의 일이다. 동궁의 휘하에 있다가 량주(감숙성)로 귀양가던 10만여 병사들은 모두 무력과 체격이 뛰어난 장사들이었는데 감숙성으로 가던 도중 책임인솔자 양독의 지휘아래 반란을 일으켜 가던 길을 돌아왔다. 그들의 실력이 너무나 뛰어나서 갑옷과 무기가 없이도 한 명이 열 명 이상을 감당하였다. 양독은 스스로를 진의 정동대장군이라 칭하면서 장안으로 진격해왔다. 장안을 지키던 낙평왕 석포가 모든 정예병을 가지고 막았으나…

    신세돈(seshin) 2022-02-24 16:5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