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통한 휴식과 힐링의 시간

Kai Jun의 그림이 있는 단편소설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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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Jun, 들꽃처럼 다시 피어난다​​, Oil on Canvas, 90.9cm X 72.7cm, 2019년 작

명동 성당의 종소리.

 

9년 전 철없던 내가 들었던 그 소리가 같은 시각에 울려 퍼지고 있다.

오후 6시에 울리는 만종,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울리는 종소리는 경건하게 나의 하루를 돌아보게 한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전화 드렸던 한국동물보호협회 미스 김입니다.”

~! 전화 목소리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미녀네요. 반가워요

명동 성당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서 미스김과 나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번에 저희 협회에서 대표님의 공로를 인정하여 공로상을 드리려고 하는데 대표님의 봉사에 대한 기사도 나가요. 대표님이 봉사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미스김의 요청에 나는 조금 당황 했다. 나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고 계기가 좋아 보일수도 없어서였다.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미스김은 말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나?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다 이렇게 얘기했다.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그냥 편하게 말씀하시면 제가 걸러서 기사로 내면 되니까요.”

미스김은 사람을 안정시키고 신뢰감을 주는데 재능이 있었다. 그녀는 인터뷰보다 일상적인 얘기를 꺼내며 나를 안심 시켜주었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한 뒤에 나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나도 마음이 편안해지니 어떤 얘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뭐부터 얘기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두서없이 막 얘기하더라도 미스김이 잘 정리 해주세요.”

나는 괜히 손에 힘이 들어가고 식은땀이 살짝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대표님이 동물보호에 앞장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미스김은 미소로 나를 계속 안정시켰다. 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녹음기와 메모지를 연신 쳐다보았다.

. . ..”나는 목이 메어오는 것을 참아가며 말을 이어 보려했다.

저는 심각한 우울증이 있어서 한때 자살을 생각했었어요. 자살을 하려고 건물 옥상에 올라갔는데 한걸음 땔 때마다 온몸이 떨리더군요. 난간을 붙잡았는데 다리가 떨려서 발을 난간 위로 올릴 수가 없었어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데 반대편 옥상에서 길고양이 두 마리가 생선 머리 하나를 두고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것을 보았어요. 날카로운 비명 소리처럼 들리는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쉭쉭 소리를 내며 서로 달려드는 격한 모습에서 저는 충격을 받았죠. 저는 갑자기 나는 온 힘을 다해서 살아본 적이 있나? 저 고양이들은 한 끼 식사도 되지 않을 조그만 생선토막 하나에도 목숨을 거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나는 말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그러셨군요. 힘든 일이 있으셨네요.”

미스김은 자기도 이런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한 당황한 눈빛이었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계속 이어가라는 느낌을 줬다.

저는 고양이들이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거는 싸움을 보며 나는 온 힘을 다해 살아본 적이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하자 비참했습니다.” 나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이쯤에서 멈추고 싶었다.

미스김은 열심히 받아 적다가 나를 다시 쳐다봤다.

... 대표님 계기는 알았는데 좀 더 사연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기사라는 것이 어느 정도 스토리가 구성되어야 독자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에... ... 제가 동생이다 생각하시고 지금 성공하신 대표님의 과거를 거울삼아 배울 수 있는 내용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문장 구성이나 정리는 제가 최선을 다해 해볼테니 대표님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미스김이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말해주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내가 만약 동생이 있었다면 말해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커피를 한모금 넘기며 나는 진정을 찾아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저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여기 바로 앞에 있는 계성여고를 나왔죠. 종교를 갖지는 않았지만 계성여고를 다니는 동안 천주교의 교리나 우리학교 이사장님인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들이 참 좋았습니다. 대학은 한성대학교를 나왔고요. 저는 강북 시내에서 자라며 명동과 대학로가 저의 보편적인 놀이터였죠. 저는 늘 그랬던 것처럼 9년 전 가을 친구와 오랬만에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어요. 친구 미영이는 오랜만에 만났기에 보통 여자 친구들의 만남이 그런 것처럼 그동안 있었던 사는 이야기와 아이들 이야기 남편 이야기를 하며 공통점을 확인하고 아직도 우정이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미영이는 가락동시장 청과 경매사에게 시집을 가서 경제적으로는 풍족한데 경매시간이 저녁부터 새벽까지 있어서 낮 밤이 바뀐 삶을 살고 있었지요. 그런데 새벽에 들어오는 남편과 아이 등교 준비로 진짜 낮 밤이 바뀌어 아침 9시나 되어야 잠을 잔다고 하며 푸념 아닌 푸념을 한참 들어주고 내 얘기도 풀어 놨었습니다.”

친한 친구분이셨나 보죠?” 미스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얘기를 흥미있게 듣고 있었다.

. 미영이와는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고 잘 통하는 사이였죠. 지금 생각해보면 철없기는 똑같았는데 그 친구와 저는 남편의 직업이 달랐죠. 저에 전 남편은 의사였습니다.”

미스김은 내가 전 남편이라는 말에 눈을 다시 동그랗게 뜨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상하게 그 순간부터 말이 잘 나오기 시작했다. 큰 사건 두 가지를 얘기하니 못할 말이 없다는 배짱이 생겼다.

저의 삶은 사실 단순했어요. 남편은 개원의 생활을 하다가 병원을 접고 페이 닥터로 큰 병원에 다니고 있었고 딩크족처럼 어떤 이유로 인해 아이를 미루거나 낳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안 생겨서 없었죠. 생활에 특별할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인지 삶이 매우 무료했습니다. 어제도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것이라는 예상이 되는 삶 말이죠. 미영과 달리 저는 너무 평범하여 재미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영이는 반응이 달랐어요. 제 손까지 잡아가며 흥분해서 말했었죠.”

미스김에게 말하는 사이 나는 타임머신을 탄 듯이 과거의 그 시간에 돌아가 있었다.

 

어쩜 너와 나는 이렇게 공통점이 많을까? 나도 그래. 낮 밤이 바뀌어 살다보니 만나는 사람도 적어지고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더라고... 특히 아이 학교 다니고 나서부터는 낮에도 애 챙겨야하니까 잠을 쪼개서 자야해. 그러다보니 하루가 남편 챙기고 애 챙기고 남는 시간 잠자고 나면 끝이야. 어떤 날에는 왜 사나 싶기도 해. 우리 말이야 예전에 폼 좀 났잖아. 길 가다보면 남자들이 연락처 달라고 쫓아다니고 호호호. 한번 사는 세상, 재미있게 살아야하는데 이게 뭔지 모르겠다.”

미영의 말에 나도 괜히 흥분 되었었다. 나는 계성여고 다닐 때 명동을 지나다 보면 길거리 캐스팅 제안을 여러 번 받았었고 미영은 한성대 퀸카였다. 우리는 옛날 생각에 온몸이 후끈했다.

그렇지. 나도 요즘 참 재미없어. 우리 다시 명동 좀 누며 볼까? 하하하, 호호호

나와 미영은 손뼉까지 쳐가며 서로 좋아했다.

 

그때 미영과 나는 어릴 적 버릇을 못 고친 상태였는데 둘이 다시 만나게 되니 과거로 돌아가 버렸다. 우리는 멋 부리길 좋아하고 백화점을 구경 다니길 좋아하며 명품을 누가 더 좋은 것 가지고 있나를 경쟁하고 그랬었다.

미영을 오랜만에 만났을 당시까지는 보통 1년에 한번 만날까 말까 했는데 그 다음 주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었다.

다시 만난 우리는 영화를 봤고 노래방도 갔고 백화점을 여기 저기 돌며 결혼이후에 안 해본 것들을 둘이서 신나게 했었다. 미영이와 나는 왠지 대학생 때의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 같아 신이 났었다. 1주일에 한 번씩 만나게 되었고 그동안 안 가본 곳이, 안 먹어본 것이, 안 해본 것이 이렇게 많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는 것 같고 활력이 넘쳤고 즐거웠다. 미영이와 신나게 노는 시간이 몇 개월 지났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서로 해보고 싶은 일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만나도 뭐하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또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미영을 다시 만났다.

미영은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이제 신나게 놀았으니 다시 집안일 신경 쓰자. 우리 그만 놀자. 이렇게 너와 몇 달 놀으니 속이 다 시원하다. 역시 격 없는 친구가 최고야. 네가 나와 함께 해주어서 참 좋았다.”

미영은 웃으면서 말했지만 왠지 무거웠다. 그러면서 아이 학교생활 얘기를 했다. 아들이 학교에서 회장이 되었고 자기가 이제 뒷바라지를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했다.

미영의 얘기를 듣는데 나는 우리의 만남을 중지해야하는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 그런데 미영이에게 가끔씩은 만날 수 있지 않냐?는 식의 얘기를 꺼내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마음속으로는 , 누구 만날 사람도 특별히 없고 놀 사람도 없어. 미영아 그러지 말고 우리 가끔 보자.’라는 말이 혓바닥 위에까지 올라와 있었지만 나는 엉뚱한 말을 했다.

그래. 우리가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다 보니까 정말 옛날 생각하며 신나게 잘 놀았다. 나도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볼까 궁리 중이었는데...”

말꼬리를 흘리는 내말을 미영이 잘라가며 말했다.

그렇지! 너도 뭔가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역시 우리는 호흡이 잘 맞아. 뭔데? 어떤 일을 생각하는데?” 미영은 뭐가 그리 궁금한지 재차 물었다.

. 아직 정한 건 없고, 고민 중이야. 나중에 정리되면 얘기 할게나는 진짜 계획된 일이 없었기에 해줄 말도 없어서 그냥 막 둘러댔다.

 

미영과 헤어지고 집으로 오는데 헛헛한 기분이 가슴속에 꽉 찼다. 친구를 잃어버린 기분 같은 묘한 느낌까지 들었다.

 

대학 졸업하고 선배가 소개해준 남편과 6개월 남짓 연애하고 결혼했으니 내 인생은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여자는 너 위하는 착실한 남자 만나서 사는 것이 최고다.’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서 인지 내 인생의 설계나 재능을 따져 본 적이 없다. 그냥 학교 열심히 다니고 대학은 성적에 맞춰 적당한 곳에 다녔고 남들 한두 번 받는 장학금도 받았다. 그 정도가 인생의 성적표다. 따져보니 내가 원했던 것이 있었나 싶었다. 어려서 나는 과학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던 것이 고등하교 다니면서 대학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재능도 꿈도 아닌 성적에 맞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 쉬운 인생만 쫒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부모님이 말하던 조건과 부합되기에 특별한 고민 없이 선택했고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겉으로만 화려한 나를 선택한 것 같았다. 우리는 열애라는 것이 없었다. 결혼하고 수년이 지났지만 가슴 뛰게 보고 싶고 좋고 하는 기분을 가져본 날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삶의 무미건조함에서 탈출 시켜준 미영이 떠나버린 뒤 나는 평생 생각해보지 않았던 를 생각하게 되었다. ‘는 누구인가? ‘는 어떤 목적으로 살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나는...

 

사춘기에도 가져본 적이 없는 자문자답을 수없이 많이 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나는 초라해졌고 한심했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니 중국식 공갈빵이었다. 텅 비어있는 내면에서 나를 찾으라는 울림이 메아리 쳤다.

 

내가 나를 찾는 시간에 남편을 바라보니 예전에는 평범해 보였던 일상이나 그의 태도가 이젠 달라보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조건으로 그를 보았기에 그가 어떤 일을 하던, 언제 귀가를 하던, 누구를 만나던 나는 아무 상관이 없게 보였다. 그저 정해진 날 생활비주고 가끔 보너스 개념의 어떤 것들이 주어지면 나는 불만이 없었다. 그러던 관점이 나를 찾아가고 자기애가 커지며 그와 나의 관계를 따지게 되었다. 나는 남편을 좋아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았고, 남편은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특별히 내가 일찍 오라고 부탁하지 않으면 남편은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는다. 와서도 나와 대화하거나 뭔가 공통 관심사를 논하기보다는 서재에 들어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갖는다. 얼마 전까진 남편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처럼 나 또한 좋아하는 드라마 방해받지 않고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지금은 나를 혼자 있게 하는 그가 야속했다. 그리고 그가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도 궁금했다. 남편이 남긴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켜놓고 끄지 않은 컴퓨터, 그의 카드영수증, 차에 남은 흔적들. 굳이 묻지 않아도 남편은 친구와의 만남이 많았고 취미생활도 다양했으며 나 외에 다른 여자도 만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남편에게 묻고 싶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혹시 내가 생각하는 어떤 것들이 진실이라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이 더 커서 물을 수가 없었다.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남편에게 더 관심을 갖고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실천했다. 일찍 들어오라고 부탁하고 함께 뭘 하자고 제안하고 그랬다. 그렇게 몇 달간 노력하였다. 초기에는 남편도 성의를 봐서 그렇게 따라줬는데 지금은 식탁위의 차려진 음식을 도로 랩으로 싸서 냉장고에 넣는 날이 더 많아졌다.

몇 달이 지난 후 남편은 예전처럼 친구들과 술자리, 취미생활 등등의 시간을 다시 찾아 갔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러나 내 생활은 여전히 편했다. 엄마가 남편에게 노래를 부른 것처럼 손끝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키웠으니 힘들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을 잘 지켜주고 있었다.

그 무렵부터 엄마의 말들을 고분고분 들었던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생각했던 어린 나의 사고가 원망스러웠다. 편하게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해서, 힘든 일 하는 것이 싫어서 만들어진 나의 삶은 그저 화초 같았다. 이렇게 길들여진 시간이 길어서 인지 나는 남편에게 어떻게 우리의 관계를 개선하자고 제안하기도 따지기도 힘들었다. 점점 무기력해지면서 우울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멍하니 앉아있는 날들도 많았다. 마음속으로는 이런 내가 싫었고 이런 날들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컸지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더욱 정신적으로 힘든 날들이 많아졌고, 남편의 출근을 챙기는 것도, 퇴근 후에 챙기는 것도 건너뛰는 날들도 많아졌다.

나는 우울했고 남편은 날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내가 힘들어 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길어지자 남편은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말로는 새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하지만 며칠씩 밤새워 할 만큼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은 없었다. 남편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무미건조하고 무기력한 시간이 지나자 남편은 이혼하자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이때는 그동안 숨겨온 이야기를 모두 했다. 사귀는 여자도 있고 나와의 삶이 불행하고 그냥 시간만 죽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도 지겹고... 그는 나를 엄청나게 싫어했다. 미워하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를 싫어했다.

그의 말을 듣는 동안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부족하고 못난 내가 더 미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남편은 통보하듯이 나에게 이혼하자며 위자료와 내가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 생활여건을 제시하였다.

돌이켜보니 나는 남편에게 잘해준 것이 없어서 따지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고개만 끄덕였고 그렇게 단순하게 나의 편한 인생은 정리되었다.

 

저 대표님. 하시던 말씀 계속 해주시죠. 미영씨를 만나고 어떻게 되셨나요?”

미스김이 멍하니 회상에 잠겨있던 나에게 말을 걸었다.

. 제가 잠시 옛날 생각에... 미영이 만나서 철없이 놀았죠.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문제 될 정도의 이탈이나 방황은 없었어요. 그냥 허세가 많아서... 그러다보니 남편과 안 좋아졌고 또한 철이 없었기에 그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이 없었죠. 그렇게 우울증이 왔었어요.”

나는 미스김에게 단순하게 말을 했다. 그때 미스김이 전화를 받는다고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또 회상에 젖어들었다.

 

남편과 이혼 후 나는 변두리의 작은 원룸으로 이사를 했고 한동안 집안에만 있었다.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죽고만 싶었고 괴로운 날들을 보내며 자살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용기가 없었다. 뭘 할지를 몰라서 그냥 산송장처럼 그러고 있었다.

몇 날 며칠을 나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다 결국 죽을 마음을 정하고 옥상으로 올라갔을 때 길고양이 두 마리가 생선 머리 하나를 두고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것을 보았다.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거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보며 나는 충격을 받았다. 온힘을 다해 살아본 적도 없는 사람이 죽는다고 누가 애통해 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를 수습하기 위해 또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서도 남에게 도움이 안 되고 죽어서도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왜 이렇게 나약하고 쓸모없는 인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 보다 못난 나는 그날 잠이 오지 않았다. 온힘을 다해 살아봐야겠다는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이 들자 실천할 일이 생각났다. 그렇게 하기 싫었던 몸으로 하는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생각도 한 적이 없는 낮선 곳에서 육체노동으로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도전하다보면 내 삶의 방향이 잡힐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기술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니 제주도에 가서 귤 따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TV에서 본적이 있어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못해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미스김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죄송합니다. 협회에서 다음 행사에 대한 얘기가 있어서... 하시던 얘기 계속 해주시죠.”

나는 정리해서 다시 말을 이었다.

. 그렇게 철없이 무기력하게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남편은 제가 많이 싫었나봐요. 제가 생각해도 그랬겠다는 생각이 지금은 들어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겉멋만 알고 할 줄 아는 것은 없으면서 허세나 부리고 요구하는 것도 많고 하니...그렇게 이혼하고도 우울증으로 고생하다가 아까 말씀드린 고양이의 싸움으로 깨우침이 생겨서 평생 해보지 않았던 육체노동을 하게 되었어요.”

내 말을 미스김은 열심히 메모하고 있었다. 나는 육체노동으로 선택했던 제주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제주에 도착하여 일력사무소를 찾아 귤 따는 일을 찾았다. 제주도에서 재배하는 귤의 종류가 다양하다보니 수확시기가 종자마다 달랐다. 그래서 귤 따는 일은 1년 내내있었다.

 

얼굴이 새까맣게 타고 여리여리하던 몸이 근육으로 변해가면서 마음에도 근육이 붙었다. 우울한 기분도 거의 사라지고 사람들과의 대화도 자연스러워졌으며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예전에 편한 삶을 살겠다고 고집할 때는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무의미하게 살았다.

제주생활 이후로는 매일 똑같은 일을 해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느껴지고 내일 있을 일들에 대한 긴장감과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내손으로 돈을 버니 돈에 대한 의미도 달라졌다.

 

제주에서의 1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며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붙었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런 경험이 있으셨군요. 어려움을 잘 극복하셨네요.”

미스김은 뭔가 계속 신기한 얘기를 한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리엑션을 했다.

. 제주생활에서 목표도 생겼죠. 일차적으로는 내 재능을 살려보는 것이었고 그 다음은 의미있는 삶을 살자는 것이었어요.”

나는 다시 제주 생활 이후의 삶을 얘기했다.

 

결혼 생활 11년 동안 하루도 안 빼고 TV를 시청한 덕에 보편적인 여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매력을 느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제주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돌아와서 남편이 준 위자료와 제주에서 번 돈을 합쳐 집 근처에 멀티숍을 차렸다. 무언가 내 상품을 만들고 싶었지만 지식이 없으니 가진 능력을 활용하는 것으로 일단 방향을 잡았다. 나는 TV를 많이 보며 익힌 감각도 있었지만 명품을 고르는 감각이 좋았다.

 

변두리라서 값비싼 물건을 팔아 서는 곤란했다. 그러나 물건의 수준이 떨어져도 곤란했다. 나는 발품을 팔아 남대문 시장, 동대문 시장 등을 누비며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멋진 물건을 값싸게 사들여 진열했다. 의상, 패션잡화, 침구 등등 여자들의 감성에 부합하는 물건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구해서 진열했다. 처음엔 매상이 거의 없었지만 동네에 소문이 나고 인터넷 매장을 개설하면서 장사는 사업으로 확장되었다. 물론 중간에 사업이 휘청거릴 때도 있었지만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니 이겨낼 수 있었다.

명동에 내 숍을 열고 내 이름으로 된 제품을 팔며 내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당당한 내가 되었다.

 

미스김은 내 얘기를 다 듣더니 질문을 했다.

그럼, 대표님은 지금 목표 중에 어떤 단계이신가요?”

. 저는 지금 일차목표는 이뤘다고 보고 이차목표를 향해서 가는 중이죠. 저의 재능을 발휘해서 이만큼 이뤄냈고 동물보호단체에 기부도하고 있으니 말이죠.”

나는 고양이를 위해 기부하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최근에 하는 일중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였다.

그럼 이차 목표. 즉 앞으로의 포부를 말씀해주시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치죠.”

미스김은 이제 정리해도 되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오랜 시간 생각했던 일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길고양이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어요. 앞으로 남은 인생은 세계적인 고양이 용품과 식품 사업을 일으키는 것으로 목표를 삼았어요. 그리고 수익은 동물 보호하는데 활용할 생각입니다. 목적과 목표가 있으니 뭘 해도 의욕이 넘쳐요. 앞으로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철없던 내가, 무기력한 내가 세상에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며 자긍심과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미스김이 메모를 모두 마치더니 한마디를 더 한다.

저 이건 개인적인 부탁인데요. 오늘 인터뷰하며 대표님을 존경하게 되었어요. 제가 동생이다 생각하시고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으면 한 말씀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제주에서 깨우친 얘기를 해주었다.

제가 제주에서 육체노동을 하다 보니 삶의 가치나 방법이 모두 변하더군요. 나를 확인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때 인생을 살아가는 세 가지를 구분하게 되었어요. ‘, 재능, 책임저는 재능은 있었는데 꿈과 책임이 없었죠. 왜 사는지도 없었고 뭘 책임지는 것도 없었어요. 부모님이 저를 책임졌었고 남편이 책임졌었기에 저는 책임 질 일이 없었죠. 저는 , 재능, 책임하고 싶은 것, 잘 할 수 있는 것, 꼭 해야만 하는 것으로 구분 지을 수 있게 되면서 저를 완성 할 수 있었어요. 참 단순한 명제인데 제주에 가기 전까지 한 번도 생각을 깊이 있게 안했더군요. 그저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미스김은 이미 알고 계시고 생각해봤을 것으로 보이는데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얘기는 이것뿐이네요.”

미스김은 내 얘기를 곰곰이 생각하며 듣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저도 하고 싶은 것, 잘 할 수 있는 것, 꼭 해야만 하는 것을 인생에 대입하여 어떻게 살아야지 되는지 생각 많이 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미스김은 갔고 나는 명동 성당을 다시 찾았다. 마음먹은 사명을 다 하기 위한 다짐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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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Jun(전완식)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 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 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 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 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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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Jun, 봄의 환희, Oil on Canvas, 45.5cm X 53cm​, 2019년 작

은혜와 용식

 

은혜와 용식이 다시 만나 것은 며칠 뒤였다.

은혜는 몸을 추슬러 패션숍의 가을 디피를 다 끝냈다. 얼마 전 추석 때에도 남들은 고향 간다, 산소에 간다고 하는데 자기는 갈 데가 없었다. 보육원 원장님도 돌아가셔서 안계시고 정말 갈 곳이 없었다. 명절도 그렇고 휴일도 그렇고 따로 할 일이 없는 은혜는 그냥 숍에 나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오늘은 허망하고 외로운 생각이 나서 그냥 어린이대공원에 갔다. 공원에 가면 엄마의 향기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자기가 살았던 상계동은 88올림픽을 준비하는 정부의 시책으로 모두 재개발하여 살던 곳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어린이대공원은 변함없이 은혜의 기억을 간직할 수 있게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어서 은혜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린이대공원을 걷다 보니 코스모스가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가녀린 꽃대위에 한 송이 피어나는 코스모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이는 코스모스를 보며 은혜는 자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높아지고 맑은 푸른하늘이 참 예뻤다. 하늘을 바라보는데 왠지 모르게 가슴이 시려오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물이 고인 눈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보니 그들의 얼굴이 이글어져 보였다. 문득 며칠 전 자기를 구해준 구급대원이 생각났다. 자기를 구해주었는데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를 당황하게 한 것이 못내 미안했다. 은혜는 어린이대공원 옆에는 엄청나게 큰 소방서가 있다는 생각이 났고 거기에서 근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혜는 발걸음을 옮기며 어차피 군자역으로 가려면 그쪽으로 가야하니 가는 길에 들려 저번에 자기를 구해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은혜는 어린이대공원 바로 옆에 소방차가 아주 많은 광나루안전체험관으로 갔다. 안전체험관에서 남자의 인상착의를 얘기하니 여기가 아니라 바로 옆의 능동119안전센터로 가보라고 했다. 능동119안전센터에 들어가 그를 찾았다. 그는 출동 나가고 없었다. 함께 자기를 구해줬던 여자 대원만 있었다. “안녕하세요. ... 얼마 전에 대공원 정문에서 기절했었던 사람인데요...” 은혜의 어색한 인사에 여자대원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머, 그때 그분이시군요. 건강해진 얼굴을 뵈니 참 좋네요. 이리 앉으세요.” 서로 인사하고 자기가 그날 경황이 없어서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못함에 대한 미안함이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사실 은혜는 남자대원의 얼굴에 놀라서 말을 못했던 것이다. 여자대원은 그럴 수 있다고 말하며 이렇게 미인이 오셔서 고마움을 전하는데 우리 영웅은 또 누구를 구하러 가셔서...미녀 얼굴도 못보네. 호호호은혜는 생각지도 않은 미인이라는 말에 쑥스러워 다른 말로 얼른 돌리려고 했다. “미녀라뇨... 호호호. 그런데 영웅은 그때 그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은혜의 질문에 여자대원은 용식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아주 따뜻하고 용감한 사람이며 사람, 동물 가리지 않고 구해내는데 이 지역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며 용식을 설명해 주었다. 은혜도 그런 것 같다고 응수해주자 여자 대원은 묻지도 않았는데 용수가 왜 그렇게 화상을 당하게 되었는지도 얘기해 주었다. 은혜는 용식을 보았을 때 외모에서 느껴지는 이질감과 무서움의 생각이 변하고 있었다.

 

은혜는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여자대원이 정말 고마웠다.

자신은 전농동에서 패션숍을 하고 있으니 시간 날 때 들리면 가을 스카프를 선물하겠다고 말하고 일어섰다. 여자대원도 그리 멀지 않으니 한번 들리겠다고 답하였다. 은혜는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

 

문을 열고 나가는데 문 앞에서 제복에 묻은 먼지를 털고 있는 용식과 마주쳤다. 또 몸을 아끼지 않고 어떤 일을 처리하고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혜가 인사를 하려고하자 여자 대원이 먼저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용식씨 이 여자분 기억나지? 며칠 전 공원 정문 앞에 기절해 있어서 ...” 여자대원은 용식에게 장황하게 설명해 주었다.

용식은 얼굴에 화상이 있어 표정 변화가 잘 나타나지 않지만 은혜는 분명 웃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은혜는 정말 고마웠어요. 그때 제가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해서...” 용식은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찾아와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건강한 모습으로 이렇게 뵈니 보람되네요. 감사합니다!” 은혜는 되려 자기가 더 고맙다고 표현하는 용식에게 묘한 감정이 생기며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저 혹시 시간되시면 두분 식사라도 하면 어떨까요? 제가 뭐라도 보답하고 싶은데 오늘 무작정 오다보니...” 은혜는 길 건너에 보이는 패밀리레스토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자대원은 왠지 기분이 들떴다. 여자 친구 없이 늘 혼자 보내는 용식을 찾아온 예쁜 여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좋았다. “그래, 용식씨 이제 교대 시간이니 같이 가서 식사해. 그래야 이 여자 분도 빚진 마음을 없애고. ~여자대원이 부추겼다. 용식은 어색한 듯 가만히 있었고 여자대원은 적극적으로 용식의 팔을 끌었다.

아니... 이래도 되나 모르겠네요. 하여간 감사합니다. 그럼 옷 갈아입고 나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용식은 멋쩍어 하면서도 싱글벙글하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용식은 안으로 들어갔고 여자대원은 얼마전 추석에도 용식씨는 일만 했어요. 우리들은 직업상 어디를 가기도 어렵고 시간을 정해서 약속잡기도 어려운데 잘 되었어요. 정말 고마워요.”라며 용식과 맛있는 식사하라고 말해주었다. 은혜는 같이 가는 것이 아니냐고 물으니 여자 대원은 저는 아직 근무시간이 남아서 곤란하고요. 용식씨와 함께 하세요. 참 좋은 남자예요.” 라고 하였다.

은혜는 남자와 단둘이 식사한지가 너무 오래되어 어색하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자기가 한 말이니 이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그냥 처음 맘먹은 데로 저 남자에게 고마움의 마음을 식사하며 잘 전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용식은 말끔하게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둘은 길을 건너 패밀리레스토랑으로 들어갔고 식사를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용식은 밝고 맑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은혜는 이렇게 맑은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자신이 사람들을 구해주며 얻는 보람에 대한 얘기를 할 때 그의 눈이 천사처럼 맑고 순수하게 빛나는 것을 느꼈다. 용식의 얘기를 듣다보니 그의 얼굴이 어색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자기의 닫힌 마음이 열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믿을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은혜는 이 남자가 궁금해졌다. “용식씨는 쉬는 날에는 무엇을 하세요?” 딱히 물어볼 말도 없었고 남자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몰라서 그냥 나온 말이었다. 아마 무의식중에 이 남자도 자기처럼 휴일날에도 특별히 할 일이 없지 않을까하는 동질감을 느껴서인 것 같았다. “저는 서울에 혼자 살아요. 그리고 제 외모가 이렇다보니 사람들이 잘 다가오지도 않고요. 주로 유기견 보호소에서 자원봉사하며 강아지들과 놀지요.” 은혜는 그러시군요.” 갑자기 이 남자에게 묘한 감정이 생기며 측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뭔가 길게 얘기를 해주고 싶고 이 남자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자기 외에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본 경험이 부족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은혜는 용식의 얘기를 듣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자기 마음속에서 하는 어떤 말을 듣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은혜는 저기 코스모스 좋아하세요? 어린이대공원에 코스모스 많이 피어있던데...” 라고 말을 했다. 무언가 남과 공감대를 얻기 위한 이런 말을 하는 스스로가 놀라웠고 할 말이 이것 밖에 없냐는 한심한 자책이 동시에 들었다. 용식은 좋아합니다. 직장 바로 옆이라 자주 가죠. 요즘이 한참입니다.” 용식은 자기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는 이 여자가 참 좋게 느껴졌다. 용식도 물었다. “저 초면에 이런 질문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그날 밤 왜 거기에서 혼자 있다가 기절하신 거예요? 신고 하신분이 얘기했는데 너무 예쁜 분이 혼자 한자리에 꼼짝도 않고 가만히 서있어서 혹시 광고 찍나? 하는 생각으로 쳐다보고 있었답니다. 그렇게 은혜씨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절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고, 그래서 다가가 흔들어보니 완전히 의식을 잃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은혜는 자기의 아픔을 얘기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 했다. 입속에 맴도는 자신의 아픔에 대해 그리고 그 아픔으로 인해 자기가 기절했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낮선 남자에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가만히 용식의 눈만 쳐다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뚝하고 떨어졌다.

 

뭐라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깊은 상처.

눈물이 꽉 찬 눈과 꾹 다물었지만 입안에 가득 고인 말들, 용식은 아무 말도 없는 은혜의 표정에서 수천마디의 이야기를 느꼈다.

용식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테이블에 있는 냅킨 한 장을 은혜에게 건네며 자기의 얘기를 했다. “저는 화상으로 인해 사춘기 시절 심각한 우울증이 있었어요. 어디를 가기도 싫었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싫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치유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죠. 아버지 얘기를 들을 때는 그 말뜻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지리산 천왕봉 꼭대기에서 말씀을 해주셨는데 내려오는 내내 생각을 해보니 조금 이해가 가더군요. 상처와 치료에 관한 얘기인데 그 얘기를 들으니 , 내가 그동안 마음의 치료를 전혀 하지 않았구나.’하는 깨우침이 오더군요.” 은혜는 갑자기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30여 년 동안 상처를 안고 살았다. 상처가 아물기는 커녕 비슷한 상황을 보거나 느끼기만 해도 아픔으로 잠을 못 이루는 삶을 살고 있다. 은혜는 용식의 눈을 바라보며 뭐라고 하고 싶었는데 조금 전까지 아픔의 기억으로 눈물이 난 상황이라 말을 하면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은혜의 표정에 용식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대화는 단절되고 둘은 그냥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다.

용식은 자기가 한 질문으로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 진 것 같아 미안했고 은혜는 용식에게 자기를 구해준 고마움을 표하려 했는데 그렇지 못해 미안했다.

 

은혜가 계산을 마치자 용식은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찾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은혜도 미소로 답했다. 둘은 레스토랑을 나와 헤어지기 전 인사를 다시 하는데 가을바람에 가로수로 있는 벚꽃 나무 이파리 몇 개가 후드득 떨어졌다. 아직 낙엽이 떨어지기에는 이른 시기인데 은혜 앞으로 떨어지는 낙엽은 둘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사인으로 은혜는 느껴졌다. 낙엽을 잠시 보던 은혜는 저기 괜찮으시다면... 가을이 가기 전에 공원에 코스모스 함께 보러 가 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아까 치료에 대한 얘기도 마저 듣고 싶고요.” 은혜는 용기를 내어 말을 했고 용식도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둘은 휴무시간을 맞춰 약속을 잡고 헤어졌다.

 

며칠이 지나고 둘은 어린이대공원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들판을 걷고 있다.

은혜씨는 가을과 코스모스를 좋아하시나보네요? 코스모스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은혜는 모처럼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사람들은 가냘 퍼 보이는 코스모스가 저를 닮았다고 하는데 저는 파란하늘을 향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이 좋아요. 코스모스는 항상 무리지어 피더군요. 파란하늘은 부모 같아 보이고 무리지어 있는 모습은 오순도순 살아가는 가족 같고요.” 은혜의 말에 용식은 그렇게 보일수도 있구나 하는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미소로 시작된 은혜의 표정이 말을 이을수록 우수에 차 보인다는 생각이 들은 용식은 저 사람이 말하지 않는 어떤 아픔이 삶에 모두 연관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용식은 저토록 예쁜 은혜가 가진 아픔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고 연민의 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기... 은혜씨가 저번에 치료에 대한 얘기를 해달라고 했었는데 어떤 아픔이 있으신가요? 제가 도움이 되고 싶어서요.” 용식은 조심스럽게 은혜에게 말했다. 은혜도 이번에는 자기 얘기를 해볼 심산으로 나왔기에 대답을 했다. 은혜는 자기가 가진 아픔을 모두 얘기했다. ? 어린이대공원을 가슴속에 담고 있었는지 버려진 아이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말했다. 그리고 그 고통에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설명했다.

 

입을 여니 이상하게 잘못 먹은 것을 토해서 쓴물이 나올 때까지 토하는 것처럼 어린시절의 아픔을 모두 얘기하게 되었다. 얘기하는 동안 왠지 모르게 이 남자에게는 얘기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남자는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될 일 때문에 생긴 평생의 상처를 이렇게 가볍게 털고 있는 것이 부러웠다. 은혜는 자기의 인생을 얘기하면 할수록 닫힌 마음이 열리고 사람을 믿을 수 있는 힘을 얻고 있었다. 말없이 진지하게 들어주던 용식이 이렇게 말했다. “정말 큰 아픔이 있으셨군요. 그래서 그날 그런 일도 있었군요. 은혜씨 아픔이 얼마나 큰 크기인지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요. 아픔은 치료하기 나름입니다. 방치하면 오래 아프거나 더 아플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빨리 통증이 사라지게 되죠. 상처의 크기만큼 흉터는 생기겠지만 아프지 않으니 움직일 수 있고 생활할 수 있죠. 산행하다 보면 발바닥에 큰 물집이 잡힐 때가 있죠. 아파서 움직이기 정말 힘듭니다. 그런데 치료돼서 통증이 사라지면 언제 아팠냐는 듯이 또 산에 올라가죠.”

그의 말이 맞았다. 은혜는 어린시절의 아픔을 치료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가 원망스러웠고 세상이 미웠다. 만약 올림픽이 열리지 않았다면, 재개발이 되지 않았다면, 엄마와 내가 다른 동네에 살았다면, 아니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라는 별별 가정을 하며 세상을 원망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을 닫으면 닫았지 치료를 할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은혜는 이 남자가 말하는 아픔의 치료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치료가 되는지 그리고 그게 진짜 가능한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용식은 미소 띤 얼굴로 은혜를 쳐다보다가 은혜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처음 치료를 생각했을 때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불속으로 뛰어든 저의 용기가 잘못되었는지 아니면 불을 낸 영희가 잘못을 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런 몰골로 계속 사는 것이 잘못 된 것이지, 그 어떤 것도 잘 잘못을 구분할 수가 없더군요

그러다가 제 자신부터 하나하나씩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것이 출발선이더군요. 나는 어떤 사람이고 그것이 이 사회에 쓰임새가 있는 것인가? 그러면 그 쓰임새로 내가 행복할 수 있는가? 라는 식으로 제가 살아야 할 이유를 먼저 찾았어요. 그렇게 판단을 해보니 제가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지더군요. 저는 용기 있고 남을 아끼는 마음이 있다는 아버지의 평소 칭찬이 기준이 되었습니다.

 

제가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기고 나니 그 환경에서 행복 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이 생기더군요. 그러고 나서 제가 아픔으로 가졌던 마음을 하나씩 처리했어요. 남의 시선이 따가웠던 것을 생각해봤어요. 그 시선을 더 이상 아픔으로 느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저를 경계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도 했고요. 그런 과정이 더 이상 아픔으로 다가 오지 않게 하는 치유더군요. 아버지가 치료를 하라고 말씀해주신 덕분에 저는 살면서 겪어야하는 아픔의 상황들을 미리 판단해봤고 그런 상황이 되어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봐요.” 

 

은혜는 용식의 말을 듣고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갈피를 잡기는 어려웠다. 그저 저런 생각과 실천을 하는 용식이 부러웠다. “저는 상황이 다르고 어떻게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모르겠어요. 엄마 생각만 해도 복잡한 감정이 생기고 가슴이 답답하며 눈물이 나와 미칠 지경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용식은 잠시 가만히 은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은혜씨는 아픔으로 인해 자기를 돌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은혜씨를 잘 모르지만 예의바르고 외모도 너무 예쁘고 또한 패션 감각도 상당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미 이정도만으로도 자신을 사랑 할 수 있는 이유는 너무 많다고 생각돼요. 또한 그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고요

물론 어린시절 아픔이 큰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 나이라면 부모님이 있건 없건 간에 독립할 시간은 지났죠. 이미 은혜씨는 보호받아야 할 시간이 지났다고 봐요. 그러니까 과거의 아픔을 지금까지 가지고 계실 이유 자체가 없다는 것이죠.” 

 

용식은 잠시 말을 멈추어 은혜의 표정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은혜씨가 함께 어린이대공원에 가자는 말을 꺼냈을 때 얼마나 가슴이 뛰고 좋았는지 몰라요. 은혜씨는 그렇게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다시 말하면 은혜씨가 자신을 좀 더 진실하게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정리 될 것 같아요. 은혜씨는 이제 온전한 어른이 되었으니 어린이의 아픈 마음을 버려야 해요. 어른이 된 은혜씨를 스스로 느껴 보세요

그리고 만약 엄마를 찾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 보세요. 지금 이 순간에 엄마를 만난다면 엄마를 원망하고 미워 할 건지 아니면 엄마를 용서할 건지. 아마 용서 하게 될 거예요. 그렇다면 엄마를 만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있는 엄마를 용서하세요.” 용식은 은혜를 위하여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은혜는 살면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마음이 있다는 생각을 용식의 말 속에서 알게 되었다. 은혜는 용식에게 대꾸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엄마를 만난다면, 지금 엄마를 만난다면...’이라는 가정을 하면서 엄마를 만났을 때 원망하고 자기를 왜 버렸는지를 따지겠다는 생각 외에 더 이상의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느꼈다.

은혜는 자신이 느끼는 아픔은 30여 년간 가시덤불 속에 갇힌 새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엄마가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었다는 것도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도 오죽하면 그랬겠냐는 생각이 들며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를 원망하기 이전에 아빠가 문제의 시작이었음에도 한번 보지 못한 아빠는 원망하지 않았었다. 아니 그런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에 대한 트라우마가 없는 것처럼 엄마에 대한 생각도 바꾸기만 한다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때 멀리서 한 가족이 웃으면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평소 이런 상황을 바라볼 때 은혜는 고통스러웠다. 시기심이 생기고 서럽고, 쓸쓸하며, 우울하고, 참담한 생각이 들어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 바라보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엄마와 아이가 깔깔거리며 장난치는 모습이 평범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심정의 변화를 느끼며 순간 은혜는 소름이 돋았다. 내가 변하고 있구나. “... 용식씨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고마워요.” 용식은 은혜가 뭔가 변화를 시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어머니를 용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셨으니 이제 은혜씨가 살아야 할 이유와 행복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시면 좋겠어요. 더 이상 우울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행복한 인생으로 설계하셔야죠. 정말 다행입니다. 아픔의 요인을 버렸으니 치료는 된 거나 마찬가지예요.” 용식은 활짝 웃으며 은혜를 바라보았다.

 

은혜는 동토에 묻혀있는 미이라처럼 자신의 아픈 기억이 32년간 얼어붙어 있었다는 깨달음이 왔다.

얼어붙은 아픈 기억단단하게 만들어진 기억을 이제 이 남자를 통해 녹여 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미소가 따스한 햇살 같고 그의 말이 얼어붙은 개울물을 다시 흐르게 하는 봄비 같았다.

은혜는 멈추었던 정서적 성장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가슴이 떨렸다.

 

그렇게 조금씩 은혜의 방치되었던 상처는 아물어 가고 있었다.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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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저는 소방대원과 구급대원이 펼치는 아름다운 선행이 수없이 많지만 잘 알려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소방서 소속 구급대원이 사람도 구하고 그 사람의 아픈 마음도 달래주는 이야기를 완성하여 연재하였습니다. 영웅적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을 존경하며 우리나라 소방대원과 구급대원의 희생과 봉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상과 외상 – 은혜

내상과 외상 – 용식

내상과 외상 – 은혜와 용식

 

 

Kai Jun(전완식)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 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 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 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 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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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Jun, 너를 보면 상쾌한 느낌이 들어​​, Oil on Canvas, 60.6cm X 72.7cm​, 2019년 작


용식

 

남자의 이름은 용식이다. 용식이네 집은 지리산 자락의 산골이었다. 용식이 할아버지는 마을의 훈장님이셨고 아버지도 할아버지처럼 한학을 많이 공부했지만 약초꾼으로 살고 있다. 아버지는 용식에게 인간이 갖춰야할 도덕이 무엇인지를 기저귀 찼을 때부터 알려주었다. 용식은 산골 아이답게 자연을 친구 삼아 씩씩하게 자랐다. 또한 용식은 아주 용감하여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아이였다. 아이들 사이에 우상이었고 장차 꿈도 장군이 되는 것이었다. 의로운 일에는 앞장을 서고 자기가 생각한 것이 옳다고 느껴지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실천하는 훌륭한 아이다. 마치 들국화의 꽃말처럼 상쾌한 느낌이 나는 아이다.

 

용식이 살던 동네에는 폐가가 하나 있었는데 이곳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어느 늦 가을날 떠돌이 개가 폐가에 왔다. 아이들은 개의 몰골이 너무 지저분해서 경계를 하였다. 문 쪽에서 놀던 광수가 소리쳤다. “얘들아 이 똥개 좀 봐라. 구린내 나게 생겼다. 한 대 때려서 쫒아내자그러면서 들고 있던 막대기로 개를 때리려하자 개는 으르렁 거리고 짖기 시작했다. 개를 만만하게 봤던 광수도 놀랬다. 갑자기 광수와 개의 대치상황이 되며 자칫 잘못하면 광수가 개에게 물리는 일이 생길 것 같은 상황이 되었다. 그때 하하하 광수야 개에게 그러면 안 되지. 새끼도 밴 것 같은데. 저 배 모양 봐라경직된 상황에서 호탕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용식을 보고 광수도 개도 기가 눌렸다. 용식이 웃으며 다가오자 개가 경계를 풀고 꼬리를 살살 흔들기 시작했다. “광수야 막대기 버려 그리고 찐 고구마 가져온 거 이리 줘 봐.” 용식은 영희가 가져온 찐 고구마를 조금 쪼개서 개에게 던져주었다. 개는 처음에는 먹지 않고 경계를 하다가 용식이 먹으라는 몸짓을 계속 취하자 냄새를 맡더니 먹기 시작했다. 고구마 한 개를 모두 먹고 나서 개는 아이들을 향해 꼬리를 흔들며 서로 교감 할 수 있다는 표시를 했다. 편안한 분위기가 되자 용식은 애들아 이 개가 아무래도 새끼 밴 것 같은데 집도 없는 것 같아. 우리 개집 만들어 주고 우리가 다 같이 키우자. 새끼나면 새끼도 키우자. 어때?” 영희가 아주 크게 기뻐했다. 나머지 친구들도 동의하고 버려진 사과 상자와 짚단들을 가져와 처마 밑에 개집을 만들었다

영희는 집으로 뛰어가서 할머니가 드시려고 불려놓은 눌은밥 한 사발을 몰래 가져왔다. 아이들은 누렁이라고 개의 이름을 지어줬다. 누렁이와 아이들은 그렇게 친해졌고 걸레를 빨아서 누렁이의 털에 엉겨있는 검불과 때를 닦아주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보호를 받던 누렁이는 강아지 5마리를 낳았다. “저 얼룩무늬 있는 강아지는 내꺼다.” “아니야 내가 먼저 찜했다고!” 용식이 친구들은 서로 자기 강아지 하겠다고 법석이 났다.

영희는 아휴 너무 귀엽다. 저 쪼꼬만 다리 좀 봐. 엄마 젖 찾아서 기어간다. 우리 누렁이 먹이 가져온 거 주자.” 아이들은 각자 자기네 집에서 가져 온 음식을 누렁이에게 주고 평소처럼 딱지치기와 공기놀이를 하다가 누군가의 집에서 밥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면 집으로 갔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날이 조금씩 추워지더니 아침에는 서리가 두껍게 끼고 점심에는 진눈깨비도 살짝 온 날이었다. 용식과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누렁이와 새끼들이 춥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끝나면 폐가에 가서 누렁이, 미미, 동구, 순돌이, 바둑이, 흰둥이를 방안으로 옮기고 개집도 좀 더 따뜻하고 튼튼하게 만들어 주자고 하였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연장과 버리는 옷을 가지고 모였고 옆집 영희는 옥수수와 고구마를 잔뜩 가져왔다

아이들은 누렁이 식구가 따뜻하게 지낼 생각에 들떠 개집을 만들고 옷을 깔아주고 누렁이 식구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은 개집을 바람이 안 들어오는 안쪽으로 자리를 잡고 누렁이와 강아지들을 옮겨 주었다

할 일을 마친 아이들은 평소대로 신나게 놀다가 허기진 배를 채울 양으로 옥수수와 고구마를 구워 먹기로 했다. 불을 피우고 옥수수와 고구마를 굽기 시작했는데 태식이가 옥수수와 고구마만 먹으면 목메니까 뒷산에 있는 감나무에서 감을 따오자고 했다. 단물이 많이 나오는 연시와 고구마를 먹을 생각하니 아이들은 신이 났다. 영희는 옥수수와 고구마를 굽고 남자아이들은 모두 감을 따러 뒷산에 갔다.

 

감을 잔뜩 따서 내려오려는데 영희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다. “불이야! 집에 불이 났어!” 아이들이 도착했을 때 집은 이미 장작더미가 타는 것처럼 활활 타고 있었다

누렁이와 동구, 순돌이, 바둑이, 흰둥이는 있었는데 미미가 없었다. 누렁이는 이미 몇 번을 들랑날랑하며 새끼들을 물어 왔는지 온몸에 털이 다 그슬려 있었다

영희가 발을 동동 구르며 내 잘못으로 미미가 죽게 되었다고 엉엉 울었다. 안에서는 미미가 낑낑대는 소리가 났지만 아무도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순간 용식이는 개집에 깔려고 가져온 남은 옷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뛰어들었다. 이미 화마가 지옥 불처럼 타고 있는 공간에 미미는 이리저리 움직였고 용식이가 미미를 잡는데 시간이 걸렸다. 다시 용식이가 미미를 데리고 나왔을 때에는 용식이는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특히 맨살이었던 손과 얼굴은 많이 이글어져 있었다.

 

몇 년이 지나고 용식은 사춘기가 왔다. 자신의 외모에서 오는 콤플렉스로 예전과 다른 용식을 아버지는 안타깝게 생각했다. “용식아. 집에만 있지 말고 산이라도 올라가라. 너 그 팔다리가 뭐니. 참새 다리처럼 얇아서 뭣에 쓰겠니? 너 예전에 육군 대장 된다고 했잖아.” 아버지의 말에 용식은 이 얼굴로 무슨 육군 대장이 되요?” 퉁명스러운 대답을 하고 용식은 집을 나가 버렸다. 용식의 아버지는 매우 가슴이 아팠다. 용식의 대답에 용식아버지는 더 이상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깊은 밤 대청에서 혼자 약초를 손질하는 아버지 앞에 용식이 다가왔다. 용식은 아버지에게 낮에 쏘아붙인 말이 미안했는지 가만히 잔소리를 들을 생각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섰다. 용식아버지는 잔소리 대신에 용식아 너는 본래 훌륭한 사람이다. 너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용식아버지는 용식에게 자신감을 가지라는 따스한 말로 모든 말을 함축해 버렸다. 용식은 뭔지 모를 감정에 눈물이 났다.

 

어느 날씨가 맑은 날 용식아버지는 산에 올라가자고 했다. 천왕봉을 오르는 것은 산골아이지만 힘들었다. “아버지 산꼭대기에 가서 할일도 없다면서 왜? 자꾸 가자는 거예요. 이만 돌아가요.” 중간에 몇 번이고 돌아가자고 투정을 부리는 용식을 아버지는 자기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용식이 포기하지 않도록 계속 독려하였다.

너는 이미 어렸을 때 나와 이 천왕봉에 오르지 않았었니? 너는 할 수 있다. 포기하려는 마음이 너를 못난 사람으로 만드는 거야. 용식아 조금만 더 가면 봉우리다. 힘내서 가보자.” 그렇게 힘든 산행은 계속되었고 결국 천왕봉을 발밑에 둘 수 있었다

 

지쳐서 헉헉 거리는 용식이 땀을 식히고 안정을 찾자 아버지는 말을 꺼냈다. “용식아 고생했다. 그리고 장하다. 결국 해냈구나. 너는 할 수 있다. 아버지 얘기를 잘 들어주길 바란다.” 아버지는 용식에게 자기가 몇 년간 해주고 싶었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용식아 이 세상을 살다보면 어려운 일이 많이 생긴다. 그것은 마음의 상처일수도 몸의 상처일수도 있다. 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는지가 중요하고 그 치유로 다시 힘을 얻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너는 씩씩하고 강한 사람이다. 네가 타고난 것과 다르게 요즘 약한 모습을 보니 아버지는 많이 가슴이 아프다. 오늘 아버지가 말하는 치유를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용식아버지는 숨을 고르고 다시 얘기하기 시작했다. 용식도 아버지의 진지한 모습에 경청하게 되었다

강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 자체에 집중하는 마음을 갖는다. 반면 약자는 문제보다 환경과 비교하는 마음을 갖는다. 강자의 치유는 자신이 극복해야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치유가 되는 것이다. 이후에는 어떤 흔들림도 없다. 약자의 치유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고 위안을 얻어 치유하는 것이다. 자기가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 때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그래 지금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는데...’라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면 쉽게 마음이 안정 된다. 그런데 이런 약자의 치유는 치유를 한 것 같아도 자기보다 조건이 좋은 사람이나 환경을 보면 다시 또 아픔이 온다. , 순간적으로는 치유 된 것 같지만 치유가 된 것이 아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것 같은 거짓 치료이다. 용식아 지금 너는 어떤 치유도 하지 않았다. 네가 어떻게 마음을 먹고 세상을 대하느냐는 지금 중요하다. 아버지의 말을 잘 생각해 보고 강자의 치유를 하길 바란다.” 용식은 아버지의 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는 안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말인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용식은 산을 내려오는 동안에도 아버지의 얘기를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왜 집에서 말하지 이렇게 힘들게 산꼭대기까지 끌고 와서 이런 말을 할까라는 생각도 함께했다.

 

어른이 된 용식은 육군 장군이 되겠다는 꿈을 접고 소방 구급대원이 되었다. 어린이대공원 옆에 있는 광진소방서 소속으로 능동119안전센터에서도 용감하고 성실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지리산 정기를 받고 커서인지 체력도 남달랐다. 용식은 근무가 없는 날에도 봉사활동을 하거나 안전센터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불편한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가을 날 밤 3층 난간 끝에 어린 여자아이와 새끼고양이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소방대원과 구급대원이 모두 출동했다. 긴박한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아이가 떨어지게 되면 큰 사고로 변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또한 사다리차가 들어 갈 수 없는 좁은 공간으로 인해 매달려있는 아이를 구출하는 것이 위험하고 시간을 다투는 일이었다. 구조를 위한 특별한 대안이 없는 다급한 상황이었다. 난간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용식은 순간 어린 시절 미미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던 자기와 지금 고양이를 구하려다 난간에 매달린 여자아이가 오버랩 되는 것을 느꼈다. “제가 나무를 잘 탑니다. 제가 올라가겠습니다!” 용식이 소리쳤다. 이미 용식의 능력을 알고 있는 대원들은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용식은 재빠르게 난간과 난간을 넘나들며 아이를 먼저 안전하게 구출하고 새끼 고양이도 구해냈다.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은 다 같이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며 용식을 영웅으로 대우했다. 여기저기에서 대단하다. 정말 수고했다. 고맙다는 말들이 터져 나왔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돌아온 안전센터.

싱글벙글하는 용식을 보고 동료 대원이 한마디 한다. “용식씨는 그렇게 좋아? 소방대원도 아니고 구급대원이... 힘들지 않아?” 용식은 씩 웃으며 대답한다. “저는 사람이건 동물이건 저로 인해 생명을 건졌다는 것에 보람을 느껴요. 저는 그 사실만으로 아주 좋아요.”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순간 출동 명령이 왔다. 장소는 바로 옆 어린이대공원 정문이었다.

 

용식은 쉴 시간도 없이 출동하지만 입가에 미소는 계속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용식은 그날 밤 운명의 여인을 만난다.

 
다음 편에 계속-

내상과 외상 1 은혜

내상과 외상 2 용식

내상과 외상 3 은혜와 용식

 

 

Kai Jun(전완식)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 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 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 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 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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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Jun, 가을바람에 날리는 순수함​​, Oil on Canvas, 45.5cm X 53cm, 2019년 작

 

 

은혜

은혜의 패션숍에는 손님들의 기분 전환을 위해 늘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있었다. 은혜도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오후 가을 신상품을 걸기 위한 은혜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랄라~. 기온이 어제 보다 5도 떨어진다고 했지. 이제 가을 손님이 많을 테니 예쁘게 꾸며야지. 어디 보자 이 노란색 코트는 여기에 걸고...” 손님들이 기뻐할 즐거운 상상을 하며 저녁도 건너뛴 채 은혜의 패션숍은 가을 냄새가 짙어지고 있었다.

혼자 운영하는 점포라서 할 일이 참 많았다. 은혜는 어제 새벽시장에서 사온 신상품들을 옮기다가 잠시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커피를 한잔 타 와서 TV앞에 앉았다. “어머. 이적이네. 이적의 노래는 참 생각 할 꺼리를 많이 줘. 아니 그런데 저 내용은...” 뮤직비디오를 보던 그녀는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TV를 볼 수도 패션숍에 있을 수도 없게 되어버린 은혜는 하던 일을 멈추고 점포 문을 닫고 나왔다. 길에 나온 은혜는 걸었다. 목적도 없이 걸었다. 그녀의 트라우마는 길을 배회하고 무한정 걷게 한다.

......

 

 

5살배기 은혜는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과 소꿉장난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붉은 벽돌을 빻아 고춧가루를 만들고 풀을 뜯어 김치를 담근다. 어린 은혜는 한두 살 많은 언니들이 만들어 주는 가짜 음식을 먹는 담당이다.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과 달리 아침부터 동네는 시끄러웠고 고함소리도 자주 들렸다. “~! 이놈들아 우리보고 어딜 가라고 이러는거야!” 아저씨들은 씩씩대며 이리 몰려가고 저리 몰려갔었다.

은혜야~!” 은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은혜 주려고 때때옷 샀다. 이거 입고 호랑이, 사자, 원숭이 있는 공원에 우리 놀러가자은혜는 신이 났다. 엄마와 집에 가는 내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노래를 부르며 공원에 놀러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은혜는 어린이대공원에 왔다. 호랑이의 늠름한 모습, 코끼리의 커다란 코, 멋진 갈기가 있는 사자도 좋았지만 은혜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사람과 닮은 원숭이였다. 원숭이는 은혜가 던져 주는 과자를 재주를 부리듯이 이쪽 철망에서 저쪽 나무를 오가며 받아먹었다. 다른 원숭이들도 은혜에게 다가오고 은혜는 손에 들고 있던 과자를 조금씩 쪼개서 원숭이들에게 던져 주었다. 달콤한 과자 맛을 본 원숭이들이 은혜에게 잘 보이려는 듯이 왔다 갔다 하며 은혜에게 손을 내밀었다. 녀석들은 노래에 나오는 빨간 엉덩이였다. 그 빨간 엉덩이를 실룩실룩하며 왔다 갔다 하는 모습만 봐도 은혜는 웃음이 나와서 까르르 웃었다. 은혜는 원숭이가 긴팔을 이용하여 이 나무에서 저 나무를 옮겨 다니는 것이 너무 신기해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가득 차있던 과자 봉지의 과자가 없어지자 은혜는 엄마에게 과자를 더 달라고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 ... , 엄마... , , 엉 엉, 엄마~!” 엄마는 없었다. 처음에는 엄마가 보이지 않았고 조금 지나자 눈물에 상이 흐려져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은혜는 원숭이 우리 앞에서 하염없이 울고 서 있었다. “~! ~!” 한참 동안 엄마를 부르며 울었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다.

은혜는 자기의 목소리가 작아서, 이 많은 사람들 때문에 자기 소리를 엄마가 못 듣는다고 생각하여 더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 엉 엉! 엄마! ~!” 절규하는 은혜의 울음소리에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를 찾아 공원을 헤매 다니던 은혜를 어떤 언니가 다가와 미아보호소에 데려다 주었다. 다른 아이들도 있었다. 은혜처럼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얼굴이 엉망이 된 아이들이 있었다. “파란색 상의에 흰색 바지를 입은 4살 가량의 여자 어린이를 찾는 부모님은 정문 앞 미아보호소로 오시길 바랍니다.” 아이를 찾아가라는 방송이 나가고 조금 지나면 넋이 나간 표정의 어른들이 와서 아이들을 데려갔다. “흰색 원피스를 입은 5살 가량의 상계동에서 온 여자 어린이를 찾는...” 어린이대공원이 문을 닫을 때까지 은혜를 찾아가라는 방송은 수십 번 넘게 어린이대공원에 울려 퍼졌지만 은혜 엄마는 오지 않았다. 다음날도 오지 않았다.

 

은혜는 경찰서로 넘겨지고 자기가 살던 동네가 상계동, 이름은 은혜, 엄마와 둘이 살았고 엄마 이름은 은혜엄마, 친구는 동수, 유미, 집 뒤쪽에 큰 산이 있고 동네에는 누런 개들이 많으며 고양이들도 많았다고 자기가 아는 모든 정보를 주었다. 그리고 엄마를 찾아달라고 경찰 아저씨에게 울며불며 매달렸다.

경찰아저씨와 은혜는 상계동으로 갔다. 상계동으로 다가갈수록 흰 먼지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1987년 봄 은혜가 살던 상계동의 무허가 판자촌은 모두 허물어지고 있었다. 은혜의 동네도, 집도, 엄마도 없었다.

 

18살이 될 때까지 은혜는 아동양육시설인 보육원에서 지내다가 24살까지 자립관으로 옮겨 살았다. 성인이 되어 남자친구도 사귀어 봤으나 저 남자가 나를 버리면 어떻하나?’가 늘 머릿속에 있어 남자를 사귀면 사귈수록 의심과 불안, 외로움 등의 부정적 감정이 더 커져서 사귈 수가 없었다. 죽을 때까지 혼자 살겠다고 각오하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일을 하여 지금의 패션숍을 열수 있었다.

......

 

 

일에만 몰두하고 싶었고 일만 하고 있으면 잡념이 없었는데 조금 전에 본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뮤직비디오는 은혜의 마음속에 감춰두었던 어떤 것들을 모두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은혜는 자기도 모르게 어린이대공원에 와있었다. 공원의 불은 모두 꺼져있고 들어갈 수 없는 공원의 정문 앞에 서서 은혜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직도 남아있는 엄마에 대한 생각은 미움, 원망, 배신감으로 점철되어있지만 그 안에 그리움도 있었다. 은혜는 자기도 모르게 엄마라고 작게 소리를 냈다. 1987년 봄 이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수천수만 번 불렀을 그 말은 은혜는 32년간 불러보지 못했다. 가냘프게 나온 엄마라는 말은 들을 대상도 없는 허공에 외쳐본 말이라 그 공허한 무게감은 은혜를 더욱 짓눌렀다.

 

은혜는 마치 망부석이 된 것처럼 한참을 어린이대공원 정문 앞에 미동도 없이 서있었다. 가을이 되어 바람은 점점 차가워졌다. 이미 마음이 식을 대로 식은 은혜지만 가을의 찬바람은 은혜를 더욱 싸늘하게 만들고 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냥 주저앉고 싶었다. 다리가 떨리고 손끝이 아렸다. 아까부터 흐르던 눈물은 이제 볼 살을 따끔거리게 하고 있었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고 은혜는 주저앉아 기절하였다.

 

언 듯 엠블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났던 기억이 있는 은혜가 눈을 떠보니 차 안이었다. 엠블런스가 은혜를 태우고 병원으로 가려던 것이었다. 여자 구급대원과 남자 구급대원이 보였다. “... 제가 쓰러졌었나요? 저 괜찮으니 내려주세요. 집에 갈 수 있어요.” 정신을 되찾은 은혜는 괜찮으니 집에 가겠노라고 했다. 여자 구급대원은 병원에 가서 조치를 받고 안정을 찾은 다음에 가셔야해요. 그대로 편하게 누워 계세요.” 여자 구급대원이 미소로 안정을 시켜줬다. 은혜는 여자구급대원의 말을 따라 눈을 감고 누워 있다가 다시 눈을 떴다. 남자 구급대원과 눈이 마주쳤을 때 깜짝 놀랐다. 얼굴에 커다란 화상 흉터가 있었다. 은혜는 놀란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은혜의 반응에 남자도 당황한 기색이 영력하였다. 남자는 은혜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를 잘 알고 있는 모습이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 했지만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은혜는 느꼈다. “죄송해요.” 은혜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남자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남자는 은혜가 왜 소리를 질렀는지 다 안다는 듯이 답변하였다.

그렇게 은혜는 자기 삶의 가치관을 바꿀 남자를 만나게 됐다. 자기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들을 알아가며...

 

다음 편에 계속-

 

본 작품은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라는 뮤직비디오를 보고 느낌 감동을 단편소설로 엮은 것입니다. 사회적 울림을 준 이적씨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내상과 외상 1 은혜

내상과 외상 2 용식

내상과 외상 3 은혜와 용식 

 

Kai Jun(전완식)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를 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문재인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운영위원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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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Jun, 하얀 목련, Oil on Canvas, 45.5cm X 53cm, 2019년 작

 

 

부르릉, 부르릉, 부르르릉’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가 났다.

 

메탈 징이 박힌 라이더 가죽자켓과 헬멧, 라이더부츠, 목에 두른 스카프, 외모만 보면 누가 봐도 할리데이비슨 타는 사람이다. 병철은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효성스즈끼 GS125를 타고 있다. 병철의 외모는 겉멋 든 나이 먹은 양아치 같았다.

 

병철은 음성읍 중앙사거리에 나타났다. 잠긴 건물 현관을 열고 들어가 몇 신데 아직도 자!’ 병철은 잠자는 이씨에게 면박을 주며 관리실로 들어간다. 이씨는 병철 보다 몇 살 더 먹은 형인데도 병철이 관리소장이다 보니 막말을 하는 병철에게 제대로 말대꾸도 못하는 처지이다.

복도에는 출근하는 점포 주인들의 발걸음 소리가 난다. 하이힐 소리가 나자 병철은 복도로 나가 3층 미용학원 신원장을 불러 세워 놓고 말을 건다. 신원장은 병철의 느끼한 눈길을 피하려는 듯이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계단을 빠른 걸음으로 올라간다. 병철은 신원장을 가로막고 원장님, 무슨 말씀이 있어야줘?” 그러면서 신원장의 손목을 잡으려한다. 신원장은 병철의 손목을 뿌리치며 소장님 왜 이러세요. 자꾸 이러시면 소리 지르겠어요!” 신원장은 얼굴을 붉히며 학원으로 들어갔고 병철은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뭐 그리 깐깐하게 그러시나. 하하하라고 학원으로 들어간 신원장이 들을 정도로 목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간다.

 

병철은 건물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큰 소리로 떠들고 간섭하며 세입자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는 듯이 행동을 하고 다닌다.

아니 김사장님 이게 뭡니까? 얼빠진 개가 오줌을 싸고 갔나... 거참.” 바쁘게 상품을 진열하고 있는 슈퍼마켓 김사장을 불러 세워 놓고 안 해도 될 지적을 하고 있다. “소장님, 이건 어제 학생들이 음료수를 먹다 흘려서 생긴 얼룩이예요. 이따 닦으려고 했어요김사장은 공손하게 대꾸를 한다.

 

그렇다. 병철은 음성빌딩의 왕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음성빌딩은 병철의 먼 친척 소유의 건물로 촌수를 따지기도 힘들 정도로 멀지만 직계(直系)나 가까운 방계(傍系)는 모두 서울로 올라가서 그나마 친척은 병철 밖에 없었다.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고 병철은 10여년 동안 자신의 왕국을 건설한 것이다.

 

그날도 점심 먹고 난후 지하의 스잔카페로 어슬렁어슬렁 대며 병철이 들어갔다. 문이 열리면 달랑대는 풍경 소리가 난다. “어서오세...”카페 주인 수진은 풍경 소리에 반사적으로 손님인줄 알고 인사를 건네다가 병철임을 알고 말을 끊었다. “나는 손님이 아닌가봐. 인사를 하다 마네병철은 수진에게 다가가 커피를 한잔 달라고 한다. 수진이 커피를 가져오자 옆에 앉으라고 보챈다. “여기가 80년대 다방인줄 아세요.” 수진이 한마디 하고 뿌리치자 병철은 수진의 팔을 잡아챈다. “장사 잘하고 싶으면 여기 좀 앉아.”억지로 앉게 한 후 병철은 수진에게 수작을 부리며 허리를 낚아챘다. 수진이 발버둥을 치며 빠져나오면서 병철의 따귀를 한 대 쳤다. 그렇다고 세게 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여자의 몸짓이었다. 병철은 어색했는지 일어나며 재수없게...”라고하며 밖으로 나온다. 수진은 장사도 안 되는데 수시로 들이닥쳐 귀찮게 하는 병철 때문에 화가 나서 눈물이 찔끔 나온다. “저 개 같은 놈들릴 랑 말랑하게 욕을 해보지만 이 토끼왕에게 대들 기에는 수진은 너무나 작은 생쥐 같은 꼴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며 눈물을 훔친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될 무렵 신원장은 1층 슈퍼마켓 앞 파라솔에서 사발면과 찐 계란으로 끼니를 때운다. 슈퍼마켓 김사장 부인이 다가와 이거라도 같이 들어요. 우리집에서 담근 김치예요. 그런데 뭐 그리 악착같이 돈을 모을까 밥은 제대로 먹어야지.”신원장은 다른 말은 없이 고맙다는 말만 하고 사발면을 먹는다. 신원장이 처음 음성빌딩에 왔을 때 김사장 부인은 하얀 목련꽃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솜털이 살짝 난 하얀 피부 때문이다. 요즘 들어 야위어가는 신원장을 안쓰러운 눈으로 김사장 부인은 바라보았다. 잘 먹었습니다 ​ 신원장도 자신을 지키고 서있는 김사장 부인의 눈이 부담스러워 얼른 먹고 자리를 일어섰다

 

음성빌딩에는 병철 빼고 모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하고 있었다.

 

저녁 무렵 병철은 2층의 당구장으로 가서 짜장면을 시키고 혼자 연습볼을 친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 구력에다 음성빌딩에 당구장이 들어 온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당구를 쳐서 실력이 음성에서는 알아주는 수준이다.

외지인들만 오면 당구수를 속이고 사기 당구를 쳐서 그동안 몇 번의 싸움이 있었다.

 

혼자 연습볼을 치다 지겨워지면 당구 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이렇게 쳐라 저렇게 쳐라 훈수를 두는 통에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뭐라 말은 안하지만 짜증스러운 눈초리로 병철의 뒤통수를 쳐다보는 당구장 최사장이 속 타는 밤을 보낸다.

 

저녁 10시가 되자 신원장이 학원 문을 닫고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퇴근하는 신원장에게 원장님 오늘은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니예요?” 병철이 다그치자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요. 소장님과 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요! 그리고 저 결혼 할 사람 있어요.” 신원장이 병철에게 소리를 질렀다. 병철은 감히 나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라는 태도로 신원장을 노려봤다. 걸음을 옮기려는 신원장을 가로 막고 장사하기 싫은가보지.” 병철의 말에 신원장은 기가 막혔다. 신원장은 정말 화가 났다. 화가 나서 뭐라고 따지고 싶었는데 그냥 뛰쳐나왔다.

 

병철은 월세와 관리비를 이용하여 음성빌딩의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건물주가 서울에서 큰 사업을 하다 보니 음성빌딩은 관심사가 아니었고 병철이 하는 말에 거의 동의하고 있었다. 병철은 세입자들의 쥐고 흔드는 방법으로 누구는 월세를 조금 깎아주고 누구는 관리비를 깎아주며 말을 안 들으면 오히려 월세나 관리비를 더 올렸다. 어떤 날에는 일부러 전기를 차단하여 장사를 못하게 심술을 부린 날도 있었다. 지방의 작은 읍에 있는 상점들은 큰 돈 버는 일이 아니어서 관리비나 월세가 부담스러운 문제 중에 하나였다. 그런 이유로 병철의 횡포에도 뭐라고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밤이 깊어지면서 바람이 더 세차게 불었다. 태풍이 온다는 문자가 수시로 왔었다.

신원장은 서러움에 집에 가는 내내 눈물이 났다. “치사하고 더러워서 내가 빨리 그만둬야지. 흑~흑

 

병철도 머릿속이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몇 년 전 3층에 미용학원하겠다고 찾아온 신원장을 보며 첫눈에 반했다. 신원장에 말하지 않아도 관리비와 월세를 깎아주며 신원장에게 잘 해 주었다. 병철이 태어나서 남에게 자발적으로 잘해준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얼마 전 신원장이 학원을 그만하고 돌아오는 계약일에는 보증금을 돌려달라는 말을 하여 자기의 마음을 고백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아무 말이 없자 오늘 다시 물은 것이었는데 결혼할 상대가 있다니, 병철은 자기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신원장의 모습에 더 화가 났다. 병철은 집으로 가서 깡 소주를 들이켰다.

 

그날 새벽 늦가을 태풍이 찾아왔다. 음성은 내륙 중에서도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져 있는 지역이므로 보통은 과수원의 낙과 피해 정도만 있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아파트 지붕에 있던 패널이 뜯겨져 날아가고 간판들이 만국기 펄럭이는 듯이 하다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

음성빌딩도 이번에는 피해가 컸다. 1층 슈퍼마켓 간판이 떨어지며 쇼윈도를 들이받아 산산조각 나고 불어 닥치는 강력한 바람에 진열장에 있어야 할 상품들이 맥없이 날아다녔다. 지하 스잔카페도 빗물이 역류하여 잠기고 2층 당구장, 3층 미용학원도 유리창이 깨져서 박살이 났다.

 

병철은 다음날 아침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음성 빌딩에 와 보니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세입자들은 난장판이 된 점포를 수습하느라고 분주했고 수진은 지하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병철은 수습을 도와달라는 세입자들의 목소리보다 어제 저녁 신원장의 저 결혼 할 사람있어요!’라는 말이 귓가에 더 울리고 있었다. 병철은 만사가 귀찮았다. 관리인 이씨를 시켜 대충 도와주게 하였다.

세입자들은 먹고사는 문제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수습하느라고 분주했는데 지하카페 수진만 물에 잠겨 들어가지도 못하고 울며 병철에게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병철은 들은체도 안하고 있다가 바가지라도 가져와서 퍼 나르라고 얘기하고 방관하였다. 2층 당구장 최사장이 보다 못해 친구네집의 농사 지을 때 쓰는 농업용수 펌프를 가져다가 물을 빼주었다. 그렇게 물은 뺐지만 안에 있는 모든 도구와 식자재는 못쓰게 되었고 음성빌딩 앞은 내다버린 폐기물로 쓰레기 산이 되었다. 이 모든 일을 세입자들이 처리하였다.

세입자들은 태풍으로 상당한 피해를 봤고 장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 지경이었다. 특히 세입자들이 화가 난 것은 병철이 관리소장으로 책임을 다하지 않는 모습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포격 받은 전쟁터 같은 모습의 음성빌딩은 건물도 세입자들의 마음도 처참했다.

 

~!”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3층 신원장이 혼자 깨진 유리창을 치우다가 손을 베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원장은 처참한 학원과 손까지 다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1층 슈퍼마켓 김사장 부인이 놀라서 뛰어오고 병원으로 데려갔다. 신원장은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오후가 되었을 때 말쑥하게 생긴 남자와 신원장, 김사장 부인과 함께 왔다. 병철은 누군지는 몰랐지만 괜히 자기 영역을 침범당한 수컷 짐승처럼 긴장감이 들었다. 그는 신원장의 결혼 상대자였다.

 

남자의 부측을 받고 올라가는 신원장이 자기 보라고 하는 것 같고 김사장 부인이 쳐다보는 눈빛이 조롱하는 것 같았다. 병철은 부아가 치밀어 귀까지 빨개지며 자기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남자는 신원장을 대신하여 미용학원을 청소하며 이제 학원 그만해. 내가 알아서 할게.” 신원장은 동생 등록금 마무리 되면 학원 그만 할게. 그때까지만 기다려줘. 이제 이번학기면 끝이야. 지금까지 기다려줘서 고마워신원장은 어릴 때 부모님을 모두 잃고 여동생과 둘이 살았는데 여동생의 부모 노릇까지 하며 살아왔다. 동생 뒷바라지하며 자기도 조금씩 돈을 모아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거의 끝났어. 등록금은 분할 납부로 했는데 다음 달에 나머지 내면 끝이고 조금 모은 돈과 여기 보증금 빼서 결혼 준비하면 돼.” 신원장은 계약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남자에게 말하였다.

 

그 시간 병철은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이 몹시 못마땅했다. 씩씩대며 어떻게 해서든 결혼을 방해하고 싶었다. 머릿속은 온통 신원장과 남자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관리실이 괜히 좁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니 평소에는 하드껍대기만 떨어져도 지랄지랄 하던 놈이 건물이 이지경이 되었는데 뭐하는 거야!” 건물 앞에 나와 있던 세입자들은 수수방관하는 병철이 원망스러워 크게 소리쳤다. 병철은 관리실에 있다가 자기 들으라는 말 같아 뛰쳐나왔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놈이라니? 내가 놈으로 보여~!”병철은 고함을 쳤다. “우린 지금 다 망하게 생겼다고. 넌 뭐하는 놈이야!”김사장이 소리쳤고 병철과 멱살을 잡고 싸웠다. 음성빌딩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병철은 건물을 수습할 생각보다 월세를 올리고 관리비를 올려서 자기가 음성빌딩의 누구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다음날 병철은 관리비와 보증금 및 월세를 올리겠다는 공지를 붙였다. 세입자들은 기가 차서 할 말이 없었다. 서로 욕을 하며 시간이 지났다. 점점 앙숙이 되다가 원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음성빌딩은 세입자들이 알아서 태풍피해를 처리하는 바람에 어디는 합판으로 대충 막고 어디는 페인트칠로 대충 가려서 예전의 번듯한 건물의 느낌이 사라지고 있었다.

병철이 건물관리를 안 하자 세입자들도 관리비도 내지 않았다. 관리인 이씨의 월급도 줄 수가 없게 되자 이씨도 나가버렸다. 건물 앞은 아직도 치우지 않은 쓰레기들로 볼썽사나웠다.

 

음성빌딩은 깔끔한 건물이라 사람들이 찾아왔었는데 이제 그런 이미지는 없다. 장사는 안 되고 나가고 싶지만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와야 보증금을 준다며 병철이 버티고 있었다. 부동산에 점포를 내놔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세입자들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병철과 세입자들은 몇 번을 말싸움하고 때론 몸싸움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병철은 관리비를 안 낸다고 전기를 끊기도 했고 수도를 끊기도 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횡포를 부리며 세입자들을 괴롭혔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당구장에는 세입자들끼리의 모임이 있었다.

신원장이 그동안 참았던 말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동생 키우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는데... 이제 고생 끝내고 결혼하려 했는데... 결혼 날짜도 잡혀있는데, 저 돈 못 받으면 모두 끝이예요. 흑~흑세입자들은 자신들도 장사가 안 되어 속상했지만 신원장의 딱한 사정을 잘 알고 있던 터라 가슴깊이 측은 한 마음이 들었다. 슈퍼마켓 김사장이 보증금 반환 소송을 하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는데 저는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소송을 해도 결혼 날짜 전에 가능하다고 생각되지 않네요. 어떻게 하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신원장의 말이 가여웠다.

 

최사장이 갑자기 뭐가 생각났는지 흥분하며 말했다. “건물주가 음성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동안 전화해도 안 되긴 했지만...” 건물주는 큰 회사 회장이어서 비서실로만 연결이 되는데 그동안 병철이 '전화 오는 건 세입자들이 생떼를 쓰는 것이니 자기를 거치지 않는 것은 연결하지 말라.'고 했었던 것이다.

김사장도 거들며 말했다. “여기 읍내 사람들 몇 명 됩니까? 찾아보면 분명 아는 사람 있을 겁니다. 지금 상황에 뭐라도 해야 줘. 찾아봅시다! 같이 서울 올라가서 말해 봅시다.” 흥분한 세입자들은 여기저기 전화를 했고 큰 회사 회장으로 있는 건물주와 잘 아는 사람을 결국 찾았다. 세입자들은 건물주를 설득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세입자 대표로 최사장과 건물주의 학교 동창 되는 사람이 서울로 올라가 그동안 있었던 고충을 얘기하였다. 건물주는 자기가 알고 있던 것과 너무나 다른 현실에 깜짝 놀란다. 그 자리에서 답변할 수는 없지만 자기가 직접 가보고 세입자들의 얘기가 맞는다면 그렇게 처리해 주겠노라고 답하였다.

 

세입자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날 건물주는 음성빌딩을 찾았다. 건물주는 병철에게 말하지 않고 왔다. 건물을 방치하고 못되게 굴었다는 세입자들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다. 구석마다 거미줄이 가득하고 꺼진 복도 형광등과 냄새나는 화장실, 떨어져 나간 외벽 타일을 임시로 때운 흔적들이 마치 흉가 같은 느낌도 들었다.

 

건물주는너 뭐하는 놈이야! 건물을 관리하라고 했더니. 이게 무슨 꼴이야! 당장 그만둬!” 건물주는 병철을 꼴도 보기 싫다고 하며 내쫓았다. 망나니 같은 토끼왕은 쫓겨났다.

 

임대료도 적정선에서 합의를 하였고 결혼을 앞둔 신원장의 문제도 해결되었다.

그렇게 음성빌딩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하얀 목련이 필 때 신원장은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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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Jun(전완식)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 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 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 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 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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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Jun, 백합의 꽃말, Oil on Canvas, 45.5cm X 53cm, 2019년 작

 

 


멧돼지가 달려오고 있었다. “, , 으아악

 

 

곡식이 익어가는 계절, 텃밭에는 노루, 고라니, 멧돼지 등등이 수시로 들이닥쳐 밭인지 뭔지 분간이 안 될 지경으로 만들어 놓는 경우가 많았다. 용수는 특히 작물의 뿌리까지 파헤쳐 놓는 고라니와 멧돼지를 싫어했는데 오늘은 어미멧돼지가 새끼 7~8마리까지 데리고 왔다. 인기척이 있으면 보통은 피해 가는데 낮에 더덕주를 한 사발 마신 탓에 텃밭 옆 풀밭에서 잠자고 있던 용수를 멧돼지들이 보지 못했나 보다. 잠을 자던 용수는 이상 한 소리에 눈을 뜨자 새끼돼지가 한 마리 있었다. “이놈의 돼지새끼용수는 작대기를 집어 들고 그동안의 분풀이로 새끼 돼지를 한 대 때렸다. 용수는 잠결인데다 아직까지 주변에 어미돼지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소리를 지르는 새끼돼지 소리에 어미멧돼지가 용수를 향해 달려온 것이다. 용수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쳤지만 어미멧돼지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고 용수를 그대로 들이받아 버렸다. 나동그라진 용수를 더 해코지하지 않고 돌아간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겁을 잔뜩 집어 먹은 용수는 땅바닥에 코를 박고 엎어진 채로 그냥 있었다. 주변이 조용해진 한참 뒤 용수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욕을, 욕을 해주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태양광패널로 모은 전기로 LED전구 하나 겨우 켜서 밤을 보내는 산골. 오늘따라 서럽고 외로움이 깊어지는 날은 없었던 것 같다.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켜 오줌을 누러 갔다. 해발 700고지의 산속은 그저 고요했다. 소쩍새 소리만 소쩍소쩍 들렸는데 오줌보다 눈물이 더 먼저 나왔다.

......

 

여보. 정말 가야겠어요?” 용수의 처 정숙은 반은 포기한 듯한 어조로 짐을 싸는 용수에게 재차 되물었다. “내가 몇 번을 설명했어. 애 대학 졸업할 때 까지만 가장이고 그 다음부터는 나는 나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용수는 당연한 말을 왜 자꾸 하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투덜댔다. “이미 땅도 샀고, 짐도 일부 가져다 놓은 것을 알면서 왜 자꾸 그러는 거야.” 용수는 이미 다 정해진 것이고 자신은 확고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정숙은 원망의 마음이 들었지만 측은한 마음도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냥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용수의 짐 싸는 것을 도와주었다. 용수는 그렇게 떠나왔다.

 

정숙은 용수를 직장 생활할 때 만났다. 용수는 매우 성실했고 잘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웃는 얼굴이 참 보기 좋은 사내였다. 정숙과 용수는 비밀리에 사내 연애를 시작했는데 몇 달 뒤 대성이가 팀장으로 입사하기 전까지 둘은 너무나 행복했다. 정숙은 대학시절 대학 홍보사절로 학교 홍보물의 커버 사진을 장식할 정도로 미모가 출중했다. 그런 정숙을 대성이는 입사하자마자 좋아하게 되었고 의도치 않은 삼각관계는 만들어졌다. 대성은 MIT공대 박사 출신으로 생체모방로봇을 개발한 팀원 중 한명이다. 실력이 출중한 대성은 거기에다 한술 더 떠 잘생기기까지 했다. 자신감 넘치는 대성은 공공연하게 정숙에게 꽃바구니를 보내고 회식자리 건배사를 이렇게 떠들곤 했다. “우리 연구소는 활기찬 것은 좋은데 때론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집중이 안 될 때가 있어요. 우수한 연구 성과를 위해 좀 더 정숙한 분위기가 필요해 보입니다. 제가 정숙한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연구소라고 외쳐 주십시오.”이게 뭔 개똥 밟는 소리인가 싶지만 무슨 말인지 모두 알고 있었다. 대성의 느끼한 눈길이 정숙을 향하는 것을 용수는 외면하려 애를 썼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땀이 비올 듯이 더운 여름 점심시간 회사 앞 먹자골목에서 대성이와 정숙이 함께 나오는 것을 용수가 목격하였다. 그날은 로봇의 무게중심에 따른 걸음걸이 패턴 프로그래밍을 용수가 주도하여 조정하는 날이었는데 용수는 애꿎은 최연구원을 나무라며 짜증을 내었다. “아니 연구소 생활이 몇 년인데 기본 로직도 몰라! 이렇게 해서 걸어가겠어. 에이 한심해서...” 용수는 늘 미소 진 얼굴의 소유자인데 이런 말투의 용수를 처음 보는 최연구원은 자기가 뭔가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매우 당황하며 다시 잘 검토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뭔가 무겁게 누르는 분위기에 연구소는 가라앉았고 평소에 들리지도 않던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 크게 들렸다.

퇴근 무렵 결과 보고회의 자리에서도 용수는 평소와는 다르게 큰소리를 치며 보고서로 책상을 땅땅 내리치기도 했다. 용수는 정숙을 쳐다보지도 않고 휑하니 퇴근하였다. 정숙은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았다.

 

용수가 처리해야하는 로봇의 걸음걸이 문제는 그날도 그 다음날도 해결되지 않고 지지부진했다. 그러던 중 투자회사의 간부들이 방문한다는 통보가 왔다. 문제 해결이 안 되었는데 이틀 뒤에 시연회를 해야 할 판이었다. 대성 팀장은 문제 해결까지 퇴근 못한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용수는 마음을 가다듬고 일에 집중하려했지만 계속 떠오르는 정숙과 대성의 웃는 모습이 그를 방해 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 능력발휘를 못하는 용수에게 대성이 잔소리를 하자 용수는 대성에게 대들며 미국 물 먹은 박사면 다야.”라며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고 연구소를 나와 버렸다. 황당한 상황에 모두 어안이 벙벙하여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고 시연회는 대성과 정숙이 마무리하였다. 용수는 그날 이후로 연구소를 가지 않았다. 정숙도 용수의 무책임한 태도에 화가 났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행동이 이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이상해. 그럴 사람이 아닌데 무슨 일이 있나?’ 며칠이 지나도 전화도 받지 않고 나타나지 않는 용수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정숙은 오늘은 그의 집으로 찾아가야겠다고 맘먹고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

 

용수의 집에 도착한 정숙은 문 앞 계단에 앉아 용수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8, 9시가 되니 아이들 줄 과자나 과일이 들은 비닐봉지를 흔들고 오는 아저씨들이 지나가고 10시쯤 되니 학원마치고 돌아오는 학생들의 조잘대는 소리가 골목을 가득 메웠다.

골목에 사람들의 소리가 잦아들고 멀리 차 소리만 들릴 때쯤 비틀거리는 용수가 나타났다.

 

용수씨 우리 얘기 좀 해.”정숙의 말에 용수는 아무 대구도 하지 않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냥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용수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정숙은 무슨 말이라도 해야지.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정숙이 큰 소리로 말해도 용수는 아무 말도 없이 현관문을 닫으려 했다. 닫히려는 문을 얼른 붙잡은 정숙은 따라 들어가며 재차 물었다. 용수는 아무 말도 없이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말하기 싫다는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정숙은 그의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얼마 전부터 미소가 사라진 그의 얼굴이, 수심이 가득 찬 그의 얼굴이 안쓰러워 그의 곁으로 다가가 말을 붙여 보려했다. 거실의 불을 켜니 쇼파 앞에 놓인 시들은 꽃다발과 카드, 반지 함이 보였다. 정숙은 여자의 직감으로 자기에게 주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수씨 이게 뭐야. 나 주려는 거였어.” 용수는 아무 말도 없었고 말을 기다리다 못해 정숙은 카드를 열어보았다. ‘사랑하는 정숙에게. 우리 사귄지 500일이 되었네. 백합과 이 반지가 나의 마음을 모두 대변할 수는 없지만 내 사랑의 진심을 받아주길 바래.’라고 쓰여 있었다. 정숙은 연애 초기 놀이동산에 함께 놀러갔다가 피어있는 백합을 보며 용수씨 백합의 꽃말이 뭔지 알아? 순결, 변함없는 사랑이야. 나는 백합의 변함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이 아주 좋아.”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고맙기도 했으나 순간 화도 났다. 변함없는 사랑이라고 해놓고 지금 정숙을 모른척하는 이 태도는 뭔가? 정숙은 뭔가 따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수씨!” “용수씨, 일어나서 눈뜨고 얘기 좀 해. 이 꽃과 카드는 뭐고 나에게 지금 하는 태도는 뭐야. 뭐가 이렇게 앞뒤가 안 맞아정숙이 감정 섞인 목소리로 따져 물으니 그제야 용수도 일어나 앉았다. 바로 뭐라고 얘기 할 것 같았는데 용수는 한숨만 길게 쉬고 가만히 있다. 입을 떼려고 하다가 다시 한숨을 길게 쉬고는 집에 가라는 말을 한다.

정숙은 답답하고 서운하며 화가 나는 묘한 감정들이 한데 섞이며 울음이 나왔다. “뭐가 그렇게 문젠데. ? ?” 정숙이 다져 묻자 그제야 용수는 힘들게 한마디 했다. “나 며칠 전 500일 되는 날. 이거 주려고 그리고 고백하려고 너 찾았는데... 아침부터 너하고 팀장하고 없더라. 전화도 안 받고. 점심시간에 꽃집에 꽃다발 주문하고 나오는데 너와 팀장이 먹자 골목에서 웃으면서 나오는 거 봤다. 둘이 너무 좋아보여서... 언제 부터 사귄 거야? 최근에 팀장하고 같이 있는 시간이 많더라.” 정숙은 기가 막혔지만 순진한 용수가 하는 말이 싫지가 않았다. “용수씨 바보야. 직장 상사하고 밥 먹으면 사귀는 거야.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 그리고 나는 팀장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 아무 관심도 없어.”

 

사실 로봇의 균형과 보행에 관한 운동 역학을 제어하는 기술은 매우 중요하고도 난이도가 높은 일이어서 이것을 잘 처리하면 매우 큰 성과로 인정을 받는다. 정숙은 그 일을 용수가 주도하게 하려고 얼마 전부터 시간 날 때마다 팀장에게 용수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날도 팀장이 특수합금을 만드는 업체 회의에 함께 간 것뿐이었다. 당시 정숙은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래. 팀장도 없고 나도 없는 시간에 성과가 나온다면 용수씨가 주목을 분명히 받을 거야이런 상상을 하며 정숙은 팀장을 따라 나섰던 것이었는데 그동안 팀장이 여러 번 공개적으로 정숙에게 대시한 적이 있어서 용수는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었다.

 

둘은 밤새 얘기하여 서로의 오해를 풀고 함께 연구소로 출근을 하였다. 함께 올라가기가 어색하여 정숙이 먼저 들어가고 용수는 편의점에 잠시 들렸다가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용수를 보고 팀장이 불러 세웠다. 팀장도 정숙과 용수가 어떤 관계라는 것을 막연하게 나마 알고 있던 터라 용수를 내쫓을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 그동안 정숙이 용수의 얘기를 할 때마다 용수가 더 보기 싫어졌었다. 팀장은 이미 연구소장에게 용수의 연구 실적이 미흡하고 책임감이 없으며 무단결근을 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전보처리를 해놓은 상태였다. “용수씨. 저 따라오세요. 소장님을 뵈어야겠어요.” 용수는 잔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고 따라 들어갔다. 소장은 용수에게 최근의 행실로는 파면에 해당하지만 그동안 한솥밥 먹던 사람이니 강릉에 있는 부설 연구소로 전보 발령한다는 식의 얘기를 했다. 알겠다는 얘기를 하고 자리로 돌아온 용수는 사직서를 써서 소장에게 전하고 연구소를 나왔다. 용수는 정숙에게 전화하여 강릉으로 전보 발령을 냈다는 얘기에 사직서를 냈다고 말하고 지금은 너무 혼란스러우니 며칠만 혼자 있어야겠다고 말했다. 정숙도 그러라고 말 할 수밖에 없었다. 첨단 연구를 하는 서울과는 다르게 강릉연구소는 결과테스트만하는 곳이어서 용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어서이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용수는 마땅한 연구소를 찾지 못했다. 로봇공학을 하는 연구소가 몇 개 없는 것도 이유였겠지만 사회성 부족한 용수의 태도도 문제였다. 그런 저런 이유로 결국 용수는 인간형이거나 동물형의 인공지능이 탑재된 재난 구조형 로보틱스 연구소가 아닌 산업로봇을 제조하는 회사로 들어갔다. 직장을 얻고 나서 정숙과 결혼도 하였다.

 

정숙과 결혼하여 행복하기는 했으나 늘 잘 못된 길을 가는 것 같았다. 아무리 먹어도 허기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숙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받는 날 축하객으로 온 예전 연구소 직원들을 볼 때 분명 기뻐해야할 날인데도 불구하고 헛헛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며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이 많은 용수는 주말만 되면 산으로 갔다. 산봉우리에 올라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보면 왠지 가슴속에 무언가가 해소되는 것 같았다.

 

어느 가을 낙엽이 예쁘게 물들 던 날. 아들과 함께 산에 올랐는데 아들이 물었다. “아빠. 아빠도 엄마처럼 휴머노이드 연구했다며?”용수는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 아들은 아빠는 왜 지금 그런 일을 안 하고 옛날식 산업로봇을 만드느냐?를 묻고 싶었던 것 같다. 아들은 또 무언가를 물어보는 것 같아 용수는 약수터에 가자고하며 걸음을 옮겼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은 피곤했는지 차 안에서 곯아떨어졌고 용수는 눈이 초롱초롱했다. 오는 내내 용수는 자기의 인생 전반에 걸쳐 생각했다. 아들을 들여보내고 용수는 집에 들어가지도 않은 채 동네 치킨 집에 가서 맥주를 들이켰다.

 

저녁 먹을 시간쯤 되자 정숙에게 전화가 왔다. 용수는 취한 목소리로 나중에 들어간다. 밥 안 먹는다. 라고하며 전화를 끊었다. 걱정이 된 정숙이 아들의 식사를 챙겨주고 치킨 집으로 쫓아왔다. “당신 뭐 걱정꺼리라도 있어? 당신은 항상 속내를 안 보이더라. 내가 다 이해해 줄 테니 말해봐. 우리는 부부잖아.” 정숙이 다정하게 말하는데도 용수는 맥주만 들이킬 뿐 말을 안했다. 용수가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정숙보다 못하다는 생각과 자신이 꿈꾸던 공학자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더 가슴깊이 남아있던 상처는 대성의 대시에 아무 표현도 하지 않았던 정숙의 태도로 인해 자신이 연구소에서 쫓겨났다는 생각이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정숙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렇게 밖에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연구소에서 비밀연애로 하자고 먼저 제안한 것은 용수 자신이었고 그런 불분명한 태도가 이런 결과가 생겼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용수는 나 좀 내버려둬. 나도 내 인생 살고 싶다고.”라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정숙은 말없이 한참을 기다리다 술에 완전히 취한 용수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산행으로 용수의 발에서는 발 냄새가 진동하였다. 정숙은 젖은 양말을 벗기고 용수의 발과 손, 얼굴을 젖은 수건으로 대충 닦아주고 옷을 갈아입혀 재웠다. 원래도 말이 없던 용수가 점점 말수가 더 줄어들고 최근에는 별것도 아닌 얘기에도 파르르 민감하게 반응하던 용수를 생각하며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용수에게는 의미 없는 시간이 몇 년이 지나는 사이 정숙은 연구소 생활도 할 만큼 했고 아들의 입시도 다가와서 퇴사를 했다. 용수는 꾸역꾸역 회사를 다니기는 했지만 아들이 대학을 들어가는 해에 다시 또 명예퇴직을 당하게 되었다. 명퇴를 할 때엔 용수도 그 동안 맘속에 있던 얘기를 했다. 정숙도 대강은 짐작하던 바이기에 크게 당황하지 않고 용수의 얘기를 들어줄 수 있었다. 용수는 허드렛일을 해서라도 아들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가장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오줌을 누고 들어오며 용수는 눈물을 훔쳤다. 소쩍새는 밤새 울고 700고지의 밤은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싸늘했다. 옷을 벗어 다친 곳이 어떤지 살펴보려했는데 LED전구의 밝기가 약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다. 손으로 더듬더듬 만져보니 다행이 찢어진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용수는 정숙이 보고 싶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숙이 잘못한 것은 별로 없었다. 용수 자신이 못난 것인데 그동안 정숙을 원망하며 살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숙은 그동안 자기 연구 열심히 했고 아들 대학 잘 보냈으며 자기에게도 잔소리하지 않고 늘 기다려주고 지켜주고 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혼자 괴로워하고 혼자 오해해서 원망하고 혼자 책임을 다 짊어진 가장인 척을 했었지만 실제 가장은 정숙이었고 가족을 지탱하게 하는 힘도 정숙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처구니없게도 함께 있을 때는 모르다가 멧돼지한테 혼쭐이 나고서야 깨우치게 되었다. 용수는 자신도 모르게 나는 나만 생각하고 살았어. 이런 모자란 놈이라고 외쳤다.

 

생각이 변하니 정숙에게 미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주말마다 괴롭다고 혼자 산에 싸돌아다녀서 정숙은 늘 혼자였다. 공학자이면서도 아들의 수학은 고사하고 산수도 한번 봐주지 않았고, 아들이나 정숙이 말을 걸어오면 귀찮타거나 외면하기 일쑤였다.

돌이켜보니 0점의 아빠이고 0점의 남편이었다. 한 거라곤 월급 갖다 준 것 외에 하나도 없었다. 정숙이 퇴사한다고 할 때도 진지하게 대답하지 않고 알아서해 라고만 했고 아들의 대학 진학을 위한 진학 상담도 정숙에게 모두 맡겼던 것들이 후회스럽고 가슴 아팠다.

 

며칠 뒤 용수는 산을 내려와 집으로 향했다. 아들은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가서 집에는 정숙 혼자 살고 있었다. 연락을 하지 않고 와서인지 집에 정숙은 없었고 용수가 쓰던 물건들만이 가지런하게 자리를 잡고 용수를 반겨주었다. 변한 것은 연애할 때 같이 다니며 찍은 사진들이 집안 여기저기에 액자가 되어 붙어있었다. 사진을 보니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혼해서 같이 찍은 사진이 결혼사진과 신혼여행 사진 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의 졸업 사진에도 정숙과 친척들만 있었다. 처음 연애 할 때 같이 갔던 놀이동산에서 찍은 곱디고운 정숙의 모습을 보니 한평생 맘고생 시킨 자신이 미웠고 코끝이 찡했다. 늘 보던 집안 물건이었는데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해 보였다. 베란다 창가에 앉아 지는 해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차에 정숙이 들어왔다. “. 여보!” 정숙은 놀랍고 반갑다는 표정으로 용수를 바라보았다.

 

용수는 백합 한 다발을 정숙에게 내밀며 내가 너무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어. 당신이 너무 많은 시간을 혼자 지내게 한 것을 알게 되었어. 정말 미안해. 당신이 나를 용서해준다면 앞으로 행복하게 살도록 노력할게.” 정숙은 대답 없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만 계속 끄떡였다. 용수가 백합의 꽃말을 잊지 않았다는 것으로 모든 대답과 약속이 된다는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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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Jun(전완식)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 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 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단편소설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과 소장 /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 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 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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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i Jun, 열대의 휴양지에서 느끼는 휴식, Oil on Canvas, 60.6cm X 72.7cm, 2019년 작

 

 

택시에서 준성은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공항에 도착해야할 시간이 이미 지나버렸다. 기사아저씨에게 빨리 가 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이미 늦은 시간이라 티켓팅이 가능할지 미지수였다.

가까스로 티케팅을 하고 짐을 붙인 후 허둥지둥 탑승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게이트 앞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려하니 며칠 전 아내가 부탁한 향수가 생각났다. 향수를 사기 위해서는 다시 면세점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탑승 시간이 분 남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빨리 뛰어갔다 오면 될 수도 있겠다.’ 준성은 아내의 서운해 하는 얼굴을 생각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면세점에서 향수를 사서 돌아오는데 공항이 떠나가도록 탑승을 빨리하라는 재촉 방송이 들려오고 있었다.

허둥지둥 탑승을 마친 준성은 지정된 자리에 앉아 긴 한숨을 쉬며 숙제를 마친 아이처럼 편안한 마음을 얻었다. 비행기는 이륙을 하고 준성은 그동안의 피로로 잠이 쏟아졌다.

 

얼마를 잤는지 비행기 내부는 소등 되어있었고 창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뿐이었다. 창밖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되며 준성은 소리를 지를 뻔했다. 바이어와 논의할 모든 자료가 들어있는 노트북을 탑승구 앞 의자에 놓고 온 것이 지금 생각났다. ‘이런 멍청이, 미친 놈, 머저리...’

 

비행기가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회사 동료들에게 자료 전송 부탁 전화를 했다. 이미 서울은 새벽2시를 넘긴 시간이라 전화를 받는 사람은 부하직원 미스 김뿐이었고 그녀는 자신이 가진 자료는 부분밖에 없다고 하였다. 미스 김은 작년 여름 회사에 방문한 외국 바이어들에게 프리젠테이션을 같이 했다. 회사 초년생이어서 서툰 것이 많았다. 특히 준성이네 회사의 의료 장비를 다루는 것이 서툴러 실수가 많았지만 준성이 잘 마무리하여 좋은 성과를 냈었다. 그때 좋은 성과를 낸 사이라서 새벽 시간에도 전화를 받아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준성은 그것이라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호텔에 도착한 준성은 기대감을 가지고 이메일을 확인하였다. 준성은 다시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그녀가 보내준 것은 이미 오래전에 작성한 사업안 초기 문서로 회사가 주력으로 내세울 제품이 변경되기 전의 사업계획서여서 시장 분석한 통계 자료 외에는 쓸 것이 없었다.

자기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은 심정을 참아가며 내일 회사에 도착하면 최과장에게 자료를 보내달라고 부탁의 답장을 하고 기억나는 데로 사업계획서를 수정하였다. 저녁 식사도 거르면서 정리를 하였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를 가지고 사업계획서를 완성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서울의 출근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시계가 밤 12시를 가리키자 최과장에게 전화를 했다. 겨우 통화가 되어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출근하면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신신 당부를 하였다. 문제는 최과장이 준성과 승진 라이벌 관계여서 그가 어떻게 회사에 말할지 자료를 정확히 보내줄지가 걱정되었지만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2시간 정도가 지난 후 이메일이 도착하였는데 객실 컴퓨터의 애플리케이션 사양이 낮아 열리지가 않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로비로 가서 사양이 높은 컴퓨터를 쓸 수 있냐고 문의를 하였지만 호텔내의 모든 컴퓨터는 동일하기에 서비스를 해줄 수가 없다고 하였다.

 

지금 런던은 새벽이고 어디에 가도 이 파일을 열수는 없다는 사실에 준성은 눈앞이 캄캄했다.

미팅은 아침 일찍 시작되기에 하는 수 없이 최과장에게 다시 전화하여 낮은 버전으로 변환하여 보내달라는 부탁 전화를 했다. 최과장은 회의를 하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의 전화를 했는데도 받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부장님께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준성은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어 김과장. 런던 잘 도착했지. 거기는 몇신가?” 부장은 형식적인 인사말을 했다. 준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자초지정을 말하고 파일을 변환해서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부장은 최과장에게 전화를 바꿔주었다. 최과장에게 다시 부탁의 말을 하고 있는데 전화기 너머로 부장이 욕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회사에 돌아갔을 때 변변치 못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 걱정되었다.

 

30분정도가 지나서 변환 된 파일이 도착했다. 파일을 열어보니 그동안 만든 자료가 모두 있었다. 로비로 가서 출력 서비스를 부탁하였다.

 

한숨도 못 잤지만 더 이상 실수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미팅 장소에 일찍 갔다. 20분전에 도착 했는데도 바이어는 나와 있었다. 당당하고 의젓한 자세로 앉아 있었고 요즘은 보기 드문 카이저수염으로 단장한 전통적인 영국 신사로 보였다. 외모에서부터 기가 죽었다. 준성은 출력물로 설명을 시작하였다. 동영상으로 제작된 제품의 세부 설명을 보여 줄 수 없어서 답답했다. 또한 자기가 우겨서 큰 비용을 들여 제작한 동영상을 보여줄 수가 없다는 것이 회사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잘 설득해 보기위해 준성은 애를 썼다.

주어진 시간이 1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바이어는 큰 감흥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쯤 되면 계약을 하자는 얘기가 나와야 하는데 바이어는 그저 듣기만 할 뿐 가타부타 말이 없다.

준성은 다시 식은땀이 나며 순간 비웃는 최과장과 동료 그리고 몇 년간 진급을 못한 준성을 달래 주던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바이어는 점점 표정이 굳어지더니 듣기가 지겹다는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준성은 하는 수 없이 노트북을 잃어버린 얘기를 하고 동영상을 보아야 세부기능을 알 수가 있는데 출력물이어서 설명이 부족했다고 말을 하고 다시 약속을 잡아주면 안되겠냐고 사정하였다. 그는 몹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비서를 불러 스케줄을 물어보았다. 비서는 준성의 다급하고 당황한 얼굴을 여러 번 쳐다보더니 내일 오후 4시에 30분간 시간이 있다고 했다. 준성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바이어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혀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준성이 허리를 굽히는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심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로 와서 노트북 대여를 부탁하니 노트북 대여는 안 되고 대여해주는 회사는 안내해 줄 수 있다고 하였다. 주소를 받아들고 위치를 확인하니 걸어서 10여분 안에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준성은 안내 데스크의 아가씨에게 가는 길을 다시 한 번 설명 받고 호텔을 나섰다. 처음 오는 런던이라 걸어서 가니 그 길이 그길 같고 헷갈렸다. 몇 번을 길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회사에 도착하였고 노트북을 빌릴 수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여 파일을 옮긴 준성은 내일은 정말 잘 설명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파일을 여러 번 확인하였다. 오늘 할 일들이 마무리 되니 쏟아지는 피로감에 준성은 골아 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 시간과 장소에 대한 확인을 하였다. 비서는 어제와는 다르게 명랑하고 정감 있는 어투로 대답해 주었다. 단 바이어의 영국 행사 스케줄을 오늘까지 마치고 회사가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내일 출국을 하니 오늘 오후에는 설명을 잘 해야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비서의 친절함에 고마움을 느끼며 준성은 설명을 잘 하겠노라고 말을 하였다.

 

오후가 되어 약속 장소로 가서 준성은 노트북을 켜고 동영상의 세부 설명을 중심으로 설명하였다. 동영상을 통해 설명을 하는데도 바이어는 큰 감흥이 없다는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준성이네 회사의 의료 기기는 진단 효과가 좋은 편인데 신제품이어서 증명하기가 어려웠다. 준성은 바이어의 감흥이 없는 얼굴을 보며 이번 일에서 성과를 못 내면 승진을 못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변변치 못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는 자신의 마음을 보고 있었다.

 

준성과 바이어가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있는 사이에 비서가 말문을 열었다. “작년에 다른 회사에 다닐 때 김과장님 회사에 방문한 적이 있어요.” 준성은 어제 오늘 다급한 상태에서 미팅을 하여 비서의 얼굴을 제대로 본적이 없었지만 지금 다시 보니 낯익은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과장님 회사의 컴퓨터 단층촬영장치를 통해 저는 암을 조기 발견 할 수 있었고 수술 후 지금은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요.”

 

비서의 말이 끝나자 준성은 작년의 일이 선명하게 생각났다. 미스 김이 장비를 잘 못 조작하여 오류가 발생하였고 장비 테스트 시범을 보여야 하는 시간이 지연되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준성은 그때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희망자에 한해 컴퓨터 단층촬영을 해주고 회사 내 연구 닥터를 통해 진단도 해주는 이벤트를 실시하였다. 그 중 한명에게서 암으로 보이는 조직이 발견되었고 그로 인해 장비의 고성능을 모두 실감하여 좋은 성과를 냈었다. 그때 그 사람이 지금 옆에 있는 비서라는 것이다.

비서의 말에 바이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왜 얘기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비서는 암이 있었다는 말을 하기가 싫어서, 자신이 일 잘하는 건강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고 싶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성능에 대한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침묵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작년의 고마움을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이제야 얘기한다고 했다. 대화는 급물살을 타고 바이어와 준성은 계약을 하게 되었다.

 

인천공항에 다시 도착 할 때까지 준성은 깊은 잠에 빠졌다. 나른한 열대 휴양지에서 느끼는 휴식의 시간을 즐기는 꿈을 꾸며...

 

 

 

Kai Jun(전완식)

30여 년간 인물화를 중심으로 회화 작업에 열중하였다. 인물화에 많은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정신세계를 그림 안에 투영하려 노력하였다. 인물화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다룬 단편소설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주요 미술경력은 국내외 개인전 27회 단체전 80여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형상 변화 신비510년 만에 재현 -대한민국 7번째 대통령 인물화 작가(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소장 /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 청와대 소장) -Redwood Media Group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 선정 -미국 행정/정책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강의 자료로 작품 선정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기획위원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 -광복70주년 국가 행사 대표작가(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서울도서관 전시)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전시행사 대표작가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산업대학원 졸업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 설치미디어아트분과 부위원장, 국가미래연구원 문화예술체육 연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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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제주를 그리겠다고 생각하며 다양한 실험을 하던 중에 다시 길을 걸었다. 당시 길 위에 던져진 질문은 너의 상징은 무엇이냐?’였다. 작가를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자주하는 말이지만 나 또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며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좌)georges braque-violin and candlestick   (우)Pablo Picasso-Man with a Violin


피카소를 통해 널리 알려진 큐비즘(입체파)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에 의해 창안되었다. 브라크는 엄청난 실험 정신을 가진 작가이다. 그는 회화, 조각, 판화, 무대미술까지 두루 섭렵한 재주꾼이다. 근대 프랑스 회화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1909년부터 1914년까지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는 함께 작업하며 분석적 입체주의를 만들었고 이 당시 제작 되었던 작품은 누구의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비슷하다. 브라크의 실험성과 창의력은 1948년 제24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회화 부문 1등상을 수상했고, 1961년에는 살아 있는 화가로서는 처음으로 루브르 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그러나 동일한 업적을 가진 피카소와 비교하면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피카소는 초등학생도 알 정도로 명성이 높은 반면 브라크는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른다. 그 차이를 길을 걸으면 생각했다.



작가: Kai Jun 제목제주의 아름다움NO.9 크기: 116.8cm X 91cm 재료: Acrylic & Mixed Media 제작년도: 2018

 

작가는 대중에게 감동을 주고 생각의 기회를 주며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의 역할도, 시대의 대변인의 역할도 해야 한다. 이 외에도 작가의 사회적 책무는 더 많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책무가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한다면 미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는 동일한 개념으로 작업하였기에 미술적 가치는 같다고 볼 수 있다. 단 대중에게 전해줘야 하는 작가의 책무가 파급력있게 작용하였느냐와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가 아닌가 한다.

 


 

진주 같은 사람들

제주를 그리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의 초심을 생각해봤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힐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제주를 찾았고 걸었으며 사색으로 답을 얻었다. 이런 답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비슷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초심에서 얻었던 답을 생각하며 힐링하는 작품을 만들자.’라는 추상적이지만 간결한 답을 얻었다. 그리고 상징을 찾았다. 상징을 진주라고 정했다. 진주는 조개껍데기에 외부 자극에 의해 상처가 나게 되면서 생성 된다고 한다

 

한국인도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은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민족이다

 

우리는 자극에 굴복하지 않고 더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 낸 역사적 경우가 많다. 진주처럼 아픔을 딛고 아름다운 광채를 내는 보석이 되는 존재, 한국인의 민족성을 잘 표현하는 진주를 상징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난의 근대사, 현재의 경제 난국도 한국인이기에 모두 타개하고 보석처럼 다시 빛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작가: 이유진 촬영지: 제주도-성산일출봉​ 제작년도: 2015년

 

지금은 힘들어도 당신은 진주처럼 빛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길에서 답을 얻고 사명을 얻어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당신이 지금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당신은 진주와 같이 빛 날것입니다.”

당신은 진주 같은 보석입니다.” 


 

Kai Jun(전완식)

 

르네상스시대부터 신고전주의 시대까지 활동했던 유럽 궁정화가들의 기법을 연구하였으며 그들이 만들어 냈던 화려한 기법을 활용한 독특한 인물화의 표현법을 개발하였다.

이에 대한 평가는 20094월 미국 최대 미술 산업 그룹 Redwood Media Group의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에 선정되었다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이미지 변환에 대한 표현을 510년 만에 재현한 화가이다.

201512월에는 광복 70주년 국가 행사의 대표작가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전시를 했었다. 2018년 3월 세종문화회관에서 국내최대규모의 인물화전을 열었으며 ‘KOREA Renaissance Art’를 선언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교수이며前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산업대학원을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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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을 가르치며 느끼는 것- 목표와 목적의 동일시 현상

오랜 시간 대학생들을 가르치며 매년 느끼는 것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오면 모든 행복이 자기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런 생각을 대부분의 학생들이 한다. 이성친구가 생기고 자유가 생기고 아르바이트 등의 활동으로 일정량의 재력도 생기는 등등의 꿈을 꾸며 입학을 한다. 이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빨리 알아차리는 학생도 있고 졸업이후까지 꿈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학생도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고민하다보니 이런 사고가 생기게 하는 부모와 선생님, 선배들의 사고와 더 나아가 국민들의 정서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위치나 자리에 오르는 것이 목표는 될 수 있어도 목적이 될 수는 없는데도 둘을 동일시하는 것에서 오는 문제라는 생각이다. 

  작가: Kai Jun 제목제주의 아름다움NO.8 크기: 162.2cm X 130.3cm 재료: Acrylic & Mixed Media 제작년도: 2018

 

제주에서 길을 걷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해결하려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에게 다가가 물어보면 나이를 불문하고 대학생들과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많이 목격한다. 젊은 남자를 만난 경우를 예를 들면 그는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했고 결혼 후에 행복한 삶을 꿈꾸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문제를 얘기했다. 이 문제는 나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나또한 많은 부분에서 고민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결혼은 목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대학생이 되던 판사가 되던 의사가 되던 간에 그 자리를 얻는다 해서 행복할 수는 없다. 행복은 그 일을 통해 어떤 만족을 얻으려하는지를 정해야한다. 그리고 어떤 노력이 그 만족을 이루는 동력이 되는지를 살펴야한다. 

 

하면 된다가 불러일으킨 문제

하면 된다는 과거의 1차 산업과 2차 산업 정도의 단순한 산업 공정의 시대에서는 소위 으로 의욕으로 가능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일들이 이런 촉이나 의욕만으로는 성공 할 수가 없다. 시대와 산업이 변했음에도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생기는 아픔도 많이 목격한다. 요즘의 사업이나 일들은 철저한 준비과정 없이 뛰어들었다간 대체적으로 실패의 아픔을 맛볼 수밖에 없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거의 모든 일들은 고도로 발전된 기술과 정보의 결정체이다. 또한 이 범위를 넘어선 융복합의 일들이 전개되고 있어서 사전 준비 없이 의욕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직자 대부분이 과거의 일과 연관성 없는 자영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일상적인 일에도 성급함으로 다가가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보물을 캐려면 보물 지도가 있어야 한다. 그저 삽 들고 뛰쳐나가서 땅 판다고 보물을 캘 수는 없다. 보물지도가 없다면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여러 가지로 탐색하고 조사하여 지도를 만든 다음에 삽을 잡아야하는데 삽부터 잡아서 아픔이 온다. 세계에서 가장 머리 좋은 민족으로 인정받는 우리나라에는 의외로 묻지 마. 투자촉에 의한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작가: Kai Jun 제목제주의 아름다움NO.8(부분)


먼저 걷는 제주의 길이 되어야한다.

제주를 걷다 마주치는 아픈 사람들을 보며 순서를 바꾼다면 어땠을까? 하는 물음을 가져 본적이 있다. 만약 그가 자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었다면 그래서 목적을 잘 설정하고 그에 따른 큰 목표, 작은 목표를 꼼꼼하게 세우고 실천했다면 또, 그가 성급하게 일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걸으며 떠오른 생각을 통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를 하고 사업에 임했다면 그는 저렇게 힘없이 길을 걷지 않았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 또한 부족한 점이 많았다는 것을 느꼈다.

제주는 여러 가지로 깨우침을 주고 힘을 주고 치유를 해준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만의 길에서 깊은 자기와의 물음이 나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더불어 남도 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태초의 자연을 잘 간직한 제주는 우리에게 치유와 힘을 주는 곳임은 분명한 것 같다.

 




작가: 이유진 촬영지: 제주도-따라비오름​ 제작년도: 2015년

 

 

Kai Jun(전완식)

 

르네상스시대부터 신고전주의 시대까지 활동했던 유럽 궁정화가들의 기법을 연구하였으며 그들이 만들어 냈던 화려한 기법을 활용한 독특한 인물화의 표현법을 개발하였다.

이에 대한 평가는 20094월 미국 최대 미술 산업 그룹 Redwood Media Group의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에 선정되었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이미지 변환에 대한 표현을 510년 만에 재현한 화가이다.

201512월에는 광복 70주년 국가 행사의 대표작가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전시를 했었다. 20183월 세종문화회관에서 국내최대규모의 인물화전을 열었으며 ‘KOREA Renaissance Art’를 선언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교수이며,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산업대학원을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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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려하면 보인다.

자연 속에 들어가면 오감이 깨어나며 신선하고 신비한 느낌이 든다. 어떤 방식이나 방법을 알지 못하더라도 자연이 주는 깊은 감흥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자연을 좀 더 깊이 감상하게 된다면 큰 감흥을 얻게 된다. 밤하늘이라는 자연을 바라봄에 있어 별자리라도 찾으려고 하면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별들이 보이고 밤하늘에 펼쳐진 무수히 많은 별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밤하늘이 주는 자연의 감흥을 깊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무심결에 바라보는 밤하늘은 그저 어두울 뿐이다.

자연은 늘 곁에 있으나 자연을 느끼려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된다. 


작가: Kai Jun 제목: 제주의 아름다움NO.7 크기: 116.8cm X 91cm 재료: Acrylic & Mixed Media 제작년도: 2018



감상을 위한 한발 다가섬 - 독화(讀畫)를 아시나요?

제주도의 자연은 매우 특별해서 쉽게 감흥을 얻게 되지만 과거 선조들이 했던 감상법처럼 자연과 인간의 일체감을 얻기 위한 진지함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전통적으로 전래되어온 지명이나 산 이름, 나무 이름, 풀 이름 등등은 진지하게 대상을 관찰하다가 붙여진 것들이 많다. 용두암, 선녀바위, 거북바위, 와우산 등등 수많은 이름들이 매우 진지하게 관찰하다가 느껴진 어떤 상징이나 현상들이 결합하여 붙여진 것들이다. 우리는 무심결에 자연을 보다가도 누군가가 저기 보이는 바위가 선녀바위입니다.’라고 말해주면 그 바위가 이름처럼 보이고 순간적으로 자연과 나의 사고는 일체감이 형성되는 현상을 한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단원 김홍도의 황묘농접도’ : 고양이와 나비는 중국어로 70, 80세와 발음이 같다. 패랭이꽃(석죽화)과 바위는 세월에 변하지 않는 장수를 뜻한다. 제비꽃은 여의초라하여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뜻이다. , 이 그림은 70-80세까지 장수를 누리길 바라는 뜻을 그린 그림이다.

 


티치아노의 신성한 사랑과 세속적 사랑’ : 그림을 얼핏 봐서는 오른쪽의 여인이 세속적 사랑을 상징할 것 같지만 단정한 복장을 하고 장미꽃을 든 숙녀가 세속적인 사랑을 상징한다.

오른쪽 여인은 나체로 향로를 들고 있고 붉은 천과 흰 천을 감싸고 있다. 나체의 여인은 신이 태초의 신성한 상태로 만든 죄를 짓지 않은 여인을 뜻하며 붉은 천은 예수님의 피를 흰 천은 정결함을 뜻하며 천사가 우물을 휘젓고 노는 모습은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세속과 신성으로 양분시켜 놓은 것을 뜻한다. 

 

미술도 오감을 통해 느끼는 자연처럼 그냥 시각적으로 색채, 터치, 기교 등의 감각적으로 느껴도 무방하다. 그러나 미술을 좀 더 깊이 있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림을 읽어 내는(讀畫) 방법이 있었다는 것을 알면 더 큰 감흥이 다가오고 재미가 있다. 근대까지의 미술(소위 클래식 미술)은 상징성, 우의성(寓意性), 속성 등을 결합하여 제작하였다. 동양화의 갈대에 매달린 게 한 마리 그림은 장원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음식을 내린다는 뜻의 전()려와 중국에서 독음이 같기 때문에 장원급제를 하거나 바라는 뜻의 그림이고 연꽃의 열매인 연과를 그리면 연속으로 과거에 등과했다는 뜻이 된다. 원앙은 귀한 자식을 뜻하고 석류는 다자(多子) 죽순(竹筍)은 손자를 본 것을 축하한다는 뜻이다.

서양에서도 나체의 여인을 그리면 순수하고 신성한 것을 의미(신이 인간을 만들 때 나체로 만들었으나 죄를 짓고 옷을 입었기 때문)하고 빨간색은 예수님의 피(자애로운 사랑)를 상징하며 애벌레는 현세의 삶을 번데기는 죽음, 나비는 부활을 상징한다.

,서양이 100여 년 전까지는 도상적 결합으로 그림을 제작한 경우가 많아서 이런 내용을 이해하고 작품을 접하면 숨은 뜻을 많이 알게 된다.(더 많은 정보는 조용진 교수의 동양화 읽는 법’, ‘서양화 읽는 법을 참고하면 좋다.) , 그림을 일컬어 만국 공통어라고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그림을 통해 소통이 된다. 



작가: 이유진 촬영지: 제주도-애월해안도로​ 제작년도: 2015년

 

감상을 통한 힐링

자연과 미술은 감상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감상은 스쳐지나가듯이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일어날 수가 없다. 감상의 낱말 뜻처럼 마음에 느끼어 일어나는 어떤 생각이라는 것은 느끼기 위한 진지한 태도로부터 발현된다. 감상을 통해 힐링을 경험한 사람은 무수히 많다.

매일 자가용으로 운전하며 출퇴근하는 길을 조수석에만 앉아서 봐도 평소에 못보던 것을 발견한다. 그 길을 걸으면 더 많은 것을 보게 되고 느낀다. 그 길에서 나를 발견하기 위한 진지함을 가지면 결국 나를 발견하고 힐링이 된다. 감상은 태도로부터 나오므로 사실 쉬운 일이다. 그림을 바라봄에 있어서도 작가의 의도를 발견하고 더 나아가 나를 대입한 어떤 것을 발견하려는 태도를 가지면 휴식이 되고 치유가 될 수 있다.


본 연재의 그림 감상을 통해 휴식이 되길 바라며^^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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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용

(01)당신은 예술가입니다! - 1010

(02)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곳. 제주! - 1017

(03)유레카! 영감을 얻다!- 미술의 심봤다! - 1024

(04)자연감상과 미술감상의 공통점 - 1031

(05)우리는 왜? 힐링에 목마른가? - 117

 

Kai Jun(전완식)

 

르네상스시대부터 신고전주의 시대까지 활동했던 유럽 궁정화가들의 기법을 연구하였으며 그들이 만들어 냈던 화려한 기법을 활용한 독특한 인물화의 표현법을 개발하였다.

이에 대한 평가는 20094월 미국 최대 미술 산업 그룹 Redwood Media Group의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에 선정되었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이미지 변환에 대한 표현을 510년 만에 재현한 화가이다.

201512월에는 광복 70주년 국가 행사의 대표작가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전시를 했었다. 20183월 세종문화회관에서 국내최대규모의 인물화전을 열었으며 ‘KOREA Renaissance Art’를 선언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교수이며,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산업대학원을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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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는 목욕을 하고 나는 길을 걷고.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다가 밀도 측정의 방법을 찾은 것처럼 나는 길 위에서 영감을 얻었다. 

 

작가: Kai Jun 제목: 제주의 아름다움NO.6 크기: 116.8cm X 91cm 재료: Acrylic & Mixed Media 제작년도: 2018년

우리나라를 소재로 나만의 미를 만들기 위해 골똘히 고민하던 시기에 제주를 찾았었다.

금능해수욕장을 조금 지나면 월령리가 있는데 바닷가 현무암과 선인장 군락지의 조화가 참 아름답다. 바닷가에서 바닷바람을 실컷 맞고 동네 안쪽에 있는 농로를 하염없이 걸으며 밭에 심어진 선인장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서울에서만 생활한 나에게는 밭에 심어진 선인장이 주는 매력이 크게 다가왔다. 밭길을 걷다보면 계속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밭담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밭담의 형태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도 있겠지만 검정에 가까운 현무암과 초록, 연두, 노랑, 빨강 등의 색상 대비가 신비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참을 걷다가 쉴 겸해서 밭담에 걸터앉아 이 생각 저 생각을 하였다. 어릴 적부터 넘고 싶었던 3명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의 진경산수, 전신사조,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 앞으로 내가 해야 할 미술은? 등등 여러 가지의 고민이 해답 없이 머릿속에서 균형 잃은 연처럼 뱅뱅 돌고 있었다. 


현무암이 준 영감

~ 따가워! 그때 발에 따끔한 통증이 왔다.

오래 걸어서 발에 땀이 찼었다. 그래서 밭담에 양말까지 벗어 놓고 쉬고 있었는데 시큼한 냄새가 나서인가 개미가 발바닥을 물고 있었다. 밭담에 뭐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없었는데 개미에게 물리고 나서 자세히 보니 현무암의 구멍마다 엄청난 생태계가 이뤄져 있었다. 이끼도 있고 개미도 있고 뭔지 모를 벌레들과 조그만 식물들이 그 좁은 공간에 자기 세상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니 갑자기 그동안 무수히 많이 보아온 밭담이 검은색이라는 상징성으로만 생각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보면 검은 덩어리이지만 작게 보면 우주의 섭리가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기존 관념이 깨지는 것 같은 사고의 전환이 오며 고민의 실마리가 풀려나가고 있었다.

 

멀리서 크게 보면 평면이고 상징적인데 가까이에서 보면 입체가 되고 구체적인 내용이 보이는 현무암의 미세한 생태계와 같은 그림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제주는 한국의 보물 같은 섬이니 제주를 테마로 작품을 하면 한국의 미를 소재로 한다는 나의 생각에도 일치하고 조금은 부족한 감이 있지만 진경산수도 되며, 인물은 아니지만 터럭까지 섬세하게라는 전신사조의 정신을 옳게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의 정리가 되었다. 순간 나는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가며 됐어라고 소리쳤다.


 

우선순위를 만들고 체계를 세우다.

어릴 적부터 넘고 싶은 3명의 인물이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쟈크 루이 다비드, 렘브란트. 위대한 화가들이고 형용사가 부족한 업적을 남긴 대가들이다. 이 사람들의 작품에서 어떤 표현이나 생각을 꼭 내가 익히고 말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서는 살아있는 사람 같은 효과를, 쟈크 루이 다비드는 일반인을 위인처럼 신격화하는 능력을, 렘브란트처럼 영혼이 느껴지는 표현능력을 갖고 싶은 것이 미술을 시작하기 전부터 동경했던 것들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2008이라는 작품과 2015또 다른 꿈으로 목적을 이뤘고, 쟈크 루이 다비드도 전, 현직 대통령과 여러 인물화를 그리며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영혼이 느껴지는 렘브란트에 집중하면 된다는 생각의 정리가 되었다.

당시에는 희망의 문시리즈를 하고 있었는데 중단하고 우리나라 역사적 인물을 그려서 영혼이 느껴지게 해보자는 생각의 정리가 되었다. 그 후에 지금 느낀 것을 혼신을 다해 표현해보자는 정리가 되었다. 세종문화회관을 전시장소로 잡고 그동안의 인물화를 총망라한 대규모 전시를 하여 1단락을 짓자는 생각을 했다.

구체적인 실천 계획도 제주도의 길 위에서 거의 이루어졌다. 제주의 특별한 풍광이 나를 정리해주었다는 생각에 큰 감사함을 서울행 비행기에서 끊임없이 했었다.

 


작가: Kai Jun 제목: 제주의 아름다움NO.6(부분) 크기: 116.8cmX91cm 재료: Acrylic & Mixed Media 제작년도: 2018년

그때 마음먹은 것들을 실천하며 올봄이 되었고 이중섭 선생님 그림과 어느 배우의 인물을 그리며 만족감이 왔다. 배우 그림을 끝으로 인물화는 접어두고 내가 생각하는 한국을 제주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작가: 이유진 촬영지: 제주도-위)큰노꼬메오름​/아래)새별오름​ 제작년도: 2015년

 

감사의 땅. 제주!

생각한다고 모두 실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이 없으면 시작도 할 수 없으니 생각을 정리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제주의 길은 너무나 감사한 곳이다.

지금도 가끔 생각해본다. 만약 그때 그 길을 걷지 않았다면, 그 길에서 밭담의 속살을 보지 못했다면, 내 관념의 변화가 왔었을까? 깊은 문제의식과 해답을 얻기 위한 고민이 그 곳에서 풀린 것은 행운이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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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용

(01)당신은 예술가입니다! - 1010

(02)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곳. 제주! - 1017

(03)유레카! 영감을 얻다!- 미술의 심봤다! - 1024

(04)자연감상과 미술감상의 공통점 - 1031

(05)우리는 왜? 힐링에 목마른가? - 117

 

Kai Jun(전완식)

 

르네상스시대부터 신고전주의 시대까지 활동했던 유럽 궁정화가들의 기법을 연구하였으며 그들이 만들어 냈던 화려한 기법을 활용한 독특한 인물화의 표현법을 개발하였다.

이에 대한 평가는 20094월 미국 최대 미술 산업 그룹 Redwood Media Group의 글로벌 매거진(뉴욕 발행) ‘아트비즈니스뉴스표지 작가 및 뉴트랜드 작가 15인에 선정되었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위치에 따른 이미지 변환에 대한 표현을 510년 만에 재현한 화가이다.

201512월에는 광복 70주년 국가 행사의 대표작가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전시를 했었다. 20183월 세종문화회관에서 국내최대규모의 인물화전을 열었으며 ‘KOREA Renaissance Art’를 선언하였다.

현재 한성대학교 교수이며,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학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산업대학원을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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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디에서 영감을 찾아야하나?

"나는 진리라는 거대한 바닷가에서 노는 소년"이라 말했던 아이작 뉴튼은 당시의 과학계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였다그의 1687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책에는 관성의 법칙’, ‘운동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과 만유인력천체의 운동에 관한 내용 등을 담았다이런 초월적 업적을 만든 뉴튼을 향해 철학자 존 로크는 신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뉴튼은 항상 진리를 찾기 위한 고민을 했다중력의 법칙을 알아낸 1666년에는 22개의 문제를 동시에 연구하기도 했었다그의 삶은 자나 깨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의 연속이었다그가 중력의 법칙을 알아낸 유명한 일화인 사과나무 아래서 졸다가 그의 머리에 떨어진 사과를 계기로 알아낸 것처럼 그는 어쩌면 졸기 전부터 그 문제에 골몰했었을 것이다그러다가 우연한 사건으로 문제의 실마리를 찾았을 것이다.

 

현대인은 급변하는 사회 현상에 적응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이 많고 또한 창조적인 일을 해야 할 것이 많다뉴튼처럼 또는 빌게이츠스티브 잡스제프 베이조스 등등처럼 창조적 아이디어가 수없이 많이 필요하다.

예술가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훈련을 상당히 오랜 기간하게 된다아무것도 없는 빈 백지에 그림을 그려가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하나 더해가며 깊이를 만들어 낸다. 4차 산업 혁명의 거대한 파도를 넘어 가기 위해서는 예술가들처럼 무언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작가: Kai Jun 제목: 제주의 아름다움NO.5(부분) 크기: 116.8cm X 91cm 재료: Acrylic & Mixed Media 제작년도: 2018년

 

창의성도 개발 되는가?

크리에이티브(creative)은 예술가들에게는 필수적인 재능으로 얘기한다. 타고 난다는 말도 많이 한다. 그러나 창의성은 진리를 탐구했던 수많은 과학자와 철학자의 사고체계와 다르지 않다. 재능이 있으면 좋겠으나 재능만이 답은 아니다. 진리를 추출하는 방식을 얘기했던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여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단계에서 확실성을 근거로 진리의 기초를 삼았던 것과 같다.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문을 열었던 몬드리안의 경우도 우주의 진실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를 원했다. 그는 자연물들을 그림에 있어 기하학적인 형태로 환원하고 선을 수평과 수직의 축으로 환원하며 색채를 삼원색과 흰색, 검은색, 회색으로 환원하는 가장 단순한 방식을 택했다. 그에게 수직선은 생기를, 수평선은 평온함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 두 선들이 서로 적절한 각도에서 서로 교차하면 역동적인 평온함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방법론과 철학을 정립함에 있어 나무라는 대상을 통해 우주의 진실과 부합하지 않는 요소들을 제거하여 결과를 얻어냈다.

 

제거하고 정리하여 창의성이 만들어 지는 것을 설명하였지만 때론 무언가를 추가하여 창의성이 만들어 지기도 한다. 전화기에 컴퓨터 기능이 추가되어 스마트폰이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창의적 결과물을 도출시키는 과정은 깊은 고민 속에서 이루어짐이 분명하고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여기에 영감(靈感. 신령스러운 예감이나 느낌)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이나 상황이 결합되면 창의적 사고가 샘솟게 된다.

 

영감과 자연의 관계

영감을 얻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했었던 일은 자연과의 교감이다. 우연이든 자발적인 노력이든 자연 현상에서 영감을 얻은 사례는 부지기수이다. 이것은 어쩌면 아인슈타인이 말한 '모든 질량은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산화하여 없어졌다 하여도 없어진 것이 아니라 이 우주 공간에 에너지로 변화하여진 것뿐'이라고 한 것이나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원리가 적용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한낱 길가의 돌멩이에도 우주의 원리가 들어갈 수도 있으니 영감을 얻는데 자연과의 교감은 중요한 일이 된다.

 

어떤 문제를 풀기위한 과정에서는 비슷한 상황이 나타난다. 사색에 잠기고 골몰하다보면 자기안의 해법을 모두 소진하는 단계가 오고 이 단계는 무언가를 알 것 같기도 한데 분명하지 않은 모호함의 시기이다. 즉 사색을 통한 깊이 있는 자기와의 대화가 끝나갈 무렵이 최대로 부풀은 풍선이라면 자연의 어떤 현상은 풍선에 가해지는 바늘과 같은 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영감(靈感)의 뜻과 같이 신령스러운 예감이나 느낌을 자연이 주는 경우가 많다. 

 


 


작가: 이유진 촬영지: 제주도-용두암 제작년도: 2015년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곳. 제주!

전편에서 말한바와 같이 현대인은 대체적으로 예술가의 자격이 있으며 예술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창의적 사고를 해야 한다.

창의적 인간, 현대인에게 제주도는 더 없이 많은 영감을 주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기기묘묘한 자연 경관이 펼쳐져있고 혼자만의 깊은 사색이 가능하다. 제주도에서 걷다보면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또한 사색의 풍선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보면 자연의 현상이 무언가를 말해준다.

철학자의 길이라고 이름이 붙은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산책로나 일본 교토 시 사쿄 구에 있는 산책길은 진리를 탐구에 있어 사색자가 자연과의 교감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예이다.

 

사색하며 걷고 느끼기 좋은 제주도의 자연은 창의적 사고를 해야 하는 현대인에게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 본다.

이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얻었고 치유를 얻은 땅. 제주도는 우리나라의 보물이 분명하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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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용

(01)당신은 예술가입니다! - 1010

(02)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곳. 제주! - 1017

(03)유레카! 영감을 얻다!- 미술의 심봤다! - 1024